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부활하는 군단 2
웨난
일빛 2001.06.30.
가격
12,800
10 11,520
YES포인트?
64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이 상품의 시리즈 2

이 상품의 시리즈 알림신청
뷰타입 변경

책소개

목차

1. 시간의 흐름을 넘어서
신기한 금방울
동거마 쟁탈전
세계를 진동시키다
동거마의 계시

2. 퇴색하기 어려운 역사의 편린
레이건, '중국 말의 엉덩이를 만지다'
군중에게 에워싸인 닉슨
맹인들의 방문
납골함을 들고 진용박물관을 찾은 사람
작가 삼모(三毛)의 방문

3. 장군용두 도난 사건
곤혹스러운 소식
날개도 없이 날아갔나?
현상금 150만 원
신비한 인물과 여자 손님
장군용두를 둘러싼 쟁투
왕갱지, 눈오는 밤 용두를 훔치다

4. 총소리, 고함소리
용두가 있는 곳이 갑자기 생각나다
유점성의 말, "나도 공을 세웠습니다."
왕학리의 말, "나는 죄가 없습니다."
굴홍균의 말, "나는 억울합니다."
개미의 이야기

5. 진시황릉 지하 궁전의 수수께끼
사서를 찾아
능묘 지하궁의 진실을 찾아서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며
국내외 학자들의 연구

6. 진용인의 걱정
귀중한 유산 앞에서 느끼는 당혹감
진용관 앞에서 발생한 큰 폭발 사건
또 다시 도난당한 무사용두
자신에 관한 걱정

7. 항로에서 이탈한 역사의 흐름
비장한 쇠락
치유되기 어려운 역사의 상처
토템의 환상

8. 망각을 위한 기념
원중일의 비참한 세월
정학화의 풍우(風雨) 인생
최후 진술

저자 소개 1

Yuenan,岳南

역사학에 대한 남다른 깊은 조예와 뛰어난 문화적 소양을 갖춘 웨난은 오랜 기간 동안 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축적한 예리한 관찰력과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고고학 발굴의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수많은 학자들과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 발견자들을 취재하여 방대한 양의 지식과 정보를 아우른다. 다큐멘타리 작품이 주는 사실적인 생동감은 독자들에게 자칫 딱딱하고 지루하게 여겨지기 쉬운 고고학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주며 풍부한 인문적 지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작은 유물 하나를 통해서도 시공을 넘나들며 역사의 자취와 진실을 엮어내며, 속도감있는 글쓰기와 문체로 문학성을 바탕으로 고사나
역사학에 대한 남다른 깊은 조예와 뛰어난 문화적 소양을 갖춘 웨난은 오랜 기간 동안 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축적한 예리한 관찰력과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고고학 발굴의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수많은 학자들과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 발견자들을 취재하여 방대한 양의 지식과 정보를 아우른다. 다큐멘타리 작품이 주는 사실적인 생동감은 독자들에게 자칫 딱딱하고 지루하게 여겨지기 쉬운 고고학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주며 풍부한 인문적 지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작은 유물 하나를 통해서도 시공을 넘나들며 역사의 자취와 진실을 엮어내며, 속도감있는 글쓰기와 문체로 문학성을 바탕으로 고사나 전설을 연결하여 고고학 발굴을 통해 중국 역사를 읽는 색다른 재미에 푹 빠져들게 만든다.

1963년 산동성(山東省)에서 태어났으며, 10년 동안 군 선전부에서 근무했다. 해방군 예술학원 문학과를 졸업한 후, 북경사범대학 연구소와 노신(魯迅)문학원 작가 연구소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열하의 피서산장(熱河的冷風)』『북경의 명십삼릉(風雪定陵)』『법문사의 불지사리(萬歲法門)』『마왕퇴의 귀부인(西漢亡魂)』『하북성 준화의 청동릉(日暮東陵)』등이 있으며, 현재 잡지 『쯔광거(紫光閣)』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열하의 피서산장(熱河的冷風)』『북경의 명십삼릉(風雪定陵)』『법문사의 불지사리(萬歲法門)』『마왕퇴의 귀부인(西漢亡魂)』『하북성 준화의 청동릉(日暮東陵)』등이 있으며, 현재 잡지 『쯔광거(紫光閣)』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웨난의 다른 상품

