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들어가며
프롤로그: 평범한 남자 제1장 | 베스테르플라테의 결사항전 제2장 |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제3장 | 허사로 끝난 노력 제4장 | 무모한 저항 제5장 | 폴란드는 아직 건재하다 제6장 | ‘해방자’와 부재중인 친구들 제7장 | 죽음의 품으로 제8장 | 참을성 없는 도둑들 제9장 | 전장에서 맞은 최후 결론 부록 1. 폴란드 육군 전투서열 1939년 9월 1일 2. 독일 육군 전투서열 1939년 9월 1일 3. 붉은 군대 전투서열 1939년 9월 17일 미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
Roger Moorhouse
이승훈의 다른 상품
|
9월 1일의 해가 떠오르자 히틀러의 군대는 폴란드 국경을 북쪽, 서쪽, 남쪽에서 넘어 전차로, 트럭으로, 도보로 번개처럼 진격했다. 그동안 독일 공군은 하늘을 누비며 폭격과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겨우 2주 남짓 뒤에 폴란드군이 와해될 때까지 서구 동맹국들은 폴란드를 거의 지원하지 않았다. 마침내 히틀러의 새 동맹 스탈린이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9월 17일, 붉은 군대가 동쪽에서 폴란드를 침공했다. 독일군과 소련군은 폴란드 영토에서 만나 과거의 극단적 적대감이 언제 있었냐는 듯, 영원한 형제애를 선언했다. 폴란드는 박해, 비참함, 그리고 죽음이 지배하는 새로운 전체주의적 암흑시대에 들어섰다.
--- p.6 개전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이미 잔혹한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비드고슈치 근처의 세로츠크 마을에서 독일군은 근처 숲에서 포로로 잡은 폴란드인 35명을 ‘보복’이라는 명분으로 처형했다. 희생자 대부분이 군인이거나 철도 노동자였다. 카토비체 근처 얀코비체에서는 독일군 장교 1명이 살해된 데 대한 보복으로 폴란드인 12명을 총살했다. --- p.67 프랑스는 1939년 5월에 맺은 카스프시츠키-가믈랭 협약을 통해 분쟁이 발생할 때 폴란드에 제공할 군사 지원의 정도를 합의했다. 하지만 그동안 이 약속을 시의적절하게 실행한 조치는 거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프랑스는 군사 문제에서는 최고의 카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치적 주도권을 영국에 떠넘김으로써 자진해서 영국 정부의 인질이 되어버렸다. 체임벌린 정부는 영토에 대한 히틀러의 야심을 멈추기 위한 한계를 긋는 데에 진지하게 임했으나, 단지 목소리만 높이면 히틀러가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당연히 보장과 동맹이라는 대담한 정치적 제스처를 구체적인 군사행동 계획으로 이행하지 않았다. --- p.133 동부 폴란드의 국민들에게 붉은 군대의 도착은 대격변의 전조였고, 이들은 조국이 소련에 점령됐음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한 목격자의 회상대로 “거대한 개미집을 거칠게 흔든 것 같았다.” 새로운 사회질서에서 장교층이 박해받았듯이 폴란드적인 것은 목숨을 위협하는 잠재적 조건이 되었다. 소련의 ‘해방’ 서사에 대한 응답으로 일부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유대인이 붉은 군대 환영에 앞장선 사건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불길한 징조였다. --- p.259 폴란드군은 침략자에 대항해 용감하게 싸웠지만 이제 독일 국방군과 붉은 군대에게 남은 일은 사실상 소탕 작전뿐이었다. 모들린 요새는 탄약, 식량, 의약품이 심각하게 부족했음에도 완강히 버티고 있었고, 수적으로나 장비 면으로나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의 집중 공습과 포격, 지상 공격을 며칠째 견뎌내고 있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기는 여전히 높았다. 한 대위는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병사들은 항복하거나 무기를 버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들려오는 불평이라고는 줄어드는 식량 배급과 부족한 담배뿐이었다. --- p.370 절박함은 창의적인 방법을 낳았다. 말고기가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고, 심지어 시 당국에서는 맛이 좋다며 칭찬하기도 했다. 거리에 말 사체가 널려 있어서 말고기를 상대적으로 구하기가 쉬웠다. 굶주린 시민들은 말이 죽자마자 바로 사체를 해체해 가져갔다. 한 시민은 노비시비아트 거리의 한 식당에서 말고기와 적양배추로 만든 수프를 먹은 경험을 떠올렸다. “수프 그릇 밖으로 말의 턱뼈와 정강이뼈가 삐죽 튀어 나와 있었다.” --- p.295 보통 이런 독일식 선전 신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수많은 반박 속에 조용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폴란드 전역의 경우에는 전쟁이 끝나고도 이 신화를 바로잡으려는 이가 거의 없었다. 독일은 속죄해야 할 훨씬 더 심각한 범죄가 많았고, 소련은 전쟁 전의 폴란드 정권을 옹호할 생각이 없었으며, 영국과 프랑스는 폴란드가 어리석고 무능한 동맹이었다는 서사가 퍼지는 데 만족하는 듯했다. 오로지 망명 폴란드인들만이 진실을 말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들은 전형적인 ‘냉전 전사’이자 평화를 상습적으로 훼방하는 사람들로 취급받아 무지와 타성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 p.386 |
