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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아기
아기한테 인간의 본성을 묻다 양장
소소 200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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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PART 1 출발점
1장. 의중을 읽는 사람들
PART 2 물질 영역
2장. 인공물
3장. 불안정한 대상물
PART 3 사회 영역
4장. 선과 악
5장. 도덕적인 사람들
6장. 육체와 영혼의 감정
PART 4 정신 영역
7장. 고로 나는 존재한다
8장. 신, 영혼, 그리고 과학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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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 인명 대조표

저자 소개 2

Paul Bloom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발달심리학과 언어심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언어, 예술, 종교, 윤리 등 다양한 분야를 탐구해 인간의 심리를 파헤치는 창의적인 시각으로 학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2003년 철학과 심리학의 탁월한 학제 간 연구를 인정받아 스탠턴 상을 받았고, 2004년 예일대학교에서 뛰어난 교수에게 수여하는 렉스 힉슨 상을 받았다. 저서 『아이들은 단어를 어떻게 배우는가How Children Learn the Meanings of Words』는 미국출판협회가 수여하는 우수도서상과, ‘발달심리학 분야 최고의 책’에 수상하는 엘레노어 맥코비 상을 받은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발달심리학과 언어심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언어, 예술, 종교, 윤리 등 다양한 분야를 탐구해 인간의 심리를 파헤치는 창의적인 시각으로 학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2003년 철학과 심리학의 탁월한 학제 간 연구를 인정받아 스탠턴 상을 받았고, 2004년 예일대학교에서 뛰어난 교수에게 수여하는 렉스 힉슨 상을 받았다.

저서 『아이들은 단어를 어떻게 배우는가How Children Learn the Meanings of Words』는 미국출판협회가 수여하는 우수도서상과, ‘발달심리학 분야 최고의 책’에 수상하는 엘레노어 맥코비 상을 받은 바 있다.
<사이언스>, <네이처>, <뉴욕 타임스>, <뉴요커> 등에 왕성한 기고 활동을 했으며, 저서로 『선악의 진화 심리학』, 『데카르트의 아기』,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 『공감의 배신』, 『심리학 프리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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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 《미 국가안보국 NSA》(공역) 《바디블루스》 《데카르트의 아기》 《개성의 탄생》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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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7월 3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712g | 153*224*30mm
ISBN13
9788990247285

출판사 리뷰

■ 아이는 어떻게 혐오감을 느끼는가?

