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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
교육과 사회변화를 위한 프레리와 호른의 대화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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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이 책을 읽기에 앞서

제1장 들어가며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된다

제2장 형성기
책 읽는 데 어려움이 많았던 학창시절
연애하는 심정으로 책을 읽고
책에서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늘 처음처럼 출발점에 서서
문해교육과 시민교육으로 희망을 찾고

제3장 사상
실천 없이는 앎도 없다
생물교과만 가르칠 수 있을까?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들에 대해
교육과 조직화의 차이
전문성과 전문가에 대해
문화에 깃든 혼을 존중하라
부모가 되어 배운 것들

제4장 교육실천
민중의 경험에서 출발하라
하이랜더의 이념과 교육실천
갈등은 의식을 깨우는 산파다

제5장 교육과 사회변화
교육을 밀매해야 한다
사회변혁은 하나의 과정이다

제6장 회고
민중의 삶 속에서
민중에게 배우라

프레이리와 호튼에 대하여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2

파울로 프레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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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o Freire

브라질을 대표하는 교육사상가이자 진보적 학자로, 민중교육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억압받는 이들과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의 저자로 유명하다. 브라질 북동부의 빈민지역인 헤시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민중의 어려운 삶과 고통, 억압받는 현실을 목도하였고 그로부터의 해방을 꿈꾸었다. 1959년 논문 「브라질의 현실과 교육」으로 헤시피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64년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까지 브라질 민중의 문해교육에 힘썼다. 군사정권하에서는 반체제 인사라는 이유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석방 이후 1979년까지 망명생활을 하며 전
브라질을 대표하는 교육사상가이자 진보적 학자로, 민중교육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억압받는 이들과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의 저자로 유명하다. 브라질 북동부의 빈민지역인 헤시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민중의 어려운 삶과 고통, 억압받는 현실을 목도하였고 그로부터의 해방을 꿈꾸었다.

1959년 논문 「브라질의 현실과 교육」으로 헤시피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64년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까지 브라질 민중의 문해교육에 힘썼다. 군사정권하에서는 반체제 인사라는 이유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석방 이후 1979년까지 망명생활을 하며 전 세계 민중의 문해교육 운동을 이끌었고 각종 교육 프로그램에 동참했으며 세계 28개 대학에서 명예교수를 지냈다. 브라질 귀국 이후에는 노동자당(PT) 결성에 참여했으며 루이자 에룬지나(Luiza Erundina)가 이끈 상파울루시 노동자당 행정부에서 교육사무국장으로 시의 교육개혁을 이끌었다. 1997년 치명적인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교육사상은 『억압받는 이들과 페다고지』 이외에도 『교육과 의식화』,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 『프레이리의 교사론』, 『망고나무 그늘 아래서』, 『자유의 교육학』 등 20여 권의 저서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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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역홍은광

관심작가 알림신청
 
2008년 진보신당 창당 이후, 진보신당 관악구당원협의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관악동작학교운영위원회협의회 정책위원장, ‘안전한 등교길 만들기’ 관악주민모임 대표직을 맡고 있다. 또한 현재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정책특보로서 2010년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의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있다. 1976년 전북 정읍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전주 상산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이 후 1994년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에 졸업하였다. 그 시절 그렇듯이 선배들을 따라 학생운동을 경험했고, 학생운동의 부침을 직접 체험했다. 1997년 서울대 총학생회 집행부원 시절 대학개혁위
2008년 진보신당 창당 이후, 진보신당 관악구당원협의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관악동작학교운영위원회협의회 정책위원장, ‘안전한 등교길 만들기’ 관악주민모임 대표직을 맡고 있다. 또한 현재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정책특보로서 2010년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의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있다.

