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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딪힌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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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부딪힌 삶

이해를 이해하기, 혐오를 넘어서기
- ‘부딪힌 삶들’을 위한 짧은 해제 (배세진 정치철학자)

저자 소개 2

저폴 가스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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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Gasnier

1990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건축가인 어머니를 따라 프라하, 밀라노, 런던 등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자랐다. 스물한 살, 인도 뭄바이 프랑스 총영사관에서 일하던 시기에 오토바이 사고로 어머니를 잃는다. 왜 하필 내 어머니였을까, 그저 우연히 벌어진 비극으로 남겨두어야 할까. 좀처럼 답을 찾을 수 없던 이 질문은 기자가 된 이후에도 줄곧 그를 따라다닌다. 가스니에는 탐사보도 기자로 경력을 시작해 여러 시사프로그램의 취재와 제작에 참여했다. 그사이 수년간 조용하고 신중하게 이어진 가해자 ‘사이드’에 대한 탐구는 2025년 『부딪힌 삶』으로 결실을 맺었다. 개인적인 비극에서
1990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건축가인 어머니를 따라 프라하, 밀라노, 런던 등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자랐다. 스물한 살, 인도 뭄바이 프랑스 총영사관에서 일하던 시기에 오토바이 사고로 어머니를 잃는다. 왜 하필 내 어머니였을까, 그저 우연히 벌어진 비극으로 남겨두어야 할까. 좀처럼 답을 찾을 수 없던 이 질문은 기자가 된 이후에도 줄곧 그를 따라다닌다.
가스니에는 탐사보도 기자로 경력을 시작해 여러 시사프로그램의 취재와 제작에 참여했다. 그사이 수년간 조용하고 신중하게 이어진 가해자 ‘사이드’에 대한 탐구는 2025년 『부딪힌 삶』으로 결실을 맺었다. 개인적인 비극에서 출발해 프랑스 사회의 병폐와 균열을 들여다본 이 책은 출간 직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공쿠르상 후보에 올랐다. 소설 못지않은 서사적 매력으로 호평받으며, 프랑스 국립도서센터(CNL)와 법무부의 주관 하에 전국 교도소 수감자들이 직접 심사하고 선정하는 공쿠르 수감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울여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어린이책 편집자로 책 만드는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편집과 번역을 오가며 다양한 책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슈퍼리치가 세상을 구한다는 헛소리, 그런데 우리는 왜 그들을 숭배하는가》 《왜 강대국은 책임지지 않는가》 《늑대》 《나는 불평을 그만두기로 했다》 《지도로 읽는 아시아》 《언어의 정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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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1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52쪽 | 120*200*20mm
ISBN13
9791193044537

책 속으로

그것은 언젠가 벌어질 일이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에 더는 견딜 수 없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움츠러드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때마침 약삭빠른 자들이 나타나 공기처럼 퍼져 있던 분노를 정치적 이념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2022년, 그런 자들 가운데 하나가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 p.9

흥분한 그는 허리를 뒤로 젖혀 KTM 앞바퀴를 들어 올리고 뒷바퀴로만 질주한다. 오토바이는 달리는 흉기로 변한다. 귀를 찢는 듯한 폭음에 길 가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옷깃을 움켜쥐고 본능적으로 건물 벽에 바짝 몸을 붙인다. 그리고 오후 5시 13분, 충돌이 일어난다.
--- p.21

- 경찰: 긴급 출동 경찰입니다.
- 신고자: 안녕하세요. 방금 저희 집 근처에서 사고가 나서요….
- 경찰: 어느 지역입니까?
- 신고자: 리옹 1구예요.
- 경찰: 다친 사람이 있습니까?
- 신고자: 네, 한 명 있어요. 자전거도 한 대 쓰러져 있고요.
- 경찰: 끊지 마시고요, 소방으로 연결해드리겠습니다.
--- p.43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내 안에는 고통이 들어앉았다. 그것은 파도처럼 밀려왔고, 때로는 은행 수수료처럼 아무 예고도 없이 내 삶의 일부를 떼어 갔다. (…) 어머니의 삶이 추악함, 석유와 금속, 그리고 짐승 같은 남성성이 한데 응축된 결정체에 의해 갑작스럽게 끊어졌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 p.31

