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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상)
단군에서 고려까지
남경태
그린비 2001.08.31.
베스트
역사 top20 6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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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발칙한, 망측한, 혹은 화끈한.

목차

제 1부 깨어나는 역사
제 2부 화려한 분열
제 3부 통일의 바람
제 4부 한반도의 단독 정권
제 5부 국제화 시대의 고려
제 6부 표류하는 고려

저자 소개

저자 : 남경태
우스개말로 ‘종합 지식인’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지은이는 3년 전 『종횡무진 동양사』를 발간할 때부터 세계사의 전체적 개요를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겠다는 무모한(?) 욕심을 키웠다. 그래서 1999년에는 688쪽의 ‘짧은’ 분량으로 서양사를 총정리한 『종횡무진 서양사』를 썼으며, 이듬해에는 영국의 저명한 문필가인 줄리어스 노리치가 쓴 『종횡무진 동로마사』를 번역해서 동양과 서양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동유럽과 중동의 중세사를 독자들에게 제시했다. 『종횡무진 한국사』 상·하권은 그 마무리에 해당하는 역작이다. 한국사가 포함되어 있는 만큼, 아마 세계사의 전 부문을 이렇게 한 사람이 일관적인 관점으로 종합 집필한 경우는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할 것이다.
원래 지은이는 뜨거웠던 시대인 80년대에 가장 뜨거웠던 사회과학 출판을 하던 인물이었다. 당시 ‘남상일’이라는 필명으로 그가 번역한 레닌의 『제국주의론』과 마르크스주의 고전들을 영한대역이라는 독특한 기법으로 소개한 『공산당 선언』,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등을 기억하는 386세대는 적지 않을 것이다. 90년대 들어 지은이는 왕성하게 인문 대중서를 집필하고 번역하는 일에 종사했는데(그 중에는 현대철학자 31명을 다룬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이 있다), 지은이 개인적으로도 이 『종횡무진 한국사』는 역사 분야를 마무리하는 작업이며, 앞으로는 그동안 정리한 현실의 역사에다 지성의 역사를 배합하여 일반 대중이 소화할 수 있는 참신한 철학사를 꾸미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현대 물리학에서 말하는 ‘대통일이론(GUT)’이 인문학 분야에서는 지은이와 같은 크로스오버와 퓨전 지식인에게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쪽수확인중 | 629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6829207

책 속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이른바 '민족사'라는 구호 아래 우리 역사를 단일 민족의 역사로 포장하는데 익숙해져 왔다. 그런 관점에서 굳이 그르다고 못박을 수는 없겠지만 어쨋든 그런 색깔의 역사서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 책은 '비주류'를 택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 책은 한민족의 역사라기 보다는 '한반도의 역사'다.

--- p.13

출판사 리뷰

4. 『종횡무진 한국사』가 통쾌한 이유

▶역사의 방정식을 풀 수 있다!!
지은이가 즐겨 쓰는 ‘모든 시사의 배후에는 역사가 있다’라는 말은 이 책을 보면 실감할 수 있게 된다. 각각의 시대도 그렇지만 특히 조선시대는 오늘날 우리 정치 현실과 너무 잘 대입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x항과 y항에 우리에게 익숙한 DJ, JP, HC, YS 등을 넣어 푸는 재미가 이토록 쏠쏠할 수 없다. 그리고 방정식을 풀었을 때, 그 시사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의 통쾌함은 가히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하다. 단순한 공식 암기로 수학을 풀면 ‘응용’은 접어둬야 한다. x와 y의 값이 조금만 바뀌어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해지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원리를 정확히 꿰고 있으면 어떤 문제가 나와도 풀이 과정이 떠오르며 답이 보인다. 시사도 마찬가지다. 역사적 관점 없이 지금의 정치 사회 현실을 설명하는 것은 단순한 공식 암기와 다를 바 없다. 눈에 보이는 시사적 사건들이 왜 생겨났으며, 어떻게 풀면 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지은이가 몇 백 년 전의 역사와 우리의 현대사를 비교해 주는 직접 풀이 해제가 책 속에 있기도 하지만 독자 스스로가 x항과 y항에 현실을 대입해 보면 역사를 배우는 그리고 아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의 ‘해제’를 잠시 살펴 보자.
“믿는 도끼였던 신립의 패전 소식은 조정만이 아니라 민심에도 큰 동요를 가져왔다. 당시 백성들은 선조가 도망치려는 것을 알고 국왕의 앞길을 가로막았을 정도다. 그러나 이처럼 지배자가 국민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도망치는 경우는 350년 뒤 우리 역사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통령 이승만은 수도 서울을 사수하겠노라고 큰소리치다가 개전 사흘 만에 남쪽으로 도망치면서 한강 인도교를 끊어 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한강을 건너던 무수한 국민들이 죽었다. 나중에 보겠지만 이밖에도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은 닮은 점이 많다.”
“임진왜란은 여러 모로 20세기의 한국전쟁과 닮은 데가 많다. 우선 전쟁의 책임자가 아니면서도 한반도가 전장이 되는 바람에 큰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서 그렇고, 개전 직후 공격측의 일방적인 공세, 그리고 반격과 소강 상태, 제3국(중국)의 참전으로 진행된 전쟁의 전개 과정이 그렇다. 게다가 휴전협상 과정은 더더욱 닮았다. 한국전쟁에서 UN과 북한이 휴전 협상의 주체였듯이 임진왜란에서도 조선은 협상에 끼이지 못하고 명나라의 일개 사신과 도요토미가 협상 주체다. 일본측의 요구 중에는 조선의 국토와 왕족까지 포함되어 있는데도 조선은 발언권이 없다(더구나 명나라측의 강화 요구는 일본군이 조선에서 물러나고 도요토미가 사과하는 정도였을 뿐 조선이 입은 막대한 피해는 전혀 배려되지 않았다). 결국 조선은 일본과 명나라가 서로의 힘을 가늠해본 전쟁터만 제공해 주고 만 셈이다. 마치 한국전쟁을 통해 서방 세계와 사회주의 세계가 서로의 힘을 시험했듯이.”

