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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상처가 빛이 되는 유일한 통로
1 낙타의 시간 풍화 / 멀리 보다 / 낙타의 시간 / 독수리처럼 / 생(生)이라는 문장을 퇴고하다 / 포쇄하는 날 / 아프지 마라, 기어이 올 봄이라면 / 곰팡이의 은거 2 주름의 내력 모란(母糷) / 주름의 내력 / 배추가 물드는 시간 / 조용한 품 / 소반 / 칼끝의 시간 / 문신 / 보랏빛 줄기 3 연탄재가 웃을 때 가지치기 / 연탄재가 웃을 때 / 기차는 인연을 싣고 / 석양 증후군 / 염낭거미 / 천장에 대하여 / 배경 / 이음새 4 어머니의 기억 방하착(放下著) / 어머니의 기억 / 간 맞추기 / 껌 / 발가락이 닮았다 / 치매(致梅) 5 생(生)의 조각가 세상의 연구자들 / 뚝배기, 바다를 끓이다 / 포장지 / 생(生)의 조각가 / 바코드 / 줄 / 비빔밥 |
朴鐘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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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을 넘기고 나니 늙은 낙타처럼 웬만한 일에는 동요되지 않는다. 걷다가 뜻밖의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횡재를 만난다 해도 유난스러워할 일이 없다. 흔들리는 인생길에서 부유하던 잡념들을 가라앉히고 마음에 단단한 근육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리라.
인생은 사막을 걷는 낙타처럼 고독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 같다.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을 잘 빠져나온 사람만이 삶을 반추할 수 있듯이 머리에 희끗희끗한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남편은 다시 그 친구를 만난다. 마음이 여물지 못한 남편은 어느 한 시절은 그와 함께 울고 웃던 막역한 친구였다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단다. 그런 남편한테 나는 속도 없는 사람이라며 핀잔을 주고 싶지만, 이제 와서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pp.25-26 「낙타의 시간」 중에서 이제 나는 곰팡이를 예전처럼 미워하지 않는다. 어떤 생은 타인에게 스며들어야만 비로소 살아남고, 어떤 사람은 스스로 젖어야만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남편의 등을 보며 배웠기 때문이다. 남편은 낮은 곳으로 스며들어 제 몸을 누르며 인연을 이어가는 존재였다.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사람을 먼저 품었던 그 마음이 있었기에, 우리 집은 끝내 메마르지 않고 온기를 간직한 채 인연의 집을 지켜낼 수 있었다. 물론 곰팡이를 방치할 수는 없다. 옷감이 상하기 전에 살피고 통풍을 시켜야 하듯, 이제는 그의 대책 없는 인정을 탓하며 독한 세제 같은 독설을 들이밀기보다, 그가 가져온 인연의 상자들을 함께 들어주려 한다. 서로의 빈틈을 오래 머무는 시선으로 메우는 일은 더디고 고단하지만, 깊게 스며 오래 남을 것이다. ---pp.50-51 「곰팡이의 온기」 중에서 지나온 삶이 침묵으로 전하는 고백, 그 골을 가만히 펼치면 한 생의 서사가 흐른다. 주름은 단순히 나이 듦의 흔적이 아니라, 살아낸 시간의 무늬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에도 감미로운 향만큼이나 무거운 궤적이 담겨 있지 않은가. 한 알의 원두가 뜨거운 불을 견디고 갈리는 시간을 지나야 향기로운 한 잔이 되듯, 쌉싸름하고 달콤한 그 맛 뒤에는 쓰디쓴 인고의 시간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p.63 「주름의 내력」 중에서 배추의 겉잎도 처음부터 저리 억센 초록은 아니었을 것이다. 연둣빛 어린순으로 태어나 햇빛의 무게를 견디고 사나운 바람에 몸을 흔들며, 제 살을 조금씩 내어주는 동안 거칠어졌을 터다. 부드러운 속잎을 온전하게 품고자 겉잎은 기꺼이 제 몸을 단단하게 다지고 색을 어둡게 물들여야만 했다. 그러므로 초록으로 물든다는 것은 단순히 색이 변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생의 모든 상처를 정면으로 받아내며 자신을 바깥으로 밀어내고 안쪽의 평화를 지켜내려는 지독하고도 거룩한 헌신의 다른 이름이다. ---p.66 「배추가 물드는 시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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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묵묵히 모래 위를 걷다 보면 언젠가 오아시스를 만나리라는 꿈을 꾸는 낙타처럼, 작가는 때로는 고달프고 때로는 가슴 아프지만 그러다가도 가슴 뭉클해지는 평범한 일상과 사소한 사건에서 특별한 서사를 발견하여 수필을 써나간다.
