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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일러두기 수여방필 1-1 … 1-124 수여연필 2-1 … 2-152 수여난필 3-1 … 3-209 수여난필속 4-1 … 4-169 원문 인명사전 해제 찾아보기 |
鄭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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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담론이 아닌 미시적 관점으로 19세기 조선을 써내려가다!
항해(沆瀣) 홍길주(洪吉周, 1786∼1841)는 19세기 전반에 활동한 문인이다. 문집이 공간(公刊)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대 문원(文苑)에서의 홍길주의 명망에 비해 오늘날 그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은 항해 홍길주의 저서 『수여방필』, 『수여연필』, 『수여난필』, 『수여난필속』을 번역한 것으로, 654항목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씌어졌다. 『수여방필』, 『수여연필』, 『수여난필』은 홍길주 자신이 직접 정리한 것이고, 『수여난필속』은 아들 홍우건이 1842년 부친의 수고(手藁)를 정리한 것이다. ‘방필’(放筆)은 말 그대로 공부하는 여가에 생각나는 대로 붓을 내달린 비망록이란 뜻이다. 이를 부연한 것이 ‘연필’(演筆)이고, ‘난필’(瀾筆)이란 그 나머지 넘쳐흐른 것을 수습했다는 뜻이다. 홍길주는 수여방필 4부작에 대해 처음에는 한가로움을 소견하기 위해 적기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필묵을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가슴 속에 대나무가 그려져 가득 차 막힌 듯하고, 잠시만 놓아두면 흩어져버리므로, 그때그때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행여 달아날세라 적은 것이라고 술회하고 있다. 그 내용은 직접 견문한 선세(先世) 부형(父兄)의 언행과, 당대 사회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들, 당대 학계와 문단의 흐름, 문학과 인생에 대한 자신의 견해 등 사소한 일상사에서 문장과 학술에 이르기까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로 옮긴 것이다. 이를 통해 19세기 서울 지식인의 문화적 관심사와 안목의 깊이, 사유의 너비 등을 아주 상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일상사에 대한 관심, 생활문화 소비문화와 관련된 보고, 여가 활동의 구체적 표방과 실천, 지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 등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다양한 내용들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 19세기 조선의 블로거(blogger) 홍길주 홍길주의 글은 대단히 현대적이다. 그는 개별 사물의 이치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건져, 이 사물과 저 사물 간에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를 위해 유비적(類比的) 방식의 글쓰기를 즐겨 썼다. 그는 하나의 명제를 제시한 후, 다른 각도에서 이와 엇비슷한 예시들을 잇달아 제출하여 논지를 강화시키는 전개 방식을 적극 활용했다. 사물의 본질을 직관으로 꿰뚫어 보고, 이것에 미루어 저것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이 사물과 저 사물을 넘나들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기호들 사이로 미끄러지면서 의미를 확장시키는 연쇄적 확산과 연역적 사유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글쓰기의 주요 전략이다. 한 편의 글에서뿐만 아니라 한 편과 그 다음 편의 연결도 이러한 사고의 연쇄적 확산으로 이어져 있다. 그는 툭 터진 식견의 소유자로, 궁색하거나 막힌 구석이 없다. 이 책에서 이런 사유의 단면을 찾는 것은 어렵지가 않다. 추위를 막는 옷으로는 면포만 한 것이 없다. 값비싼 비단은 보기에만 아름다울 뿐이다. 쓰기에 편리한 그릇으로는 금석과 대나무만 한 것이 없다. 