▶역사 인물들의 면면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사극의 폐해 중 하나는 주인공으로 내세운 인물을 강조하다 보니 그의 공과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입장에 서게 되어 많은 대중들에게 그 인물에 대해 왜곡된 사실을 알리게 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명성왕후. 드라마 「명성왕후」는 이미연의 인기에 힘입어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고, 명성왕후에 대한 올바른 조명을 한다는 붐까지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지은이는 “대한제국 자체가 괴뢰 제국인 마당에 황후라는 명칭은 그녀에게 과분한 것이므로, 거품을 제거하고 널리 알려진 민비(閔妃)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게 좋겠다”며 그녀를 민비로 지칭하고, 그녀의 본질을 조선 말의 흐름 속에서 간략하지만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잘 몰랐던 그녀의 추한 면도 덤으로 하나 알게 되는데, 그것은 임오군란으로 잠시 대원군에게 정권을 빼앗긴 민비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여 남편인 고종에게 자신은 죽었다고 발표해 달라며 도망가는 모습이다. 이 책 속에 묘사되어 있는 민비의 모습을 보자.
“이 과정에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분노한 군인들의 타깃이 민씨 정권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민비는 자신이 도망쳐도 추격해 올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그녀는 교활한 꾀를 생각해낸다. 궁성을 떠나면서 남편 고종에게 자기가 죽었다고 발표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미 죽은 사람을 더 이상 뒤쫓지는 않을 테니 단수 높은 잔머리지만 ‘일국의 국모’에게 그런 코미디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실제로 그녀가 장호원에 숨어 있는 동안 대원군은 아들 부부의 터무니없는 사기극을 그대로 믿고 며느리의 장례식을 거행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민비를 숨겨준 민응식이 그 뒤 스타로 떠올랐음은 물론이다.”
“민비 정권의 친일­친청­친러로 이어지는 눈부신(?) 노선 변화에서 철저한 무원칙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정권이 노선을 바꾸었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민비 정권의 변신은 자체 이념에 따른 게 아니라 언제나 적에 대한 반대로 취해졌다는 데서 일관성이 없다. 처음에는 대원군을 반대했기에 친일이었고, 갑신정변을 주도한 급진적 개화파를 반대했기에 친청으로 돌았으며, 일본이 청나라를 제압하자 친러를 택했으니, 그 변화는 어떻게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 보겠다는 안간힘에 다름아니다.”

