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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낭만항구 목포역·15 목포자연사박물관·16 안녕, 멜라콩·18 째보선창·20 아리랑 고개·22 행복이 가득한 집·24 용꿈여인숙·26 갑자옥 모자점·28 고하도 목포국립학원·30 목포시민극장·32 갓바위는 가끔 겹친다·34 공동화(空洞化)·35 멀리 떠난 벽돌들·36 목포형무소·37 흑산도 노랑머리할미새·38 다도해·39 [2부] 플라멩고 같이 추실래요 브로콜리 숲을 전지하다·43 빗소리의 세계사·44 플라멩고 같이 추실래요·46 푸른 포화 속 딸기는 발사된다·48 혀를 찾습니다·50 의자·52 타로 카드·54 내비게이션·55 11월·56 민달팽이·58 팝콘을 먹으며 우리는·59 하이힐·60 의자 2·61 마디를 읽다·62 넥타이·63 빙폭(氷暴)·64 [3부] 둥근 무릎의 미래 북극점·67 병·68 귓속말·70 노량진·72 실패를 감다·73 각시염낭거미·74 태권브이는 어디로·75 거울의 복고적 성향·76 각주(脚註)를 읽다·78 스키드마크·79 우는 화살, 명적(鳴鏑)·80 내 안의 타클라마칸·82 뿔이라는 신·83 둥근 무릎의 미래·84 난생설화·86 스몸비·87 [4부] 발롱 오늘의 운세·91 기러기발·92 발롱·94 우산은 그 많은 빗방울을 기억하고·95 유빙(流氷)·96 삼각김밥·97 모린 후르 듣는 밤·98 조치원(鳥致院)·99 불이문(不二門) 앞에서·100 어느 날 심장이 말한다·101 월인천강(月印千江) -동지팥죽·102 개기일식·103 꽃살문에 들다·104 완창(完唱)·105 이누이트·106 응·107 [시인의 산문] 김수형(시인) “갓바위에서 실패를 감으니 대마도가 딸려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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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역이 아니다 설렘의 시작점이다
목포역에서 배웅한 모든 인연들은 끝난 게 아니다 기적 소리가 들려오면 떠나버린 시간들이 돌아온다 열차로 밀려오던 파랑은 바다로 달려간다 오늘도 나는 목포역 시계탑 앞에서 그대를 기다린다 사라져 버린 시계탑에서 시간을 잃어버린 나는 오지 않을 그대를 기다린다 만나면 바다로 달려가자 목포 앞바다로 달려가자 하루를 불태우는 해 속에 너와 나를 녹여 노을로 붉어지자 쌍고동이 울린다 목포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창밖에 보이는 향유고래들의 유영, 그 지느러미를 따라 수많은 별자리들이 헤엄치며 지나간다 밤이 오면 하늘의 별자리들은 다도해에 닿아서 새로운 신생의 별자리들을 만들고 목포는 쌍고동 소리 들으며 사랑을 기다린다 ---「목포역」중에서 조선에 멋진 모자점이 생겼어요 이곳에 오면 누구나 신사 숙녀가 돼요 저 구름은 당신이 한 번쯤 빌려 쓰고픈 털모자죠 눅진눅진한 구름이 빗방울을 몰고 오면 먼지 쌓인 선반에서 화려한 모자들이 마구 쏟아져요 항구의 갈매기들이 물고 간 모자를 놓은 곳마다 섬 하나씩 태어나요 하얗게 머리가 센 중년의 파도들이 밀려드는 저녁이면 적산가옥 낡은 기왓장들도 중절모를 들썩이겠죠 먼 곳에서 날아온 모자를 당신은 믿을 수 있나요? 중절모 속에서 커다란 알이 태어났고 부리가 나오고 날개도 나왔다구요 대바늘 꽂아둔 구름은 천둥소릴 감고 있죠 그러니 당신도 알록달록한 모자를 쓰고 보풀 같은 싹 틔워 보세요 모자에서 태어난 비둘기들은 목포역 광장에 모여 흩어진 햇볕 쪼가리나 쪼아먹으라지요 출생의 비밀을 모르고 태어난 모자들은 눌러쓰기 참 좋답니다 들키고 싶지 않은 질문들이 차갑게 당신 뺨을 만질 때 털모자를 들추면, 백년 동안 함박눈이 쏟아지고. 