역자 : 유소영
이화여자대학교 중문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제주대학교에 동시통역대학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구룡배의 전설』 『진시황릉』 『황릉의 비밀』 『법문사의 비밀』 『중국문화유산답사기』가 있다. 편저서로는 『고시중국어』가 있다.
역자 :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를 받았다. 현재 제주 산업 정보 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며, 번역서로 『구룡배의 전설』 『법문사의 비밀』 『도교와 중국문화』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 『중국문예심리학사』 『중국경전의 이해』 『장자와 모더니즘』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58쪽 | 563g | 148*210*30mm
ISBN13
9788985893770

책 속으로

진시황릉은 도대체 어떤 모양일까? 고고학자인 왕학리의 추측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시황릉의 묘실 바닥은 평면이며 묘실의 상구(上口)와 마찬가지로 장방형에 가깝다. 바닥의 전체 면적은 1만 9,200㎡로 국제 표준 규격의 농구장 48개를 합친 넓이와 같다. 당시 사람들은 하늘은 창궁(蒼穹 : 푸르고 크다. 일반적으로 하늘의 뜻으로 쓰인다.)으로 반원 형태인데, 마치 엎어놓은 달걀 껍질처럼 생겼으며, 땅은 바둑판처럼 네모 반듯하며 하늘 끝은 사해(四海)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시황릉의 지하궁 가운데 주축이 되는 건축물의 꼭대기는 궁려(穹廬) 형태로 곽실을 덮고 있는데,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天圓地方)'는 관념을 나타내는 것이자 '천하를 소유하고 있는' 제왕의 기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주축 건물은 뛰어난 지위를 차지하며 백관의 관서(官署)나 이궁, 별관과 같은 그 밖의 건물은 대소의 차이나 규격에 따라 개별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복합 건축물은 기둥, 대들보, 방(枋 : 들보보다 작은 보조 목재), 늠(凜 : 들보 위에서 가옥의 서까래를 지탱하는 횡목으로 들보도리라고 부른다), 복(방의 들보) 등의 목재 구조물과 담, 계단, 모서리(角), 귀퉁이 등을 통해 서로 겹치면서 궁륭형 천장의 거대한 벽돌과 돌, 그리고 흙과 나무가 혼합된 전체 능총의 하중을 견디고 있다. 또한 묘광 둘레의 벽 주변에는 섬돌을 쌓아 만든 누각이나 정자, 사 등이 서로 높낮이가 다른 형태의 변화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으며, 지하궁의 상부는 궁장으로 에워싸여 있다. 대궐과 누각이 연속으로 이어져 있고, 천하를 굽어살필 수 있어 뛰어난 기상과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진시황릉 지하궁의 휘황찬란한 구상이었던 것이다.

---pp.193~194

출판사 리뷰

진시황제의 지하대군단, 중국 문명의 역사를 다시 쓴다.
"진시황이 처음 즉위하여 여산에 치산(治山) 공사를 벌였다. 천하를 통일한 뒤 전국의 도형자(徒刑者 : 귀양 가는 사람)가 70여만 명에 이르렀는데, 이들을 시켜 지하수를 세 번 지날 만큼 땅을 깊이 파고, 구리 녹인 물을 부어 곽(槨)에 이르게 했다. 그리고 별궁(別宮)과 문무 백관을 두었고, 기기(奇器)와 진괴(珍怪)들을 운반해 그곳에 가득 채웠다. 장인으로 하여금 자동으로 발사되는 기계 장치가 된 쇠뇌(弩)를 만들게 하여 접근하는 자가 있으면 즉시 발사되도록 했다. 수은(水銀)으로 온갖 하천과 강, 그리고 바다를 만들고 기계를 이용해 수은을 흐르게 했다. 위로 천문(天文)을 갖추고 아래로 지리(地理)를 구비했다. 인어(人魚)의 기름으로 초를 만들어 꺼지지 않도록 했다. …… 대사(大事 : 장례식)가 끝나고 부장품도 다 매장하자, 장인과 노예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묘도(墓道)의 가운데 문을 폐쇄하고 또한 묘도의 바깥문을 내리니, 다시는 빠져 나오는 자가 없었다." ― 사마천의 『사기(史記)』중에서

