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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고양이가 필요한 날 나는 운이 좋았지 * 애정 별명 * 분리배출 * 수의사를 부탁해 * 슬픈 날은 날씨가 너무 좋다 * 고양이는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 최우선의 일 * 그런 댓글 * '오늘도 망한 것 같다'고 중얼거리는 어른이들 * 그래도 유명해지고 싶다 * 책을 냈는데도 작가는 아닌 것 같다 * 거리 두기의 미학 * 답장하지 않을 자유 * 귀 기울이는 존재 * 마음엔 가격표가 있을까 * 침묵의 대화법 * 단톡방에서 나가는 연습 *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지 않는 사람 * 고양이의 시간, 인간의 시간 * 멀어진 사람의 SNS를 들여다보는 시간 * 수의사 실격 * 아직 울지 못한 사람에게 * 미룸의 핑계 * 마음의 털을 고르는 법 * 나이가 든다는 것은 * 다시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 무슨 음악 좋아해? * 무용한 시간이 가장 쓸모 있다 * 기다림이란 * 오늘부터 다이어트 * K형의 부고를 받은 저녁 * 여행하지 않는 여행가 * 기억은 공평하지 않다 나가며: 그럼에도 고양이가 필요한 날 |
나응식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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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함께 지내는 아미라는 고양이가 있다. 아미는 다른 고양이가 사라져도 그 녀석을 오래 찾지 않는다. 잠시 냄새를 맡고 둘러보고는 다시 밥을 먹는다. 그러곤 창가에 앉는다. 아미에게는 아직 살아 있는 하루가 남아 있다. 먹어야 할 밥이 있고, 햇볕이 드는 창가가 있다. 다른 고양이가 사라진 자리를 잠시 살핀 뒤 아미는 그렇게 자기 하루로 돌아간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냉정하게 보였다. 그런데 오래 보다 보니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라진 것을 잊은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하루를 먼저 사는 것처럼 보였다.
---pp.54-55 「최우선의 일」 중에서 우리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거리가 필요 없다고 착각한다. 가족이니까, 오랜 친구니까, 연인이니까 굳이 공간의 선을 나눌 필요가 없다고. 그러나 가장 자주, 가장 깊이 다투는 상대는 대개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고양이도 같다. 가까울수록 약간의 거리가 필요하다. 오롯이 혼자가 되지 못할 때 다툼이 일어날 수 있다. 마음 맞는 사람과 있을 때 우리 몸이 저절로 풀어지듯, 안전한 거리를 가진 고양이만이 어깨를 펴고 꼬리의 힘을 뺄 수 있다. 외로움과 안전은 다른 문제다. 떨어져 있어서 조금 외로운 편이, 붙어 있어서 매일 뺨을 맞는 것보다 낫다. ---p.82 「거리 두기의 미학」 중에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것은, 내 마음 속에 그 사람을 담는 것이기도 하고 잠시라도 그 사람의 마음속에 내가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니까. 여전히 생일 알림이 뜨면 잠시 멈춘다. 나에게 이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 나는 이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그리고 나는, 이 사람에게 얼마나 기억되고 싶은가. 아직도 별것이 다 어렵다. ---p.97 「마음엔 가격표가 있을까」 중에서 오늘 당신이 울었든 울지 못했든, 저는 당신이 괜찮기를 바랍니다. 지금 당장 괜찮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언젠가는 늦더라도 당신이 마음 놓고 한번 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그날의 당신 곁에 따뜻한 무언가가 조용히 앉아 있어주기를. 보드랍고, 폭신한 고양이처럼 다정한 존재가 당신 곁에 무심히 앉아 있어주기를. ---p.128 「아직 울지 못한 사람에게」 중에서 누구와 어디에 있었는지보다 그때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잊어버리는 것이 더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 글쓰기는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기보다 해야만 하는 일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p.140 「나이가 든다는 것은」 중에서 Y는 원래 말이 많은 친구가 아니었다. 