주옥이나 서패(犀貝)는 겉만 번지르르할 뿐이다. 창달한 문사는 때에 맞아야 한다. 아름다운 문장이나 화려한 문체는 실용에는 합당함이 없다. 재주와 덕은 풍족하여 정치에 베풀 수 있어야 한다. 넓은 학문과 유창한 말도 세상일에는 보탬이 없다. 천하에서 기이한 보배라고 일컫는 사람이라 해서 진실로 모두 일을 맡길 만한 그릇은 아니다. (3―36: 때에 맞는 문장) 옷과 그릇을 실용과 미관(美觀)의 기준으로 갈라놓고, 문사와 재덕(才德)을 여기에 병치시켰다. 겉보기에 화려하고 번드르한 것은 실제로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이 책에는 홍길주의 머릿속을 휘돌아 나간 온갖 생각들과 기억들이 자유로운 형식 속에 경쾌하게 펼쳐져 있다. 마치 현대의 블로그(blog)를 연상시키는 그의 저술은 단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유롭게 기술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하나의 주제로 엮인 것이, 마치 블로그에서 같은 주제끼리 묶어 하나의 방을 만드는 것처럼 자유롭다. 홍길주는 블로그의 주인장처럼 그의 생각을 자유롭게 써내려갔다. 19세기 조선 지식인에 대한 평가 ― 당대의 학계와 문단의 글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들 이 책은 19세기 전반 조선의 학계와 특히 문단의 흐름을 파악함에 있어 매우 긴요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연암 박지원 이후 활기를 띠던 문단은 정조의 문체반정 이후, 표면적으로는 정체 보수화의 국면을 보인다. 홍길주의 형인 연천 홍석주는 대산 김매순과 함께 주자주의에 충실하여 문도합일(文道合一)에 바탕한 정통 고문의 맥을 충실히 이었다. 이에 반해 홍길주는 오히려 연암 박지원의 개성적이고 발랄한 문체와 사고를 더 선호했다. 그의 글 속에는 연암 문장에 대한 자신의 기호가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나는 청나라 사람의 시 중에 정림(亭林) 고염무(顧炎武)의 시를 가장 좋아한다. 항상 왕어양(王漁洋)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문장은 당연히 위희(魏禧)와 왕완(汪琓)을 거벽으로 삼는다. 근세에 수원(隨園) 원매(袁枚)가 재주와 생각이 빼어나 옛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비록 이따금씩 법이 순수하지 않은 점이 있지만 요컨대 문단의 강적이라 할 만하다. 만약 우리나라의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을 중국에서 태어나게 했더라면 마땅히 깃발과 북채를 잡고 나란히 섰을 것이니 온 천하가 누구의 손에 들어갔을지 모를 일이다. (1―26: 고염무와 박지원) 이외에도 19세기 전반을 살았던 조선 지식인들에 대한 홍길주의 평이 다양하게 실려 있다. 성호 이익이 저술한 『성호사설』에 대한 홍길주의 평을 보면, “세상에서는 성대히 그 해박하여 쓸모 있음을 일컫곤 한다. 그러나 내가 금년에 비로소 얻어 보니 수집하여 펼쳐놓은 것이 진실로 풍부했지만 실제 쓸모 있는 곳이 있는 줄은 모르겠고, 의논이 참으로 높긴 해도 꼭 맞는 것 같지도 않았다. 문사가 실로 풍부하지만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도 아니었다”라고 하여 평가절하하고 있다. 박제가와 성대중에 대한 평도 재미있다.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지 움집에 앉아 록(錄)이나 짓는 데 익숙하다.” 우리나라 사람이 호에 흔히 ‘무슨 무슨 와(窩)’라 한 것이 많고, 저서에 ‘아무 아무 록(錄)’이라 한 것이 많음을 두고 한 말이었다. 박제가는 중국의 학술에 벽(癖)이 있어, 우리나라의 습속을 헐뜯고 비웃음이 이와 같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 중에 ‘와’를 가지고 호를 삼은 것은 실로 몇 안 되니 암(庵)이나 재(齋)처럼 많지는 않을 것이다. 더더구나 중국 책에도 ‘아무아무 록’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많다. (2―149: 박제가의 중국벽) 음성(陰城) 성대중(成大中)은 옛일에 밝은 선비다. 내각에 있으면서 간행된 책을 교정하다가 한 글자를 잘못 살펴 다른 사람에게 지적받은 일이 있었다. 그러자 문득 멍하니 기색이 막혀 병풍 모서리에서 스스로 그 몸을 움츠려 모자 끝이 부러진 것도 알지 못했다. 남에게 부끄러움을 타는 것이 이와 같았다. (2―150: 부끄러움을 잘 타는 성대중) 홍길주는 형인 연천 홍석주를 선생으로 부르며 사표로 삼았다. 