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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2. 비디오 예술의 시작 전자영상 전자 음악에서 전자 텔레비전으로 음이 영상이 되다 전시회<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 볼프 포스텔 3. 비디오 설치 참여 텔레비전 미니멀 비디오 비디오 프로젝션 중복의 원칙 : 폐쇄회로 설치 멀티 모니터 설치 인간화된 기술 : 샬럿 무어만을 위한 비디오 오브제 4. 비디오 테이프 확장된 시네마 또는 확장된 텔레비전 백남준과 아베의 신시사이저 비디오 테이프 빛과 그림자 : 비디오와 영화의 관계 <굿모닝 미스터 오웰> 5. 백남준의 이론 플럭서스 과거 구성주의 전통 비디오 환경 : 시각적 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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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에는 뉴욕 아방가르드페스티벌에 참가, 물통에 머리를 처박고 피아노를 치는 퍼포먼스와 로봇작품을 선보였고 이 때 만난 미국 첼리스트 샬럿 무어만과 67년 ‘오페라 섹스 일렉트로니트’를 공연하다 음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한다. 활동 중심지를 뉴욕으로 옮긴 백남준은 82년 휘트니미술관주관 회고전을 가졌고, 93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공동대표로서 대상을 수상한다.
--- p.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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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부터 백남준은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과 관람객의 참여를 위한 구상을 발전시켜 왔다. 맨처음에는 음향 기구를 선보였는데, 시각적으로도 흥미로웠지만, 본래 관람객이 사용함으로써 제 기능할 다 할 수 있었다. 근본적인 아이디어는 아무것도 미리 결정되지 않은 그런 열린 음악 형식을 향한 백남준의 소망과 일치했다: "다음 단계가 비결정성을 향해 더 많이 나아갈수록, 나는 관객이 (이 경우에는 모인 사람들이) 행동하고 바로 그것을 작동시키길 원했다."
백남준은 <마그네트 TV>와 <참여 TV> 같은 텔레비전 실험에서도 관람객을 참여시키고자 한다. <마그네트 TV>는 백남준이 비교적 늦게 개발했다. 그는 이미 텔레비전 내부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조작을 시도했었지만 외부로부터 설치된 자석도 전자기적 전자 흐름을 변경하는 데 적합한 것인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1963~64년 겨울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에 - 본질적으로는 컬러 텔레비전과 로봇실험에 열중했지만 - 그는 전자 공학 엔지니어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백남준은 처음에는 원형의 전자석, 즉 화면의 정전기적 부하를 파괴하는 목적으로 기술자들이 이용하는 배자(排磁) 장치를 가지고 작업을 했다. 1965년부터는 백남준은 무거운 강철자석도 사용했는데, 그는 이것을 케이스 위에 놓거나 화면 앞에 설치했으며, 또는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에서처럼 브라운관의 맨끝에 고정시켰다. ---pp.84~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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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비디오 예술에 대한 연구와 이해를 한 차원 심화시킨 탁월한 해설서
백남준을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전시회 등을 통해 실제 백남준의 작품을 접하게 되면,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고, 왜 그런 평가를 받게 되었는지 의아해할 때도 있다. 더군다나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전시회와 국내에 출간된 비디오 예술론은 대부분 백남준 작품의 형식 미학과 의도를 밝히는 데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백남준 자신이 언급하고 있듯이, 비디오 재료의 조건들, 즉 전자 공학적인 측면을 알지 못한다면, 백남준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해는 일면적이고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를 수밖에 없다.
비디오 예술에 영향을 준 벤 라포스키의 오실론, 휘트니 형제의 추상적인 영화, 그리고 카를 오토 괴츠의 키네틱 회화 등의 고찰은 비디오 예술이 탄생한 시기의 예술사적 · 기술적 흐름을 조명해준다. 미래파, 키네틱 아트, 그리고 구성주의 등과의 비교도 비디오 예술의 탄생 배경을 예술사적인 측면에서 광범위하게 고찰한 것이다. 또한 백남준이 작곡가 존 케이지와의 만남으로 동양의 사상과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비결정성과 소통의 예술관을 갖게 된 과정도 상세히 소개되어 우리의 관심을 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