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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화해는 가능한가
김태웅
미래M&B 200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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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전방후원분의 기억

서장 지금, 역사 화해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1장 왜 과거의 극복이 늦어지는가 - 일본
1. 세계화 시대의 역사 인식
2. 역사 교과서 문제와 일본정부의 대응
3. '위안부 문제' - 국제 문제화와 일본의 선택
4. 야스쿠니 문제 - 총리는 왜 야스쿠니 참배에 얽매이는가

2장 묻어버린 과거는 무엇인가 - 한반도
1. 새로 드러난 을사조약의 국제법상 불법성
2. 한일조약과 식민지 지배의 청산
3. 북일 국교 정상화와 평양선언

3장 항일전의 기억은 어떻게 변모되었는가 - 중국
1. 정부가 동결시킨 기억
2. 역사적 전기가 된 중일 공동성명
3. 고양되는 내셔널리즘과 역사과의 전환

4장 아시아 - 태평양 전쟁의 기억과 역사 재인식
1. 아시아계 미국인 - 강제 수용과 강제 노동
2. 일본계 캐나다인 - 차별의 기억
3. 원주민의 복권 - 하와이와 괌
보충/ 동남아시아 - 전쟁의 기억과 식민지주의

종장 역사 화해는 가능한가

지은이 후기
옮긴이 후기

저자 소개 1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학문 연구와 교육 현장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한국 근대사를 자료에 입각하여 탐구할 수 있는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근대편』을 펴냈다. 또한 한국 근대 재정사에 관심을 기울여 『한국근대 지방재정 연구』를 비롯하여 조선 후기와 근대의 지방재정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하였다. 특히 근대 개혁을 지향하고 추진했던 사상가, 정치가와 학자, 교육자에 주목하여 박은식의 『한국통사(韓國痛史)』를 역해한 데 이어 『어윤중과 그의 시대』를 집필하였다. 또한 이러한 저술 작업의 일환으로 오지영의 『동학사(東學史)』에 주목하여 역해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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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아라이 신이치
1926년 도쿄에서 태어나 1949년 도쿄 대학 문학부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이바라키(茨城) 대학 인문학부 교수, 스루가타이(駿河臺) 대학 현대문화학부 교수를 거쳐 지금은 스루가타이 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19세 때 학도병으로 겪은 전쟁 체험은 그의 삶에도 영향을 끼쳐, 이후 일평생 유럽의 홀로코스트 극복 과정, 일본의 전쟁 범죄와 책임을 주된 연구 영역으로 삼아 평화와 인권 문제를 고민해 오고 있다.
현재 ‘일본의 전쟁 책임 자료센터’ 소장으로,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는 시민운동계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꼽히고 있다. 2005년 11월 ‘을사조약 강요 100년’ 심포지엄(도쿄)에서는 을사조약이 국제법상으로 무효임을 입증하는 새로운 사료를 제시한 바 있다.
주요 저서로 『제2차 세계대전』, 『현대사에서의 아시아』, 『전쟁 책임론 - 현대사로부터 묻는다』, 역서로 『피카소 게르니카의 탄생』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43쪽 | 510g | 153*224*30mm
ISBN13
9788983943163

출판사 리뷰

유럽·미국·네덜란드의 경우 - 과거사 사과의 움직임들, 역사 청산의 비국가화

유럽에서 홀로코스트는 지나간 역사가 아닐뿐더러, ‘역사 청산의 비국가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가령 독일 등 유럽 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몰자 위령과 전쟁 추도에서 국가의식을 내세우거나 영웅을 추모하기 보다는, 무명 병사의 희생에 국가 차원에서 경의를 표하는 데 그친다. 또한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세우고 기념비를 통해 희생자를 추모하며 나치 범죄를 인정하고 보상금을 지불하며 피해 보상을 하는 등 전쟁 범죄와 과거사 청산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로 억류하거나 수용?이주시켜 인권을 침해한 사실에 대해 대통령과 의회가 사죄하고 보상하였다. 또한 당시 독립왕국이던 하와이 왕국을 강제로 미국에 병합한 것에 대해서, 100년 만에 미 의회가 사죄 결의를 한 바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점령 기간 동안 잔학행위에 희생되었던 괌 주민에 대한 보상운동도 미국 정부의 노력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네덜란드는 과거 인도네시아를 식민 지배했던 때에 벌어졌던 전쟁에 대해 사죄하였으며 역사 청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중국의 경우 - 역사의 정치화

그러나 일본은 어떠한가. 냉전 이후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었으며,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은 전쟁 피해 회복과 인권의 차원에서 피해자 개인들에 대한 배상 문제에 직면하였다. 무라야마 총리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과”한다는 사죄와 반성을 발표했으나,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되풀이되었고 역사 왜곡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지은이는 국가 중심?민족 중심의 내셔널리즘과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 올바른 역사 인식과 과거사 청산을 어렵게 하고 있다며 일침을 가한다.
한편 중국은 일본과 국교를 맺으면서 ‘과거는 잊읍시다’ 정책을 펼쳐 난징 대학살과 항일전의 체험을 경제성장의 원리로 무마하려 하였다. 그러나 경제성장 이후 중국에서는 ‘애국주의 교육’을 실시하여 내셔널리즘의 경향이 강해졌으며,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로 일본과 외교 마찰을 빚으면서 항일전을 ‘정치화’하고 있다.


을사조약이 국제법상 무효임을 입증하는 두 가지 사료가 제시된다

저자 아라이 신이치는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해 한국병합의 기초가 되었던 을사조약(1905년)이 국제법상 무효임을 강하게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조약을 체결할 당시의 국제법은 국가에 대한 강제는 조약의 무효 원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국가 대표자에 대한 강제로 조약을 체결했을 시에는 무효 원인으로 인정했다.

당시의 국제법은 국가 대표자에 대한 강제가 있었을 경우에는 조약을 무효로 인정했지만, 국가에 대한 강제는 무효 원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강화조약을 수락하지 않으면 전쟁을 계속한다고 하는 경우가 국가에 대한 강제에 해당한다. 보호조약의 강제에 관해서 논할 때, 논자의 대부분이 국가에 대한 강제를 인정하면서 황제, 대신 등 한국측의 국가 대표자에 대한 일본측의 언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본문 118쪽)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입증하는 두 가지 사료로, 저자는 한국 주차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의 보고서와 미국 공사 에드윈 모건의 공식 보고문서를 들고 있다.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교섭이 진행되던 날 일제히 순찰을 강화하고 기병부대와 포병부대를 장내로 불러들이는 등 무력 시위를 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는 대신들을 위협한 결과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떨며 큰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보고했다. 군부대신 이근택을 불러들여서는 조약 체결을 거부할 경우 무력 행사의 가능성을 언급하며 위협했다. 하세가와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외상성 장애, 자신도 일본군에게 살해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종과 대신들의 ‘악몽’ ‘군대 공포병’을 이용하여 경복궁 앞 광장에서 하루 종일 무력 시위를 함으로써 조약의 강제 체결을 장외에서 지원했다.
조약이 체결되었던 장소인 수옥헌은 미국 공사관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당시 미국 공사였던 에드윈 모건은 담 너머로 이때의 상황을 관찰해 기록으로 남겼다. “그때 각료들에게 물리적 폭력이 휘둘러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정말로 자유의지로 행동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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