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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제1부 범실에 살어리랏다 범실에 집을 짓다 |[시] 약력 추가 | 탱자 이야기 | 범실의 수탉은 내 이름을 부르며 운다 | [시] 범실의 닭 | 은행나무와 나와의 관계 | [시] 겨울 은행나무 아래 | 이웃집에 관음보살이 살았다 |[시] 입춘 무렵 | 빈자일촉 | 범실에서 닭 치기 | 성탄제 무렵 | 범실에 살어리랏다 | 범실의 겨울나기 | 죽은 쥐를 선물 받다 |[시] 고양이 똥 치우는 사람 | 당호가 없다 | 꽃할머니 | [시] 흰 고무신에 대한 소고 | 복수초가 필 무렵 | [시] 꽃받침 | 연못 한 채를 짓다 제2부 닳아서 빛나는 어떤 생 어머니의 노래 | 어머니의 마지막 농담 | 어머니의 젖은 바지를 빨면 |[시] 당신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 | 뜬금없는 이야기 | 고향 이야기 - 산과 더불어 | 내가 담배 끊은 사연 1 | 내가 담배 끊은 사연 2 | 버팀목 |[시] 버팀목에 대하여 | 닳아서 빛나는 어떤 생 | 꽃단지 제3부 시 앞에서 탄식하다 목련꽃을 위한 변명 |[시] 목련꽃 브라자 | 고구마 굽는 남자 |[시] 이녁 | 심봤다 | 삐딱선을 타고 | 내게 엄마라는 말은 | 수련(睡蓮)이 전하는 말 |[시] 꽃 아닌 것 없다 | 비익조(比翼鳥)의 사랑 | [시] 만복사저포기 - 양생의 말 | 산골에서 홍수를 만나다 | 40만 원짜리 산행 | 시 앞에서 탄식하다 | 시라는 하얀 지팡 | 실사구시 - 시론 1 | 별에게 가기 위하여 - 시론 2 | 밑불이라는 말 - 시론 3 제4부 새와 더불어 외로움에 대하여 | 새와 더불어 |[시] 누명 | 그 겨울, 딱새와 더불어 |[시] 딱새 | 애련설 |[시] 윤회를 믿진 않지만 | 무릉도원에 들다 | 벌을 받다 | 목련 |[시] 목련 후기 | 맨발 | 아빠가 죽, 죽을…… | 지기매 | [시] 지기매(知己梅)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근황 |
복효근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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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실은 한자로 하면 호곡, 호랑이 고을이다. 마을 입구에서 산을 바라보면 호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내 읽어보지는 않았으나 김정빈이라는 풍수학자가 쓴 책 『터』에 동복호(삼남의 동쪽에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모양의 산세)가 언급되는데 바로 그 산이라고 했다. 아직 쓰지 않은 좋은 명당이 숨어 있는 산이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 말에 의하면 우리 집터는 호랑이가 젖을 물리는 자리로 집 자리로 아주 좋은 자리라 했다. 그런 말을 딱히 믿지는 않으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 자리에 두 호랑이가 집을 지어 들어왔으니 옳게 들어온 셈이다. 그 후로 이제까지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리며 살고 있다. 사람 앞날 모르는 일이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에 와서 둥지를 틀 줄이야. 나는 지리산 아래 범실에 산다.