장기간에 걸쳐 진나라 역사에 대한 연구는 사마천의 『사기(史記)』이외에 몇 가지 사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진시황(秦始皇)은 기원전 221년에 춘추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최초로 통일된 중국을 만들었으며, 중국인들은 비로소 '하나'의 통일된 국가의 백성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진의 각종 제도와 변혁이 중국 제도의 원형이 되었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 각 국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진나라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한나라로 귀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진나라 문화의 진수는 오랜 세월 역사의 공백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1970년대 초기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호북성 운몽(雲夢)의 수호지(睡虎地)에 있는 진묘(秦墓)의 죽간(竹簡), 산동성 임기(臨沂)의 은작산(銀雀山)에 있는 한묘(漢墓)의 죽간, 호남성 장사(長沙)의 마왕퇴(馬王堆)에 있는 3호 한묘(漢墓)의 백서(帛書) 등 진나라의 법률 문서·생산 상황·사회 생활·군사 관계 등에 관련된 귀중한 서간(書簡)과 실물 자료가 출토되면서 진나라에 대한 역사 연구는 비로소 물꼬를 트게 된다. 이후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도성(都城: 옹성雍城과 함양咸陽)과 묘장(墓葬)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가 서로 연계하면서 학문적 진전을 얻을 무렵 마침내 진시황릉의 병마용갱(兵馬俑坑)이 발굴됨으로써, 드디어 진나라는 오랜 침묵에서 깨어나 역사로 당당히 복귀한다. 위풍당당한 모습의 진용 대군은 역사의 공백을 메우고, 왜곡된 문헌의 기록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고 있었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진나라의 문화와 제도, 그리고 전체 중국 문화사 연구에 지극히 중요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진 제국의 진정한 역사적 부활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8천여 점이 넘는 완전 무장한 병사용과 마용은 고대 전투대형을 완벽하게 재현한 살아있는 군진이다. 실제로 적의 습격에 대비하는 것처럼 진시황릉을 등지고 동쪽을 향해 있어 언제라도 광활한 중국 대륙으로 박차고 나갈 듯 하다. 전군이 집결하고 전투개시 명령을 기다리며 싸움을 대비하는 긴박감 넘치는 순간, 이 순간을 포착해 2,200여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고대 전장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다양한 표정을 지난 도용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은 제각기 달랐던 인생 역정의 희노애락을 담아내며 뛰어난 사실성과 정취를 표현하고 있어, 세계 조소 예술사에 반짝이는 빛을 뿜어낸다.

진(秦) 제국의 각종 제도와 변혁은 중국의 원형과 모범이 되었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 각 국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역사적 기록은 법가(法家)를 배척하고 유가(儒家)만을 계승한 한나라로 귀착되어 진 제국 문화의 진수는 오랜 세월 역사 속의 공백으로 남게 되었다. 진 제국의 웅혼한 병마용 대군은 누락된 역사를 메우면서, 왜곡된 역사 기록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병마용의 사실적 표현 예술, 정교한 공예 기술, 동거마 주조 기술, 청동검의 크롬마이징 처리 등 실용적 과학 선진 과학·기술의 맥이 끊긴 것은 중국 문명의 퇴보였다. 이제, 시황제는 창조적 실용주의 군주로 부활한다.

리뷰/한줄평1

리뷰

8.0 리뷰 총점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