민비뿐 아니라 이 책에서는 신채호 선생이 ‘1천년내 대사건’이라 칭한 ‘묘청의 난’에 대해서도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신채호 선생은 그 사건이 독립당과 사대당의 대결이라 했지만, 지은이는 묘청이 금에 대항했던 것은 자주성의 발로가 아니라 이미 (지은이의 관점에 따르면) 위만조선 때부터 이어져 온 중화 사대주의의 맥락에서 나온 행동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외에도 우리가 흠잡을 데 없다고만 알고 있던 세종이 그의 위대한 업적과는 별개로 이후 조선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말 ‘악의 씨’를 뿌렸다는 것, 우리 산수의 진경을 다뤘다는 진경산수화와 실학의 배후에는 뿌리깊은 중화사상이 있다는 것 등 실로 지은이가 우리에게 새롭게 알려주는 사실은 무궁무진하다.
이런 모든 ‘사실’들이 단순한 우리 역사 폄하나 ‘이벤트성’ 발언에서 나온 것은 아니며, 진정한 역사 인식이 무엇이며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의 참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3. 『종횡무진 한국사』가 명쾌한 이유

▶우리 민족사의 진정한 모습을 본다!!
지은이도 밝히고 있듯이 “우리 역사에서 민족적 자부심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다. 이 책은 우리 역사를 미화하거나 찬양하기는커녕 불쾌하다 싶을 정도로 우리 역사의 뒤틀린 부분들을 해부해서 낱낱이 밝히고 있으며, 그 왜곡된 부분들이 오늘의 우리에게까지도 면면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집요하게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모든 時事의 배후에는 歷史가 있다). 어찌 보면 우리가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국사’의 정체가 실상 이런 것인가 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예컨대 이 책에서는 단군신화가 실상 우리 조상이 중국에서 넘어온 외래인임을 말해주며, 단군이 선진 농법인 미작 농경술을 한반도에 전함으로써 한반도가 장차 중화세계의 일원이 되는 단초를 열었다고 쓰고 있다.
“단군 시대 이전 한반도인들은 조, 기장, 보리, 콩 등을 먼저 경작했고 그런 작물들을 바탕으로 원시적 농경문명을 일구었다. 그러나 단군은 한반도인들에게 미작 농경을 권하고 퍼뜨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군이 새삼스럽게 토박이들에게서 지배자로 인정받기 어려웠을 것이며, 감히 천제의 후손임을 자처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환웅의 특기도 바로 쌀 농사와 관련된 중요한 요소들(바람과 비와 구름)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 그러나 미작 경영은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에 맞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이후 역사 시대 내내 우리 민족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처음부터 여건에 맞지 않는 미작 농경을 주업으로 삼은 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 단군은 어떻게 되는 걸까? 단군은 우리 민족의 시조일까, 아닐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단군이 그 전부터 한반도에 살고 있던 우리의 ‘진정한 조상들’을 다스린 지배집단일 뿐이라고 보면 그는 우리 민족의 시조가 아니다. 그러나 그 아득한 옛날에 이주민과 원주민의 구별이 그리 뚜렷한 것일 수는 없다. 더욱이 원주민이라고 해도 동질적인 집단이었던 것은 아니며 단일민족의식 같은 건 더더욱이 없었다(단군의 지배를 ‘정복’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한반도에 선진 문명을 전하고 최초의 나라를 세운 단군은 우리 민족의 시조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이렇게 보면 이렇고 저렇게 보면 저렇다. 결국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볼 것이냐, 말 것이냐는 역사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는 이야기다. 오늘날에도 걸핏하면 종교와 역사학계에서 벌어지는 단군을 둘러싼 ‘역사적인 논쟁’ 따위에 이제 더 이상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겠다."
무릇 역사를 바라볼 때 오늘의 관점을 그대로 투영한다면 그것은 요즘 우리가 비난해 마지 않는 ‘역사 왜곡’을 빚을 것이다. 삼국시대의 삼국은 오늘날과 같은 ‘선(線)’ 개념의 강역을 지닌 영토국가가 아니었고 단일민족의식도 거의 없었다. 이렇게 본다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은 굳이 ‘우리 역사’의 틀 안에 가둬놓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은이는 민족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는 ‘한국사’의 관점보다 중화세계와 비중화세계라는 ‘지역사’의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바라볼 것을 권한다. 그렇다면 19세기까지 중화세계에 속했던 한반도 왕조들에 현대적인 국적을 부여하는 지금의 ‘국사관’에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역사학적 쟁점 가운데 하나로 발해가 중국사라든가 한국사라든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더욱이 지은이는 용감하게도(?) 발해가 전혀 고구려의 계승자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발해는 대외적인 주장과는 달리 고구려와는 거의 무관해 보인다. 우선 영토적인 면을 봐도 그렇다. 알다시피 고구려의 영토적 중심은 늘 랴오둥과 한반도 북서부였다. 하지만 발해는 처음부터 랴오둥을 포기했으며, 한반도 북서부에도 전혀 세력을 뻗치지 못했다. 한번도 옛 고구려의 핵심부를 차지한 적이 없는데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좋게 말해서 발해의 외교적 제스처이고 나쁘게 말하면 발해가 고구려의 이름을 팔아먹은 격이다. 또한 주민의 구성으로 봐도 발해는 옛 고구려의 유민들보다는 말갈을 비롯한 만주 거주 민족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일단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영토와 주민에서 발해는 고구려의 계승자가 될 자격을 전혀 갖추지 못한 것이다. …… 건국자인 대조영부터 그랬듯이 발해는 전성기 때조차도 랴오둥을 노리지 않았는데, 그것은 발해의 운명을 위해서는 커다란 판단미스였을 뿐 아니라 당말오대에 북방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분위기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만주를 근거지로 삼는 왕조로서 랴오둥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결국 패망하고 만다는 것은 일찍이 고구려의 역사 전체를 통해서도 분명한 사실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해가 만주에 안주한 것은 곧 북방에서 부는 새로운 바람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발해를 대신해서 세대교체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한 것은 거란이었다.”

