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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작가의 말 작품 해설_ 몰입할 수도, 끝낼 수도 없는 놀이/조연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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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에 함께 있지만, 당신은 당신대로, 나는 나대로 생각과 느낌의 자유를 즐기면 돼요. 원래 사람이란 그렇잖아요. 결국은 영원한 평행선일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면서도, 그것이 맞닿거나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착각 속에 살죠. 나는 당신이 나와 사랑에 빠져주길 기대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이 공간을 하나의 무대나 제의 공간처럼 생각하고 특정 상황에 있는 연인처럼 연기에 빠져보자는 거죠. 우리가 연기자인 동시에 관객인 연극."
(……) 그야말로 디오니소스적인 황홀경이라 할 만했다. 자신의 얼굴에 보이지 않는 가면이 씌워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화해 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유노는 노는 일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진짜 놀이에 몸을 맡겼다. 그러면서도 이 놀이는 지극히 진지했다. 황홀한 꿈속에서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듯이. 언제나 자신을 지배하던 이성의 속박이 헐거워지면서 현실과 놀이 사이의 경계가 사라져버렸다. 그의 몸과 영혼 전부가 한 여사에게 빨려들고 있었다. 그녀가 아니면 죽을 것 같고, 그녀 속에 있으면서도 더욱 그녀의 깊은 곳으로 파고들고 싶었다. 그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았음에도 그녀에 대한 허기와 갈망이 고조됐다. 마침내 끝없이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느낌과 함께 강렬한 오르가슴이 연속적으로 찾아들었다. --- p.153~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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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뢰인을 대신해서 놀아주고 돈을 받는다? 단, 놀이 경험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마라? 농담 삼아 "돈 받고 노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가 '축복의 섬'을 소개받고 'PL(Player)'이 된 주인공 유노. SG 그룹의 사회환원사업 일부인 이 '축복의 섬 프로젝트'는 맹인을 위해 영화나 아름다운 경치를 대신 봐주고 그 경험을 나누는 등의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이란다. 따라서 잘 놀 수 있는 사람, 즉 '재미 성향 검사'를 통과해야만 PL이 될 수 있다고. 그러나 유노는 초급 PL이 된 지금도 이 모든 일을 믿을 수 없다. 최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제주도를 달리는 이것이 바로 돈을 버는 일이라니?!
한편 유노의 친구 상인은 MC 그룹으로 이직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연히 도착한 지하 5층 멀티큐브 화면에서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는 유노의 모습을 목격하곤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더구나 이곳은 지하 4층짜리 건물이 아닌가! 상인의 얘기를 들은 유노는 '축복의 섬'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지만, 곧 2단계 진급을 위한 새로운 놀이를 제안받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경희'라는 능력 있고 매력적인 중년 여성과의 '불륜 놀이'다. 게다가 장소는 연애에 관한 한 어떤 일탈도 허용된다는 '소도(蘇塗)'의 비밀 호텔. 의뢰인은 감수성 부족으로 CEO 후보 심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대기업의 상무로, 평생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한 워커홀릭이다. 디지털 송수신기에 기록된 유노의 활동이 슈퍼컴퓨터에 전송되면, 의뢰인은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듯 HMD를 쓰고 가상현실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유노는 한경희와 불륜을 즐기며 '사람의 요소'가 추가된 2단계 놀이의 매력에 흠뻑 취한다. 하지만 현실과 놀이 사이의 모호함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경험에 대한 혼란에 빠지는 유노. 과연 이것을 의뢰인 대신 노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팀장 혜리는 몇 년 전 PL의 임무 수행 도중 성전환 수술로 여자가 된 인물이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미니를 보면서 발기되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정체성의 혼란 속에 결국 미니의 키스를 받아들인 혜리. 다음 날 아침, 혜리는 제인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다. 신태우(성전환 수술을 하기 전의 혜리)에게 버림받았던 제인은 복수를 계획하고 그가 남자의 몸을 버린 것을, 그리고 그의 인생 전체를 후회하게 만들기 위해 미니에게 놀이를 의뢰했던 것이다. 새벽 3시 술에 취한 혜리로부터 유노에게 전화가 걸려 오고, 그들은 서로의 몸을 깊이 탐닉한다. 그리고 이틀 후, 혜리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한 유노.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여주는 성전환 수술 전 혜리의 모습은 뜻밖에도 유노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혜리의 죽음에 의심을 품은 유노는 상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들은 SG 그룹 건물로 향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유노를 기다리고 있던 인물은 다름 아닌 한경희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그들을 문제의 지하 5층으로 데려간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평범한 생활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거액의 수표 다발을 가지고 하와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것인가. 이제 유노는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 모든 의문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유노 앞으로 서서히 주사기가 다가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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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는 자 Vs 속이는 자, 의뢰하는 자 Vs 의뢰 받는 자, 조종하는 자 Vs 조종당하는 자 최고의 롤플레잉, 이제 게임은 시작된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쩌면 "성공이란 행운이 따른 예외"에 지나지 않는 법. "돈 버는 일에 인생을 전부 소모해 버려서, 막상 놀려고 하면"일말의 "에너지"차 "남아 있지 않"다 해도 일단은 죽어라 일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사회의 속성인 걸 어쩌랴. 그런데 최재경의 『플레이어』는 '노는 사람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놀면서 돈 버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우리가 근래 심심치 않게 읽어온 일련의 ‘백수파’ 소설들과 그 맥을 나누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향해 있다. 일군의 소설들이 능력 위주의 서열 사회에 대한 일탈과 전복으로 '일하지 않는=노는' 사람들을 내세우고 있다면, 이 소설은 "복지 프로그램과 보험 보장이 잘 되어 있고, 급료도 일반 대기업의 두 배 이상부터 시작"되는 '놀이'라는 확실한 직업을 통해, 결국 그 서열화 사회의 꼭짓점을 점유할 수 있는 인물들, 즉 시스템을 벗어나지 않는 영리한 인물들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전략적이다. 그러나 PL들의 놀이와 삶이란 게 과연 철저히 분리될 수 있을까? 감정을 연기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성전환 수술로 성별을 바꾸고 자신을 완전히 지울 때쯤이면, 현실과 놀이의 경계는 무너져 버리고 만다. '나는 누구를 연기하는가' 혹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혼란과 어긋나기 시작한 일상의 조각들은 이제 속는 자와 속이는 자, 의뢰하는 자와 의뢰 받는 자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더 이상 행운아일 수만은 없는 PL들은, 파란 약 대신 빨간 약을 삼키고 진실의 매트릭스 안으로 빨려 들어간 네오처럼, 그 속에 숨은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마침내 놀이자 사업의 최종 의뢰인이자, 비밀 조직 '축복의 섬'의 총감독이며 SG 그룹의 전직 회장인 박 의원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소설은 또 다른 국면으로 치닫는다. 조종하는 자와 조종당하는 자들의 치밀하고 스릴 넘치는 두뇌 유희와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은, 독자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며 『플레이어』의 마지막 한 장까지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