버스에서 처음 말을 걸던 날처럼, 필요한 말만 툭 던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편했다. 사람들은 대개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 이유를 묻는다. 왜 그러냐고, 괜찮냐고, 무슨 일이 있냐고. Y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대신 음악을 틀어주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하는 일에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p.151 「무슨 음악 좋아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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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존재에게 배운,
가장 유심한 마음에 대하여 병원 진료실부터 유튜브 영상, 강연 현장 그리고 여러 책으로. 어디서든 고양이와 보호자를 ‘대변’했던 수의사 나응식이, 이번 책에서는 자신에게 집중했다. 고양이에게 배운 삶의 태도가 쌓이니 책 한 권이 되었다. ‘냐옹신’이라는 별명이 붙어서 자신의 이름을 처음 좋아하게 되었다는 고백, 지인의 생일 알림 앞에서 선물을 할지 말지 망설이던 순간, 소소하고 별것 아닌 일에 여태 수선을 떤다는 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멀리 있는 부모님이 갑자기 보고 싶은 날. 오래 기다린 좋은 소식을 들었는데 누구에게 가장 먼저 말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휴대폰만 들고 있는 날(7-8쪽)”이면, 그 옆에는 무심한 듯 곁에 머무는 고양이가 있었다. “상대의 감정이 어떻든 거기에 맞추어 특별한 행동을 더하지 않는(8쪽)” 고양이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왜 그러냐고 묻지도 않고 해결책을 알려주지도 않는(8쪽)” 고양이인데,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아무 말 없이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 그런 존재가 필요한 날은 누구에게나 기어코 온다. 그런데 그 무심한 존재와 오래 함께하다 보니 무심하기만 한 것은 아니더라고 작가는 회상한다. 무심해 보이던 행동은 그저 아직 살아 있는 하루에 몰입하는 모습이었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유심한 마음이었다. “돌보는 일도 어쩌면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55쪽)”는 생각 끝에 그는 자기만의 답을 찾는다. 고양이의 죽음 앞에 무너지다가도 곧이어 만난 새끼 고양이의 천진함에 웃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들을 먼저 챙기는 돌봄의 모습이라는 것. 무심해야 살 것 같은 날들이 이어져 온기가 그리운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사실은 굉장히 유심했던 당신의 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고양이 곁에서 알아차렸다 무용한 시간의 쓸모, 그리고 나를 수용하는 법 진료와 진료 사이, 예약 시간이 20분쯤 비면 작가는 원장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는다. 예전에는 그 짧은 틈에도 메일을 확인하고 논문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는 시간을 일로 메운다고 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몸은 쉬지 못했고, 마음은 다음 진료를 앞두고 더 지쳐갔다. 이제 그는 비어 있는 20분을 꼭 유용하게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안다. “오늘 하루가 조금 엉성했어도, 천천히 몸을 일으(67쪽)”키는 고양이처럼 우리도 그래도 괜찮다. 커피를 마시거나 창밖을 바라보거나, 잠시 잠드는 시간이 그다음을 조금 덜 힘들게 해준다면, 꽤 쓸모 있는 일일 거라고 믿게 되었다. 고양이의 그루밍을 바라보다 깨달은 것도 있다. 그루밍은 단순히 몸을 닦는 일이 아니다. 무료할 때나, 머쓱할 때, 마음이 어수선할 때도 고양이는 제 털을 고르며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는다. 퇴근 후 카멜색 리클라이너 소파에 앉아 숨을 고르는 작가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고양이도, 사람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을 가지런히 매만지고 있는 셈이다. 마음을 돌보는 일이 언제나 쉬운 것만은 아니다. 한 고양이를 떠나보내던 날, 작가는 보호자보다 먼저 울음을 터뜨렸다. 