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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1 엄마가 지게를 버린 날 엄마가 지게를 버린 날 / 넓은 마당 사람들 / 완성되지 않은 사랑 이야기 / 음력 11월 16일 / 크리스마스의 해프닝 / 술빵의 시간 / 사건의 지평선 / 병풍과 언니, 그리고 김수영 / 닭 이야기 / 청명, 하늘 아래 나를 펼쳐놓은 날 2 나라는 조각의 시 나라는 조각의 시 / 이십 대라는 문장 / 겨울의 두 소녀 / 마포 / 선유도 공원의 산책 / 봄눈 / 그해 여름에 깃든 것 / 어느 날의 단상 / 빈집 / 비 오는 날 욕심 흘려보내기 3 길도 마음도 서툴러도 괜찮아 길도 마음도 서툴러도 괜찮아 / 옛집 투어 / 무화과나무집 / 골목 / 햇빛이 집 안으로 쏟아지는 기쁨 / 가을에 / 도시의 나무들처럼 / 떨어지는 것들에 대하여 / 네가 나간 빈자리 4 사라지는 구전과 버려진 의자 나날들 / 사랑이라는 이름의 헌신 / 빗방울이 창을 두드릴 때 / 미련 / 그해 여름 / 여백 / 꿈꾸던 시절 / 눈 / 열두 번째 이사 / 경계 / 사라지는 구전과 버려진 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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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지독한 뙤약볕이 내리쬐던 날이었다. 엄마는 결심했다. 이대로 시골에서 썩어갈 순 없다고, 엄마의 공모자는 일곱 살배기 나의 언니였다. 첫 번째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지만, 두 번째는 달랐다. 이번마저 실패하면 더 나아갈 방도가 없었다. 평생 이렇게 살거나 서울로 올라가 남편과 살거나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물 길러 다녀올게요.” 평소처럼 무심하게 지게를 짊어진 엄마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p.14 하지만 글 쓰는 이는 한 발 더 들어가 보는 사람인 것 같다. 이미 들어가 있거나 들어가다가 넘어진 사람의 무릎을 조금 다정히 바라보는 사람, 그래서 그 상처의 상황을 다른 이에게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 한 사람이 알고 두 사람이 알고 우리가 알 수 있는 공동체의 삶을 지향하고 어깨를 함께 두르는 사람이 되는 거, 옷에 묻은 얼룩이 토마토소스인지 커피인지 김칫국물인지 알아서 척척 세탁해 주는 전문 세탁소 사장은 되지 못하지만, 사회의 부조리함을 함께 풍자해 줄 수 있는 재치 있는 이웃쯤은 돼야 하지 않을까. ---pp.73-74 스물아홉이든 육십이든 어른이 된다는 건 다 어려운 일이다. 끝없이 견뎌왔건만 더 견뎌내야 할 일들이 늘 남아 있다. 녀석은 나가서 홀로서기를 하느라 버겁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제 더는 내가 붙잡을 수 없는 세계로 녀석이 가버렸다는 것, 이제 예전의 울타리 안의 세계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저녁 어둠이 찾아오듯 마음의 빈 구멍으로 녀석이 찾아온다. 그건 환영과도 같아 말할 수 없는 이상한 슬픔의 빛깔이다. 마치 노을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함께 느끼는 묘한 쓸쓸함이다. 어른이 돼가는 녀석과 늙음의 길로 접어들며 자연스럽게 하나둘 곁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들이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다. ---p.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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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희 시인의 첫 산문집 『나라는 조각의 시』은 그가 걸어온 시간들과 그가 만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섬세하면서도 시적인 언어로 담담하게 펼쳐놓는다. 책을 펼치면 붉은 먼지 날리는 신작로에 지게를 벗어던지고 시부의 억압을 피해 서울로 탈출해온 젊은 어머니의 용기와, 가난한 사람들이 복닥복닥 모여 살던 시끄럽지만 평화로운 옛 골목의 풍경이 눈에 보일 듯이 다가온다. 그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의미를 간직한 추억 하나하나를 통해 삭막한 잿빛 도시였던 서울이 누군가에게는 연약한 아이를 어른으로 키워낸 든든한 둥지이며 따뜻한 요람이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 인간은 포유류 중 가장 연약하다. 너무도 얇은 피부를 가진 아기가 어떻게 무사히 시간의 거친 수세미 같은 표면을 뚫고 어른으로 건너왔는지 지금도 돌이켜 보면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사람들은 서울이란 도시를 잿빛의 어둡고 삭막한 공간으로 말한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 자란 서울은 미숙하기 짝이 없는 어린아이를 키워낸 거대하고 따듯한 요람이다. 이 투박한 콘크리트 틈바구니에서 나는 친구들을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어설프기 짝이 없는 둥지를 지어 살고 있다. 나의 다정한 가족, 형제들과 이웃, 살다 보면 어디 다정한 말들만 오갔을까? 가끔 말은 비수가 되어 폐부 깊은 곳에서 고름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녹이 슨 상처가 아물고 그 틈에서 기적이라는 꽃들이 피어나는 걸 보았다. 애증도 끝까지 걷다 보면 발바닥을 뚫고 사랑의 꽃을 피워낸다. 도시라는 이름에 어디 빌딩들만 가득하랴. 굳은살이 박이듯 나를 키운 건 든든한 연대와 치유의 힘이었다. 그 힘으로 시를 쓰고 잡다하고 어눌한 감정의 찌꺼기들을 걸러 정제해 문장을 만들었다. 말재주 없고 부끄럼이 많은 나는 시가 좋았다. 시는 숨을 수 있는 공간이 많아서 잘만 숨으면 술래에게 쉽게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 마음을 숨길 공간이 많다는 이야기다. 다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공간 실루엣만 보여줘도 되니 부끄러운 얼굴을 감출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용기를 보여줘도 된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이 수필은 내가 용기를 내는 거다. 서울이라는 무대 위에서 한 연약한 인간이 어떻게 삶을 조용히 극복해 나갔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나의 서툰 발자국에 누군가의 다정함이 묻어 걸을 수 있는 길이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