1976년 전북 정읍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전주 상산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이 후 1994년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에 졸업하였다. 그 시절 그렇듯이 선배들을 따라 학생운동을 경험했고, 학생운동의 부침을 직접 체험했다. 1997년 서울대 총학생회 집행부원 시절 대학개혁위원장직을 맡으면서 한국의 고등교육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시작해, 1999년에는 전교조 선생님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진보교육연구소에 찾아가서 교육이론가로서의 공부를 시작했다. 200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대학원 평생교육 전공으로 입학해, 2003년 석사 졸업을 하였다. 이때 쓴 논문이 “파울로 프레이리 교육사상의 수용 과정과 한국 민중교육운동에 대한 영향”이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민주노동당 최순영 국회의원(교육위)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면서 2004년 총... 선에서 민주노동당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데 역할을 했다. 2006년에는 관악구 구의원으로 출마해 0.7%의 표 차이로 낙선했고, 2008년 주경복 서울교육감 후보의 정책 총괄 간사직을 수행했다. 옮긴 책으로는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 교육과 사회변화를 위한 프레이리와 호튼의 대화』(2006, 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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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마일스 호튼
1932년 테네시 주의 쿰버랜드에 하이랜더 지역학교 설립을 시작으로 미국의 시민권 운동과 지역사회학교운동을 이끌었던 유명한 교육활동가이다. 유니온신학교 재학 시 라인홀트 니부어의 영향을 받았고, 여성인권운동가인 제인 애덤스,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함께 일하기도 했다. 교육을 통해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기를 꿈꾸면서 흑인과 노동자들의 교육에 일생을 바친 그는 1950년대 매카시 열풍이 미국을 휩쓸었을 때 공산주의자로 몰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오늘날 하이랜더 연구교육센터는 환경문제, 빈곤, 경제적 불평등, 청소년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애팔래치아 지방과 미국 남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역자 : 프락시스
2000년 가을 ‘비판적인 교육학’을 함께 공부해보자고 5명이 결의하여 결성된 모임이다. 처음에는 ‘삶 나누기 방식’의 수다 모임으로 시작했다. 이후 각자 관심의 영역을 하나둘씩 풀어놓으면서 평생교육이라는 터전 위에 노동교육, 시민교육, 여성교육, 성인 기초교육 등 사회 참여적 교육학 영역에 대한 관심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 15명 안팎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육’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해 ‘우리의 길’을 가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11월 2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33쪽 | 520g | 153*224*30mm
ISBN13
9788988996683

책 속으로

공부란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발견은 아주 독특한 맛, 바로 창조와 재창조의 행복한 순간을 가져다줍니다. 쉽지는 않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지요. 우리는 학생들에게 이 창조의 순간을 맛볼 수 있도록 자극을 주어야 합니다. 단순히 시계를 보고 오전 10시∼11시에는 책을 읽고 오후 2시∼3시에는 글을 쓴다는 식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관료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 이 사회가 갖고 있는 가장 비극적인 병 중 하나는 ‘마음의 관료화bureaucratization of the mind’입니다. 이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정해진 틀을 벗어나면, 사람들의 신뢰를 잃게 됩니다. 하지만 단절ruptura의 경험 없이, 즉 옛것과 결별하지 않고, 의사결정과정에서 갈등을 겪지 않고, 무언가를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단절이 없다면 인간 존재도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 p.58

어린 시절, 저와는 사회계층이 다른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계층이 같은 친구들도 있었고요. 요즘도 저는 저와 제 형제들은 ‘고리 친구connective children’였다고 말합니다. 두 계급 사이를 오가면서 일종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몇 달 전에 어릴 적 축구하던 거리에 다시 가보았습니다. 거기에 가면 배고팠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즐겁게 축구를 하다가도 배고프다는 말을 자주 했었습니다. 그럴 때면 ‘왜 누구는 먹고 누구는 못 먹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순진하지만 참 어린아이다운 질문이었지요.
제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벅찬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알고 싶은 것도, 생각하고 싶은 것도, 물어보고 싶은 것도, 상상하고 싶은 것도, 실현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 저는 다른 사회를 꿈꾸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그 사회의 윤곽조차 잡기 힘들었어요. 그러나 매우 구체적인 방식으로 생각했습니다. 페드로, 카를로스, 두라도, 디노 같은 친구들이 함께 먹고, 공부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회에 대해 생각했지요. 그 당시에는 어떻게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것은 저의 꿈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형태의 삶, 다른 형태의 사회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 p.81~82

역사를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를 완전히 뜯어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물론 쉬운 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습니다. 교육을 변화시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에 속하지요. 교육에는 혁명과정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거든요. 예컨대 교육 안에는 권위주의적 전통주의라든가 전통적 전체주의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혁명이 일어나기 몇백 년 전부터 있던 것들로 심지어 혁명 내부에도 기생하고 있습니다. 가끔 혁명가의 연설과 실천이 서로 모순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혁명가를 교육자로 본다면 굉장히 전통적인 교사라고 할 수 있지요. 학생들이 교사인 자신을 넘어설까 봐 두려운 거예요. 이런 혁명가들도 학생, 즉 민중의 능력을 신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를 두려워합니다. 아주 오래된 공포, 즉 자유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지요. 이런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 지금은 정치적으로 교화의 기능을 담당했던 낡은 교육이 아닌 새로운 꿈과 비전을 품을 수 있는 새로운 교육을 모색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민중의 비판적인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자유에 기여할 수 있는 교육을 창출하는 일이 중요한 거지요.

