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무너지는 나라를 붙잡으려
왕조의 마지막 풍경들 헤이그특사 사건의 숨은 주역 2. 독립군의 요람. 신흥무관학교 모든 것을 버리고 만주로 떠나다 아아! 사랑할 것은 한국이요. 슬픈 것은 한민족이로구나 3. 고종이 망명한다면 밀입국을 단행하다 고종 망명이 갖는 폭발성 4. 북경과 상해를 오가며 임시정부를 둘러싼 파문 독립운동가의 단골 거처 무장 투쟁의 길로 나아가다 5. 아나키즘의 깃발 아나키즘은 왜 공산주의와 싸웠는가 아나키스트 이회영 6. 의열단과 다물단 의열단의 직접 행동과 유자명 총독부 폭파와 다나카 대장 암살 사건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이다 다물단의 밀정 암살이 준 충격 7. 극도의 곤경속에서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발족하다 극심한 자금난 일제의 체포를 피해 수만 리를 걷다 8. 만주 운동의 새바람 김좌진 장군과 연합하다 일본 조계지의 은행을 털다 자유연합적 지방자치에 대한 반발 9. 국제도시 상해의 30년대 풍경 일제를 공포에 몰아넣은 아나키즘 조직들 백정기와 윤봉길의 엇갈린 운명 운명의 만주행 10. 그리고 남은 동지들 신채호의 순국 죽기 위해 제비를 뽑는 사람들 - 육삼정 사건 공포의 서간단 상해 거류민단장 사살 사건 일제가 점령한 상해에서 무장 투쟁으로 최후의 승리를 |
李德一
이덕일의 다른 상품
|
항일구국연맹을 이끌던 지도자들이 거주한 상해 뒷골목은 여전히 옛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건물은 그대로인데 사람만 바뀌어 세상사의 무상함을 안겨준다. 현재 거주 중인 사람들은 자신의 거처에 독립투사가 살았던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알려 준다 해도 관심 밖이다.우당이 대련으로 떠나기 위해 승선하던 상해탄은 국내외 관광객으로 넘실댄다. 비장한 마음을 주고 받던 독립 투사들의 온기는 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고 중국을 찾은 한국 관광객도 물결의 아름다움과 예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주변 건물을 감상하며 사진 찍기에 분주할 뿐이다. 풍찬노숙하면서 의기를 잃지 않은 항일 투쟁가들의 활동은 이제 역사가 입에서만 노닐고 많은 이에겐 잊혀진 기억에 불과한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를 두려워하는 민족만이 미래가 열려 있다'는 잠언이 새삼 떠오른다.
--- p.92 |
|
유자명을 나타키즘에 경도되게 만든 이론은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이었다. 당시 일본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생물진화의 동력이라고 주장하는 다윈의 '진화론'이 유행했다. 그러나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순간 식민지 출신의 유학생들은 제국주의의 침략논리를 용인해야 한다는 모순에 빠져야 했다.
진화론을 국가 사이에 적용하면 우성인 일본이 열성인 한국을 점령한 것이 당연한 사회법칙이 되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유학생들은 선진 과학이론을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는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 상호부조론은 이런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론이었다. 상호부조론은 경쟁이 아니라 서로 돕는 협과 생물진화의 중요인자라고 주장하고 있었으므로 진화론에 빗댄 침략이론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유자명은 크로포트킨의 자서전『한 혁명자의 회억』을 읽고 "나의 사상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으나 나중에는 무정부주의자로 되게 하였다." 라고 만년에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쓴 회고록에 고백할 정도로 확고한 아나키스트가 되었다. 1919년에 창립된 의열단의 전성기는 1920년대였다. 그리고 오장환이 "1920년대 중국 내 한인 아나키즘운동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것은 대표적인 민족주의적 항일 독립운동 단체였던 의열단에 미친 영향이다."라고 쓴 것처럼 의열단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1920년대에는 아나키즘 단체가 그 중심에 있었고 그 배경이 유자명에 있었다. --- p. 137 |
|
새로운 세기! 우리는 왜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들에게 다시 주목하는가?
