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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2

요시카와 고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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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jiro Yoshikawa,よしかわ こうじろう,吉川 幸次郞

현대 일본의 중국학을 주도한 세계적인 중국문학자로, 자字는 선지善之이다. 효고현 고베시에서 태어나, 1926년 교토제국대학 문학부에 입학했다. 1928∼31년 중국에 유학하여 고증학을 배우고 귀국해 동방문화연구소 연구원이 되었고, 1947년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교토대학 교수가 되었다. 1962~63년 컬럼비아대학 객원교수를 지내고, 1964년 일본예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1967년에 정년퇴임했다. 고금의 문헌에 해박하고 고증에 뛰어났으며, 직관력이 남다르고 문체가 평이하면서도 아름답다는 평을 받았다. 프랑스 학사원이 세계적인 동양학자에게 주는 스타니슬라스 줄리앙 상을 받을 만큼
현대 일본의 중국학을 주도한 세계적인 중국문학자로, 자字는 선지善之이다. 효고현 고베시에서 태어나, 1926년 교토제국대학 문학부에 입학했다. 1928∼31년 중국에 유학하여 고증학을 배우고 귀국해 동방문화연구소 연구원이 되었고, 1947년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교토대학 교수가 되었다. 1962~63년 컬럼비아대학 객원교수를 지내고, 1964년 일본예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1967년에 정년퇴임했다. 고금의 문헌에 해박하고 고증에 뛰어났으며, 직관력이 남다르고 문체가 평이하면서도 아름답다는 평을 받았다. 프랑스 학사원이 세계적인 동양학자에게 주는 스타니슬라스 줄리앙 상을 받을 만큼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저서로는 『요시카와 고지로 전집』(전28권), 『두보시주杜甫詩註』(전5책), 『요시카와 고지로 유고집』(전3권) 등이 있으며, 국내에는 『요시카와 고지로의 공자와 논어』(조영렬 옮김, 뿌리와이파리), 『당시 읽기』(심경호 옮김, 창비), 『송시개설』(호승희 옮김, 동문선), 『한무제』(이목 옮김, 천지인) 등이 번역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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曺榮烈

1969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다. 1995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한림대학교 부설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 2011년 고려대학교대학원 중일어문학과 일본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주요 역서로 『새로 읽는 논어』(2016), 『시를 쓴다는 것』(2015), 『독서의 학』(2014), 『장자, 닭이 되어 때를 알려라』(2010), 『시절을 슬퍼하여 꽃도 눈물 흘리고 : 요시카와 고지로의 두보 강의』(200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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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1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74쪽 | 548g | 153*224*30mm
ISBN13
9788990024589

출판사 리뷰

공자의 정치 중시
공자의 정치 중시, 그것은 『논어』에서 가장 잘 알 수 있다. 제자 자로가 군자의 자격에 대해 묻자, 공자는 도덕적 완성, 그것이 군자, 즉 신사다운 자의 첫째 자격이라고 대답한다. 공자의 대답은 강렬하다.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해라. 몸을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일은 요순조차 오히려 어렵게 여기셨다!” 즉, 위정자로서 모든 인민을 안정시켜라. 그것이 군자, 즉 훌륭한 인간의 궁극적인 임무라는 말이다. 더구나 그것은 요순 같은 위대한 위정자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고 부언하여, 그것이 모든 인간에게 걸 수 있는 기대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지만, 아울러 인간의 임무가 정치에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음도 분명하다.
그런데 인간의 애정은 인간이라는 상대가 있은 다음에야 성립되는 것이다. 되도록 많은 상대에게 애정을 베푸는 방법으로서 정치는 확실히 유력한 방법이다. 어지럽기 짝이 없는 시대라면, 은둔해서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부득이한 일일 것이다. 아니, 그러한 시절에 부귀를 누리는 것은 도리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평온한 시대에 가난뱅이로 살면서 출세하지 못하는 것도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논어』 여기저기에 정치에 관한 말이 숱하게 보이는 것은 정치에 대한 공자의 이 같은 관심의 결과이다. 그런데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는 어떠한 말들보다 공자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은 공자의 평생의 사적(事迹)이라고 요시카와는 말한다. 공자라는 인물은 무엇보다도 우선 학자였고, 동시에 정치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공자는 조국 노나라를 떠나 56세부터 69세까지 14년간 제자들을 이끌고 산동(山東), 하남(河南)의 여러 제후국을 방문했다. 그 경로는 사마천의 『사기』 ?공자세가?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것은 “외뿔소도 아니고 범도 아닌데 저 광야에 떠돈다.”라고 공자 자신도 말한 것처럼, 황량한 방랑이었다. 도중에 위험에 처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정(鄭)나라 성문 밖에서 제자들과 떨어져 혼자 서 있을 때의 공자는 상갓집 개와 같았다고 ?공자세가?는 전한다.

공자의 학문하는 법
공자에 따르면, 소박하고 우직한 성실함만으로는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 학문을 해야만 인간은 모름지기 인간이 된다. 인간의 임무는 ‘인(仁)’ 즉 애정의 확충에 있다. 또한 인간은 모두 그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학문의 단련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애정은 맹목이어서는 안 된다.
공자는 학문의 방법, 즉 인간의 법칙을 아는 방법으로서 오직 사색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보았다. 내적인 사색에 잠기기 전에 우선 눈을 밖으로 넓혀서, 인간의 종종상(種種相)을 알아야만 한다. “내 일찍이 종일 먹지도 않고 온 밤을 꼬박 새워가며 생각해 보았다. 유익함이 없었다. 배우는 것만 못하였다.”(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
그렇다고 공자가 사색의 가치를 경시한 것은 아니다.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다.”(學而不思則罔.) 사색을 동반하지 않는 공부, 그것은 다만 수박 겉핥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뒤이어 다시 말한다.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思而不學則殆.) 사색만 하고 지식을 쌓지 않으면 반드시 위험에 빠진다. 행동의 전제로서 반드시 지식을 쌓아야 한다. “대저 알지도 못하면서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것이 없다.”(蓋有不知而作之者. 我無是也.)

