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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그리운 무중력-발렌티나 테레시코바에게 십이월 광대의 뒷면 쉬기 좋은 방은 어느 계절에 있지 호박에 관한 명상 오지로의 입문 병동 물고기의 등엔 가시가 있다 노량진, 노량진 그림자의 집 폭暴의 시간 올림머리 증후군 바닐라 스카이 카운트다운 잠자리 2부 버렸던 귀 찾아오기 이상한 교실 담장, 장미 그리고 담배 벽과 등 사이에서 신과 전당포는 너무 높은 곳에 있다 지우개를 사용하세요 독이라는 이름의 독채 그림일기 귀만 자라는 남자 어떤 노래는 누군가를 데려오고 정박 달을 갉아먹는 집 빨간 거짓말을 사랑했네 맷집 그게 그거였어 철심의 유효기간 3부 눈물의 태도 고전 해변 나무는 나무를 부르고 그만이라는 말 민들레 착륙기 나는 밤 고양이라오 정월의 16일 감자에 싹이 나고 잎이 나서 쌀쌀쌀 어제의 약속 소녀였을 때 당신이 없다 조언들은 다 죽었다 봄, 짧은 낮잠 놀라운 신전 4부 토끼 발자국으로 숲의 불이 켜질 때 동화의 딜레마 앞발을 핥는 담장 거기에 구름과 고양이가 있다 보라의 사육제 장롱 우물 꽃들이 펄펄 끓고 여름의 안쪽 환상상회 집이라는 역사 버블 욕조 비를 소비하는 감정 중력의 밑변 해설 | 맹문재(문학평론가. 안양대학교 교수) 난쟁이의 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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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조금씩, 달나라를 향하여
시인은 노력으로도 애씀으로도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삶의 문제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지도, 막무가내식의 똥배짱을 부리지도 않는다. 이 견고한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시인은 읊조릴 뿐이다. “겨울에서 오래도록 연체”되고 있다고. “십이월은 나무들만 추운 게 아니”라고. “아무리 뒤져도 일밖에 없는 계절”에 “최저임금 상승만큼 살짝 올라가는/1월의 기온을 기다린다”(「십이월」)고. 차가운 겨울, 가만가만 새어 나오는 입김처럼 서늘한 독백에는 은은한 슬픔이 묻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달프거나 구슬프지 않다. 시인으로 하여금 이 팍팍하고 먹먹한 현실을 덤덤히 살아 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생의 ‘의지’ 그리고 ‘희망’이다. 양 떼처럼 눈송이가 날리는 가운데 가만히 눈을 감은 시인은 “오늘 꿈은 맑았으면” 그리고 “봄볕에 졸고 있는 햇병아리 한 마리” 살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는다. 이런 소박한 염원이 담긴 시인의 ‘기도’는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로 반짝 떨어”지는 ‘달’로 표상된다. 달은 곧 시인의 희망이 담긴 기도 그 자체인 것이다. 달(달세)이 갉아 먹히는 엄혹한 현실 속에서 “무국적자처럼 떨”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시인은 결코 의지를 꺾지 않는다. “흔들려도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매일, 조금씩, 달나라로 나아가는 것이다. 시인의 희망 어린 기도가 차곡하게 쌓인 내밀한 달나라로. 시간이 지나도 ‘그만’할 수 없는 일 인력으로 막을 수도 중단할 수도 없는 현상들이 있다. 순환하는 계절, 무시로 변하는 날씨,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사랑……. 오지 마라, 그만해라 말해도 올 것은 오고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만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시인은 이미 온 “봄에게 그만하자/그만하면 됐다고 말하면 봄이 멈”추냐고 묻는다. 내내 담담하고 나직하게 독백을 읊조리던 시인은 이제 목소리에 힘을 실어 세상을 향해 질문한다. “가장 간절하게 뜨거운” 새싹 돋는 자리에 피어나는 수선화더러 “그만 노랗게 피라고/말할 수 있”냐고. 노란색이 다 피어나기까지 하염없이 짧기만 한 봄이라서 시인의 마음은 더욱 초조하다. 노란색이 머금은 비통한 슬픔과 눈물의 함의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이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서둘러 노란 리본을 다는 시인의 모습은 사뭇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다. 시인은 안다. 시간이 지나도 이 일만큼은 ‘그만’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홀로’ 살아가기에는 외롭고 고단한 세상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는 시인의 따스한 시선은 시 곳곳에서 묻어난다. 조미희의 시편이 시종 추위와 가난과 슬픔을 이야기함에도 마냥 춥지도 비참하지도 암울하지도 않은 까닭은 시인 본인이 같은 문제를 앓고 있는 타인들을 오롯이 보듬어 안기 때문이다. “함께 흐느낀다는 것은 따뜻한 이불 같다”(「십이월」)고 말하며 “얼룩도 꽃이 되기를”(「지우개를 사용하세요」) 소망하는 시인의 품은 넉넉하고 아늑하다. 그러하기에 ‘오지’에서의 치열한 분투도 감내할 수 있고, 아득한 ‘달나라’를 향한 위태로운 줄타기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홀로’가 아니라 ‘함께’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