“과거 냉전시기 아나키즘은 자본주의 사회는 평등의 이름으로, 공산주의 사회는 자유의 이름으로 공격했다. 냉전 시기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서로를 평등과 억압의 문제로 공격하고 방어해왔을 뿐이다. 아나키즘은 이 양자가 가진 50%의 불의를 비판하며 인간을 속박하는 모든 억압에 저항해왔다. 냉전체제가 종식된 21세기에 이 50%의 불의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 때늦은 후회 뒤늦은 후회이지만, 열정의 80년대, 운동권 일부를 지배했던 사상이 레닌-스탈린주의와 김일성주의라는 사실은 우리 현대사의 또 다른 비극이었다. 레닌-스탈린주의와 김일성주의에 경도되었던 이들은 인간 자유의 문제에는 눈을 감은 채, 자본주의 사회의 평등에 관해서만 이야기했고 공격해 왔다. 21세기에 아나키즘이 전 세계적 현상으로 확대된 것은 좌우 이데올로기에 가려졌던 인간 사회의 본질적 문제가 전면에 떠올랐음을 보여 준다. 근대의 거대한 실험이었던 사회주의는 이미 현실 속에서 그 대안이 되지 못함이 밝혀졌고 근대의 당당한 승리자로 보이는 자본주의 역시 인간 사회의 본질적 문제의 대안이 되지 못하였다. 이런 지점에서, 새로운 세기에 아나키즘은 좌와 우의 양극단을 뛰어넘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발전과 중심 지향적인 20세기의 역사를 반성하고 다양함의 공존과 이타의 정신에 기반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자들의 철학으로 아나키즘이 다시 연구되고 있다. 시민운동도 아나키즘과 닿아 있어 아나키즘은 무정형적이며 여러 차원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최근 환경문제와 더불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에코아나키즘(아나키즘 + 생태 ; 서로 부조하는 자발적인 지역공동체를 에코아나키즘의 구체적인 실천 양식으로 본다.)이나 동양의 고전을 아나키즘으로 재해석하는 일련의 흐름(강원대 이애희 교수는 ‘공자의 대동사상과 아나키즘이 추구하는 공동체주의와 생명애호의 이념은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 성신여대 방영준 교수는 계간 <불교평론> 봄호에 ‘아나키즘의 불교적 특성’이라는 글을 통해 ‘해탈을 추구하는 불교와 논리의 벽을 뛰어넘으려는 아나키즘의 특성이 닮아 있다’고 주장하였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큰 힘을 얻고 있는 시민 운동 또한 이런 아나키즘의 맥과 닿아 있다고 평가될 수 있다. 권력의 집중에 반대하고 시민에 의한 참여를 강조한 시민 운동 또한 ‘자유 연합’, ‘상호 부조’, ‘권력 분점’이라는 점에서 공존의 철학인 아나키즘과 맞닿고 있다. 무정부주의, 테러리즘, 허무적 낭만주의…… 일반적으로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 테러리즘, 허무적 낭만주의와 같은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인식되어 왔다. 실제로 아나키즘이 이런 전력과 색채를 띠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폭압의 시대를 견뎌온 아나키즘의 외양일 뿐이지 아나키즘의 진정한 본질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아나키즘은 공존의 철학이며, 본질적으로 이타(利他)의 사상이다. 아나키즘의 기반은 ‘인간의 선에 대한 믿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약육강식의 진화론적 입장의 다윈주의가 서구의 지성을 휩쓸고 식민지 시대 조선의 청년들에게 전파되었을 때 다윈주의는 열등하고 약한 조선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시기 동시에 소개되었던 아나키즘은 다윈주의와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였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며 서로 부조하며 발전할 수 있다는 아나키즘의 믿음은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근대 발전주의에 반대하고 있다. 근대의 산물이 아나키즘은 그 태생적인 측면에서 이미 탈근대의 속성을 갖고 21세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