|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연 1939년 폴란드 침공
편향된 서술과 왜곡된 주장을 걷어내고 그 전말을 객관적이고 입체적으로 복원한 저작 • 2019 폴란드 외교부 선정 역사 출판물상 수상 • 2020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웰링턴 공작 군사사 메달 최종 후보 • 2020 영국 육군 올해의 군사도서상 최종 후보 1939년 9월에 일어난 폴란드 침공은 제2차 세계대전의 신호탄을 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과 소련은 폴란드를 점령해 분할했고, 5주간의 전쟁과 뒤이은 점령 기간에 폴란드인 수백만 명이 학살당했다. 폴란드는 유럽의 두 전체주의 국가에 침략당해 현대전이 만들어낸 모든 참극의 무대가 되었다. 서쪽에서는 독일 국방군이 인종 전쟁을 벌였고, 동쪽에서는 소련의 붉은 군대가 계급 전쟁을 벌였다. 이 전역은 영국과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역사학계에서 오랫동안 왜곡되고 소홀하게 다루어졌다. 전후 냉전기에 폴란드 침공은 거의 전적으로 독일군의 시각에서 서술되었다. 영미 군사학계는 소련에 맞서기 위해 패전한 독일 장성들의 증언과 기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그 결과 폴란드 전역은 독일이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고 완성한 무대로, 폴란드군은 현대전에 기병대를 앞세운 무능한 군대로 그려지는 신화가 자리잡았다. 한편 소련은 스탈린이 히틀러와 손잡고 폴란드를 침공했다는 사실을 지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붉은 군대의 침공은 인도주의적 개입으로 윤색됐고, 소련과 전후 공산 폴란드에서는 이와 다른 언급이 철저히 억압되었다. 냉전 체제가 붕괴한 1990년대 이후 독일 국방군의 신화가 깨지고 사료 접근이 확대되면서 폴란드 침공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영미 학계는 폴란드 침공을 홀로코스트의 실질적 시작점으로 보게 되었고, 독일에 맞춰져 있던 초점에서 벗어나 9월 17일 소련의 동부 폴란드 침공도 동등한 무게로 다루기 시작했다. 소련의 그늘에서 벗어난 폴란드 역사학계에서도 이 전역의 여러 측면을 객관적으로 연구하게 되면서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21세기에 들어 폴란드 전역을 단독으로 조명하는 연구서들이 잇따라 등장했고 이 전역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이 책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로 꼽힌다. 지은이 로저 무어하우스는 폴란드 역사학의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해 서구의 편향된 서술과 독일, 소련의 왜곡된 주장을 바로잡았다. 기존 연구 문헌과 공공 기록은 물론 폴란드인의 회고록과 일기 등을 바탕으로 전역의 전말을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입체적으로 규명하고, 당시 폴란드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2019년 출간된 이 책은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폴란드 외교부 선정 역사 출판물상을 수상했고, 2020년에는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웰링턴 공작 군사사 메달 최종 후보와 영국 육군 올해의 군사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9월 1일, 전쟁의 시작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토를 두고 폴란드와 독일의 관계는 줄곧 긴장 상태였다. 히틀러의 인종적 편견과 동방 확장에 대한 야욕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독일은 폴란드가 먼저 독일을 공격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글라이비츠 방송국을 습격당한 것으로 위장 공격 작전을 벌였고, 마침내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했다. 독일군은 전차와 항공기, 통신 체계를 활용해 집중 공격을 퍼부었다. 