--- p.271~272

출판사 리뷰

1. 20세기 최고의 진보교육자 프레이리와 호튼의 만남과 대화

대화집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생생한 감동을 만난다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는 20세기 최고의 진보교육자인 호튼과 프레이리의 교육사상과 활동은 물론 인간적인 면모를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특징은 낙관적인 세계관을 가진 두 노 교육자가 특별히 주제를 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사상과 교육방법론 등 교육적인 주제와 자신들의 성장 과정, 진보적인 교육관을 갖게 된 사상적 배경을 직접 들려준다는 데 있다. 특히 그동안 현장에서 체험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교육관이 어떻게 적용되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현장 경험이 풍성한 두 사람이 자신들의 무지와 실패까지 가감 없이 털어놓는 가운데 이론과 실제, 제3국과 제1세계, 체제 내 개혁과 체제 밖 의 활동 등 여러 면에서 미묘한 입장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각자의 경험에 내재된 깊이를 공감하며 친밀함과 존경심을 더해가는 과정은 대화집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감동을 맛보게 한다.

호튼과 프레이리는 신뢰와 존경을 바탕으로 서로의 삶을 공유해간다. 때로는 맞장구를 치고, 때로는 엇갈린 의견 때문에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유쾌하고도 진지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미국과 브라질이라는 전혀 다른 사회에서 살았지만 늘 억압받고 있는 ‘민중’들 편에서 학문 활동과 실천 활동을 전개했다는 공통 경험은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신뢰감을 형성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각자의 ‘삶의 궤적’과 ‘위치’는 ‘교육’이라는 화두에 대해 묘한 차이를 보여준다. 이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같음’과 ‘다름’을 그들의 삶의 맥락 속에서 음미해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묘한 재미라 할 수 있다.(옮긴이의 글 중에서)

사회변화를 위한 교육의 이론과 실제를 만난다

프레이리는 교육의 궁극적 목표를 인간해방에 두고 농민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독자적인 문해(문맹퇴치)교육 방법을 개발해 제3세계 국가들의 민중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 교육사상가였으며, 호튼은 교육을 통해 새로운 사회체제를 구축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참여교육을 통해 산별노조운동과 흑인인권운동을 촉발시킨 활동가였다. 두 사람은 이 대담에서 교육을 통해 변화를 이루고자 하는 교육자라면 누구나 직면하게 되는 문제들, 교사와 교육자의 역할, 조직가의 역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문화와 교육, 동원의 문제, 사회변혁과 교육개혁의 우선순위 등의 문제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눈다. 상대적으로 사변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프레이리의 이론적 접근과, 이론보다는 실천과 참여를 강조한 급진적인 활동가 호튼의 체험에서 우러난 통찰이 담긴 대화는 교육과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변혁학습의 이론과 실제를 보여주는 중요한 텍스트가 될 것이다.

진정한 교육자의 참모습을 만난다

프레이리와 호튼이 20세기 최고의 교육가로 추앙을 받는 것은 일차적으로 ‘가난한 사람들, 못 배우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참여교육’에 자신의 소명을 두고 평생을 헌신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이들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은 것은 그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민중교육에 투신했기 때문만은 아니라 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교육자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가르치는 사람, 전문가를 자처하지 않고 민중들의 지식에서 출발해 민중들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그들을 안내하고, 그 과정에서 기꺼이 함께 배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민운동 등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은 물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가정에서 자녀를 교육시켜야 하는 부모들에 이르기까지 ‘가르치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임을 절실히 깨닫게 한다.
특히 프레이리와는 달리 미국 남부에서 주로 활동한 마일스 호튼은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평생을 하이랜더에 머물며 ‘민중들의 경험에서 출발해 그들의 경험을 최대한 확장시키고 그들과 더불어 배워야 한다’는 믿음을 소박하게 그러나 철저하게 실천한 호튼의 모습은, 그리고 그가 털어놓은 수많은 사례들은, 진정한 교육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되묻게 한다. ‘교육을 밀매해야 한다’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체제 내에서보다는 체제 밖에서 민중교육을 실천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교육철학으로 흑인민권운동과 노조운동을 이끌어낸 한 실천가의 겸손하고 소박한 내면에서 우러나는 진정성을 만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의 하나이다.

