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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숨쉬는 새우깡
2. 사육제의 하루 3. 발의 꿈 4. 구매를 판매합니다 5. 취향도 6. 사랑의 파괴된 상상력 모음 7. 어디 가니? 8. 살아 있는 죽은 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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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껏 육체의 죽음만 생각하느라 영혼의 죽음을 깨치지 못했다. 내가 살아 있을 때 내 죽음의 방식을 알지 못했듯이. 그러나 감각 기관이 없는 지금, 육체가 없는 나의 죽음이 육체의 죽음과 같을 리 없다. 나는 그 점을 간과해 왔다. 숨막혀 하거나 고통에 몸부림치거나 하는 식의 죽음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영혼의 죽음은 확실히 그것과는 다를 것이다. 어쩌면 난 오래전부터 그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부인해 온 건지도 모른다. 영혼의 경우에도 자발적인 죽음이 가능할 것이다. 육체의 죽음과 방법은 다를지라도. 손목을 끊어 다량의 피를 흘리면 확실히 죽게 되어 있는 것처럼, 영혼도 그것을 숨쉬게 하는 자체의 메카니즘을 중단시켜 버린다면 충분히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방법은 단 한 가지, 영혼의 숨을 멈추고 스스로 침묵과 어둠의 세계 속에 침잠해 가는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 최대의 과제는 영지와의 이별이다. 조금은 멍청한 구석도 있지만, 귀엽기 짝이 없었던 내 딸, 나의 영지. 이 아이에게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내가 깨우친 모든 지혜를 전해 주고 가련만. 하기야 그것을 미리 안다고 해서 인생에 특별히 도움이 될 것도 없다. 열쇠가 있어도 열지 못하는 문이 있고, 배가 고파도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있으니. 영지야, 그동안 고마왔다. 너는 내가 너와 함께 머물렀다는 걸 끝내 알지 못하겠지. 나의 새우깡, 나의 딸, 나의 생명과도 같았던 영지야. 그러나 영혼의 죽음 앞에서,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이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젠 모든 것과, 특히 나 자신과 작별이다. 나는 내 끈질긴 촛불 같은 영혼을 불어 끈다. 후- --- pp.65-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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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 문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단숨에 읽히는 속도감 있는 구성 - 떠도는 영혼의 판타지
최재경의 작품들은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생생하게 구체화시켜 <사소한 것들의 사소하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다. 소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와 같은 것들은 다른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많이 사용되어 왔지만 최재경의 소설은 구성이나 문체 면에서 그와 다른 차원을 구가하고 있다. 가령 표제작인「숨쉬는 새우깡」은 새우깡을 개발하다가 죽은 남자의 영혼이 여성 화자 영지의 몸에 담겨 생전의 기억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육체는 없고 오직 정신일 뿐인 남자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 교통사고로 죽었고 영지는 남자가 죽은 그해 태어나 새우깡을 먹으면서 자라났다. 영지의 나이는 이 땅에 새우깡이 뿌리 내리는 시간과 같이 간다. 그것은 또 작가가 살아온 햇수와도 겹친다. 작가는 이 두 화자의 시선을 교차시키면서 남자가 살았을 당시의 세태와 영지가 살아가고 있는 현 시대의 세태를 비교하기도 하고 1971년의 급박했던 정치적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남자가 두고 간 가족을 대면하면서 자신이 생전에 해온 활약을 되새기는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는 삶의 질곡이라는 것과 삶의 진실이라는 측면이 절묘한 상상력을 통해 밝혀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단편으로서는 꽤 긴 분량(60쪽)이지만 단숨에 읽히는 속도감 있는 구성, 발랄한 문체 등을 통해 최재경의 소설적 특징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소설이다.
최재경이 소설에 끌어들이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세태의 작고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소설로 끌어들이는 것과 대별되는 한 극점으로서 작가는 성서와 신화 등으로부터 소재를 취하기도 한다. 이 두 상극적인 능력이 둘 다 작가적인 역량에 속한다면 최재경은 자신의 역량을 상식이나 일반론적인 차원에 가두지 않는다. 가령 「발의 꿈」에서 작가는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동침한 롯과 두 딸의 이야기를 창세기에서 끌어와 소재로 취하고 있다. 여기에다 이국적 정취를 낭만적 동경을 덧입힌 작가는 그 딸이 낳은 아들을 화자로 삼아서 소설을 전개한다. 화자는 어렸을 때 자신을 떠난 누나이자 어머니가 누군지도 모르고 어떤 나이 든 창녀와 동침하게 되고 자신이 동침한 창녀가 바로 자신의 누나이자 어머니임을 알았을 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여자를 목 졸라 죽인다. 그리고 화자는 그 옆에서 몇 날이 밝아올 때까지 「장밋빛 인생」을 부른다. 여기에서 작가는 세태적 한계를 넘어서 영원한 사랑을 향한 낭만적 동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기괴한 플롯의 진행은 한국 소설에서는 낯선 것이긴 하지만 도덕적 잣대를 잠시 접고 볼 때 종횡무진 전개되는 상상력이야말로 작가가 보여주는 소설가다운 역량이라 할 수 있다. 또 「어디 가니?」에서는 일상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쓰곤 하는 <어디 가니>라는 말이 존재론적 의미로, 놀림으로,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여 생사를 가를 수도 있다는 우연성을 보여준다. 또 한편 판에 박힌 상투어를 남용하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 애증과 선악이 교차하는 사건들을 각인시키고 있다. 얼핏 보면 아찔할 정도로 대범한 시도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이와 같은 시도가 있기 이전에 작가는 구체적인 인간관계, 일상들로부터 출발하여 삶의 진실에 접근하는 글쓰기를 강행한 바 있다. 데뷔작 「살아 있는 죽은 여인」은 첩의 딸이라는 사실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자존심 강한 예술가로 살기를 원하는 주인공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주변 세계와의 불화를 다룬 소설이다. 작가는 첩실에게서 사랑하는 딸을 낳아 기르며 늙고 몰락해 가는 남자라는 <아버지>의 형상을 통해 세계의 악마성이 구체화되고 또 그를 부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고뇌하는 예술가, 근엽을 통해 <세계의 악마성이란 예술가에게 대결해야 하면서도 대결할 수 없는 양면적 대상>이라는 심오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을 욕망하는 남자가 매춘의 길로 빠지게 되고 남자의 매춘이란 단순히 <자신을 파는 행위>가 아니라 그것를 통해 자신 또한 즐긴다는 의미에서 <구매권을 판매하는 행위>임을 날카롭게 지적한 「구매를 판매합니다」,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 때문에 남편에게 살해당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사육제의 하루」등의 작품에서 가정 비극적인 소재가 다루어지고 있다. <가정의 풍속과 인정 비화를 통해 삶의 진실에 접근하는 이 같은 방식에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리얼리즘 소설의 출발점>(이인화)을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