그 운명의 1분이 기록된 조서를 읽을 때면, 나는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어머니에게 단 몇 센티미터만, 조금만 더 오른쪽으로 비켜서 달리라고 애원하고 싶다. 나는 두 장의 조서 사이에 어떤 교훈이 숨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서류를 빈틈없이 살핀다. 이것은 전적으로 사고라고만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고란 커브를 잘못 돌아서 플라타너스를 들이받는 것이다. 그런 사고라면 적어도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도로에서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 운전대를 잡기 전에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것, 규칙적으로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 우리 어머니를 앗아간 그 충돌은 그런 종류의 사고가 아니었다.
--- pp.37-38

나는 바타클랑 소극장 테러로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그 아득한 공허 속에서 아들과 함께 어떻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의 출발점은, 아내를 죽인 자에게 단 한 뼘의 자리도 내어주지 않는 것이다. (…) 가해자를 생각하는 것, 단 한 순간이라도 그에게 자신의 생각을 내어주는 것은 사랑했던 아내를 기리는 일을 막는 잘못된 길로 빠지는 행위였다.
--- p.64

아들이 살해되었을 때 사이드의 가족이 피눈물을 흘린 곳이 바로 이 레 보라스다. 함자와 유세프가 망가진 KTM 654를 숨겨둔 곳도, 수사가 시작된 지 나흘 만에 경찰에게 발각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무너져버린 한 가정의 어머니가 고통으로 목이 멘 채 막내아들에게 쏟아낸 그 비통한 절규가 울려 퍼진 곳도 바로 레 보라스다. “왜 오토바이를 탔니? 도대체 왜?!” 그러자 다 자랐어도 아직 어린애 같은 아들이 대답한다. “엄마,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 pp.87-88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사이드는 자신의 왜소한 어깨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무거운 상황에 짓눌린 사람처럼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앙상한 그의 팔은 사고 당시 여러 목격자가 언급한 바 있는데, 다들 그것을 기록해둘 만한 부조화로 여겼던 것 같다. 마치 그것이 정상참작 사유라도 된다는 듯이.
--- p.97

사이드가 누군가를 죽일 의도가 없었다는 점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모든 조건, 그러니까 대마초를 피우고, 앞바퀴를 든 채 오토바이를 몰고, 사고가 날 것이 뻔한 좁은 골목에서 면허도 없이 과속으로 질주하는 행위들을 스스로 알면서도 모조리 갖춰놓았다면, 그래도 여전히 과실치사라는 개념 뒤에 숨을 수 있을까?
--- p.104

어머니는 자아실현이란 필연적으로 지리적 뿌리 뽑기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당시의 믿음에 이끌려, 끊임없이 이사를 다니며 집안의 해묵은 뿌리에서 벗어나려 했다. 반대로 본래 고향인 모로코에서 뿌리 뽑혀 프랑스로 온 사이드의 부모는 1960년대부터 크루아루스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이 동네에서 자식들을 키웠다. 그것은 같은 시대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 두 개의 프랑스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나는 주체성의 획득과 새로운 출발을 통한 해방의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노동과 정착을 통한 문화적 통합의 이야기였다.
--- p.130
알랭은 이전 세대보다 더 대담하고, 훨씬 쉽게 폭력을 선택하는 세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다만 그 자신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며 수치로 증명하지도 못한다. (…) 알랭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고는, 그런 말을 하는 자신도 놀랍다는 듯 뜻밖의 고백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진짜 솔직하게 말하면 경찰도 좀 달라졌어요. 요즘은 머리를 빡빡 밀고 항공모함처럼 중 무장한 덩치들이 있거든요…. 결국 모두가 더 폭력적이 된 거죠.”
--- p.161

욱하는 성질 때문에 벌어진 이야기들, 월 650유로짜리 주방 설거지 같은 변변치 못한 일자리에서 모욕감을 느끼는 남자들, 엉뚱한 데서 터져 나오는 남성성과 자존심, 그리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남자들. 이 짤막한 장면들을 하나하나 이어 붙이면 개인과 공동체의 실패, 정치적 공백, 운명과 상황에 의해 어긋나버린 삶의 경로가 드러난다. 법정의 증언대에서는 수치심과 후회,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했다는 고백,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는 간청이 쏟아진다.
--- pp.205-206

어떤 단어의 애너그램이 숨겨진 의미를 드러낸다고 믿는 사람들은, ‘사건 사고(fait divers)’의 철자를 바꾸면 ‘기분 전환(dérivatifs)’이 된다는 사실이 결코 우연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사건 사고’는 마음을 시름에서 딴 데로 돌려준다. 앞바퀴를 들고 질주하는 오토바이가 시속 80킬로미터로 현실의 단조로움에서 잠시 벗어나는 탈출구가 되듯이, 대중은 사건 사고에 열광함으로써 간헐적으로 분출되는 분노 속에서 끝없는 오락을, 그리고 도덕성을 과시할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원천을 찾아낸다.
--- p.213