▶한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또한 이 책은 지금까지의 통사가 단순한 사건 나열에 그친 데 반해 일관된 사관을 가지고 역사를 서술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이 지은이의 사관은 지금까지 우리 역사를 ‘한민족’이라는 단일 민족의 역사로 바라보는 일반적인 사관에서 벗어난 한국사를 ‘한민족’이 아닌 ‘한반도’의 역사로 바라보는 것이다. 지은이는 극동 아시아를 중화 문명권과 비중화 문명권으로 구분하여 이 지역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데, 신기한 것은 이런 지은이의 관점에 따라 한국사를 바라볼 때 역사의 흐름과 동아시아사의 흐름이 한눈에 너무나 잘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 아래 지은이는 한반도 왕조들이 중국의 한족 왕조에게 사대함으로써 중화 문명권의 일부로 편입되는 흐름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그것으로 동북아의 역사는 중국과 한반도의 중화세계와, 중원 북방과 일본의 비중화세계로 나뉘어 전개되며, 한반도의 왕조들은 중국 한족 왕조들에게서 ‘특별한 오랑캐’의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이 책의 상권, 그러니까 단군부터 고려시대까지는 동북아 문명권을 중화세계가 선도하고 있었으므로 한반도는 그에 따른 ‘특수’를 누렸다. 그러나 이 책의 하권, 즉 조선시대에 이르면 그 역관계가 역전되어 한반도의 역사는 중화세계의 모든 모순이 집약되는 ‘하수구’로 전락한다. 지은이는 조선의 건국자 이성계가 실은 시공자에 불과하고 조선을 사대부 국가로 만들려 한 정도전이 실제 기획자였다고 말한다.
“고려는 비록 유학을 건국 이념으로 채택했지만, 왕실에서도 스스럼없이 승려를 배출될 만큼 불교가 융성한 나라였다. 또한 고려는 비록 과거제를 도입했으나 사대부-관료 체제를 이룩하지 못하고 끝내 귀족 지배 체제에 머물고 말았다. 정도전은 바로 그런 점이 고려 왕조의 치명적인 결함이었다고 생각하고, 조선을 완벽한 사대부 국가로 만들고자 한다. …… 그렇다면 정도전이 제시한 조선 건국의 이념은 이제 분명해진다. 그는 옛 주나라의 예법을 기본 바탕으로 하면서 주희가 체계화한 성리학의 정신에 따라 조선을 유교왕국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아울러 개인적인 동기로, 정도전은 비록 이성계가 국왕이지만 조선의 기획자인 자신이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왕이 상징적 존재로 군림하고 관료가 실무를 담당하는 체제가 가장 바람직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조선은 유교왕국, 바꿔 말해 사대부-관료 체제를 공언하면서 출발한다. 역사상 어느 나라도 이렇듯 처음부터 지배 이데올로기와 체제를 명확히 밝히고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또한 지은이가 조선 역사를 구분하는 방식은 대단히 독특하다. 그는 16세기까지의 조선을 왕국시대로, 17세기까지를 사대부 국가의 시대로, 18세기 영·정조 치세를 왕정복고를 꾀한 시대로, 19세기 세도정치를 왕정복고가 실패한 뒤 사대부 체제가 정점에 달한 결과물로 이해한다. 조선의 사대부가 유교왕국이라는 이중 권력 체제를 악용해서 왕을 허수아비로
1. 『종횡무진 한국사』의 기획 의도와 배경