2. 호튼의 시민교육과 프레이리의 문해교육

호튼의 시민학교운동

호튼은 1905년 미국 테네시 주 서부의 빈곤지역인 델타에서 태어났다. 시카고대학교에서 사회학 공부를 마치고, 덴마크에서 지역사회학교운동을 공부한 호튼은 1932년 테네시 주 그룬디 카운티에 하이랜더 지역학교를 설립하고 농촌지역 노동자들과 함께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사회변혁에 대한 이상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내용 면에서는 명확한 상을 그리지 못하고 있던 호튼은 무엇보다도 지역주민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당시 남부의 노동자들이 경제적 정의를 요구하기 시작하자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내 제공했고, 이러한 경험들을 토대로 교육이념을 구체화시켰다.
1950년대 초반에는 인종차별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미국 인종문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시민권 운동은 10년간 하이랜더에서 열린 수십 번의 모임과 워크숍의 결과였다. 흑인인권운동의 도화선이 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은 하이랜더에서 몇 달 간 머물렀던 로사 파크스에 의해 촉발되었다. 이 사건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민권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하이랜더 시민학교는 흑인들이 선거권과 정치적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1970년까지 시민학교를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운 흑인은 약 1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하이랜더가 미국 남부지역의 흑인 세력화의 중심지로 부상하자 백인 권력으로부터 심각한 공격을 받게 된다. 1954년 호튼은 공산주의자들과 접선을 모의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고, 하이랜더 지역학교의 소유자산과 부동산을 압수당하는 등 여러 차례 고초를 겪었다.
호튼은 1960년대 중반 성공의 절정에 있던 시민학교 프로그램을 미국 남부기독교지도자회의에 넘기고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에 전념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하이랜더 연구교육센터의 책임자 자리를 젊은 동료에게 넘겨주고 미국 전역과 해외를 여행하면서 강연과 워크숍 활동에 주력했다. 하이랜더 연구교육센터는 지금도 애팔래치아 지방과 미국 남부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연구센터의 관심은 환경문제, 빈곤, 경제적 불평등, 청소년 문제, 지도력 개발 등으로 변화되었지만, 민중의 자생적 힘을 기르는 ‘세력화 교육’의 철학만큼은 여전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프레이리의 문해교육

프레이리는 1921년 브라질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북동부 레시페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 역시 미국의 애팔래치아나 남부지역의 시골처럼 오랜 가난과 굶주림, 그리고 문맹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부자와 가난한 사람, 권력자와 힘없는 민중이 극명하게 나뉘어 있던 곳이었다. 레시페대학교를 졸업하고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프레이리는 1946년 페르남부코 주 소속 사회봉사기구에서 레시페를 포함한 인근 지역의 농촌빈민과 공장노동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성인문해교육과 민중교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59년, 급진적 민주주의자인 미구엘 아레스가 레시페 시장으로 당선되어 헌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농촌 빈민들이 글을 읽지 못해 투표에 어려움을 겪었다. 프레이리는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초교육 프로그램 및 성인문해교육을 실시하는 동시에 비판적 의식을 진작시켰다. 1960년 새로운 민중정부의 등장과 함께 프레이리가 ‘국가문해교육 프로그램’의 책임자로 임명된 후 1964년까지 전국적으로 백만 명에 이르는 비문해자들이 프레이리의 문해교육방법으로 글을 배웠다. 그러나 1964년 등장한 군사정권은 국민문해교육 캠페인을 중단시키고 프레이리를 비롯한 수백 명의 활동가들을 국외로 추방했다.
프레이리는 볼리비아, 칠레 등 남미 여러 국가에서 농지개혁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을 도왔다. 이후 하버드대학교에서 책을 쓰고 강의를 하면서 그의 사상은 국제적 관심을 받게 되었다. 프레이리는 1980년 브라질로 돌아올 때까지 세계 곳곳에서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힘을 보태며 저술활동을 계속했다. 브라질에 귀국한 후에는 다시 민중참여를 위한 투쟁을 계속했으며, 1988년부터 상파울루 시의 교육감을 맡아 전통적인 교육체제를 개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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