생후 1~2년 동안 아이들은 혐오감을 느끼지 못한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대변을 치울 때도 아이들은 그것을 만지작거리면서 신기한 듯 바라본다. 그러다가 생후 3년이 지나면서 배변훈련을 통해 혐오감을 배우게 된다. 아이들은 혐오감을 오염된 것으로 간주한다. 우유에 빠진 바퀴벌레를 보여 주고서, 그 바퀴벌레를 버리고 난 우유를 마시겠다는 아이는 하나도 없다. 음식을 가려서 먹는 것, 윤리적인 이유 때문에 육식을 포기하고 채식만을 고집하는 것, 여행 갔을 때 새로운 음식 앞에서 주저하는 우리의 모습은 이미 아이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진화생물학자, 발달심리학자, 문화인류학자의 임무는 보편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에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무엇이 혐오감을 주는지 어떻게 알게 되는가?”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질문이 아니다. 아이들이 알아야 할 것들은 혐오스럽지 않은 것들이다. 스티븐 핑커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했다. “세상의 모든 동물의 부위 중에 사람들이 먹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며, 그 외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소, 닭, 돼지의 골격근과 몇 종류의 생선만 먹는다. 내장, 뇌, 콩팥, 눈, 발과 같은 다른 부위에 대해서는 새파랗게 질릴 정도로 반응하며, 개나 비둘기, 해파리, 민달팽이, 두꺼비, 곤충, 그 밖의 수백만 종의 동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윈 역시 우리 인간이 새로운 음식에 얼마나 조심스레 접근하는가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사람들이 흔하게 먹지 않는 동물처럼, 그저 어떤 특이한 음식을 먹는다는 생각만으로도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헛구역질을 하거나 실제로 게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실제로 그러한 음식이 위에 부담을 줄 만한 어떤 것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묻는 것이 맞겠다. “무엇이 혐오스럽지 않은지 아이들은 어떻게 알까?” 인류학자 엘리자베스 캐시단의 연구에 근거한 다음의 답변을 생각해 보자. 아이들은 원래 혐오감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대략 태어난 지 3년쯤 되면 까다로워져 예전에 먹어 본 음식만 먹으려고 한다. 생후 4년이 될 무렵에는 더욱 까다로워진다. 그때쯤 되면 전에 먹어 본 적이 없는 고기에는 모두 혐오감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는 혐오 음식에 대해 어른과 상당히 비슷한 직관을 지니게 된다. 아이들은 우유와 감자칩은 좋은 음식이지만, 메뚜기나 개똥을 주면 거부한다.
여기서 말하는 아이들의 반응이 어른들이 말하는 것과 똑같은 의미의 혐오감일까? 이 부분에서의 핵심 테스트는 오염과 관련이 있다. 무언가를 혐오스럽다고 여긴다면 그것과 접촉한 것도 역시 오염되는 것이 정석이다. 아이들이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심리학자 마이클 시걸과 그의 동료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세 살배기와 네 살배기들을 상대로 일련의 연구를 실시했다. 한 연구에서 간식 시간에 아이들에게 바퀴벌레가 떠 있는 음료수를 보여 주었다. 실험자는 “여기 주스가 있네. 이런! 바퀴벌레가 빠졌잖아”라고 말하고는 바퀴벌레를 치우고 아이들한테 물었다. “이 주스를 마셔도 될까, 안 될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마시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그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도 그 오염된 음료를 안 마실 것이며, 초콜릿우유가 더 맛있기는 하지만 더러운 초콜릿우유보다는 물이 낫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 살 이후까지로 음식의 선호도를 확장하려면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심지어 어른도 마찬가지다. 현실적인 이유에서 군 장병들을 상대로 행해진 관련 분야의 연구가 있다. 2차 대전 동안 태평양의 미군 조종사들한테 곤충과 두꺼비가 분명히 안전하다고 교육을 시켰는데도 이것들을 먹지 않겠다는 바람에 굶주린 일화가 있다. 대학생들과 달리 군 장병들에게는 싫다고 해도 사실상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이와 일치하는 연구 결과가 있다. 어느 연구에서 성인들에게 튀긴 메뚜기와 같은 새로운 음식을 먹으라고 강요한 결과 피험자들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무대에서는 요리사가 귀뚜라미를 마늘과 기름에 튀겨, 작은 컵에 파스타를 담고 그 위에 이 귀뚜라미를 얹어 관중들에게 돌렸다. 그런 다음 그는 “맛있게 드세요(Bug Appetit)!”를 되풀이했다. 아이들은 거의 모두 먹기 시작했다. 어른들도 먹는 사람이 있었지만, 상당수는 거부했다. 한 여성은 컵을 들여다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나는 맛있게 먹을 자신이 있었지만 정작 귀뚜라미를 보자 몸이 굳어져서는 끝내 컵을 내려놔야 했다. 머리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혐오감이 지닌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본문 248~252쪽)