모 회사 사무실에서 일어났던 실화 한토막. 점심식사 후 두둑해진 배를 두드리며 사원 대여섯이 모여 전날 방영되었던 「태조 왕건」과 오늘 방영될 「여인천하」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야기는 고려 초기와 조선 중종대를 지나 종횡무진 번져나가더니 돌연 병자호란에 이르렀고, 사람들은 병자호란이 고려 시대 일이냐 조선 시대 일이냐로 의견이 갈려 때 아닌 팽팽한 역사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사극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이 문정왕후와 정난정, 박술희와 신숭겸을 알게 되었으며, 역사를 ‘재미있어’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지식과 재미는 참으로 한계가 많아 반쪽 혹은 반의 반쪽도 온전한 역사의 모습을 전달하지 못한다. 병자호란이 어느 시대의 일인지, 김유신이 위세를 떨쳤던 신라가 고려시대 전의 나라인지 후의 나라인지, 을지문덕과 강감찬은 어느 시대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다음의 두 가지 면에 대한 반증이다. 첫째, 역사가 재미있다고 할 때 그 재미란 역사의 어느 한 사건, 혹은 어느 한 위인의 업적을 말하는 것일 뿐, 그가 우리 역사 전체에서 어느 시대의 인물인지 그 사건이 어느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었는지에 대한 재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외울 것만 많았던 우리의 국사 수업은 우리 머릿속에 사건과 사람 이름만 남겼다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의 안타까운 현실과 ‘사극을 보는 것처럼 재미있게 한국사를 하나의 흐름을 갖고 볼 수 있다면’이라는 소망 속에서 『종횡무진 한국사』는 기획되었고, 쓰여졌던 것이다. ‘재미’와 ‘흐름’에 충실한 한국사를 만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병자호란이 왜 조선시대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왜 문정왕후가 양아치 세상을 만들었을 뿐인지, 민비와 대원군 대립의 본질과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해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된다.



2. 『종횡무진 한국사』가 유쾌한 이유

▶국사 시간에 배웠던 인물과 사건이 제대로 짜맞춰진다
이 책은 요즘 유행하는 테마사(역사를 조각내서 장면들을 추스린 책)도 아니고, 정식 역사서에는 없는 역사 속의 특별한 일화나 야사를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는 책과도 거리가 멀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지은이가 일관적인 사관으로 한국사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통사(通史)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접하는 독자는 일단 이름은 들어 알고 있는 그 수많은 역사상의 사건들이 마치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한국사의 전체적 흐름 속에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는 데 놀랄 것이다. 역사의 모든 구슬들이 한치의 빈틈도 없이 정교하게 꿰어맞춰져 있는 데서 독자는 역사적 필연성이라는 게 결코 역사학자들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님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현대적인 서술로 역사를 썼다!!
이 책의 문장들은 엄숙주의에 물든 기존의 역사서들과는 전혀 달리 톡톡 튀는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서술 방식은 읽는 재미와 적확한 이해를 더해준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신라와 후백제를 접수한 왕건은 여기서 ‘러키보이’로 표현되고, 조선 명종 때의 권신인 윤원형은 ‘양아치’라는 별명을 얻으며, 동학이 짧은 기간에 포교에 성공한 일을 분석할 땐 동학의 ‘마케팅 포인트’라는 표현이 쓰인다.
“936년 가을 왕건은 마지막 전투를 위해 무려 10만이 넘는 대군을 거느리고 신검이 주둔하고 있는 선산으로 갔는데, 그건 동네 싸움에 탱크를 몰고 간 격이었다. 별다른 접전 한 번 없이 후백제의 잔당이 항복하면서 러키보이 왕건은 삼국통일을 이루고, 역사상 최초의 완전한 한반도 단독 왕조 시대를 열었다.”
“잔머리를 굴린 대가로 윤원형은 일약 공신의 지위에 올랐다. 양아치에게 공권력이 주어지면 그걸로 어떤 일을 할까? 우선 패거리를 만들고, 평소에 꼽게 보아둔 다른 양아치들을 없애고, 나이트클럽 영업권을 독점하고, 검은 돈을 불리고, 거들먹거리며 살고자 할 게다. 과연 권력을 장악한 윤원형은 500년 뒤의 ‘조폭’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행동한다. 심복들을 거느리고, 평소에 원한을 맺은 자들을 숙청하고, 온갖 인사 청탁과 뇌물을 받아 배를 불리고, 남의 토지를 마음대로 빼앗고, 조정 대신들을 수족처럼 부린다.”

