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전은주의 다른 상품
윤은경의 다른 상품
|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더 꽉 감는다.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잠에서 깨지 않아야 한다. 바깥의 소란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신은 더 또렷해진다.
--- p.4 “운전을 못 하면 우리들처럼 산속에 갇히는 거지 뭐. 섬이 따로 있나. 마을버스도 못 들어오는 여기가 섬이지, 육지 속의 섬.” --- p.27 고모가 장바구니에서 보냉백으로 꽁꽁 싸둔 쭈쭈바를 꺼내 드린다. 할매들 얼굴이 함박꽃이 된다. 쭈쭈바를 물면 누구나 아이가 되는 것 같다. --- p.37 “그랬구나, 참지 말고 울어. 실컷 울자.” 가만히 내 등을 토닥이던 고모가 꺼이꺼이 울자 속울음을 울던 나도 소리 내어 운다. 울음소리가 산골짜기마다 출렁거리며 흘러간다. --- p.60 “난 엄마가 책 읽어 줄 때가 제일 좋았거든. 그 책들 다 다시 읽어줘. 할배, 할매들과 들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내가 어린아이처럼 떼를 쓴다. 엄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 p.73 |
|
작가는 이 작품의 뿌리를 마을 이름에서 찾습니다. 참나무, 참나리, 참나물, 참가자미처럼 동식물 이름에 붙는 ‘참’은 ‘진짜’, ‘으뜸’을 뜻합니다. ‘참새미골’은 진짜 샘이 솟는 골짜기라는 뜻이지요. 수도가 없던 시절, 달고 맑은 물이 솟는다는 것은 마을의 가장 큰 자랑이었습니다. 샘물이 사람과 뭇 생명을 지켜 냈듯, 이 책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서로에게 샘물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돌봄은 한 방향이 아닙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먹이고 재우지만, 아이는 어른들의 기계를 고쳐 주고 책을 읽어 줍니다. “걱정 말어, 오히려 우리가 정원이 덕 보고 있으니까”라는 말은 빈말이 아닙니다. 비어 가던 마을은 아이 하나로 다시 북적이고, 아이는 그 마을의 품 안에서 자랍니다. 상처는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건네지면서 옅어집니다. 작품이 가장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어른스러운 아이’입니다. 정원이는 밝고 씩씩하고 야무집니다. 어른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지요. 그러나 그 어른스러움은 재능이 아니라 방어입니다. 엄마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삼키며 익힌 생존법입니다. 작가는 이 아이를 대견해하는 대신 안쓰러워합니다. 어른들이 하나둘 아이가 되어 가는 마을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아이가 되는 사람이 정작 그 아이라는 역설. 이것이 이 작품의 뼈대입니다. 울음이 터지는 자리에서 작품은 가장 조용해집니다. 먼저 우는 쪽은 어른입니다. 아픈 엄마를 두고 떠났던 자신을 참회하며 고모가 울고, 그제야 아이도 웁니다. 울어도 된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아이는 비로소 운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고 보여 줍니다. 마을 소멸, 돌봄 공백, 세대 단절처럼 무겁게 다뤄지기 쉬운 주제들이 이 책에서는 미숫가루 한 대접과 쭈쭈바 하나, 떡볶이 한 접시의 온도로 전해집니다. 떠나는 시골이 아니라 돌아오는 시골을 그리고 있습니다. 빈 외양간은 초록 작업실이 되고, 방치된 마을 회관에는 책방이 들어설 참이며, 어르신들의 기억은 한 권의 식물도감으로 엮여 갑니다. 삽화는 전작 『인형병원』에서 전은주 작가와 호흡을 맞췄던 윤은경 작가가 다시 맡았습니다. 맑은 수채화로 그려 낸 참새미골은 비 오는 새벽의 짙은 파랑에서 시작해 초록이 짙어 가는 산골을 지나, 모감주나무 꽃잎이 쏟아지는 노란 황금비로 끝납니다. 아이 마음의 날씨도 그림의 색을 따라 조금씩 개어 갑니다. 책 끝에는 이야기 속 마을 사람들이 함께 엮던 ‘참새미골 식물도감’처럼, 참새미골의 풀꽃과 나무 열두 가지를 담았습니다. 읽고 나면 마을 이름 하나가 오래 남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누구에게나 ‘참새미골’은 있으니까요. 이 책은 2026년 경북문화재단 전시발간지원사업 보조금을 받아 발간 되었습니다. 〈작가의 말〉 여러분 마음속에도 ‘참새미골’ 같은 곳이 하나쯤 있지 않나요? 누군가에게는 떠나온 고향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예전에 살던 동네일 수도 있어요. 어쩌면 날마다 지나다니는 곳일지도 몰라요. 놀이터, 학교 앞 문구점, 동네 도서관, 학교 앞 분식점……. 장소는 저마다 달라도 한 가지는 같아요. 그곳엔 따뜻한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사람 말이에요. 와글와글 함께 놀 친구들, 참새 방앗간 드나들듯 해도 늘 반갑게 맞아 주시는 문구점 할아버지,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을 척척 골라 주시는 센스 만점 사서 선생님, 내 떡볶이 취향을 기막히게 잘 아시는 분식점 이모……. ‘참새미골’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믿어요. 누구에게나 ‘참새미골’은 있다고요. 아직 나만의 ‘참새미골’을 만나지 못했다면, 제가 힘껏 응원할게요. 이 책을 읽는 모든 분의 ‘참새미골’에도 황금비가 쏟아지기를 기도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