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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적
2. 대학살 3. 공규 4. 양요 5. 적개심 6. 권모술수 7. 암투살벌 |
KANG,SHIN-JAE,康信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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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다함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사실 편안한 마음으로 있을 때에도 모두 쉬운 노릇은 아니어서, '나이 어려 책봉된 비빈 여러분이 일찍 돌아가오심도 진적 무리는 아니라'. 중전도 때때로 생각은 하였으나 '그래도 언 물에 손 담가 밥하고 빨래하던 그 어려움에 비기면 척푼이 없어 입에 풀칠이 어렵던 날들을 생각하면.....' 이건 극락에 노니는 일이로다 속으로 미소짓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얼음 깨고 빨래하던 생각이 났다. 아무 거리낌이 없던 마음의 평화가 생각났다. 이렇게 옷자락이 무거워 가라앉을 것만 같지 않고 나인들이 이리저리 꽂아 모양을 보아주는 두식에 목이 부러질 것 같지 않고 가슴에 납덩이가 가라앉아 있지 않던 그때가 생각났다. '허나 어찌하랴, 하릴없는 노릇이로다. 시방은 침착하자.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느니라.' 질투의 맹화는 밤의 어둠 속에서보다는 좀 나아져서 중전은 기를 써 우선 왕비로서의 체통을 잃지 않으려 했다. 주산이나 고비 보기가 부끄러워 억지로 태연한 체 음식을 조금 씹어 삼키기도 했다. 그러나 중전은 체증에 걸려 구역질을 하며 토하였다. 이어 신열이 올라 자리에 뉘어졌고 정신이 가끔 혼미해졌다.
--- p.97-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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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따온 듯 솜씨있게 지어 입은 것은 물론 여기서 보낸 옷감들인데 그 사이 날래게도 일을 하였다 싶거니와, 꾸미고 차린 모양새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어느 한점 빠지는 데가 없다. 이름있는 사대부가의 어떤 규수라도 따를 수 없는 단정한 기품이 있는 것이었다.
예서 보낸 물품을 여기 올 때 깡그리 사용한 것은 이를테면 여기에 대한 예의이다. 계란형의 단아한 얼굴은 총명해 보이지만 눈은 반들거리는 대신 다소곳 내려감겨 있었다. 곱게 절하는 양을 보고 인사하는 말소리를 듣자 부대부인은 한량없이 흡족하여 입이 벌어지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백설 같은 외씨 버선발 하며 치마에 구김살 하나 없는 것은 서울에 다 와가지고 어디선가 갈아입고 차림새를 가다듬은 것이 분명하여, '제법 분별도 있는 양하다.' 마님은 함께 따라온 이씨 부인과의 응대는 건성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씨의 인상은 짐작대로 그저 그런 위인인 듯싶었고, 매사는 처녀이 주도 아래 행해지는 것이라고 마님은 어렵지 않게 정해 버렸다. --- p. 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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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동기
최근 일본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올바로 바라보게 하자'는 명분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역사를 미화시키고 있다. 조상이 저질렀던 만행들과 다른 나라에 해를 입혔던 사실들을 삭제하거나 변형하여 그들의 후세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겠다는 그야말로 어불성설의 입장에서 일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의 정치, 사회, 문화 등의 각 방면 전문가들과 온 국민들은 이러한 일본의 또다른 '만행'을 저지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역사를 바로 알려는 각계 각층의 노력들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역사적인 인물들에 대해 좀더 알고자 하는 것이라 본다. 우리 나라와 일본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어 왔고, 그 사실은 지금도 역시 변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2002년이 일본과 우리 나라의 합작품이 될 월드컵의 해라면, 한 해 앞선 올해 2001년은 일본과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아야 하는 적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강신재 역사 장편소설 명성황후 를 출간하는 이유는, 명성황후를 재조명함으로써 우리 역사를 생각해 봄과 동시에, 우리 나라의 현재 상황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려해 보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데 있다. 오늘날 왜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몇 해 전, 아직도 우리는 100년 전의 세계 상황을 답습하고 있다는 말들을 많이 했다. 그것은 우리 나라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권 다툼을 놓고 하는 말이었다. 지금 소련은 역사 속에 사라졌지만 러시아로 그 모습은 여전히 남아 있고, 미국과 일본, 중국 역시 우리 나라 주위에서 시시각각 눈치를 보고 있다. 또한 우리 나라는 100년 전보다 더 못한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남북한이 양분된 상태에 있다. 100년 전, 일본은 왜 명성황후라는 한 여인을 죽이면서까지 우리의 정치에 간여하려고 했는가?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 나라 전체를 일본이 독식하고자 하는 야심의 표현이라 말할 수 있다. 지금도 역시 우리 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을 통해 일본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명성황후를 통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