■ 아이들은 예술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우리들은 미술작품을 볼 때나 음악을 들을 때 그 작품의 소재나 주제를 생각한다. 즉, 창작자가 그 작품을 통해 무슨 얘기를 하고자 하는지 그 의도를 고려한다. 특히 현대미술에 있어서 ‘개념미술’ 작업들은 구체적인 사물 오브제 없이 단지 창작자의 의도를 관람자에게 드러내는 것이 새로운 예술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새로운 미술들이 단지 어른들만의 관점일까? 아이들 역시 창작자의 의도를 예술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한다. 우연히 제작된 이미지와 의도를 갖고 제작된 이미지를 보여주었을 때, 아이들은 의도를 갖고 만든 이미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철학자 제럴드 레빈슨은 예술을 “과거나 현재의 예술적 대상물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이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정의한다. 즉, 우리는 어떤 것이 기존의 다른 예술작품과 똑같은 방식으로 보이도록 의도되었다고 믿는다면, 그것을 예술작품이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역사를 아우르는 예술의 연결성(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은 그 이전의 예술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과거의 어떤 것이 예술이었다면 그것은 지금도 예술이다)을 포착하는 것과 동시에 끊임없이 확장되는 예술 개념(특정 시대의 예술이 이전 예술에 근거해 이루어졌다면, 예술의 범위가 확장될 수 있다는 것도 말이 된다)에 대한 설명도 가능하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이런 개념이 예술가들의 작업에는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예술가가 예술이 아름다움, 재현, 특정한 정서의 유발과 관련이 있다는 개념에 어떤 식으로 반란을 일으키는가를 목도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레빈슨의 정의는 일종의 철옹성이다. 일단 예술가가 작품으로 내보이기 위한 의도로 무언가를 만든다면 그건 예술작품이다.
어린아이들도 예술을 이런 식으로 이해할까? 최근에 행해진 일련의 연구에서 심리학자 수전 겔만과 카렌 에블링은 어떤 것이 예술작품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 아이들은 과연 의도에 신경을 쓰는가, 하는 포괄적인 문제에 골몰해 왔다. 두 살배기와 세 살배기들에게 일련의 간단한 그림을 보여 주었다. 그 아이들 중 절반한테는 그림들이 의도를 갖고 그린 작품이라고 말해 주었다. 예를 들어, 그 아이들한테 사람의 형상을 한 그림을 보여 준 다음 이렇게 일러 주었다. “존이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리던 중에 선생님을 주려고 물감으로 그린 거야. 여기 이게 그거야.” 나머지 아이들한테는 그 그림이 우연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존의 아빠가 집에 페인트칠을 하는데 존이 바닥에 페인트를 조금 엎지른 거야. 이것이 그것이란다.” 그런 다음 질문을 던졌다. “이게 뭐지?” 그 형상이 의도를 갖고 그린 것이라고 들은 아이들이 묘사된 대상을 “사람”이라고 말한 경우가 더 많았다. 그 그림이 어쩌다 보니 만들어진 것이라고 들었던 아이들은 그냥 사용된 재료인 “페인트”라고 답한 경우가 흔했다. 다시 말해, 창작 방식이 관건이다. 아이들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의도를 갖고 만든 대상을 예술작품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겔만과 에블링은 이 연구에서 작가의 의도에 대한 실마리가 모두 말로 전달된다고 우려했다. 아이들은 그 대상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직접 들은 것이다. 이것은 자연스럽지도 미묘하지도 않다. 그래서 그들은 또 한 차례의 연구를 통해 두 살배기들에게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보여 주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어떤 여자가 부주의로 종이 위에 아무렇게나 태양 모양으로 노란 물감을 튀긴 척하는 장면을 본다. 또 다른 비디오테이프에서는 똑같은 여자가 정성 들여 그림을 그리는데, 입가엔 희미하게 미소를 떠올린 채 열심히 그리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됐어”라고 말한다. 예상했다시피 이번에도 두 살배기들은 그 차이를 구별했다. 의도를 갖고 그린 것으로 보이는 그림에 이름(가령, ‘해’와 같은)을 붙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예술에서는 의도가 중요하다. (본문 134~136쪽)

■ 아이들은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일요일마다 각 종교의 성지, 교회, 성당, 절, 사찰에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신자의 상당수는 나이 50을 넘긴 아주머니들이다. 아마도 그들은 죽음과 사후에 대한 평안을 얻기 위해 오는 것 같다. 정신 기능과 생물학적 기능이 모두 정지되는 그 순간에 대해 어른들은 어떤 식으로든 대답을 마련한다. 때로는 그 질문을 회피하면서 말이다. 아이들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이들 역시 신체적 소멸은 받아들이면서도, 영혼은 지속될 거라고 생각한다. 사후 세계에 대한 개념은 아주 어릴 적부터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최초의 이해는 잠이나 떠남과의 유사성에 의해 이뤄진다. 아마도 죽음이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노골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께선 영원한 잠에 빠지셨다. 천국으로 가셨다. 떠나서 영영 돌아오시지 않는다.’ 아이들은 또한 언어의 애매모호함 때문에 혼란을 겪기도 한다. 할머니께서 땅에 묻히셨는데, 천국으로 가셨다고 해보라. 1896년의 한 연구자가 자신의 네 살배기 아들과 나눈 대화를 보고한 적이 있다.

아들: 말 안 듣는 사람만 땅에 묻히는 거죠, 그렇죠?
아버지: 왜?
아들: 고모는 착한 사람은 모두 천국에 간댔어요.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은 직관을 따르는 우리의 데카르트적 관점의 결과물이다. 육체의 경험은 자아, 즉 영혼의 경험과 다르다고 한 데카르트의 직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라. 육체가 소멸하고, 뇌가 기능이 멈추고, 뼈가 먼지로 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있지만 자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런 상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우리가 정신 기능의 정지(영혼의 죽음)보다 생물학적 기능의 정지(육체의 죽음)를 더 수월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어린아이들도 영혼이 육체의 소멸에서 살아남는다고 믿는다.
이에 대한 아이들의 믿음을 탐구해 보기 위해 심리학자 제시 베링과 데이비드 비요클런드는 생쥐의 죽음으로 끝나고 마는 악어와 생쥐에 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오, 이런! 악어가 갈색 생쥐를 보고는 잡으려고 다가오고 있어요!” 그런 다음 아이들에게 그 생쥐를 잡아먹는 악어의 그림을 보여 준다. “이런, 갈색 생쥐가 악어한테 잡아먹힌 것 같군요. 갈색 생쥐는 이제 죽고 없어요.” 그러고 나서 그들은 아이들에게 그 생쥐의 생물학적 기능에 관한 질문을 했다.