고드름처럼 아래로 자라나는 말들 속에서 전설은 녹거나 부서지고 구름은 더 먼 곳에서 두근거리며 뭉쳐져요 ▲갑자년(1924)에 문을 연 모자점. 일본인 상점만 즐비하던 목포 본정통에서 유일한 조선인 상점이었다. ---「갑자옥 모자점▲」중에서 피가 멎은 울음들이 태어나고 죽는다 그림자 지우려고 무릎으로 걷던 날은 저녁의 관절 속으로 물이 차 흐르는 소리 밑줄 그은 담벼락에 무릎 닳은 장미꽃 거꾸로 선 유리 위로 피 흘리며 피어나고 삐거덕 문이 열리며 무릎들이 쏟아진다 ---「둥근 무릎의 미래」중에서 천 길 낭떠러지다 단풍 덮인 물염(勿染)적벽 명치에 멍울 메인 산새 울음 떠 있고 절리에 흐른 피고름, 이번 생을 씻어내네 아려오는 그리움을 비명처럼 휘감은 절벽 몸속의 가락을 골라 추임새로 꽃 피는데 부서져 깨진 사랑일까 허공에 건 목숨의 뼈 서슬 푸른 벼랑이 움찔움찔 솟는다 환해진 소리들이 손끝에서 살아나고 한 계절 모두 완창한 단풍마다 핏빛이다 ---「완창(完唱)」중에서 얼음의 심장을 만지는 이글루 영혼이 녹아내려 단단해진 이름에 말 대신 날숨을 뱉는다 번져가는 내재율 설원을 믿는 순간 신앙은 얼어붙고 물개의 등가죽이 가닿는 후생의 밤 밤에도 못 죽는 태양 이 백야의 환한 고독 ---「이누이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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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시집에 관하여 시인과 나눈 짧은 인터뷰 내용이다.
[Q] 주제와 이야기의 방향은? [A] 사회의 중심부에서 밀려나 벼랑 끝에 내몰린 약자들의 고통과 슬픔이다. 이런 현실을 감내하게 하는 물신적(物神的) 세계와 현대라는 시간성에 주목했다. 생을 지속시키는 위대한 것들을 과거와 현재의 균열 속에서 찾았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고통을 견디며 서로에게 의지하고 스며들어 사는 존재의 품격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 안에 깃든 어둠을 응시했다. 고요히 흘러가는 말들이 보였다. 낡았어도 충분히 새로울 수 있는 것들이 보였다. 다도해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섬과 섬을 끼고 돌며 유영하는 어선들을 바라보았다. 역설적으로 익숙하게 품은 일상의 풍경이 가장 새로운 것일 수 있음을 말하고도 싶었다. 고향의 서사를 넓히고 여린 생명체들을 바라보았다. 나를 향한 어떤 다짐들을 버렸다. 내 안의 말을 지우고 사물들이 주는 온기를 받아 적었다. 인간을 억압하지 않고 따듯하게 보듬어 주며 자유롭게 하는 곳에 시의 자리가 놓여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Q] 이번 시집의 특징은? [A] 목포가 지닌 묵직한 서사에 주력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상흔이 관통하는 곳이 목포(木浦)다. 일제강점기 약탈의 거점항구 역할을 하여 한때 융성했다. 목포는 과거와 현대와 미래가 뒤섞여 있다. 아직 상처가 남아있긴 하지만 목포는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낭만항구에는 질곡의 시대와 갯바람을 견뎌낸 따듯한 사람들이 있다. 걸출한 예술가들이 화수분처럼 솟아난 공간에 새로운 색채와 깊이를 더하고 싶었다. 