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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불행이 따뜻해지는 원인
무자비하고 비극적인 운명이 가장 고귀하고 용감한 인간을 기린다 북극의 가장자리는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는 낙관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나 암살 같은 실제 사건을 무대에서 상연하기보다 등장인물의 입으로 폭로한다 분열이 발생하는 온난화의 기본은 해빙이므로 빙산은 생기지 않거나 생겨도 아주 작다 질서 있는 세계는 운명의 장난 위대하고 고결한 정신이 패배했을까 동물은 가죽을 벗어 먼 바다로 보낸다 식물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기적극이나 신비극으로 속죄한다 강제가 없으면 기온이 하강한다는 비관론자들은 높은 신분과 천한 계급을 혼합해 영혼을 데우는 주범으로 몰아간다 고통에 대한 보답은 패배가 아닌 필연적인 승리 희망 없는 온도를 팽팽하게 당긴다 위대한 싸움은 해빙을 만들지 않아 더 높은 고도로 서식지를 옮긴다 --- 「따뜻한 북극」 전문 홀로 살다 쓸쓸하게 맞이하는 탑골공원 백골이 된 망자들이 사회문제로 드러나면 인칭 문제를 둘러싼 사물의 관계는 구체적인 언어의 암묵적인 이해에 맡겨지고 상황 지시의 원점에 상정된다 사망을 야기한 파고다공원으로 개원하였으나 위험에 노출된 독거노인들은 박카스공원으로 개칭 고독사에 대처하는 안전 매뉴얼에 따라147 힘없는 권력을 향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다 그 밖의 사람을 가리키는 대명사 3인칭은 판을 끝내는 인칭 세계를 구성 인칭 의식 발달 초기 여성 단수 2인칭을 주변 인물로 포함하는 계약을 맺고 증여자의 사망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주검의 혈흔에 관한 보고를 입법하면 고독사를 방지하는 골목 상권이 문상한다 문법이 확정되지 않은 부정칭이 핵가족 해체 이후 등장한 문제를 푸는 동안 대상 없는 성인병에 의한 사망은 청계천과 인사동을 연계한 코스에 고독사 없는 요양 거리를 추진한다 --- 「4인칭」 전문 장마철에 더 무섭게 자라는 잡초들 모질게 뽑아버린 손바닥에 빗물을 인주 삼아 지문을 찍는다 이름 없는 것들의 푸른 핏물이 방향을 분간할 수 없는 낯선 지도 속으로 천천히 흘러가면 울며 떠났던 새들이 다시 돌아와 날개를 씻을 수 있을까 사지로 내몰린 목숨들은 언제나 아득한데 낮은 골짜기에 불어온 바람을 거역하지 못해 가여운 것들 함부로 없애버린 죄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반항도 하지 않는 풀들의 머리채를 어지럽게 휘어잡았던 손바닥이 아리다 풀이 남긴 지문을 들키지 않으려고 주먹을 쥐고 사는데도 비가 오는 날이면 풀물이 흘러나온다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풀의 지문 손바닥을 보이지 않는 날이 오래되었다 --- 「풀의 지문」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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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의 사막에서 길어 올리는 칸타타”
시가 문명의 앞날을 예측하기는 쉽지만, 그러한 시적 예감은 언제나 시인이 지니고 있는 예술적인 감각과 현실비판의 눈을 저버리지 않은 상태에서 가능하다고 할 때 이종섶의 시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특별한 인식을 제공한다. 그의 시는 과학적이면서도 시적인 상상력을 동원한 우리 시대의 ‘일기예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인간이 행한 온갖 기술적 응용과 사회문화적 아비투스가 맞이하게 될 종국적인 표정에 예리한 시적 언어를 들이댄다. 그 형식은 알레고리나 상징, 혹은 언어유희 등이다. 이런 시적 방법은 그동안 세계를 조망하고 비판의식을 거두지 않으면서 시인이 획득하게 된 새로운 형식이다. 무덤덤한 어조로 시적 세계에 놓인 사태를 그리는 풍경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우리 사회와 세계에 던지는 은유로 가득 찬 경고장이다. 그래서 그의 시들이 전달하는 암울하고, 어둡고, 축축한 디스토피아적 풍경에서 우리는 마음과 몸을 짓누르는 묵직한 질량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 부분은 바로 전체이며, 전체와 동일 금속함량비를 가진 태양의 권력은 마지막 순간 중심에 블랙홀을 남긴다 빛도 빠져나올 수 없는 전체주의 진리는 천체라는 깃발 아래 결집된다 초기 질량이 태양 이하인 행성들이 산업사회를 과격하게 배척할 때 정복을 독점하는 전체가 폭발한다 절대군주의 업적은 인공천체의 조직화 전개 과정을 반납한 일부가 통제의 전체성으로 확보한 진리 전체로만 천체에 포함되는 기원이다 - 「대폭발」 부분 시 「대폭발」은 이번 시집에 실린 첫 번째 시편이다. 마치 서시처럼 다가오는 듯한 시다. 단어를 꾸미는 형용어나 수식어가 없이 건조한 구절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 메마른 문장구조가 품은 어떤 암울한 징조는 ‘우주적’ 창조와 질서 및 배열을 진술하는 속에 차차 증대되어 어딘가 희망을 탈취당한 시공간에 우리 인간이 덩그러니 내동댕이쳐져 있다는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통제의 전체성으로 확보한 진리/전체로만 천체에 포함되는 기원이다”라는 구절에서 느낄 수 있듯이, ‘통제’나 ‘전체’가 야기하는 전체주의적인 이미지에 사로잡히는 시적 정조다. 시인이 위 시에서 그려 보이는 우주적인 기원의 내용들은, 그것이 진실이든 상상이든 오래전부터 인간이 불안하게 점쳐 왔던 어떤 이데올로기의 형성과 이에 발맞춘 인간 군중의 형상을 쉽게 떠올리게 된다. 