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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 에로티즘이 넘치는 아름답고 우아한 여자들이 의상과 향수, 혹은 비누를 광고하는 지면이었다. 코르다는 쿠바에서 패션사진과 광고사진의 선구자가 되었다. … 코르다는 갓 창간된 일간지 《혁명》의 일원으로 호출되었다. 그때가 1954년 초 무렵이었고 쿠바의 운명은 현기증날 정도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 1959년 4월 피델 카스트로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코르다는 취재단의 일원이 되어 그를 동행했다. 그는 매일 쿠바의 지도자를 따라다니며 이 기막힌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 p.9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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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사진의 제목을 <다윗와 골리앗>이라고 붙였다. 이 사진을 피델에게 준 뒤부터 그는 신문사를 통하지 않고 내게 직접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공식 사진기자가 되지 않았다. 아니다. 나는 그의 개인적 사진사였다. 나는 어떤 직함도 없었고 월급도 받은 적 없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때부터 피델은 명령을 내리는 지도자, 사진을 찍기 위해 졸졸 따라다녀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모든 것에 시시콜콜 관심을 갖는 아주 인간적이고 다가가기 쉬운 한 인간이 되었다.”
--- p.76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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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순간들이 불꽃처럼 아름답게 살아있다. 그것은 오직 그의 렌즈를 통해서이다.
체 게바라를 세상에 알린 사진으로 유명한 쿠바의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의 『코르다의 쿠바, 그리고 체』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아름다운 여인들을 사랑했던 패션전문 사진가였던 그는 1959년 카스트로의 혁명이 성공한 후 새 정부의 기관지인 《혁명》지의 수석기자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 후 코르다는 쿠바의 영도자 피델의 개인 사진사가 되었고 이름 없던 체 게바라를 군중 속에서 포착해냄으로써, 그와의 운명적인 만남의 결정적 계기를 갖게 된다. 이때 코르다가 찍은 체 게바라, 그 한 장의 사진은 전 세계 좌파운동가의 상징으로 자리잡는다. 세계적인 진보운동의 물결과 함께 그 사진은 각종 티셔츠와 문화상품에 이용됐지만 코르다는 로열티를 요구하지 않았다. 단, 2000년 보드카 회사가 광고에 체 게바라의 사진을 사용했을 때 ‘체 게바라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며 이 회사를 고소했고, 재판에서 승소해 5만 달러를 받았으나 이를 쿠바 의료복지 재단에 전액 기부하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체 게바라를 전 세계 혁명의 표상으로 만든 코르다의 감동적인 80여 편의 사진들이 담긴 이 사진집은 코르다가 사망하기 전에 기획된 것으로, 미발표 사진들이 다수 포함되었으며, 그가 유언장처럼 남긴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집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2001년 5월 자신의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던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다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피사체와 함께 역사적인 순간들을 불꽃처럼 아름답게 살려놓은 『코르다의 쿠바, 그리고 체』에는 코르다가 《혁명》지의 기자로 일하면서 찍은 피델 카스트로, 사르트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남자”라고 칭송한 체 게바라와 그들에게 열광하는 민중들, 그리고 쿠바의 역사적 순간들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아름다운 산문과 함께 수염이 덥수룩한 게릴라 지도자 피델의 감성에 호소하는 연설 모습, 스키를 타고 골프를 치는 그의 유머 있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모습들, 그리고 혁명의 완수를 위해 싸우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휴머니스트 체 게바라의 삶의 모습 등이 담긴 사진들은 매우 감동적이다. 코르다는 체 게바라에 대해 “강철의 강인함과 장미의 부드러움을 겸비한 …… 늑대인간을 거부하고 새로운 인간을 기원했던 사람”(본문 158p)이라 평했고, 피델에 대해서는 “그에게 유머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본문 146p)라는 말로 일축했다. 또한 본명 알베르토 디아즈에서 알베르토 코르다로 불리게 된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흥미롭게 소개되어 있으며, 패션계를 장악했던 그의 감각적 에로티즘이 넘치는 광고사진들도 삽입되어 흥미를 끈다. 이 책은 코르다가 전 생애에 받쳐 추구했던 그의 미학세계와 쿠바 역사라는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읽을 수 있는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