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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금을 찾아서
2. 길위에서, 낯선 3. 방부 처리된 사랑의 기록 4. 독기 서린, 부드러운 해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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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도봉구 쌍문동 산 4-14번지가 내 본적지다. 나는 마치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걸음걸이가 닿을 수 있는 거리만큼만 이동한 곳에서 30여 년을 살아왔다. 지금은 잘 구획된 상가와 주택가가 있는 그곳은 내 유년시절에는 시금치 밭이었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가난한 가계의 살림을 도맡아야만 했던, 어머니의 검게 그을린 얼굴이다(결혼 후에도 아버지는 7년 간을 실업자로 보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어린 하얀 미소, 그것은 유년시절의 몇 안되는 행복한 추억의 스냅사진이다. 내 유년시절은 도시영세민의 어둡고 우울한 표정 속에 갇혀 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모든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고통스러운 곳이라기보다는, 무한대의 향유가 가능한 놀이터로 보였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지금은 삼익 세라믹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옛 동네의 야산에는, 깨밭과 콩밭 같은 당시의 배고프고 영악스러운 아이들에게 주된 약탈지(?)가 되어야만 했던 놀이터가 있었다. 여자 아이들은 풀 포기를 이리저리 비틀어서 반지와 왕관을 만들었고, 사내아이들은 차돌과 연탄재를 던지며 싸움판을 벌였다. 이상한 것은 그 작은 동네의 아이들의 유난히도 호전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 부모들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순진성의 반영이었다. 영세민이어야 했던 부모들은 그악스럽게 싸우고 밥상을 발로 걷어차고 집을 나가기 일쑤였고, 아이들은 두려움과 울먹임 속에서도 서서히 그것에 익숙해져 갔다. 누군가와 싸운다는 것은 두렵지만 비밀스러운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했다. --- p.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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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부분에서 나는 이른바 '비판적 지식인'의 실존이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비판적 지식인은 존재하고 있는 현실의 모순에 능동적으로 개입하여 그것을 변화시키기를 꿈꾸는 자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그가 속해 있는 제도와의 갈등과 대립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심해질 때, 그는 제도로부터의 축출까지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서울대 김민수 교수와 서강대 이정우 교수의 경우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비판적 지식인은 제도의 내부에서 싸우면서, 제도의 외부와의 연대를 도모해야 한다. 학문의 내부에서 싸우면서, 학문의 외부까지를 응시하는 넓은 시야를 갖고 있어야 한다. 때로 자신이 제도적 폭력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도, 자신의 이후 세대들이 그 희생을 통해 보다 바람직한 조건과 토대 속에서, 자유로운 발언을 할 수 있을 상황을 구조화해야 한다.
--- pp.94-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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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독기를 풀어가면서 그것의 비밀까지를 탐문한다 - 비판적 글쓰기, 섬세한 내면 풍경, 혹은 이명원 글쓰기의 근원
1. 독기와 그에 따른 나름의 처방전을 함께 제출하는 이명원의 글은 양날의 칼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명원은 첫 저서 『타는 혀』를 통해 김윤식 교수의 표절 문제를 제기하면서 학계에 충격을 안겨주고 그를 계기로 학계를 떠났던 문학평론가이다. 이제는 독립적 지식인이 되어 열정적인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는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독립적 지식인> <논쟁적 글쓰기> <시대의 젊은 논객> 등등.
이명원 씨는 문학비평을 시작한 초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논쟁을 주도하고 때로는 문제적인 사안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그 나름의 독특한 해법을 제출해왔다. 『해독』은 그러한 이명원 글쓰기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밝히고 있을 뿐만아니라, 비평가로서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의 섬세한 내면을 탐문한 글들로 조직되어 있다. 책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양날의 칼로서 여전하고 도저한 그의 글쓰기다. 안티조선 문제(「이문구 선생님 동인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신경숙 씨의 표절문제(「표절보다는 정신의 식민화가 문제다」), 문학권력 문제(「세 출판사의 게시판을 지켜보면서」), 언론과 문인의 관계 설정 문제(「이문열과 '야구'에 대한 명상」), 대학원 사회의 비합리적인 교수-제자 관계 문제(「봉건적 신분사회의 멘탈리티가 대학원 사회를 타락시킨다」) 등 그의 글은 거침이 없으며 그런 만큼 그 논지는 다양하고도 선명하다. 2. 『해독』에 수록된 글들은 아카데믹한 성질을 갖고 있는 것들이 아니다. 가장 내밀한 사적 고백으로부터 다소 날카로워 보이는 공적 비판까지 어깨동무를 하면서, 제 각각의 빛깔을 뿜어내고 있다. 시의적인 점을 고려해 대부분 최근에 발표한 글들과 신고新稿들을 중심으로 엮었지만 거의 1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쓰여진 글 가운데 일부가 포함된 책의 성격상, 삶의 남루와 초월에의 욕망이 이란성 쌍생아처럼 깍지끼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3. 그래서 『해독』은 문학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에서부터 에세이의 내밀함을 엿보고 싶어하는 일반 독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읽힐 수 있다. 가령 「소금을 찾아서」나 「어느 우울한 날의 단상」과 같은 글들은 한 젊은 평론가의 사적이고도 섬세한 내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고, 「권오룡의 돈키호테식 글쓰기」나 「이교도의 세계관은 존중되어야 한다」와 같은 글들은 권력화한 문단의 권위주의적 오류, 한 소설가(장정일)에 대한 법적 제재의 폐해 등이 무엇인지를 적확하게 제공해줄 것이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는 저자의 사적인 고백록이 담겨 있고, 2부에는 문단이나 매체의 구조적인 모순 등에 대한 진단이 담겨 있다. 3부에는 문학평론의 본령이라 할 수 있을 작품 읽기가 지은이의 내면과 결합되어 섬세하고도 따뜻한 빛깔로 독특하게 정리되어 있고, 4부에는 저자가 편집위원으로 관여하고 있는 반년간지 <비평과전망>에 대한 솔직한 고백 등이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