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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은 마치 생을 바꾸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며칠, 혹은 몇 달이 지난 뒤에 우연히 여권을 보게 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여권에 기재된 바로 그 사람이었을 때는 언제였을까. 물론 타지를 떠돌 때였다. 그럼 집에 있는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그는 영원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만간 그는 다시 공항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공항에서 우화는 반복된다. 결국 우리는 무례한 타지 사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덧없이 반복되는 존재일 뿐이다.
- 김연수, 「역, 휴게소, 공항」 중에서 방 속에 있다는 것은 바닥과 천장을 포함한 여섯 개의 벽에 갇혀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방은 고립과 유폐의 공간처럼 여겨지지만, 바로 그 점으로 인해 우리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해준다. 이처럼 자신의 한계뿐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한계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그 벽을 넘어 외부와 소통하는 계기를 허락해준다. 이 방의 벽은 옆방의 벽과 등을 마주대고 있으며, 창문이나 문은 그 관계의 열고 닫음을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창문이 없는 방은 눈을 잃어버린 사람과도 같다. 군집과 고립이 동시에 가능할 수 있는 지혜는 이미 말벌에게서 배운 바가 있다. 말벌집의 내부가 육각의 방들로 이루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 나희덕, 「六角의 房」 중에서 강릉은 한국사회에서 가장자리였다. 한쪽 귀퉁이였다. 버스를 타면 반드시 한번쯤 멀미를 하게 만드는 대관령은 언제든 우리가 변방에 갇혀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대관령의 반대편엔 경포바다가 있었다. 경포바다는 이 변방의 폐색전선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불어넣어주었다. 나무 결에 스며 있는 햇볕의 무늬처럼 내 뼈 속엔 경포의 바닷바람이 배어 있다. - 조선희, 「경포바다」 중에서 다락방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어 상상을 하기에는 딱 좋다. 천장은 신문지로 도배가 되어 있다. 일종의 ‘파피에 콜레’인 셈이다. 그곳에는 평소에는 같이 있지 않을 물건들이 어지럽게 엉켜 있다. 물건은 보통 그것이 사용되는 맥락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이 연상은 거의 강제적이다. 하지만 용도를 잃어버린 물건들은 다르다. 그것들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물건들과 자유롭게 교제를 할 수 있다. 여기엔 모종의 초현실주의가 있다. - 진중권, 「어린이 정경」 중에서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라는 시조 구절은 맞지 않다. 인걸이 간 데 없는 그 산천은 이미 의구하지 않다. 그건 이미 다른 산천이다. 한 공간을 살아가던 존재들이 사라지면 그 공간은 사라진다. 끝없이 생멸하는 공간들. 하나뿐인 지구라지만 이 지구를 채우고 비우는 존재들의 켜만큼 지구는 무수하다.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났던 모든 생명에 저마다의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걸까? 그 켜켜의 공간에 있는 것이다. - 황인숙, 「자유고양이의 공간을 찾아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