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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수 바람
2. 능소화 3.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4. 그 동백에 울다 5. 비파나무 그늘 아래 6. 잉카의 여인 7. 바람꽃 8. 이별 9. 황색 오르페우스 10. 들바람 11. 가을 나그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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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만져 본 적이 있으세요?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요. 그저 흔들리는 나뭇가지나 펄럭거리는 빨래 따위를 보고 그 존재를 느낄 뿐입니다. 소리도 눈에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지만 바람의 존재를 알리는 징표이기는 하지요. 소리는 바람에 비해 보다 분명하게 자신을 주장하는 편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소리라는 놈은 바람을 구성하는 공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바람은 대기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죽은 이들의 혼이 뭉쳐서 이루어진 게 아닐까 자주 생각을 해요. 땅 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죽고 죽어간, 산 자들의 숫자보다 몇천 배 몇만 배나 더 많을 그 혼들이 대기의 바람으로 변한 게 아닐까요. 물체의 진동이 공기를 떨게 만들어 소리가 나온다는 사실이야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지만, 진동이라는 것조차 공기가 없는 진공 상태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잖아요? 바람이라는 게 그 공기의 움직임이 아닌가요? 그러고 보면 그 혼령들이 없으면, 소리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pp.143~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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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다 된 나이에 등단한 조용호의 소설은 여러 면에서 김소진의 소설과 비교된다, 김소진이 아버지를 부정하지만 결국은 아버지를 승계하면서 민중의 일원이 되었다면, 조용호는 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그 기질을 계승하여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그가 늦깎이로 등단하여 세상을 향해 소설가로서의 첫 존재를 알리는 이 작품집에는 그가 소설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그것은 시대와의 불화를 가슴에 묻고 아직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존재 증명, 성인이 되면서 애써 무시했던 아버지에 대한 추모, 세상을 떠도는 사람들의 서글픈 가슴의 위무,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 마음의 떠돌이를 문자 행위로 붙들어매기 등일 것이다. 그는 황혼에서 어슬렁거리며 만가를 웅얼거리고 있다. 이 소설집은 우울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선험적 낭만주의자에게 작은 위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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