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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아내 폭력" : 가정 안의 폭력인가, 가정에 대한 폭력인가? "아내 폭력"의 역사와 실태 여성의 경험과 명명의 문제 : "아내 폭력" 용어 2. 연구자, 피해자, 운동가로서의 나 증언, 말하기의 고통과 의심받는 고통 연구 과정에서의 윤리 무엇이 "객관적"인가 폭력당하는 아내들을 만나면서 다시 읽는 기존 연구들 3. "아내 폭력", 여성의 눈으로 볼 때 잘 보인다 가정, 치외 법권 지대 결혼은 폭력 허가증 4. 남편 역할 수행 수단으로서의 폭력 아내 훈육의 "권리와 의무" 아내와의 관계 유지 방법 5. 아내의 "도리"로서의 폭력의 수용 아내에게는 불가항력인 남편의 착취 상대화를 통한 폭력의 사소화 사족 유지를 위한 폭력의 치환 6. 아내 정체성과 가족 정치학 폭력 구조의 재생산 아내 역할 강화와 폭력의 재생산 폭력 대응 과정의 아내 정체성 갈등과 회귀 저항을 둘러싼 가족 정치학과 폭력의 재생산 아내 역할로서 탈출 : 남편을 위한, 남편에 의한 이혼 7. 가족 해체의 문제에서 여성 인권의 문제로 부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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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제 생일이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지난밤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지요 그리고 그는 잔인한 말들을 많이 해서 제 가슴을 아주 아프게 했어요 그가 미안해 하는 것도, 말한 그대로를 뜻하기 않는다는 것도 전 알아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우리의 결혼 기념일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요 지난밤 그는 저를 밀어붙이고는 제 목을 조르기 시작했어요 마치 악몽 같았어요 정말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지요 온몸이 아프고 멍 투성이가 되어 아침에 깼어요 그가 틀림없이 미안해 할 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그런데 어머니날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지난밤 그는 저를 또 두드려 팼지요 그런데 그정의 어떤 때보다 훨씬 더 심했어요 제가 그를 떠나면 저는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아이들을 돌보죠? 돈은 어떻게 하구요? 저는 그가 무서운데 떠나기도 두려워요 그렇지만 그는 틀림없이 미안해 할 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어요 바로 제 장례식말이었거든요 지난밤 그는 드디어 저를 죽였지요 저를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했지요 제가 좀더 용기를 갖고 힘을 내서 그를 떠났더라면 저는 아마 오늘 꽃을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 --- 「한국 여성의 전화 연합」에 보내온 이메일에서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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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아내들에게 남편의 폭력과 성관계는 별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시 거주 여성 1,500명 중 92.7%가 아내가 남편의 기분에 맞추어 "성행위"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기혼 여성의 25.2%가 아내 강간을 당한 경험이 있고 이 중 8.7%는 강간 직전 남편에게 구타당했다(한국 형사 정책 연구원, 1998 : 22). 현재의 가족 제도 아래서 여성의 성 활동은 자녀를 낳기 위한 재생산 활동과 남편의 성적 상대로서의 기능에 국한되기 때문에, 남편의 성적 요구를 수용하고 "견뎌 내는 것"은 아내의 의무로 간주된다. 이는 훌륭한 어머니 역할 수행과도 맞물린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권력 관계는 성관계를 통해 더 명확해진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은 나쁘지만, 아내가 외도했을 경우에는 예외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폭력에 대한 태도 조사에 따르면, 아내가 남편의 말을 듣지 않아 구타당하는 것은 "허용한다"가 16.2%("허용할 수 없다"는 75.5%)이나 아내가 외도했을 경우에는 53%가 구타를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한국 형사 정책 연구원, 1992a : 130). 영화와 같은 대중 매체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수록, 행복한 가정에 대한 소망이 클수록 아내의 부정은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충분한 이유로 재현된다. "아내 폭력"은 남성의 폭력이 얼마나 섹슈얼리티와 뒤섞여 있는지, 그리고 폭력과 섹슈얼리티가 남편이 아내에 대해 가지는 권력의 근본적 성격임을 보여 준다. 폭력 남편에게 가정은 자신의 성이고 결혼은 아내의 몸을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에 가정에서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남편과 아내 규범의 차별성은, 가족 밖에서 통용되는 성의 이중 윤리 수준을 넘어선 상황에 있다. 아침이고 뭐고 없어요. 마루고 안방이고 간에 무조건 드러누워라예요. 애들 보는 데서. 그러면서 지꺼 만져 달라. 여기 만져라. 저기 만져라. 내가 거부하면 눈에 살기가 나니까 나는 무서워서 눈은 못 쳐다보고 입만 쳐다보게 돼요(35세, 대졸, 자영업, 여성). --- pp.116-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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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의 권위가 조금 서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예요. 가장의 권위는 설 수 있는 거예요. 세상이 평등해져서 권위가 없어지면 안 돼요. 어린애가 잘못하는데 그냥 넘어가는 건 말이 안 되죠. 집안이 서려면 주춧돌이 있고 그래야 기둥이 서죠. 그 집안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집을 대표하는 대표자, 대변자가 있어야지, 배에도 선장이 있고 차도 운정을 해야 가잖아요(48세, 대졸, 무직 폭력 남편).