개전 초부터 민간인 학살이 벌어졌고 어린이와 여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군사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시골 마을과 도시가 공습을 받았고, 피난민 대열에는 기총소사가 가해졌다. 그러나 폴란드군은 예상외로 강렬하게 저항했고, 독일군은 전쟁 초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폴란드는 오랫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지배당하고 지도에서 국가가 사라지는 위기를 겪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독립국으로 재건되었다. 그러나 국경 분쟁과 민족 갈등, 군사력의 한계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특히 서쪽에는 독일, 동쪽에는 소련이라는 두 전체주의 국가가 자리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폴란드는 협정을 맺은 영국과 프랑스에 기대를 걸었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두 나라는 독일에 선전포고만 하고 적극적인 군사 작전을 펼치지 않았다. 그동안 독일군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고, 점령지에서는 폴란드 민간인을 상대로 한 대규모 처형과 보복 학살이 이어졌다. 폴란드 병사들은 끈질기게 싸웠지만, 무기 체계와 통신 체계의 열세에 군 지도부의 비효율적인 지휘가 겹쳐 독일군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소련의 침공과 폴란드의 붕괴 1939년 9월 17일, 소련군이 폴란드 동부로 침공했다. 독소 불가침 조약의 비밀 의정서에 따라 독일과 소련은 이미 폴란드를 분할하기로 합의해 둔 상태였다. 소련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동포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일부 지역에서는 붉은 군대가 폴란드군을 돕기 위해 온 것처럼 보이게 하는 선전 공작도 펼쳤다. 이 공작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붉은 군대는 곧 본모습을 드러냈다.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계 주민들에게 폴란드 귀족의 재산을 ‘되찾아’ 오자고 부추겨 계급 대립을 선동했고,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독일과 소련의 협공에 직면한 폴란드는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수도 바르샤바는 9월 27일 항복했고,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폴란드군도 10월 6일까지 조직적인 전투를 마무리했다. 신화를 걷어낸 폴란드 전역의 재평가 폴란드 전역은 처음부터 불공평한 싸움이었다. 독일군은 군사 장비와 교리 면에서 폴란드군을 앞섰고, 여기에 세계 최대 규모의 붉은 군대까지 쳐들어오자 폴란드군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침공 초기부터 벌어진 무차별 폭격, 민간인 학살, 인종주의적 폭력은 이후 유럽에서 벌어질 전쟁과 점령의 잔혹성을 예고했다. 그전에도 민간인을 상대로 한 폭격은 종종 있었으나, 이 전역에서는 최전선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이 전역은 제2차 세계대전의 부차적 사건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의 양상을 예고한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오판도 폴란드 전역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두 나라는 폴란드가 침공당할 경우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실질적 준비는 없었다. 폴란드를 지지한다고 선언하기만 하면 히틀러가 침략을 자제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후 두 나라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지만 물질적 지원은 거의 하지 않았고, 이후 서부 전선은 ‘가짜 전쟁’이라 불리는 소강상태에 빠졌다. 폴란드의 입장에서 이는 동맹국의 배신이나 다름없었다. 폴란드가 엄청난 희생을 치른 후에야 두 나라는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들게 되었다. 독일군의 전격전이 폴란드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는 이야기 역시 과장된 신화다. 독일군의 기동전과 항공 전력이 위력을 발휘한 것은 사실이지만, 폴란드군이 기병으로 전차에 돌격하다 무너졌다는 식의 이야기는 폴란드의 무능함과 독일의 우월성을 부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소련 역시 영토 약탈이 목적이었던 침공을 단순한 경찰 활동으로 포장했다.