(생쥐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은데) 화장실에 갈 일이 있을까?
여전히 귀로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뇌가 여전히 작동을 할까?

그리고 생쥐의 정신적 기능에 대해서도 물었다.

(생쥐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은데) 그래도 배가 고플까?
그 악어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까?
아직도 집에 가고 싶을까?

그 결과는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생물학적인 특성에 관한 질문을 받은 네 살에서 여섯 살에 이르는 어린아이들은 죽음이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느라 쉬는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귀로 소리를 들을 수도 없으며, 머리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생쥐의 몸뚱어리는 사라졌다. 하지만 심리적인 특성에 관해 물었을 때는 그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쥐는 여전히 배고픔과 사고와 욕구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이다. 영혼은 살아남았다. 프로이트는 “영혼의 교리”가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등장했다고 제안했다. 만약 영혼이 존재한다면 의식의 경험은 끝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이와 반대로, 나는 이러한 교리가 아예 시작 단계부터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다. 어린아이들은 언제가 자신들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일단 필연적인 육체의 소멸에 대해 알고 나면, 사후 세계에 대한 개념은 자연스레 생겨난다. 이것이 데카르트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결론이다. (본문 303~308쪽)

■ 아이들은 신에 대해 무엇을 알까?

자신의 나약, 비겁, 지식의 한계, 죽음 등을 생각할 때면 언제나 우리는 그 반대항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강건, 대범, 전지전능, 불멸이라는 대립항에 우리는 신을 위한 자리를 할당한다. 어떤 인지과학자는 신을 반(反)직관적 존재라고 지칭했다. 신은 인간이 경험하는 직관과는 반대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아이들 역시 이러한 반직관적 존재를 잘 받아들인다. 어른들이 신에게 기도하고 기원하듯이, 아이들 역시 때로는 산타클로스에게 때로는 마술을 부리는 전지전능한 존재에게 기도한다.

신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상당수 아이들에게 신에 대한 믿음은 처음에는 산타클로스에 대한 믿음과 비슷하다. 어떤 아이들은 신과 산타클로스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친구라고 말하거나, 신이 산타에게 누구에게 선물을 줄 것인지를 지시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기독교 부모들은 산타클로스와 같은 신화를 불편하게 여긴다. 그들은 일단 자녀들이 산타클로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리고 산타에 대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신과 예수에 대해 들었던 얘기도 의심하게 될지 모른다고 느낀다. 사서 걱정하는 셈이다. 산타에 대해 알게 되어서 신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는 아이들은 지극히 드물다. 하지만 이는 신의 존재가 사회적으로 확고하게 유지될 때의 얘기다.
프로이트와 피아제는 둘 다 어린아이들이 처음에는 신을 인간으로, 즉 강하고 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어른으로 본다는 제안했다. 아이들은 신을 얼굴과 몸과 음성을 가진 것으로 묘사한다. 세 살배기들에게 신의 특성과 가장 친한 친구의 특성에 대해 물어 보면, 두 답변 사이에는 체계적인 차이가 전혀 없다. 인간과 달리 신은 전지전능한 불변의 존재라는 성숙된 이해는 다섯 살쯤 되어야 비로소 생겨나며, 다섯 살배기들 중에서도 다소 말하기 애매한 경우가 있다. 신은 “마술을 하기 때문에” 밀폐된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지만 포장 상자가 내용물과 일치하지 않으면 헷갈려할 수도 있으며, 신은 절대 죽지 않지만 옛날에 아기였다가 “많이 먹어서” 커졌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우리는 모두, 특히 아이들은 모든 생각이 인간과 닿아 있다. 다른 실체들 역시 우리 인간의 인지 능력과 육체의 속박을 지닐 것이라는 가정을 하게 된다. 네 살배기 중에서 많은 아이들이 튤립이 행복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코끼리, 뱀, 개미, 심지어 나무도 믿음을 갖고 있다고 여긴다. 의도를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은 사람들을 다루기 위한 방편으로서 진화해 왔다. 그래서 인간보다 힘이 훨씬 약하거나(튤립) 혹은 강한(신) 존재조차 사람과 비슷하게 분석하려 드는 경향이 있다.
여러 증거들은 아이들이 종교 개념에 어떤 특별한 능력이나 성향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노엄 촘스키가 제안한 “언어기관(language organ)”이나 앞 장에서 논의한 도덕 정서와 달리, 종교 모듈이라거나 선천적인 신에 대한 개념 따위는 없다. 아이들은 생각, 감정, 목표를 다른 것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신이나 영, 귀신과 같은 실체들을 이해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무에서 이러한 실체들을 끄집어낸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종교 개념의 소비자이지 생산자가 아니다. (본문 323~3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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