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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에서 몸으로, 언어에서 숨결로
저자는 여성의 글쓰기를 ‘몸으로 글쓰기’라 명명한다. 여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곧 여성의 ‘몸’에 대한 정직한 성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몸에 대한 성찰은 남성과 여성의 적대적 이분법이라는 그간의 고루한 단순성을 넘어서게 하며, 나아가 현대의 주체를 구성하는 물질적, 정신적, 문화적 토대의 복잡성에 대한 비판적 전망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는 시 역시, 몸과 관련하여, 시인이 숨쉬는 ‘숨결’로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시인의 숨결은 시인의 몸에서 토해져나와 대기 속으로 덧없이 사라지면서 그로써 제 스스로 결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스스로 말을 놓아버림으로써 순결한 몸을 얻는다. 그런 뜻에서 시란 ‘순결한 숨결’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이를 통해 저자는 시의 서정에 관한 더욱 발견적이고 풍부한 함의를 찾아간다. 젠더에서 몸으로, 언어에서 숨결로의 이러한 확장이 이 평론집의 기조음을 구성하고 있다. 열정적이고 화려한, 예민하고 부드러운 비평 책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 ‘젠더와 검은 에로스’는 한국 현대시에 함축된 젠더와 에로스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탐구하는 기획이다. 여성과 남성, 그리고 창녀와 양성성에 관해 다룬 이 장 가운데 남성성에 관한 글인 「피의 서사, 야수의 몸, 그 저주를 넘어」는 보편이 아닌 일개 젠더로서의 남성성을 확인하는 의미 있는 분석이며, 「검은 에로스」에서 다루어지는 창부(娼婦)에 대한 남성 시각은 그 자체로 여성의 섹슈얼리티의 복합적 모순을 첨예하게 드러낸다. 양성성의 문제를 예술적 불멸과 연관짓는 시각도 흥미롭다. 제2부 ‘젠더와 몸’은 젠더적 몸의 의미와 그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저자는 근대적 (여성) 몸과 그 변화에 대한 주목을 바탕에 두고 음식과 몸, 몸 담론, 근대적 물신으로서의 책, 생태주의적 감응력의 가능성 등 다양한 주제를 검토한다. 특히 「젠더와 몸 담론, 몸 의식으로서의 시를 위하여」는 시를 통해 몸과 몸 담론에 관한 포괄적인 점검과 함께 그 전망의 탐색을 시도한 글로, 장 전체를 관류하는 저자의 관심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제3부는 <2046>을 비롯한 몇몇 영화들에 대한 문학적 분석이며, 제4부는 동시대 시에 대한 성실한 현장비평의 성과를 담고 있다. 여성성과 시에 대한 지속적인 주목을 통해 이 시대 담론들의 가장 첨예한 지점을 사고하는 저자의 글쓰기는 열정적이고 화려하다. 더불어 시인의 호흡에 감응하고 그 숨결을 어루만지는 그의 감각은 예민하고 부드럽다. 그가 건져올리는 시들의 아득한 결처럼, 우리는 그의 평론 또한 어떤 순결의 지점에 가 닿고 있다고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