목포역, 멜라콩다리, 갑자옥모자점, 차 없는 거리는 모두 내 유년의 운동장이었다. 목포가 갖고 있는 특별함과 장소성을 확장하고 강화했다. 비단 내 고향만 담은 건 아니다. 문명의 횡포와 전쟁으로 갈 곳 잃은 연약한 개체. 그들의 고통을 담박하게 바라보았다. 어떤 권위나 폭력에 의해 희생을 치른 장소라면 그곳이 곧, 목포와 우크라이나 참상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Q] 나는 어떤 시인인가? [A] 나는 서울로 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문체이다. 목포에 깃든 이후 나의 문체는 더 따듯하고 더 간결해졌다. 세상에 없는 색으로 이 세계를 그리는 시인이고 싶다. 행간에서 더 깊은 의미를 찾고 내 무의식의 극점까지 읽을 수 있는 시. 그 빈칸에서 내가 만든 무의식들이 스스로 시를 적어 내려간다. 시를 쓰기 전에 산책을 한다. 온갖 사물의 냄새에 온몸을 맡긴다. 나를 지우고 깊은 숲속으로 들어간다. 나무속으로, 돌속으로, 물속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 간다. 시의 풍경에 제일 먼저 부딪히고 노이즈를 일으키는 존재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가능한 나를 내려놓는다. 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시를 쓴다. 시적 화자와 아둔한 내 모습이 겹쳐 보일 때가 있다. 과감히 지운다. 밤새 쓴 시를 지운다는 건 고통스럽지만, 나를 덜어내고 최소화할 때 더 좋은 시를 만나게 되는 거 같다. 말맛을 살린 시와 그렇지 않은 시가 뒤섞여 있다. 나의 뿌리와 도약 사이에서 늘 고민한다. 그 틈에서 자주 넘어졌다. 도움닫기를 하는 도움틀처럼 고향은 나에게 뛰어오를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다. 큰 날갯짓으로 천 리를 날아가는 붕새처럼 자유롭고 싶다. 나는 세계의 어디쯤 날아다니다 단번에 목포항으로 되돌아오는 기이한 문장이다. ― 「저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시인의 산문 들여다보기 “갓바위에서 실패를 감으니 대마도가 딸려 왔다” 4. 파랑주의보 나는 서울에 오면서 목포 앞바다를 온통 들고 왔다. 기숙사의 쪽창으로 고향 바다가 넘실거렸다. 비린내 가득한 바다에서 고동 소리만 듣던 내 귀는 서울에 온 이후 그 푸른 소리를 풀어놓을 수 없었다. 가끔씩 견딜 수 없는 객수감이 찾아오곤 했다. 그런 밤이면 심야의 고속도로에 몸을 맡겼다. 나에게 목포 앞바다는 큰 울음소리를 내는 울돌목 바다와 같았다. 그 옛날 이순신이 바라보았을 죽음의 바다처럼. 나에게 시 쓰기는 넓은 해로에 좁다란 골목길을 내는 일이었다. 나는 죽기를 각오하고 갑옷으로 온몸을 무장한 채 적들을 기다리는 이순신 장군처럼 결사 항전의 몸짓이었다. 적이 오기를 기다리는 나의 심장은 바닷물보다도 더 빠른 수백 킬로를 내달렸다. 나는 문학이란 파랑을 향해 위태롭게 나아가고 있었다. 격랑 속에서 무엇을 기다렸을까. 끝없이 표류하는 나에게 문학은, 시는, 검은 바다의 심장 같았다. 희미하게 시가 보일 듯 말 듯한 시간들은 거센 파도에 침몰되곤 했다. 생각해보면 힘들게 견뎌온 그 시간들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삶이란 형식에 내용이 안 보이는 시절, 더 갈급이 나서 시를 쓰고 나만의 성채를 쌓았다. 동력이 떨어질 때마다 목포행 고속버스를 탔다. 창밖으로 별들이 쏟아졌고 버스 창문은 파도로 가득 찼다. 뒤집힌 고향 바다는 늘 새로웠다. 나에게 목포 앞바다는 늘 처음 맞이하는 바다였다. 