개개의 자유의지조차 전체의 기획에 포섭되고 마는 ‘우주 질서’에서 인간의 의미와 가치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어떤 ‘통제’나 ‘전체’의 방향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시인이 독자들에게 존재의 암울한 기원과 전개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비극적인 세계관을 피력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시가 창작된 이면에 놓인 우리 사회의 지성과 사회적 방향에 대한 물음이 중요하다. 시인은 ‘존재’의 기원에 대한 상상을 시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현대사회가 만들어 내는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방향이 불러일으킬 어두운 징후를 선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말하는 자기와 듣는 우주의 물질 단위는 인칭이다 집이나 공간의 둘레에 인칭대명사가 별이 되고 천 개 이상 모여 은하계라는 소우주를 형성한다 막기 위하여 축조한 건조물을 가리키는 일인칭 소우주는 1천억 개 담을 관측하는 대우주 밖을 모른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밖에서 안을 보호하면서 3인칭 복수의 침입을 막는 문법을 정비하는 것 말하는 자의 안이 보이지 않는 초기 모델은 지구중심설 높지 않은 사람의 공간을 다른 성격으로 구분한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이용해 천체의 울타리를 만들면서 지구중심설에 비인칭이 제기되었다 자기를 포함한 담을 언제부터 쌓았는지 밝히기 어려워 코페르니쿠스는 정밀한 천문법으로 태양중심설을 가미하였다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 뉴턴이 만유인력의 존칭을 발견하면서 성읍국가시대의 고전 역학에 우주론이 접목되었다 행랑마당과 사랑마당을 구분해 놓은 담은 두 공간 사이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다 우리 먼저 나간다 수고해라 지배 집단과 피지배 집단 사이에 주거 차이가 발생하면서 말과 언어의 관측 기술이 고도로 발전되었고 존귀한 인류는 하나밖에 없는 태양이 우주에서 수천억 개 은하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말하는 방향으로 균일하게 분포된 우주는 가장자리도 아랫목도 중심도 없다 신분에 따른 위엄을 자손만대 잇기 위하여 낮은 사람을 상대하는 극성에 군림한다 거대한 공백에서 소용돌이치는 거품을 먹고 산다 담과 같은 구조물로 추정되는 20세기 초의 발견 우주가 시작되었고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 - 「우리는 우리」 전문 시집의 표제작인 시다. ‘인칭대명사’를 사람뿐만 아니라 행성을 포함한 우주 범위로까지 확대했다. 여기에는 지구중심설이니 태양중심설이니 하는 근대 우주관에서부터 시작하여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지나 “지배 집단과 피지배 집단 사이”의 “주거 차이” 발생을 지적하고, “신분에 따른 위엄” 같은 신분 제도적인 측면까지 짚으면서 앞서 「대폭발」과 같은 우주론을 논한다. 필자는 독특한 시적 전개 방법을 사용하는 시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보다는, 이런 시적 형상화를 통해 환기하는 이미지에서 어떤 의미를 건져낼 수 있는가가 더욱 절실해 보였다. 그러니까 시인은 이러한 일련의 ‘우주론’을 사회·역사적이고 풍속적인 내용을 가미한 독특한 시 형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시적 형상화를 통해 촉발된 의식인 만큼 그 해답의 유무 또한 큰 의미는 없다. 독자는 시를 읽고 저마다 각자가 지니고 있는 사고방식과 감성으로 걸러내기 마련이다. 수용미학에서 말하는 독자의 반응이 시를 읽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면, 위 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존재 방식과 실존의 반성을 끄집어낸다. ‘우주’까지 확대되는 사고의 팽창은 독자들에게 ‘두통’을 일으키지만, 이러한 감각적인 반응이야말로 시가 만들어 내는 효과인 셈이다. “행랑마당과 사랑마당을 구분해 놓은 담은/두 공간 사이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다/우리 먼저 나간다 수고해라” 같은 진술이 위 시에서 ‘이질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까닭도, 어쨌든 시인의 현재 의식이 우주로까지 확대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온 ‘시적 요소’일 것이다. ‘담’은 주체와 타자를 갈라놓는 경계이면서 한편으로는 ‘나’와 ‘우리’, 그리고 ‘공동체’나 ‘집단’의 결속을 공고하게 하는 구조물이기도 하다. 그 담을 경계로 해서 문화가 생겨난다. 이러한 문화는 지속과 유전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더러 분별과 구분의 방편이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우리’라고 말할 때 전해지는 따뜻하고 다정한 동류의식이 알게 모르게 그 뒤편에 칼날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아이러니함을 어떻게 해야 할까. ― 정훈 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시인의 말 저물어가는 세계를 그린다 무채색으로 칠하는 나의 그림은 미완성의 붓질이다 불안한 언어가 떠다니고 미처 받아적지 못한 글자들이 공중에서 파괴된다 고개를 들고 구름 위에 쏟아지는 빛을 받아 눈물의 색깔을 바꾸고 싶었으나 두 발을 땅에서 뗄 수 없어 물눈으로 교체한다 물에도 눈이 있다면 대홍수의 검은 흔적이 출몰하는 세상을 보았으리라 그날의 약속을 그리워하는 신음의 길은 없다 오직 눈감은 해체만 있을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