--- pp.14-15 마당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꽃을 하나씩 따 모은다. 동네 농로에 나가 철 따라 피는 들꽃도 몇 송이 따 온다. 돌을 파서 만든 작은 그릇에 물을 채우고 꽃잎을 띄운다. 여행을 가면 숙소 입구에 환영 꽃단지가 놓여 있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해보는 것이다. --- p.113 매캐한 새벽 공기 속에 연탄을 갈던 습기 많은 날들아, 불씨를 꺼뜨리지 않게 깨어 있던 시간, 몇 줌 언어를 찾기 위해 잠 못 이루던 날들, 스치는 바람결에도 살을 베이던 눈물 많은 날들, 타고 남은 재 속 씨앗처럼 반짝이는 불씨를 찾아 식은 입김을 불어넣던 안간힘들아, 밑불이었다. 밑불이어야 한다. 살아온 날은 살아갈 날의 밑불이다. 이미 쓴 시는 새로이 쓸 시의 씨앗불이어야 한다. 시의 길, 재로 남는 길일지라도 불길 하나 이어놓고 가는. --- pp.171-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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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을 눈부신 시어로 빚어내온 복효근 시인의 신작 산문집 『밑불이라는 말이 있다』에는 ‘범실잡록’이라는 겸손한 부제가 붙어 있다. ‘범실’은 작가가 살고 있는 지리산 자락의 시골 마을 이름인데, 동음이의어인 야구 용어도 연상되는 중의적 표현이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형국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시골 마을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시인은 그곳의 탱자나무, 은행나무, 수탉, 고양이, 이웃집 할머니들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나간다. 관절염에 걸린 어머니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 남편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온 아내에게 구워주는 고구마, 사랑하는 딸들, 그리고 그가 써온 시와 그로 인해 만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 책을 읽다 보면 독자의 표정 또한 그 모든 이야기가 “그저 그렇다는 얘기”라고 퉁치는 시인의 웃는 얼굴과 닮아갈 것이다. 작가는 이 책에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이 앞으로 살아갈 나날들의 밑불이 되길, 문학이 이 우울한 세상에 깜빡이는 불씨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한 편 한 편의 글마다 시골마을의 고즈넉한 풍경과 그곳 사람들의 꾸밈없는 얼굴들, 그리고 작가의 질박한 마음결이 비쳐 보인다.
오늘이 내일의 밑불이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붙인 제목 ‘밑불이란 말이 있다’ 그 밑에 ‘범실잡록’이라는 부제를 붙여보았습니다. ‘범실’은 40 후반에 집을 짓고 정착한 마을 이름. 호랑이 고을이라는 뜻을 지닌 호곡(虎谷)의 순우리말 이름입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가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주로 이곳에 살면서 쓴 글을 모아서 그렇게 제목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범실’을 동음어 한자로 ‘범실(凡失)’이라 쓰면 주로 야구에서 쓰는 말로 ‘실수를 범하다’가 되지요. 어떤 시인은 팔 할이 바람이라고 했는데 나는 팔 할이 실수였습니다. 어쩌면 여기에 실린 글은 수많은 실수의 기록입니다. 서툰 삶의 기록이라고나 할까요? 여기 조각글들은 ‘그저 그렇단 얘기’입니다. 배움이 깊지 못하여 생각은 짧고 그나마 독서도 넓거나 깊지 못하여 앎을 내세우거나 빛나는 지혜를 담을 재주가 없었습니다. 맑은 말씀이나 깨달음을 담기에도 내 삶은 한참이나 함량 미달이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인지라 몇 조각이나마 그 편린을 한데 모아서 정리해보자 하였습니다. 미사여구는 잘 알지 못하여 그냥 소박하게 쓴 일기와 같은 글입니다. 산문과 함께 관련된 몇 편의 시를 실었습니다. 산문이라 해서 본격적인 수필도 아니고 어설픈 조각글입니다. 그래서 ‘잡록(雜錄)’이 된 것입니다. 짜임새 있는 사유나 예술성보다는 기록의 의미가 커서 ‘록(錄)’이라 한 것이지요. 몇 꼭지는 오래전에 썼거나 발표한 것을 부분적으로 손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이 때로 편집되기도 하는 것이어서 겪었던 경험과 꼭 일치하는지도 자신 없습니다. 자식으로, 아비로, 지아비로, 선생으로, 시인으로 목숨 걸고 살아보지 않은 자의, 그래도 할 말이 없지는 않은, 그래서 수줍은 자기변명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좀 값을 쳐줘서 말한다면 이 글 조각들을 ‘사랑의 흔적’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실수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동시대인에 대한 그리고 세상에 대한 서툰 사랑의 기록이라고요. 내가 한 일이, 내가 쓴 글이 범실이었음을 깨달을 때마다 내가 이르러야 할 맑고 투명하고 밝은 지점이 더욱 오롯해지고 간절해집니다. 그것이 이 잡록을 묶을 용기를 내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 잡록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밑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