수의사는 보호자의 슬픔을 받아내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수의사로서 실격”이라며 스스로를 타박했다. 그때 선배 수의사가 건넨 말은 짧디짧았다. “안 우는 게 뭐 잘하는 건 줄 아니.” 그 말의 의미를 헤아리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마침내 마음에 닿았다. 수많은 작별을 지켜보고도 여전히 눈물이 난다는 건, 아직 이 일을 익숙한 절차로 대하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언젠가는 무뎌지는 날이 오겠지만, 조금 민망하더라도 눈물이 나는 수의사로 남기로 한다. 고양이를 돌보며 배웠다 타인의 신호를 끝까지 읽는 다정함 그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의대를 졸업하고 병원 일을 배우던 초년 시절, 아무리 늦게 귀가해도 주방의 불은 늘 켜져 있었다. 어머니는 말없이 불을 켜둔 채 기다리셨고, 그가 방에 들어간 뒤에야 불을 끄셨다. 형편이 넉넉지 않을 때도 아버지는 짜장면을 시키면 꼭 물만두까지 더해주셨다. 말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그건 분명한 사랑이었다. 이를 깨닫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렸다. 고양이의 신호 앞에서도 그는 서툴렀다고 고백한다. 진료실에서 잔뜩 굳어 있는 고양이를 보면 긴장을 빨리 풀어주고 싶어 먼저 손을 뻗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고양이는 더 깊이 웅크렸다. “애쓴 쪽도, 멀어지게 만든 쪽(100쪽)”도 자신이었다고 돌아본다. 그 뒤로 그는 고양이가 보내는 신호가 어디를 향하는지 끝까지 지켜보는 법을 배웠다. 마음을 열고 있는지, 움츠러들고 있는지, 힘을 빼고 쉬고 싶은지를 차츰 살피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고양이도, 우리도 오롯이 긴장을 풀고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고양이가 꼬리로 단번에 전하는 마음을, 사람은 평생에 걸쳐 더듬더듬 배운다. 고양이의 자세는 공부해 가며 읽어냈지만, 가장 가까운 이의 신호는 한참 뒤에야 알아차렸다. 그 시간을 지나온 작가는 믿는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일은, 그의 신호를 끝까지 읽어주는 일(91쪽)”인지도 모른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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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 진료실을 들고 날 때의 공손함은 내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정비례한다. 그저, 모쪼록, 잘 부탁드린다는 마음. 내 몸에 이상이 생겨 의사를 방문할 때보다 더 그런 마음이 드는 이유는 반려동물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 내 가장 소중한 존재의 건강과 안온함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가는 태도는, 때로 경건하기까지 하다. 하여 보호자들은 수의사의 마음을 헤아릴 기회나 여력이 없다. 일방적인 바람과 기대로 가득찬 시간 속에서 마주할 뿐이다.
책을 보며 처음으로, 나응식 원장이 의자에 앉아 진료실을 나서는 보호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을 떠올렸다. ‘병원’이니만큼 한숨을 안은 처진 어깨가 대부분일 테다. 요동치는 수많은 마음 사이에서 고요함을 지켜야 하는 그 시간은 외로운 수행에 가까웠을 것이다. 책에서 그가 어떻게 그 수행을 일상적으로 지켜냈는지 엿볼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행해야 하는 매일의 수행과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역할을 해내는 것,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틈틈이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 이 책은 우리가 우리의 고양이, 강아지 또는 소중한 존재를 향해서만 쏟아부을 줄 알았던 곡진한 마음을 스스로에게도 나눠주는 방법을 생각하게 한다. 내 고양이들(지금은 한 마리가 되었다)의 주치의인 나응식 원장은 사찰에서 마주칠 법한 차분한 거대 고양이 같았다. 하지만 그 모습은 한 생명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책임감에서 비롯된 태도였을 뿐, 그에게도 매일 치열하고 소란스러운 속내가 있었다는 사실은 묘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태도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 - 김이나 (작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