위 남성의 말대로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평등한 성원들의 수평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성과 연령에 따른 역할이 있고, 그에 따라 가족 구성원들간에 위계가 정해진다. 집안의 "대표자, 선장, 운전자, 어른"인 남편은 가족 구성원들을 통솔하고 지도해야 할 권한과 의무를 갖는다. 남편은 부인의 잘못을 교육할 수 있고 또 교육해랴 하는데, 이때 폭력은 아내가 말을 듣지 않으므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방법이다. 학대를 해본 적은 없고 가르친 적은 있죠. 내가 상당히 아내를 좋아했어요. 두 번 망치면 안 된다는(그는 재혼임) 생각에… 아니, 가르치는 게 왜 나쁩니까? 모르니까 가르쳐서 사람을 만들어야죠. 그 사람은 자유롭게 커서 방탕한 스타일이라 내가 가르쳐야 했어요. 제가 가르치고 그 사람이 따라올 때 정상적, 모범적 가정이 만들어지는 것이요(36세, 고졸, 사무직 폭력 남편). "하느님 말씀이 남편 말을 안 들으면 때리라고 했고, 니가 아픈 것도 남편 말을 안 들어서 그렇다"는 거예요. 하느님 핑계를 대니까 내가 대꾸도 못하고… 남편 말이 구약 시대에도 남편 말 안 듣는 사람은 다 그렇게 칼로 찔러 죽였다고 해요(40세, 국졸, 자영업 여성). 그러나 때릴 수 있는 권리는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 남성의 권리가 아니라 남성 중심의 가족 제도에서만 보장되는 남편의 권리이다. 그들은 남편일 때만 아내를 때릴 수 있고 아내도 그것을 인정한다. --- pp.10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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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등 주로 남성들로 구성되는 공적 기관들은 "집안일"(아내폭력)에 "간섭"(처벌)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을 대표하는 논리인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가족을 법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얘기는 곧 "남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없다", "남편의 폭력 행위를 보호하겠다"는 뜻이다.
폭력 남편에게 가정은 일종의 치외 법권 지대이다. 치외 법권 지대는 남의 영역(남의 집안일)이므로 남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은 남들이 보기에 사소하다. 자기 집에 불을 질러도 형사 처벌을 받는데 "내 마누라"를 때리는 행위는 처벌받지 않는다. 경찰이 범죄자를 잡으러 사무실에 출동한 경우에는 불개입 논리가 발생하지 않는다. 폭력 발생시 경찰이 가정에 들어오는 것을 사생활 "침해"라고 보는 것은 가정이 한 남성의 영토이기 때문이다. 남성으로 대표되는 가정에 남성으로 대표되는 국가 권력의 개입은 남성들간의 충돌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근대 가부장제 사회에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분리되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여러 번 신고했죠. 순경 말이, "글쎄요, 아줌마 말하는 게 깝깝한데, 아저씨가 술 먹고 좀 시끄러울 수도 있지. 그런 걸로 파출소에 신고하면 대한민국에서 안 잡혀올 남자들 없어요" 그러는 거예요. 내가 어이없어 하니까, "정 그러면 한 번 더 맞고 오세요. 병원 실려갈 정도로 눈에서 피가 철철 나면 오세요"… (30세, 고졸, 자영업, 여성) 피가 멈추지 않게 하겠대요. "죽여도 그냥 안 죽인다." 남편이 손으로 딱딱 토막 표시를 하며 "토막 내서 죽인다" 그래요. 자고 일어났어니 남편이 "너 어제 죽을 뻔했다. 그러더니 너 남자랑 자더라, 그래서 내가 칼로 찌르려고 했다." 그래요. 문을 열면 누가 시꺼먼 게 나를 찌를 것 같아요. 한 번만 더 칼 들면 "신고해 버린다"고 했더니 신고하러 가기 전에 죽여 버린대요. 동네 의사가 나더러 신고 못한다고 바보라고 했어요. ○○상담소에 갔는데, 직원이 기가 차다는 듯이 "아줌마, 구타로 이혼하면, 이혼 안 할 사람 하나도 없겠네" 그러면서 어떻게 잘 해보래요(42세, 고졸, 주부, 여성). --- pp.222-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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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십 수년 간 폭력당한 여성들의 용기 있는 폭로와 여성주의 진영의 노력, 여성 운동의 국제 연대의 성과로 한국 사회에도 가정 폭력 방지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 "북어와 마누라는 사흘에 한 번은 패야 한다"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지" 식의 말을 주위에서 흔히 들으며, "비바람은 집안에 들어가도 법은 집안에 들어갈 수 없다"(26쪽)는 식의 통념에 힘입어 맞아 죽을 정도가 되어야만, 또는 맞아 죽어야만 비로소 사회 문제로, 형사 사건으로 인정받는, "아내 폭력"의 현실에 놓여 있다("정 그러면 한 번 더 맞고 오세요. 병원 실려갈 정도로 눈에서 피가 철철 나면 오세요" -223쪽).
