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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며 1장 작은 빵들의 전쟁 2장 굶주림 없는 혁명 3장 린 머신 4장 휴가 가는 야만인들 5장 이것은 요트가 아니다 6장 파라다이스 시티 7장 아마존 8장 섬의 불가능성 감사의 말 |
Dahlia Nam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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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슈퍼리치는 부를 축적하는 것으로만 지배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그들의 지배력은 상상의 영역에서도 작동한다. 슈퍼리치는 선구적인 천재이자 하늘이 내린 기업가, 나아가 인류의 구원자로까지 떠받들어진다. 수천 명의 이주민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는 동안 우리는 슈퍼리치의 요트를 동경하고, 수백만 명이 이 지구에서조차 마땅히 살아갈 곳을 찾지 못하는 현실에서 그들의 화성 식민화 계획에 환호를 보낸다. 이러한 모순이 내가 ‘도발 사회’라고 부르는 현상을 만들어낸다. 도발 사회에서는 특권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끊임없는 힘의 과시로 변질된다. 슈퍼리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반면 불평등은 점점 더 심해진다.
--- p.8 억만장자라면 아무리 엉뚱한 행동을 해도 미친 사람 취급받지 않는 이런 현실에 아직도 놀라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그들의 해괴한 변덕에 분노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자극적인 모습에 열광한다. 우리는 마술사의 현란한 묘기에 정신을 빼앗긴 서커스 구경꾼처럼, 그들이 부를 과시하고 지구의 자원을 탕진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부와 부가 상징하는 모든 것을 숭배한다. 이른바 부의 전도사들은 영웅으로, ‘선구자’로, ‘대단한 혁신가’로 추앙받는다. 이 반신반인들은 자신의 위대함에 한껏 취해 인류의 구원자 행세를 한다. 우리는 절박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들이 기적을 행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들로부터 흘러나오는 부의 낙수는 성수이며, 그들의 기술은 곧 구세주와 같다. 혹자는 지구의 미래가 믿음직한 손에 맡겨져 있다고 하고, 우리는 그 말을 간절히 믿고 싶어 한다. 이렇게 근거 없는 낙관론이 넘쳐나는 마당에, 어떻게 그들 앞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 p.15 로맹 가리는 소설 『흰 개』에서 이런 오만함을 조장하는 사회질서를 ‘도발 사회sociééde provocation’라고 했다. 도발 사회는 “경제적 팽창 과정에서 끊임없이 부의 과시에만 열중하고, 광고와 화려한 쇼윈도, 구매욕을 자극하는 진열대를 통해 소비와 소유를 부추긴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인구가 소외되는 상황은 나 몰라라 한 채, 진짜 욕구 혹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욕구를 만족시키라고 부채질하면서 정작 그 욕구를 충족할 수단은 허락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도발 사회는 부자들의 추악한 행동이나 저급한 생활양식을 미화하면서, 거기서 생겨나는 빈곤과 대중의 분노는 철저히 외면하는 사회를 말한다. --- pp.19-20 능력주의라는 환상이 만연한 미국에서는 부의 격차가 지닌 부도덕함을 은폐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동원한다. 단적인 예로 슈퍼리치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세운 수많은 민간 재단을 들 수 있다. 한 사회에서 불평등이 심화할수록 자선 재단 수가 늘어나는 현상은 드문 일이 아니다. 부유한 최고경영자와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자가 자신들이 받은 전리품의 일부를 각종 사회적·환경적 대의에 환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만 해도 벌어들인 막대한 이익을 99퍼센트의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는 대신, 페이스북 지분의 99퍼센트를 자신의 재단을 통해 “인간의 잠재력을 키우고 평등을 촉진하는” 데 쓰겠다고 약속했다. 정말 대단한 계획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겉치레에 불과한 관대함은 사용자의 사생활을 이용하고 감시하여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는 그의 이미지를 세탁해주는 효과가 있다. --- p.54 이른바 자선자본주의자(philanthrocapitalist, 자선 활동philanthropy과 자본주의자capitalist를 합성한 말로, 자본주의에서 기업을 경영하듯 자선 활동을 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옮긴이)들은 가난한 아이들, 기아, 교육, 기후변화 대응 같은 대의에 공감하는 척하면서, 자신들이 원인이 된 문제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해결책만 지원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를 괴롭히는 사회적 병폐를 해결할 방법이 그들의 재정적 안전이나 권력을 건드리지 못하게 확실히 대비하는 것이다. 이른바 자선 단체를 표방하는 재단들은 국가라는 ‘괴물’을 개입시키지 않고 사회적 위기를 해결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정치적 중립이라는 허울을 쓰고 사회를 특정한 이념적 방향으로 유도한다. 이처럼 자선자본주의자들은 ‘선의’라는 수단으로 무장하고 사회적 불만을 달래려 한다. 