▶도판과 각주만으로도 읽는 재미가 있다!!
상·하 두 권에 실린 200여 장의 도판은 결코 책을 장식하기 위한 눈요깃감이 아니다. 도판의 선택에도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소를 최우선으로 고려했을 뿐 아니라, 지은이는 평범한 왕릉 사진 하나에도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재미있는 사연을 주렁주렁 걸어놓고 있다. 사진과 캡션만 보아도 지은이의 비판적 역사관과 재기 넘치는 서술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을 정도다. 예를 들어 김수로왕과 허황옥 부부의 사진에는 ‘최초의 외국인 부부’라는 제목으로 캡션이 달려 있으며, 정도전과 이성계 사진의 캡션 제목은 ‘조선 카페의 얼굴마담과 실제 오너’이다.
또한 두 권의 책에 수록된 400개에 가까운 주(註)도 역시 그냥 책을 진행시키기 위한 편의적인 수단이 아니다. 우선 모든 주는 인용주가 아닌 내용주이며, 지은이는 이 주를 문맥상 본문에 수록되지 못한 역사적 내용들을 서술하는 창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왕정복고 시대인 영조의 치세에 관해서는 이런 주가 있다.
“참고로, 영조의 치세에 해당하는 18세기에 유럽 세계는 절대주의가 절정에 달해 있었다. 이 시기 유럽 국가들의 정치 체제를 흔히 절대왕정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절대’라는 수식어에 현혹될 필요는 없다. 동양식 전제 왕국과 비교한다면 절대왕정조차 별로 절대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래 유럽의 왕국들은 중세 봉건시대에 처음 등장하지만, 중세가 끝날 때까지 영토국가도 아니었고 왕권도 그다지 강하지 못했다. 종교개혁 이후 영토국가의 개념이 생겨나면서 각국의 군주들이 강력한 왕권을 가지게 되었기에 전과는 다른 체제라는 의미에서 절대왕정이라 부른 것일 뿐이다. 그에 비해 동양식 왕국들은 고대부터 중국의 천자는 물론이고 주변국들의 왕들도 근대 유럽의 절대왕권을 능가하는 강력한 왕권을 지니고 있었다.”

추천평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맹목적 추종의 결과물이었는지, 아니면 민족해방투쟁의 자랑스런 산물이었는지 알 수는 없어도 우리 문학과 역사에는 '민족'과 '나라'의 규정이 너무도 강하다. 사실 문학이나 역사에 'national'을 붙이고 다니는 나라들은 흔하지 않다. 언젠가 국문학을 하는 동료로부터 서구에선 예술장르인 문학이 우리나라에서는 '나라와 민족'의 '과학', 즉 국학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역사학을 하는 동료가 있었다면 그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학자들이 과거 자료를 뒤지고 정리할 때 그것은 단순한 '역사(history)'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라는 실체―이것만큼 초역사적이고 비역사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의 흥망성쇄를 다룬 '국사(national history)'가 되고 만다.

이 책의 저자인 남경태가 자신의 한국사 이야기를 한반도 지역의 '지역사'라고 말했을 때,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문학은 항상 국문학이고 역사는 항상 국사인 현실을 비판한다. 확실히 그는 민족적 자긍심이 주는 위안을 포기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더 강한 시력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사학계가 일본의 역사 침략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는 때임에도 그는 천연덕스럽게 신라의 석탈해나 가야의 김수로가 지금의 일본 지역 출신이 아닐까 추측한다. 저자의 의도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면 먼저 그 의심이 '피끓는 민족성'에서 발원한 것은 아닌지부터 살피는 것이 좋을 듯 싶다. "한국도 일본도 없는 시대를 '고대 한일 관계'라고 표현하는 것부터 고쳐야겠다"는 저자의 말이면 그 의도도 충분히 드러난 게 아닌가. 근대 민족의 영광을 찬미하기 위해 고대부터 등장하는 모든 부족들과 사물들을 못 살게 구는 점에서 볼 때, 나는 "일본 학자들이 주장하는 '임나경영설'이나 국내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일본경영설' 모두 극우적 역사관이라는 점에 전혀 다를 바 없다"는 저자의 판단에 동의한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참신함말고도 이 책은 많은 미덕을 갖추고 있다. 저자인 남경태는 종종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 사이에 독자적인 영토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대개 그 영토를 지향하는 책들은 전공자들에겐 역사를 공상 소설로 만들었다고 비난받고, 대중들에게는 현학적이라고 비난받는다. 그러나 이 책을 비롯해서 그의 '종횡무진 3부작'(『종횡무진 서양사』, 『종횡무진 동양사』, 『종횡무진 한국사』)은 전공자들에게는 경쾌한 문투에 대한 부러움을 느끼게 하고, 대중들에게는 해박한 역사 지식에 대한 부러움을 느끼게 한다. 이 정도면 그가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 사이에 독자적 영토가 있다는 믿음을 가질 만하다는 생각이다.