하지만 그의 문학 주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연천보다 오히려 연암 박지원의 그림자가 더 많이 느껴진다. 실제 연천홍석주가 연암에 대해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있는데 반해, 홍길주는 여러 글에서 연암에 대한 사모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연천과 항해는 문장에 관한 생각을 많은 부분 공유하면서도 성향은 자못 달랐다. 정통 고문을 수호하는 연천과 달리 항해의 글은 박지원의 글처럼 자유롭고자 한다. 이 책의 글들을 통해 정조의 문체반정의 여파가 가시기 시작하는 19세기 문단의 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다. 책 밖의 책 읽기 ― 홍길주의 문장론 문장은 다만 독서에 있지 않고, 독서는 다만 책 속에 있지 않다. 산과 시내, 구름과 새나 짐승, 풀과 나무 등의 볼거리 및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 속에 독서가 있다. (1―3: 천하의 기이한 문장) 이 문장에 홍길주만의 독특한 책읽기의 핵심이 담겨 있다. 연암 박지원이 팔괘(八卦)를 만든 포희씨를 가장 독서를 잘한 사람이라 하고, 이른 아침 뜨락에 우짖는 새소리를 듣다가 저도 몰래 흥이 나서 부채로 책상을 치며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라고 했던 모습이 교차되어 떠오른다. 문자 사이에서 의미를 건져올리는 것만이 독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천지만물을 한 부의 책으로 보는 그의 특별한 생각은 이 책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천명된다. 나는 배움이 넓지 못한데다 나이 들며 점점 게을러져서 평소에 책을 마주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눈과 귀로 접하는 해와 달, 바람과 구름, 새와 짐승의 변화하는 모습에서 방 안에 늘어놓은 책상이나 손님과 하인들이 주고받는 자질구레한 말들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책 아닌 것이 없었다. 가슴속에는 언제나 『시경』과 『서경』, 『논어』와 같은 책 몇 부가 뒤섞여 맴돌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읽는 데 게을러 날마다 시들어 줄어만 간다. 젊은 후진들이 나를 핑계 대고 읽는 데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다. (2―131: 천지 만물이 책 아닌 것이 없다) 열린 눈으로 바라볼 때 모든 사물은 문자로 된 책을 읽는 것 이상의 깨달음을 가져다준다. 그러니 책을 문자가 적힌 종이로 국한시키는 생각은 참으로 어리석다. 사람이 날마다 사용하는 입을 것 먹을 것과 이런저런 사물도 모두 덕행(德行)으로 보면 덕행이 되고, 문장(文章)으로 보면 문장이 된다. 정법(政法)으로 보면 정법이 되고, 기능(技能)으로 보면 기능이 된다. 포정(?丁)이 보는 것은 소 아닌 것이 없었다. 장욱(張旭)이 공손대랑의 칼춤을 보고 초서 쓰는 법을 깨달은 것도 모두 이러한 이치이다. 지금 사람들에게는 책은 책이요, 사장(詞章)은 사장이며, 일용의 사물은 일용의 사물일 뿐이다. 이런 까닭에 일이 닥치면 견식이 없어 괴롭고, 글을 짓자면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괴롭다. 온통 평소에 아무 준비도 없다가 졸지에 응하는 것 같아 무엇을 하더라도 허둥대며 막히지 않는 곳이 없다. (2―92: 사물이 하나로 통하는 이치) 소잡는 포정은 모든 것이 다 소로 보인다. 글씨 쓰는 장욱은 공손대랑의 칼춤을 보고 초서의 묘리를 깨달았다. 사물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따로 떼어 문장을 문장에서 배우고, 사물을 사물로만 볼 때, 식견은 늘지 않고 생각은 꽉 막혀 답답하다. 이러한 독서 의미의 확장은 낡은 지식, 관념화된 의미를 대물림하는 타성화된 독서, 즉 죽은 독서에 대한 반발, 연암식으로 표현하면 “마른 먹과 문드러진 종이 사이에 눈을 부비며 좀 오줌 쥐 똥을 엮어 토론하는, 취해 죽겠다면서 술지게미와 묽은 술만 배 터지게 먹는” 그런 독서에 대한 거부를 뜻한다. 독서는 일상의 삶과 유리될 수 없고, 유리되어서도 안 된다. 반대로 일상의 평범한 것 속에서 삶에 유용한 의미를 길어 올릴 수 있다면, 그 또한 훌륭한 독서다. 항해 홍길주의 책읽기의 특징은 한마디로 일상 속에서 찾아내는 글 읽기와 글쓰기의 원리로 특징지을 수 있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