그는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고슬고슬한 밥을 지어 밥상을 차리다 가신 어머니, 생의 마지막 나날 기억의 혼란을 겪으면서도 담담하게 자식들의 이별을 준비하던 아버지, 타인의 상처에 예민해서 남에게 모질게 대하지 못하는 남편, 치매가 꽃처럼 오셨던 시어머니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러한 가족들 덕분인지 매사 날카로웠던 자신의 성격도 점점 둥글둥글 넉넉해진다고 고백한다. 그의 글 한 줄 한 줄에는 깊은 사색에서 빚어진 삶의 지혜와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온기가 담겨 있다. 봄 향기가 피어오르는 쑥국 한 대접 같기도 하고, 그리고 눈 내리는 한겨울 새벽 아버지가 연탄 화덕 둘레에 올려두고 덥혀준 낡은 운동화 같기도 한 온기에 독자의 마음도 따뜻해질 것이다. ‘작가의 말’ 수필의 길에 들어선 지 어느덧 서른 해가 되어간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할 만큼 긴 시간임에도, 누군가 수필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여전히 아이처럼 말문이 막히곤 한다. 세 번째 갈무리를 준비하며,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오십 대 후반까지 수필은 내게 길을 잃지 않게 이끌어 주는 나침반이었다.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점검하고, 무뎌진 내면을 깨우는 날카로운 각성(覺醒)의 도구였기 때문이다. 환갑을 넘긴 뒤, 수필은 어느덧 내 삶을 오래도록 지켜주는 ‘방부제’ 같은 존재가 되었다. 생각이 고여 썩지 않도록 하고, 삶의 풍파에 부딪혀도 영혼의 결이 상하지 않도록 든든히 붙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이 두 가지 힘 덕분에 지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나는 화려한 형용사나 부사보다 묵직한 명사와 동사를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출가』, 『가리개』, 『모란』, 『솔기』처럼 내 글의 제목은 유독 명사가 많다. 어느 날 문득 가슴에 콕 박힌 명사 하나를 만나면, 그것을 서너 달씩 품고 다닌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무르익고 주제가 선명해지면, 비로소 한 편의 수필이 된다. 무심하게 흘러간 시간도 온기를 담아 만져주면 풍경이 되듯, 지극히 평범한 일상도 수필이라는 세례를 거치면 특별한 서사로 피어났다. 속 뜰이 소란스럽고 마음결이 흐트러질 때면 나는 어김없이 노트북을 켠다. 헝클어진 실타래 같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가슴 깊은 곳에 고인 것들을 문장으로 엮다 보면 평안이 찾아온다. 사는 게 팍팍하여 삶을 외면하고 싶을 때도, 지나간 기억의 온기들을 들추어내며 다시 살아갈 동력을 얻는다. 타인의 입장을 깊이 헤아리고 자기를 객관화하는 수필의 세계 안에서, 미움과 원망은 눈 녹듯 사라졌다. 덕분에 소원해졌던 인연을 회복하고 사람을 향한 애정을 다시 품을 수 있었다. 등단 후 십일 년 만에 첫 수필집 『가리개』를 내놓았고, 다시 팔 년의 세월을 보내며 두 번째 수필집 『출가』를 펴냈다. 그리고 또 한 번 칠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여기 세 번째 매듭을 짓는다. 앞선 두 권처럼 이번에도 지극히 개인적인 편린들을 담은 글이라 부끄러움이 앞선다. 하지만 원고를 한 편 한 편 써 모아 책으로 엮는 이 수고로운 일이, 한 인간의 생(生)에 얼마나 눈부신 변곡점이 되는지를 이제는 깊이 절감한다. 인간다움을 배우기 위해 국어를 공부하듯,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수필을 쓴다. 수필은 공감의 문학이며, 끊어진 관계를 다시 잇는 화해의 글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련된 문체보다는 연민의 온기가 배어 있는 글이 좋다. 글을 쓰는 일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필이 인간의 삶을 보듬는 문학이라면, 사람을 향한 지극한 긍휼이야말로 내가 끝내 놓지 말아야 할 글의 뿌리라고 믿는다. 수필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겠지만, 나는 내가 걸어온 방식 그대로 묵묵히 써 내려갈 것이다. 내 수필이 비록 개인적인 고백에 그칠지라도, 누군가 내 글 한 편을 읽은 뒤 그리운 이에게 안부 전화를 걸고 싶어진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다. 수필 한 편이 인생 전체를 뒤흔들 순 없어도, 읽는 이의 마음 온도를 조금이나마 올려줄 수 있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상처가 흉이 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상처가 빛날 수 있는 통로는 글밖에 없다”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며, 오늘도 나는 부족한 문장 사이사이로 조용히 진심을 흘려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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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처럼 아득하고 막막한 길을 어렵게 통과해 나오면서 오히려 넉넉하고 부드러워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시선이 옮겨가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사는 동안 누구나 사막을 건너는 시간이 온다는 통찰에 이르는 건 아무나 되는 일이 아니다.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져야 가능하다. 그래서인지 박종희의 산문에는 원숙함이 배어 있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일 속에서 삶의 깊은 지혜를 발견해 내곤 한다.
박종희의 산문은 화려하지 않고 담백하다. 요란하지 않고 잔잔하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수수하다. 이런 글이 좋은 글이다. 고통과 상처를 과장하지 않으며 정직하고 진솔하다. 진정성이 묻어나오는 문장들이 많다. 이런 글, 정직한 글이 좋은 글이다. 박종희의 산문에는 온기가 있다. ‘인간의 마지막 체온’이라고 그가 말하는 따뜻한 기운, 연민의 온기가 있다. 그의 산문을 읽는 동안 우리도 자연스럽게 그 온기에 전염된다. - 도종환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