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되면서 이러한 신화는 공개적으로 비판받게 되었지만, 그 그림자는 최근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2016년 한 러시아인 블로거는 독일과 소련이 협력해 폴란드를 침공했다는 텍스트를 공유했다는 이유로 나치즘 재활을 유포한 혐의로기소되기도 했다. 패자의 시선으로 다시 쓴 1939년 폴란드 전역 저자는 폴란드와 주변 강대국들 간의 치열한 외교전, 독일과 소련의 비밀 협정, 폴란드군과 독일군, 소련군이 벌인 전투의 전개 양상을 직접 발로 뛰며 수집한 문헌과 자료,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서술했다. 특히 폴란드 측의 상황을 세밀하게 다루어 이 전역을 균형 있게 조명하고자 했다. 또한 전투의 전개에만 머무르지 않고 폴란드 병사와 민간인의 편지, 일기, 회고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았다. 덕분에 전쟁의 참혹함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이 책의 원제 “First to Fight”는 독일의 침략에 가장 먼저 맞서 싸운 폴란드를 가리킨다. 동시에 폴란드가 나치 독일의 침략과 점령이 초래한 폭력을 가장 먼저 겪었다는 사실도 함축한다. 지은이는 폴란드군의 저항과 민간인의 희생, 소련의 침공, 서방 동맹국의 소극적 대응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며, 압도적인 군사력에 맞선 폴란드의 저항이 두 강대국의 협공과 서방 동맹국의 외면 속에서 어떻게 패배와 비극으로 이어졌는지를 추적한다. 이를 통해 이 책은 승자의 관점에 치우친 기존의 역사 서술을 넘어 패자의 역사를 복원하고, 폴란드 전역을 제2차 세계대전의 전개와 성격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 사건으로 재조명한다. |
|
“무어하우스는 자신이 서술한 현장을 직접 답사했으며, 무기와 전술은 물론 독일군과 폴란드군의 조직 체계까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 모든 훌륭한 역사서가 그렇듯 무어하우스의 책은 오래된 질문에 답하는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 뉴욕타임스)
|
|
“그동안 폴란드 전쟁사에 존재했던 공백을 메워주는 책이다. 무어하우스는 관련 문헌과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 날카로운 분석, 폴란드가 배신당하고 패배한 끝에 분할당한 가슴 아픈 과정을 정교하게 엮어냈다.” - 이코노미스트
|
|
“무어하우스는 단순한 진실을 탁월하게 밝혀냈다. 두 전체주의 정권이 손을 잡는 순간,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들에게 짓밟힐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 타임스
|
|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매우 잘 쓰였으며 통찰력까지 갖춘 이 책은 앞으로 오랫동안 이 주제에 관한 표준 연구서로 자리 잡을 것이다.” - 앤드루 로버츠 (『처칠』의 저자)
|
|
“1939년 폴란드 침공에 대해서 여전히 잘못된 통념이 많이 남아 있다. 무어하우스는 현대 역사학의 연구 성과를 활용하여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고자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최초의 주요 군사작전을 탄탄하게 분석했다.” - 라이브러리 저널
|
|
“폴란드-독일 전쟁을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더 큰 역사적 맥락에 다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했다.” - 리처드 오버리 (역사학자, 히스토리 투데이)
|
|
“무어하우스는 거대한 전쟁의 서막을 연 5주간의 전투를 깊이 파고들어 그것이 이후 닥칠 참혹한 비극을 예고했음을 보여준다. …… 이 책은 철저한 연대기적 서술을 통해 기존에 알려진 역사 기록을 보완하고 확장하는 훌륭한 연구서다.” - 커커스 리뷰
|
|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싸운 폴란드인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짧고 잔혹한 전쟁은 ‘거의 300주에 걸친 학살을 예고하는 5주간의 투쟁’이었다. …… 그는 폴란드인의 용맹함, 독일군의 잔혹함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의 배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
|
“시의적절하고 권위 있는 책이다. … 무어하우스는 방대한 양의 미발표 폴란드․독일 자료와 양측의 풍부한 목격자 증언을 꼼꼼히 조사하여 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간과되었지만 중요한 사건을 균형 있게 다룬 기록을 집필했다. 이 책은 한편으로 참혹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깊은 감동과 용기를 준다.” - 스펙테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