교양이라는 것
공자는 인간의 교양을 이렇게 결론짓는다. “시에서 흥하고, 예에서 서며, 음악에서 완성된다.” 그 처음은 시, 그 정립(定立)은 예, 그 완성은 음악, 그것이 인간의 교양 과정이다. 그리고 이들 교양을 쌓아서 단련되고 균형 잡힌 영활(靈活)한 두뇌, 그것을 일컫는 언어가 ‘지(知)’였다. ‘지’는 ‘인(仁)’과 함께 『논어』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화제이다. 그런데 예 즉 평형(平衡)을 얻은 행위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공손함은 감정과 육체의 낭비를 낳고, 신중함은 비굴함을 낳고, 용기는 파괴를 낳고, 정의감은 억지를 낳는다.
요컨대 자각된 것으로는 넓은 교양, 자각되지 않은 것으로는 교양을 획득하기 위해 단련된 섬세한 두뇌, 그것을 통해서만 인간은 그 임무이자 본능인 애정을 올바로 행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공자의 가르침이라고 요시카와는 강조한다.
공자의 사려 깊은 면모
공자가 가장 싫어한 것, 그것은 사려가 뒷받침되지 않은 행동이었다. 공자는 자로의 용기를 평하여 포호빙하(暴虎馮河), 즉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큰 강을 도보로 건너려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일에 임해서 두려워하고, 꾀하기를 좋아해서 일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공자가 사랑하는 것이었다.
공자의 사려 깊은 면모는 일상의 자잘한 행위에서 드러났다. 상을 당해 복하고 있는 사람 곁에서는 언제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식사했다. 다른 집에 조문을 간 날에는 돌아와서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렇지 않을 때는 더러 노래 모임을 열기도 했는데, 마음에 든 노래가 있으면 한 번 더 부르게 하여 멜로디를 숙지한 다음, 자기도 따라 불렀다. 낚시도 했지만, 냇물을 가로막고 물고기를 잡는 일은 없었다. 새를 잡을 때는 둥지에 있는 놈은 피했다. 맹인 악사가 만나러 왔을 때는 계단에 이르면 계단, 마루에 이르면 마루라고 일러주고, 자리에 앉고 나면 저기에 있는 것은 누구, 여기에 있는 것은 누구라고 일일이 알려주었다. 관청에서 돌아오고 나서 관청 마구간에 불이 났는데, 사람이 다쳤는지만 묻고 말의 피해에 관해서는 묻지 않았다.

문화주의의 입장
이렇게 지식, 사려, 교양을 중시하는 공자의 입장, 그것은 문화주의의 입장이라 불러야 할 것이라고 요시카와는 말한다. 또한 공자의 입장은 분명 소박주의(素朴主義)는 아니라고 말한다. 공자가 인간은 선의의 동물이고 애정의 동물임을 믿었다는 것은, 동시에 인간은 문명의 동물임을 믿었다는 말이다. 인간의 선의, 그것은 늘 인간을 문명의 방향으로 향하도록 존재하며 발동한다. 인간이 있는 곳, 거기에는 반드시 선의가 있고, 선의가 있는 곳, 거기에는 반드시 문명이 있다는 것이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
공자가 살았던 시대, 당시의 소용돌이치는 살육과 음모는 제나라, 위나라만의 일이 아니었다.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를 비롯하여, 중원 어디에 있는 나라든 마찬가지였다. 중원의 나라들을 위협하는 신흥세력으로 발흥하고 있던 남방 양자강 유역의 나라들, 즉 초(楚), 오(吳), 월(越) 등에서는 신흥 강국의 면모를 죄악 쪽에서도 보여주려는 듯,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살육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오왕 요(僚)는 엄중한 경계를 세운 보람도 없이, 연석에 오른 물고기 찜의 뱃속에 감추어진 검을 눈치 채지 못하는 바람에 자객의 손에 허무하게 쓰러졌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초나라 대부의 아들 오자서(伍子胥)는 아버지와 형을 죽인 초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시체에 채찍을 휘둘렀다. 이렇듯 『춘추좌씨전』은 갈피갈피마다 피로 물들지 않은 곳이 없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인간이 선의의 동물임을 강조하는 『논어』의 말들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경이로 다가온다고 요시카와는 말한다. 또한 『논어』에 나오는 말들이 늘 평정(平靜)한 표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역시 놀랍다고 강조한다.

절망하는 공자
공자보다 더 숭고함을 느끼게 하는 성자는 더러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자보다 더 강인함을 느끼게 하는 성자는 아마도 달리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요시카와는 말한다. 그렇다 해도 사람들은 종종 의문을 품을 것이다. 인간을 선의의 동물이라 여긴 공자의 확신은 그의 시대에도 이미 자주 배신당했다. 공자는 절망을 느끼는 일이 없었을까?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 대신, 인간이 가진 한계가 보다 강하게 그를 사로잡은 적은 없었을까?
절망은 공자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봉황이 날아오지 않는다. 황하에서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내 끝인가 보다!”(鳳鳥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 봉황이 날아오고, 예언서가 황하에서 나오는 것, 자연이 인간에게 내리는 축복이라 전해지는 상서로운 조짐은 어디까지나 자기 시대의 것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공자는 자신이 이상으로 여기는 시대의 도래를, 적어도 자신이 생존하는 시기에는 단념하고 체념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 지닌 온갖 한계를 알면서도, 끝내 인간이 선의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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