『종횡무진 서양사』와 『종횡무진 동양사』의 성과가 곳곳에 반영되어 있는 점도 이 책의 큰 미덕이다. 본문 옆에 있는 주석들을 통해 동서양의 여러 신화나 제도, 문화들이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는 때때로 동양사나 서양사에 관한 지식을 역사 해석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가령 신라에서 사위가 왕위를 잇는 것에 대해, 아들 상속보다 사위 상속이 많았던 중동 유목 민족들의 역사를 환기하며, 신라 문명이 중국의 농경문명보다 중국 북부나 만주의 유목 문명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을 펴기도 한다.
어떻든 이로써 그는 2천쪽에 이르는 역사 오딧세이를 마쳤다. 그는 정말로 시리즈에 붙은 제목처럼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나는 양이 질로 전화된다는 헛소리를 믿지 않지만 저자가 다룬 시간과 공간의 절대적 양에 대해서는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그가 내놓은 막대한 양에 대해서 좀더 깊이 있는 질적 평가가 나오기를 바란다. 물론 그 평가는 저널리즘이나 아카데미즘을 고수하는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제 영토가 아닌 곳에서 작품들은 항상 오해되기 때문이다. 남경태 작품의 합당한 영토는 그가 명명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밝혔듯이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사이에 있다.

--- 고병권(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연구원)
역사는 과연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 보여주는 것일까? 그렇다면 과연 과거를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평가는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 마땅하다. 역사는 보는 이의 혹은 서술하는 이의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나라 역사학자나 전문 연구자들은 역사를 서술하는 데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특히 고대사나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제약을 더 많이 느낀다. 고대사 부분은 실증적인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근현대사는 이데올로기에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석·박사 논문의 70퍼센트 이상이 상대적으로 자료도 풍부하고 이데올로기 제약도 덜한 고려·조선시대에 몰려 있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어차피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사 전체에 대한 이해력도 그러하거니와 현재적 관점에서도 역사를 해석하는 데는 상상력이 풍부해야 하고 역사교육은 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종횡무진 한국사』는 이런 실험을 하고 있는 대안적 역사서이다. 통사로서 한국사 전체를 관통하면서 가설을 새롭게 세워보기도 한다. 커다란 밑그림을 그려내는 동시에 구성의 진술을 요즘 세대의 감성에 맞는 문체로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만,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횡무진 전개되는 그런 이야기가 역사라고 할 때 이 책에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이 땅에 붙박고 살아온 민중들의 생동하는 삶, 새로운 환경을 개척하기 위한 끊임없는 충동, 멀었지만 가까웠던 이웃 나라의 민중들과 엉키고 설킨 삶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그려지질 못한 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갖는 큰 미덕인 역사적 상상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우리나라에 『종횡무진 한국사』와 같은 좀더 상상력을 자극하는 실험적인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고 바란다. 창조력은 상상력에서 솟아나는 법이므로.

--- 김진균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
무릇 인문학의 울타리 안에 속한 학문이라면 명백한 사실에도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게 마련이다. 그 가운데 역사는 특히 그런 관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학문이다. 역사 서술의 중심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익히 모두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은 그 의미가 천변만화한다. 일례로 1894년의 동학 농민운동도 혹자는 동학농민운동이라 하고 또 혹자는 갑오농민전쟁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동학난이라 한다. 이렇게 사건에 이름 하나 붙이는 데도 서술하는 이의 역사적 관점,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이데올로기의 정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역사 서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바로 역사적 안목이며, 거기에 하나를 더 덧붙인다면 상상력이다. 그 무수한 상상력들은 서로 부딪치고 충동하면서 하나의 관을 형성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다. 그런데 시험 위주의 우리 국사 공부는 상상력을 철저히 말살하고 오직 하나의 답만을 끊임없이 강요한다. 과거의 사실만 있을 뿐 역사는 없는 셈이다. 일본 교과서 역사 왜곡 문제로 나라 안이 온통 시끄러울 때도 정작 우리 국사 교과서에 대한 진지한 검토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웠던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젊은 학자들이 새로운 자료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뤄내는 성과들이 그때그때 교과서에 반영되어야 한다. 우리 교과서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도 왜곡이라면 왜곡이다. 다양한 관점과 우리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단순한 사실의 나열보다 더 중요한 교과서의 몫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종횡무진 한국사>에서 보여주고 있는 역사적 관점과 발랄한 상상력은 매우 소중하다 할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핏줄로서의 '단일 민족의 역사'에만 초점을 맞춰온 우리의 시각을 전체 동아시아 문명의 유기적 관계 속으로 옮겨낸 점은 이 책이 갖는 커다란 미독이다. 일독을 권한다.

