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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아래
무언가無言歌 달걀 삼키는 남자 모래폭풍 소년은 울지 않는다 검은 숲에서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해설- 무서운 일상, 허위와 진실 사이/ 박철화 작가의 말 |
鄭美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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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존재가 바로 고통인 땅이지. 아이러니하지 않아? 재이야. 장미의 여왕은 단연 발칸의 장미야. 겨울엔 비와 진흙 때문에, 여름엔 먼지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는 곳이지만 그것보단 어디서 저격병의 총탄이 날아와 몸에 박힐지 모르는 처절한 내전의 땅이지. 그 발칸 반도의 어둠이 흩어지기 전, 무거운 공기가 흔들리기 전, 자정부터 새벽 사이에 줄기를 자른, 강한 향기가 고스란히 가두어져 있는 그곳의 장미가 지상에서 가장 귀하게 대접받는 거야.” --- 본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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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올해의 작가 정미경의 새 소설집
장기 밀매로 신장을 얻어 목숨을 건진 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터로 자신을 내던지는 ‘분쟁지역전문’ 다큐멘터리 PD(「무화과나무 아래」). 방탕한 어머니 때문에 힘겨운 삶을 살면서 한 남자와 일탈적인 섹스를 나누는 텔레마케터와 그녀의 거짓말에 성적 흥분을 느끼는 남자(「무언가」). 친구의 자살을 목도하고 그때부터 방 안에 틀어박혀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 소년(「소년은 울지 않는다」). 거짓말쟁이에 바람둥이인 애인의 기만적 삶을 지켜보면서도 끝내 어쩌지 못하는 젊은 백화점 여직원(「모래폭풍」). 가족을 미국에 보내놓고 외로운 나날 속에서 한 여자를 만나지만, 결국 그녀와 진심을 나누지 못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는 한 기러기 아빠(「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정미경의 소설은 뜨겁다. 작품 속에 인용된 이성복의 시 ‘당신은 짐승, 별’처럼 서로에게 존재로, 온통 뜨거운 온전한 존재로 남으려는 정직한 자의식을 지닌 인물들은 진심을 다해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로 달려가거나(「무화과나무 아래」), 배반과 상실 속에서도 ‘모래폭풍과 더러운 피와…… 벚꽃 이파리가 뒤섞인 어지러운 꿈’(「모래폭풍」)을 꾸거나, 그냥 장미가 아니라 고통과 열정이 가득 담긴 ‘발칸의 장미’를 선호한다. 또한 정미경의 소설은 차갑다. 세상은 온통 “일회성의 생에 대한 지독한 탐욕”으로 넘쳐나고, 예민하며 상처를 피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 소설 속 주인공들은 지리멸렬한 일상이 열정보다, 사랑보다, 때로는 죽음보다 더 질기고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정서적 불감증에 걸리거나 사회부적응자로 전락할 위기에서 가까스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거짓 이야기를 들려주는, “하룻밤의 생존을 허락받은 세헤라자데”가 된다. 일상에 드리운 ‘죽음과 삶’의 그림자를 늘 남보다 한 발 앞서 감지하는 인물들을 통해 정미경은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면서 일상을 버텨가는 현대인의 고독하고 슬픈 초상을 제시한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 그럼 널 사랑할 테니 존재와 본질, 몸과 영혼의 이 일치할 수 없음에 대한 성찰이야말로 삶의 고통을 낳는 진원지이긴 하지만, 그 고통은 역으로 진리와 허위의 간극이 진정으로 해소된 행복을 꿈꾸도록 만드는 에너지이기도 하다. 정미경의 작품 세계는 고통스런 현실과 행복한 꿈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대위법적 구조를 갖고 있다. -해설 「무서운 일상, 허위와 진실 사이」에서 정미경의 세계는 존재와 일상의 이러한 이중성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걸치고 있다.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다른 한편으로는 존재가 일상 안에서 꾸려나가는 삶의 진실과 허위라는 문제를 담고 있는 그의 소설세계는 그 이중성 때문에 혼란스럽고 또한 고통스럽다. 혼란은 스스로도 자신을 잘 알 수 없다는 데서 오고, 고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에서 요구받는 그 어떤 역할을 존재가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서 자라난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진실과 허위의 위험한 게임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정미경은 균형 잡힌 언어의 조형을 통해 이러한 ‘고통’을 축조하고, 일상과 인간에 덧칠해진 금칠을 벗겨냄으로써 형이하학적 진실을 독하게 까발린다. 그러나 존재 자체의 비루함에 대한 이런 강조 속에서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투지와 긍정이 어렵사리 피어난다. 이것이 바로 단편소설의 모범적 사례를 보여주는 정미경 소설의 연금술적 윤리감각이다. 그의 소설들을 통해 아프면서도 시원하고, 발랄하면서도 무거운 독서가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우리 문학의 새롭고 분명한 출발이 될, 요즘 한국 소설에서 찾기 힘든 미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