출판사 리뷰

‘가해자’라는 외피 너머,
엇갈리는 이야기들

충돌 직후 경찰에 걸려온 신고 전화에서 목격자들의 진술은 엇갈린다. “오토바이 색깔이요, (…) 검은색이었던 것 같은데.” “어… 흰색이었나? [옆 사람에게 물어보는 듯이] 흰색 맞지? 네, 흰색에 무슨 줄무늬 같은 게 있었는데…”

가스니에는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과 판사, 변호인, 사회복지사를 찾아간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사이드라는 사람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더딘 형사절차에 항의하다 끝내 무력해진 경찰 ‘알랭’에게 그는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다니던 상습범죄자다. 반면 동네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붙잡아두려 애쓰는 사회복지사 ‘무니르’에게 사이드는, 일탈을 그만두고 싶어 하면서도 또래 집단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었던 나약한 아이다.

낡은 사건 기록을 뒤지고 사이드의 이후 행적을 추적해봐도, 가스니에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인 이 청년의 삶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여러 차례 징역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도 자잘한 범죄를 거듭하는 그의 삶은 마치 “천천히 진행되는 입관” 같다. 혹은 “유리병 속의 딱정벌레” 같기도 하다. 새롭게 출발하려 하지만,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영원히 원점으로 돌아오고 마는.

하나의 프랑스, 두 개의 세계
그것은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다

가스니에의 추적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자신의 가족과 사이드의 가족을 나란히 놓는 것이다. 건축가인 어머니의 자유분방한 기질을 따라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살아온 부르주아 가정과, 모로코에서 프랑스로 건너와 낯선 땅에 삶의 터전을 일군 이민자 가정. 좀처럼 교차하는 지점이 없어 보이는 두 가족은 사실 긴 시간에 걸쳐 충돌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가스니에는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 두 세계가 하나의 도시 공간을 공유할 때”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그 필연적 충돌을 이해하기 위해 한 도시의 역사를, 나아가 프랑스 사회 전체를 끌어온다.

최근 프랑스 곳곳에서 다시 시위와 충돌이 벌어졌다. 이 책의 배경지인 리옹의 거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10여 년 전 한 비탈길에서 일어난 충돌은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그 충돌을 만들어낸 사회의 균열은 지금도 여전하다. 삶의 조건에 대한 불만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정치인들은 그 분노의 원인을 지목하며 저마다의 해법을 외친다. 그러나 그들이 몇 마디 문장으로 압축하는 현실에는 수십 년에 걸친 이민의 역사와 계급의 격차, 제도의 실패와 개인의 선택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 복잡한 타래를 한 사람의 삶에서부터 풀어가는『부딪힌 삶』이 오늘의 이야기로 읽히는 이유다.

혐오가 오락이자 정치적 수단이 되는 시대
타자에 대한 이해는 어떻게 가능한가

가해자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피해자의 목소리조차 충분히 경청되지 않는 사회에서 가해자의 배경을 살피는 일은 조심스럽다. 자칫 범죄를 정당화하는 이야기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스니에 역시 자신이 쓰는 책이 사이드에게 면죄부가 될 가능성을 의식한다. 그럼에도 조사를 멈추지 않는다.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가능한 한 명료하게 밝혀내는 것만이, 영원히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 같은 비극의 기억과 함께 살아갈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은 어머니를 잃은 가스니에만의 애도의 방식이기도 했다.

해제를 쓴 정치철학자 배세진은 이렇게 말한다.

“사회학이 여전히 실패하고 있듯 가스니에 또한 실패한다. 이민자라고, 빈민이라고 모두 범죄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풍족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해서 범죄에 빠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 하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가스니에는 어떠한 ‘이해’에 도달한다. 인과성을 밝혔다는 의미에서의 이해는 아니라 해도, 나 또한 뭐라 표현해야 좋을지 학술적으로 전혀 감이 오지 않는 어떠한 ‘이해’에 도달했다. 끊임없이 나는 이 이해라는 어휘에 따옴표를 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수년에 걸친 탐구 끝에도 가스니에는 끝내 사이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어머니의 죽음 역시 돌이킬 수 없다. 그러나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는 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것을 간단하게 설명해버리는 정치의 언어, 누군가를 단죄하는 혐오의 언어에 맞서, 끝내 다 설명될 수 없는 한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가스니에가 택한 길이자, 『부딪힌 삶』이 오늘의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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