--- 오세철 교수(연세대 경영학)
관점에 대하여 : 지금까지 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적어도 두 가지 기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하나는 일제가 뿌려놓고 친일학자들이 가꿔놓은 '식민사학'이고, 다른 하나는 그에 대항하는 무기로서의 '민족사학'입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국사학계의 중요한 쟁점들은 이 두 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어느 한쪽을 편들어야 할 것 같은 일종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점에서 이 책은 그와는 전혀 다른 신선한 관점에서 국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계사적 보편성이랄까 객관적 근거와 정황에 기초하여 우리 역사를 가감 없이 보려고 하는 점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그것은 '민족사학'이 빠질 수 있는 '관념적 허구'와 '주관주의'의 함정을 극복하면서,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우리 역사를 차분한 심정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으로 여겨집니다. 그것은 아마도 서양사와 동양사를 종횡무진으로 넘나든 저자의 독특한 학문적(?) 이력 덕분에 가능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기존의 '민족사학'의 관점에 머물러 있는 독자들과는 적지 않은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적불명의 역사'라느니 '식민사학의 아류'라느니 하는 비난이 따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서술은 매우 예민한 부분으로, '한국사의 정체성' 논쟁에서 중요한 핵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사료가 턱없이 부족하고 일제 식민사학의 정치적 의도가 과도하게 집중됨으로 해서, 이 부분에 대한 논쟁은 '이성적 논쟁'보다는 '감성적 충돌'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 점에서,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절대적인 요인으로 보는 이 책의 관점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고대사의 앞부분을 '민족의 역사'로 보지 않고 '지역의 역사'로 보는 '발상의 전환'은 참신한 시도라고 여겨집니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채 정립되지도 못한 시대의 역사를 근대의 정신적 소산인 '민족주의'의 관점으로 억지로 꿰어 맞추다보니,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점에서 이 책의 관점은 객관적인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역사적 상상력에 대하여 : 이 점 역시 이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국사에 관한 사료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어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보니, 학자들은 '모험'보다는 '안전'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 결과, 고대와 중세 이전의 시대에 대해서는 '용기 있는 가설'이 사실상 방기되어 온 느낌이고, 상대적으로 사료가 풍부한 중세와 근세(고려-조선) 부분에만 연구가 집중되었습니다. 이런 불균형 현상은 한국사에 대한 전체적인 파악을 가로막았고, 결국 '거시(巨視)의 역사'가 없는 '미시(微視)의 역사'가 판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름대로의 관점을 가지고 '통사적(通史的)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많은 부분에서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사료의 부족을 메우려고 노력했을 뿐 아니라, 그 상상력은 소설 같은 '허구적 상상력'이라기보다는 객관적 정황에 기초한 '사실적 상상력'에 근접해 있다고 보입니다. 기존의 통설과는 달리, 고구려를 '만주벌판을 호령한 동북아시아의 패자(!)'가 아니라 '중국과 갈등하다가 한반도에 정착한 국가'로 본 것이나, 신라를 '이주민 연합국가'로 본 것, 조선을 '유교적 사대부 국가'로 규정하고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갈등을 기본 축으로 본 것 등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 문체에 대하여 : 재기발랄하고 톡톡 튀는 구어체 표현들이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생동감을 주고, 무미건조하기 쉬운 역사 읽기에 색다른 재미를 줍니다. 신세대들이 많이 쓰는 감각적인 유행어들을 과감하게 끌어들여 젊은 독자층이 더 쉽게 접근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일부 대목에서는 그것이 약간 넘쳐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희화화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듭니다.

* 아쉬운 점에 대하여 : 관점의 문제에서 '좀 아쉬운' 점도 있는데, 주된 흐름이 정치·외교사를 중심으로 서술되다 보니, 그러한 정치적 현상의 이면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경제의 문제, 그것에서 기인하는 민중의 삶과 계급의 문제가 빠져 있다는 점입니다.

--- 송원재 (영등포여고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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