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와 '블랙'은 우리를 '옐로우'나 '브라운'이라고 부른다. 신비로운, 혹은 나태하고 불분명한 동방의 햇볕에 노르스름하게 익은 인종이란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시선 바깥에서 서로를 분별하기에 열심이다.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 얽히고설킨 오랜 역사는 모진 풍파 속에 여물은 열매 같이 닮은 '우리'를 서로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북미에서 두 번째로 큰 차이나타운이 있는 도시에 머무르면서, 나는 일상적으로 수많은 중국인들을 만난다. 그들의 말은 정신없이 빠르고 시끄럽고, 그들과 나의 소통은 서툰 영어로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만이 소통의 장애를 낳는 것은 아니다.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 속에서도 말을 붙이기조차 어렵고, 말도 건네기 싫고,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일을 얼마나 많이 겪는가. '우리' 사이에 놓인 벽은 다른 말을 쓰고 있다는 사실보다 아예 말을 주고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천년의 기도』는 이런 내게 반성과 위로, 새로운 확신을 준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중국의 현실, 변화에 대한 불안과 기대, 세계 어디에서도 끈덕지게 뭉쳐 살아내는 중국인들의 낙천주의가 열 편의 잔잔한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때로는 우스꽝스럽지만, 그보다 훨씬 슬프다. 감동은 묵직하고, 여운은 한때 '우리'의 조상들이 세상에서 가장 긴 강이라고 믿었던 장강처럼 길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새삼 문학은 영원하고, 영원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언어와 역사와 국제정치질서까지도 뛰어넘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여전히, 오로지 문학의 좁고 작은 길뿐이다. 현실에서 만나는 그들은 여전히 낯선 이방인이지만, 그들의 악몽과 희망을 엿본 나는 더 이상 '우리'라는 말 앞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만 다 같이 슬픈 사람들일 뿐이니까.
- 소설가, 김 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