이 슈퍼리치들에게는 그들의 부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혁하기보다 막대한 재산의 극히 일부를 내놓고 평등과 연민이라는 수식어로 포장하는 편이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 p.56 두바이의 여름은 4월 중순부터 10월까지 이어지는데, 이 긴 여름 동안에는 습도와 기온이 치솟아 야외 활동을 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냉방장치가 설치된 다른 곳으로 가려면 에어컨이 나오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수밖에 없다. 지구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으로, 머지않아 이 지역의 기온은 말 그대로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실제로 2050년까지 이곳의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금세기 말 이 지역의 기온은 인간의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위험해질 것이다. 현재 아랍에미리트는 다른 걸프 지역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탄소 배출, 폐기물 발생, 물 소비 측면에서 인구 1명당 탄소발자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에 속한다. 그러나 슈퍼리치에게 기후변화로 인한 불편은 자신들의 부를 향유하는 데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이 자본주의의 귀족들은 폭염에 대응하기 위해 사막 한복판에 냉방 시설을 갖춘 거대한 쇼핑몰을 건설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 p.149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폭염, 대형 산불, 강력한 허리케인, 파괴적인 홍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의 부유층이 권력과 명예, 부를 가져다주는 시스템을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아틀란티스의 비극적 운명을 돌아보게 한다. 전 세계 슈퍼치리의 상위 1퍼센트가 전체 온실가스의 15퍼센트를 단독으로 배출하고, 배출량이 가장 많은 상위 10퍼센트는 지구 전체 배출량의 거의 절반의 원인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최고 부유층의 사치스러운 취향, 요트와 대형 SUV 차량, 전용기로 점점 커지는 탄소발자국은 일반적인 소비자의 수준을 훨씬 능가한다. --- p.200 이러한 발상은 현실 감각을 잃고 무중력 상태에서 떠도는 비정상적인 영혼들의 망상이 분명하다. 기 라리베르테는 ‘별들 사이를 여행하는 경험’을 해보겠다며 국제우주정거장으로 날아올라 12일 동안 우주에 머물렀다. 이 서커스 기업 대표는 이 같은 우주 택시 여행에 5000만 달러를 지불했는데, 심지어 이것이 대중에게 ‘물 보호’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사회적이고 시적인’ 임무였다는 핑계를 대며 세금을 감면받으려 했다. 그러나 그의 변덕에 들어간 대가는 사회적이지도 시적이지도 않았고, 친환경적인 측면은 더더욱 없었다. 로켓 한 대를 발사하는 데 약 1000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데, 이는 “연간 1만 5000킬로미터를 주행하는 보통의 자동차가 638년 동안 배출하는 양”에 맞먹는다. --- p.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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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바드봉쾨르상 · 퀘벡 서점인상 수상작
***캐나다 총독 문학상 최종 후보 “그들이 우리의 상상력, 삶, 그리고 지구에 가하는 온갖 해악을 여실히 드러낸다.” 헤아리기조차 힘든 그들의 부는 어디에서 오는가? 1,400,000,000,000달러, 한국 돈으로 2,000,000,000,000,000원. 지난 6월 스페이스X 상장 직후 일론 머스크의 자산 추정치이다. 사상 첫 조만장자(Trillionaire)의 탄생. 이는 대한민국 정부 1년 예산 728조 원의 약 세 배에 달한다. 사실 부의 집중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껏 돈을 버는 건 당연한 일이며, 누군가의 막대한 부는 개인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처럼 여겨진다. 과연 그럴까? 또 다른 슈퍼리치, 아마존 제국의 수장 제프 베이조스를 살펴보자. 2021년 7월, 그는 자신이 설립한 우주 기업 ‘블루 오리진’의 우주선을 타고 세계 최초로 민간 우주여행에 나섰다. 10분간의 우주 비행을 마치고 지구에 복귀한 그는 “모든 아마존 직원과 고객에게 감사하다. 당신들이 이 모든 비용을 대준 것”이라고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자산은 아마존 전 직원의 급여를 합친 것보다 많다. 아마존 물류창고에서는 노동자들이 분 단위로 동선을 통제당하고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어 음료수병에 오줌을 누어가며 일하지만 말이다. 머스크의 테슬라 공장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시급 5달러 수준의 저임금을 받으며 주 70시간씩 일하고, 수백 건의 산재 사고를 은폐하는 등 노동 착취를 자행하고 있다. 그들의 헤아릴 수 없는 부는 단지 노동자들의 고혈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 즉 세금마저 철저히 회피함으로써 완성된다. 2021년 비영리 언론 프로퍼블리카가 폭로한 실상은 충격적이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초부유층 25명이 낸 실효 세율은 겨우 3.4%에 불과했다.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구가 소득의 25%가량을 세금으로 낼 때, 제프 베이조스는 2007년과 2011년에 단 1원의 소득세도 내지 않았다. 