바다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안다. 바다에도 봄이 되면 싱싱한 싹이 튼다는 걸, 오래된 그것들이 무엇보다 새로운 것임을. 서울에서의 나는 밀려날 수밖에 없는 주변인이었다. 고향 바다를 떠올리면 가슴이 뜨거워졌다. 목포라고 발음하면 입안 가득 푸른 내음이 진동했다. 물밀려오는 그리움을 참으며 나는 기어코 내 소매 속에 숨은 푸른 새들이 날아오르기를 기다렸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언어와 더불어 매일 한 편의 시를 쓰고 싶었다. 어둠과 환희로 가득한 파란만장한 바다를 보며 나는 알몸인 듯 부끄러웠다. 목포 앞바다는 매일 고요 속에서 태어났고 그 속에서 태어난 빛은 경이로웠다. 나에게 그 빛은 시로 가는 통로였다. 깊은 고요 속에서도 흔들리는 힘찬 바다의 속삭임, 내 안으로 흐르는 물살의 흐름, 물의 심장과 깊은 물의 색, 어둡고 추운 바다 밑바닥에 숨어 있을 알 수 없는 기이한 생명체들이 내 안의 어둠을 함께 탐지해 나가고 있었다. 나는 출구 없는 탐사와 말들의 헤매임 속에서 나를 완성하고 싶었다. 고향 바다에 나의 병든 나체를 뉘어보니 심중이 보였다. 이 끔찍한 시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나는 기어이 목포 앞바다에 묻고 말았다. 파도가 스스로 깨지고 부서져서 끝없이 새로 태어나듯 내 속의 욕망과 어둠도 모두 지워버릴 수 있을까. 바다 위로 차고 시린 달이 내 그림자를 따라왔다. 흔들리는 달빛이 물 위로 기나긴 고랑을 그리며 어스름한 수평선 너머로 펼쳐졌다. 그때 나는 불가해한 시의 풍경에 압도되었고 또 얼마쯤 지쳐 있었다. 과연 수평선 너머로 내가 기다리는 새로운 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향한 나의 허우적댐은 계속되었다. 절망했지만 다른 길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내 몸은 온통 나이테만 감는 참나무였다. 이슥한 길을 달리며 나는 고정된 자전거의 페달만 돌렸다. 아침이 오면 내 안에 깃든 실낱같은 희망이 죄다 쏟아졌다. 서울에서 목포로 내려가는 차 간격은 내가 달려가는 시간의 발자국보다 항상 더 빠르고 붐볐다. 병증이 심해질 때마다 찰랑이던 목포 바다의 푸른 서정과 별빛은 서울의 빠른 속도, 속으로 모두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나는 그 속도전에서 매일 졌다. 나는 내 텅 빈 시의 서정을 찾으러 신한은행 카드단말기로 달려갔다. 나는 매일 마이너스통장으로 시를 인출했다. 차츰 마이너스통장 금액은 커져갔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나에게 시 쓰기는 휘몰아치는 바다에 내 시선을 던지는 일이다. 진심을 다해 시를 사랑하기. 시의 파랑 속에 머물러 있기. 그것만이 내 삶의 전부다. 나의 심장은 거센 바다 물살이고 내 오른손 엄지와 검지는 항상 시를 낚는 뜰채다. 어부가 뜰채를 들고 울둘목의 빠른 물살 옆에 서서 헤엄쳐 오는 민어를 채듯이. ― 김수형 시인 산문 중에서 시인의 말 커피숍에 디스플레이된 큰 유리병 속에 들어 있는 블루마운틴 원두 한 자루. 십 년 넘게 아껴두다가 산패되어 버렸다. 50년 동안 나는, 나를 열지 못했다. 누군가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면 와르르 쏟아졌을 텐데. 산패된 내가 아깝다 그래서 내 시의 냄새는 시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