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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만남(13-17세기)
선의 땅 극동으로의 여행 한국에 대한 최초의 기록 한국에 대한 구체적 이미지 2. 동양의 끝 한국에의 접근(18세기) 중국속에서 발견한 한국 계몽주의 시대의 한국이미지 3. 고요한 나라로의 방문(19세기) 제국주의 선교사 그리고 한국 문호개방과 한국학의 성립 4. 세기전환기의 한국체험(20세기전후) 한국에 관한 본격적인 기행문 5. 동양의 신비와 근대적 현실(20세기) 한국안에서 들여다본 한국 프랑스현지의 눈으로 본 한국 예술가의 눈에 비친 한국 6. 두 개의 한국(현대) 타국으로서의 한국 두 개의 다른 나라 : 남과 북 다른 시간속에 놓인 두개의 한국 : 전통과 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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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대의 대장은 하멜의 책을 손에 들고 있었으며, 1653년 이 섬의 남쪽 해안에 표착했던 스패로호크 선원들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해안에 접근하지 말 것을 명령한다. 라페루즈는 제주 남단을 지나는 동안 제주도의 논밭과 언덕, 주거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 계단식의 파노라마로 이루어진 이 풍경은 '연극적으로 연출'된다.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의 섬은 찾기 힘들 것이다. (…) 약 18~20리에 사이를 보면 약 1000토아즈(Toise, 1토아즈는 약2미터)의 봉우리가 섬 한가운데에 솟아 있는데, 그곳이 섬의 저수지인 것 같다(한라산을 지칭함). 대지는 완만하게 바다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그곳에는 집들이 계단식으로 늘어서 있다. 땅은 매우 높은 지대까지도 경작되어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망원경으로 밭의 구획을 볼 수 있었다. 작게 나뉘어 있는 것을 보면 인구가 많은 듯했다. 경작지에 따라 모양이 달랐고, 이는 이 섬의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 이때 한국의 배 두 척이 프랑스 범선을 관찰하고 있었다. 한국 측은 프랑스 범선에 접근하지 않은 채 유사시에 해안에 경계를 울리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을 뿐이었기에 프랑스 탐험가들은 아무 문제 없이 위도와 경도를 측정할 수 있었다. 이제껏 어떤 유럽의 함선도 한국 해안을 학문적 목적으로 탐험한 일이 없었던 만큼 이 일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예수회 신부들이 발행한 일본과 중국 지도 외에는 한국의 해안을 구체적으로 그린 지도가 없었던 것이다. ---pp.77~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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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는 전체 6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첫 만남(13~17세기)에서는 한국에 대한 직간접적 기록들을 통해 거대한 대륙의 양극단에 놓인 프랑스와 한국의 만남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몽테뉴에서 최초로 장기 체류했던 하멜에 이르기까지 그 표현이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또한 당시의 현실을 제대로 표현하든 그렇지 않든 프랑스가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기 시작한 단초를 마련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이 시기부터 한국은 프랑스에게 양면성의 이미지로 자리잡는다. 2장 동양의 끝, 한국에의 접근(18세기)에서는 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중국 물결 속에서 서서히 한국에 접근하는 구체적 상황들을 당시의 자료와 함께 제시한다. 1장에서 자리잡은 양면성의 이미지들이 구체화되는 과정이다. 볼테르의 작품과 프랑스 해군의 접안 지역 탐색을 통한 피상적 이미지의 형성 과정이다. 3장 고요한 나라로의 방문(19세기)에서는 밖에서 맴돌던 시선들이 안으로 들어와 직접적 경험을 통해 구체화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프랑스 제국주의가 파견한 프랑스인(선교사, 항해사...)들 그들의 눈을 통해 한국의 이미지는 더욱 구체화되어 프랑스에 전해지는 과정을 겪는다. 병인양요와 선교사들의 활동을 통해 한국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오랜 문명의 결과물들이 프랑스에 공개된다. 알려지기 싫은 욕구가 폐쇄성으로 점철되었고 한국의 문호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면서 프랑스에서는 한국학이 태동하기 시작하고 문학작품들이 번역 소개되는 시기이다. 구체적 체험을 통해 프랑스는 지리적인 인식의 부족이나 고립, 접근 불가능 등의 과거 주제에서 벗어나 한국인들의 다양한 성격에 대한 관심 그리고 풍속 연구와 기타 관행으로 초점을 맞춘다. 이로 인해 한국인들의 종교적 성향, 높은 교육열, 뛰어난 손재주, 예술적 취향 등이 취급되며 이러한 표상은 착한 야만인과 동양의 현자 이미지가 여전히 존재하는 가운데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이미지와 '은둔의 왕국'의 이미지,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시각을 함께 담고 있는 상징적인 두 가지 표상을 형성한다. 4장 세기전환기의 한국 체험(20세기 전후)에서는 유럽인들의 동양 일주 코스에서 한국이 거의 필수 코스로 들어갈 만큼 관심을 끌게 되면서 한국을 찾는 여행가가 증가하며 한국에서의 체류기간이 늘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여행객들의 눈을 통해 형성되는 한국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프랑스인들은 서울이 점진적으로 서구화되어감에 따라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인 또 다른 한국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 시작하며 여행을 통해 '조용한 아침의 나라'와 '은둔의 왕국'으로 고착되는 이미지를 형성한다. 5장 동양의 신비와 근대적 현실(20세기)에서는 프랑스 각 분야 즉 언론, 사전, 예술가들에게 한국이 어떻게 비쳤으며,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넓은 세상'에서의 한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직접 한국을 체험한 피에르 로티, 조르주 뒤크로가 한국 체험을 픽션화에 사용했다는 점과 기욤 아폴리네르. 폴 클로델이 한국의 이미지(조용함, 은둔, 침묵, 산의 힘)를 시적인 표현의 범주에서 사용하고있음을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은둔의 왕국' 혹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이미지를 지속시키는 데 공헌한 것은 분명하지만 당시 한국의 현실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전의 시기보다는 많이 개방되고 외국인들이 경험할 영역도 넓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한국은 프랑스에게 시간적 공간적으로 먼 나라라는 것이다. 6장 두 개의 한국(현대)에서는 식민통치의 종결, 독립,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폐화와 남북분단, 현대화 등으로 이어지는 2차 대전 이후의 격동기와 산업화 과정을 통해 형성되어 온 이미지들을 현대적 차원에서 살핀다. 일본을 통해서만 간간히 알려진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난 후 한국에 대한 과거의 자료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듯, 현대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는 새로운 차원에서의 표상으로 자리잡게 된다. 한국전쟁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이 새삼 인식되는 반면 '조용한 아침의 나라' 이미지는 퇴색하고 전쟁을 거친 이후 북의 모습을 통해 '은둔의 왕국' 이미지가 재구성된다. 이런 격변기 속에서도 한국은 오랜 전통을 잃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이런 한국인의 삶의 모습은 한국에 체류하는 프랑스인들을 통해 아직도 외부로 소개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