일론 머스크 역시 2018년에 소득세를 전혀 납부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식 담보 대출 등을 이용해 법의 허점을 정교하게 파고들며 공식 소득을 ‘0’으로 만들고, 조세 회피처 섬에 유령 법인을 세워 자산을 숨긴다. 어디 그뿐인가. 일부 억만장자들은 아예 법적·지리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공해상에 인공섬을 띄우는 ‘씨스테딩(Seasteading)’ 프로젝트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카리브해의 개인 섬을 사들여 자신들만의 사적 성채를 구축한다. 공공의 인프라와 공공의 자본으로 제국을 세웠으면서, 막상 사회를 유지할 비용은 평범한 대중에게 전가한 채 자신들만의 거대한 ‘세금 무풍지대’를 구축해온 것이다. 노골적인 부의 과시는 명백한 도발이다! 한편 오늘날 슈퍼리치들이 보여주는 사치와 기행은 단순한 ‘과시’를 넘어섰다. 한번 발사하는 데 50~75톤가량의 탄소를 배출하는 로켓에 자신이 타던 자동차를 실어 보내고, 거대한 슈퍼요트를 바다로 띄우기 위해 역사 유적 다리를 해체해 달라고 요구하고, 팬데믹을 피해 자신의 섬에서 초호화 파티를 즐긴다. 그러나 대중은 그들의 모습에 분노하기보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헛된 열망에 사로잡힌다. 미디어와 SNS는 슈퍼리치들의 기행을 ‘성공한 이의 기발한 취향’이자 ‘자유의 상징’으로 포장해 끊임없이 상영하고, 대중은 그들의 사치에 열광하며 자발적으로 그들의 세계를 찬양한다. 빈곤과 불평등을 연구해온 캐나다의 사회학자 달리아 나미앙은 이 비현실적이고 기괴한 풍경에 주목한다. 저자는 로맹 가리의 소설 『흰 개』 속 ‘도발 사회’ 개념을 차용해 이러한 현실을 명명한다. “도발 사회는 부자들의 추악한 행동이나 저급한 생활양식을 미화하면서, 거기서 생겨나는 빈곤과 대중의 분노는 철저히 외면하는 사회를 말한다.”(본문 20쪽) 특권층의 무분별하고 외설적인 과시는 대중을 향한 ‘도발’이다. 그들의 과시는 불평등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불평등을 오히려 욕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도발적이다. 초부유층의 노골적인 과시와 이를 부러워하며 추앙하는 대중의 공모 관계. 이것이야말로 오늘날의 신자유주의가 불평등을 자연스럽고 정당한 질서로 고착화하는 가장 정교한 통치 술책이다. 부유층의 과도한 사치는 대중의 계급의식과 감각을 마비시키고, 비판의 목소리를 부자들에 대한 열등감으로 치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기술? 1%를 위한 탈출구! 우주로 떠난 인류에 우리의 자리는 없다 자칭 타칭 ‘혁신가’인 그들이 결국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또 어떤가? 슈퍼리치들이 흔히 들고 나오는 기술 만능주의적 서사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패턴이다. 20세기 중반, 화학 비료와 품종 개량으로 기아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녹색혁명’을 돌아보라.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늘었을지언정 산업화한 대규모 농업의 등장으로 소농들은 몰락했고, 토양 황폐화와 농업 자본의 독점 지배라는 또 다른 형태의 문제를 낳았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아마존 정글 한복판에 건설하려 했던 고무 생산 도시 ‘포드랜디아’는 어떠했는가? 자본과 기술력으로 자연과 현지 노동자들을 완벽히 통제하고 문명화할 수 있다는 오만은, 결국 기괴한 폐허로 남았을 뿐이다. 오늘날 슈퍼리치들이 외치는 ‘화성 식민지 건설’과 ‘기후 위기 극복’ 역시 이 실패한 신화들의 되풀이에 불과하다. 지구에서 막대한 자본을 벌어들이며 지구의 생태계를 거덜 낸 이들이, 이제는 우주로 나가 인류를 구원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술이 문제의 근원을 해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구상의 문제를 외면한 채 우주로 나아가겠다는 약속은, 결국 자신들이 저지른 파국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기만적인 변명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저자는 단언한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현상에 이름을 붙이고 문제화하는 것 자체가 이미 거대한 저항의 시작이라고. “이 책은 부당한 현실에 분노할 줄 아는 감각을 되찾자고 제안한다. 특권의 부당함을 보고도 분노할 줄 모르는 사회는 결국 그 특권에 굴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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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불의와 불평등을 이해하고, 이에 맞서는 데 필요한 가장 강력한 논거를 제공한다.” - 피에르 바드봉쾨르상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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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자료에 기반해 초부유층의 모든 모순을 짚어내며, 그들이 우리의 상상력, 삶, 그리고 지구에 가하는 온갖 해악을 여실히 드러낸다.” - La Pr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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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부유층의 특권과 거리낌없는 과시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그들에게 침묵하거나 심지어 경외심을 보내는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 Les Librai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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