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시인의 말
1부 카멜레온 구두 수선공 K씨의 구두 수선학 북두칠성 노블레스 오블리주 콜라주 프로파일러 P씨의 고양이 프로파일 피카츄의 미발표 유작 피카소에 대한 미술사적 논평 노이즈 마케팅 드라마 앤 드러머 홈쇼핑 필드 윤리학―모럴과 오럴의 해저드 표류기 피아노 해부학―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 터미널 곤충기 지렁이의 스웩 시조새 생존기 아틀란티스 2부 이란성 쌍둥이에 관한 보고서 달의 레시피 비누 부채를 든 여인 우화 구름 세탁소 안구건조증 복제인간 병리일지―풍선 해부학 개안수술 사건일지 중환자실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듣는 밤―빛바랜 일기의 마지막 부분을 서둘러야 한다 장례식―가족사진 은하철도 999 너와 나는 있고 나와 너는 없다 天요일 3부 사람을 소비하는 방식 에스프레소 애들을 놀이터에 보내기 싫은 이유 성형외과 주홍글씨는 바래지 않는다 풍금 오동도 항해일지 배수로 철창 아래 주름 악어보호구역 폴라로이드 맨홀 명절제국흥망사 버저비터 4부 억울하지 않은 계절 바위 버섯 나비화석 빗살무늬토기의 재해석 붉은 장갑 굼벵이 뿌리의 힘 화장하는 남자 우체통 병든 나무에 둥지를 틀다 매화를 치다 흑련 눈물 해설 | 기혁(시인·문학평론가) 수선공 K씨가 절대자를 구술하는 방식 |
|
낯선 ‘학문’에서 발견되는 가없는 ‘공동’
수선공 K씨의 구두 수선학은 단순히 지식을 나열한 현학적인 연구가 아니다. “현장 경험에 바탕을”(「구두 수선공 K씨의 구두 수선학」) 두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축적된 그의 노하우는 어엿한 ‘학’의 차원으로 체계를 갖춘다. 이 학문 안에는 무수한 세부 영역이 존재한다. “앞굽선호이론”을 비롯해 “창갈이학”, “모방 기하학”, “미적분 수선학” 등이 그러하다. 이 세부 학문은 저마다 역사와 근거를 지니고 있다. 그저 주먹구구식으로 가져다붙인 것이 아니라 연구를 통해 논리를 확보한 이론인 것이다. 이는 수선공 K씨가 ‘구두’를 통해 정립해 낸 인생 공식인 셈이다. 3. 유클리드 구두 기하학 총론 초등 수선학이 완성되는 날, 데카르트가 좌표 개념을 도입해 바닥 수선학을 주창한다 밑창이 꺾이거나 갈라졌을 때 필요한 창갈이학의 토대가 이루어진다 발을 본떠서 수선하는 모방 기하학도 확립된다 걸을 때마다 꺾이는 어제와 쩍쩍 갈라지는 오늘이 미적분 수선학의 발견으로 감쪽같이 해결, 내일을 광낸다 4. 19세기 위상도입개념, 수학과 자연과학뿐 아니라 디자인계까지 일대 혁신을 가져온다 뒷꿈치를 꺾어 신어 기형이 되어 버린 구두 각을 계산해 유행을 창조한다 재료는 끊어져 나간 실밥과 발자국 무게로 달아 놓은 배고픔…… ---「구두 수선공 K씨의 구두 수선학」 부분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시에 존재하는 공백 말이다. 유클리드, 데카르트 등 유수한 학자들 그리고 “모방 기하학”, “미적분 수선학” 등의 번듯한 학명과 “구두 각”, “실밥”, “발자국 무게” 등 지극히도 현실적인 단어 사이에는 “구두 수선학”이라는 학문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공동(空洞)이 존재한다. 그 공동은 “역사적 사실의 유무, 명제의 참, 거짓”(해설, 「수선공 K씨가 절대자를 구술하는 방식」) 사이에 존재하는 빈 공간(구멍)이다. 이종섶 시인은 이처럼 시를 통해 낯선 학문을 제시함으로써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는 ‘구멍’(동굴이나 웅덩이 등)을 곳곳에 배치해 둔다. 이는 비단 「구두 수선공 K씨의 구두 수선학」에 해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쥐구멍을 탐사해서 완성한” 「프로파일러 P씨의 고양이 프로파일」, 드라마와 드러머의 연관 관계를 서술한 「드라마 앤 드러머」, “아마추어 이기주의와 프로의 무책임”에 관한 「필드 윤리학―모럴과 오럴의 해저드 표류기」, “희고 검은 감옥”인 피아노에 관한 「피아노 해부학―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과 같은 시에서 미루어 알 수 있듯 시인은 다양한 분야에 ‘학’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그의 ‘―학’은 어딘가 낯설고, 그래서 팽팽한 긴장이 감돈다. 이 시집 곳곳에 포진된 구멍 또는 빈 공간이 마치 ‘크레바스’처럼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그 균열에 발을 헛딛는 순간, 가없는 공동으로 빨려들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곧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모든 감각이 열리고 환기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시집을 조금도 허투루 흘려 읽을 수 없는 이유다. 표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나 실은 전부인 것 표면이라는 것 감싸고 있는 속을 숨겼다 들켰다 하면서 방어의 최전선에서 중심 노릇까지 해야 하는 그 표면이라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나 실은 전부인 것이어서 그곳에 둥지를 튼 발톱이 뽑히지 않는 ---「뿌리의 힘」 부분 시인은 ‘너머’를 이야기하기 위해 ‘표면’에 주목한다. “방어의 최전선에서 중심 노릇까지” 해내는 “그 표면이라는 것”은 결국 “전부”일 수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대상의 본질을 감싸는 외피에 불과한 무수한 시어들이 한 편의 시로 완결되었을 때 그 대상의 ‘전부’로서 작용하듯이 “감싸고 있는 속을 숨겼다 들켰다 하”는 표면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나 실은 전부”를 표상한다. 이종섶 시인은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표면의 속살을 드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표면을 두드린다. 계속해서 두드리면 표면이 부서지고 깨어져 마침내 본색을 드러낼 테니 말이다. 아마도 시인은 그 작업을 “마음껏” 계속할 것이다. 사물과 존재(「바위」, 「버섯」, 「나비화석」, 「붉은 장갑」, 「굼벵이」, 「우체통」 등)를 끊임없이 두드려 보고 치열하게 재해석하면서 “파괴가 아닌 건설”이자 “교란이 아닌 확장”으로 “변형이 완전하게 정착되면서 입에 붙을 때까지”(「성형외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