법 제정은 이제 새로운 운동의 시작과 담론을 필요로 한다. 한국 사회의 "아내 폭력" 문제를 여성 인권의 시각에서 조망한 정희진의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는 바로 새로운 운동과 담론의 물꼬를 트는 작업이다. 정희진은 10여 년 간의 여성 폭력 문제에 대한 상담과 공부를 바탕으로, 여성주의 시각에서 피해 여성들과 가해 남성들에 대한 심층 면접 결과를 분석해 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기혼 여성인 "아줌마"로서 주변적 존재를 갖고 있는 지은이가 자신의 주변성, 타자성을 분명히 알아가는 "일종의 굿"과도 같은 연구 과정에 대한 성찰 기록은 여성주의 지식이 어떻게 생산되는가를 살필 수 있는 모델로도 충분하다. 먼저 정희진은 '아내 폭력"을 여성 개인의 권리 침해가 아니라 가족 해체의 문제로 환원하는 기존의 가족 중심적인 시각에 문제를 제기한다. 성별에 의한 가족 내 남녀의 불평등한 지위와 역할 규범을 비판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아내 폭력"의 원인과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기보다는 폭력당하는 아내의 가족 내 성별 정체성을 문제화하는 데 집중한다. 여성의 정체성을 아내, 어머니, 며느리 등 가족의 구성원으로서만 규정하는 한국 사회의구조가 어떻게 "아내 폭력"을 지속, 재생산시키는지를 피해 여성들의 경험을 통해 생생하게 파헤치고 있다. "아내 폭력"은 부부 관계의 극단적, 일탈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가족 내 남편 / 아내의 성 역할 규범으로부터 발생하는 일상적인 사건이기에, 가해 남성은 폭력을 아내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는 남편의 권리와 의무, 아내와 관계 유지 방법 등 남편의 역할 수행 수단으로 인식한다. 가해 남편이 생각하는 폭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내용은 모두 아내의 역할 규범 위반(불성실한 가사 노동 수행, 가장의 가정 경영권 도전 등)과 관련된다. 폭력은 아내의 "원인 제공"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편이 생각하는 "아내의 도리"에서 아내가 벗어날 때 발생한다. 따라서 소위 "맞을 짓"은 인간 여성이 아내가 될 때만 폭력 이유로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즉, "아내 폭력"은 현재의 가족 구조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 "사소한" 가정 폭력에서부터 범죄에 이르는 극단적인 가정 폭력이 공통적으로 기반하고 있는 것은 아내 / 남편의 성 역할 규범이다. 그러므로 폭력의 심각성을 기준으로 "아내 폭력"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한편, 아내는 남편의 폭력을 부부 생활의 일부로 수용하면서 사소화하거나 질병 등 다른 종류의 문제로 치환하여 인식함으로써, 폭력을 견디는 근거르 마련하고 이를 통해 가족을 유지하려 한다. 피해 여성들은 사회적 주체로서 폭력이 발생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는데, 가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 사회의 성별 권력 관계는 이러한 아내의 역할을 폭력의 "책임"으로 전환시킨다. 이리하여 폭력의 피해자인 아내는 도리어 남편의 폭력을 해결할 것을 요구받게 된다. 피해 여성이 남편과 주변의 요구대로 아내 역할에 더욱 충실함으로써 폭력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가족이라는 권력 관계의 폐쇄 회로 속에서 폭력 발생 지점을 이동, 순환시킬 뿐 폭력 그 자체를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여성의 탈출 의지는 아내, 어머니 역할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에 회귀함으로써 폭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여성의 가족 내 성 역할 수행이 여성의 인권보다 우선시되면서 어머니, 아내로서의 "도리"는 인간의 기본권으로서 "맞지 않을 권리"를 유보시키거나 사소화한다. 또한 피해 여성의 공포심, 자기 방어, 저항 행동은 한국 사회 전반의 성별 규범에 의해 인정되지 않는다. 결국 현재의 가족제도 아래서는 남편의 폭력에 대한 아내의 순종과 저항 모두가 "아내 폭력"을 재생산한다. 가정에서 여성이 폭력을 당하는 현실과 폭력이 남편과 아내의 역할 규범에 의해서 정상화된다는 사실은, 아내 / 남편 역할 수행이 생물학적 성차에 따른 자연스런 분업이 아니라 폭력에 의존해 유지되는 불평등한 권력 관계임을 보여 준다. 따라서 "아내 폭력" 해결 방식에서 가족 구조의 성차별성을 문제화하지 않는 가족 가치에 대한 강조는 오히려 문제의 원인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아내 폭력"의 사회적 대책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아내 폭력"은 가족 유지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개인의 인권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하는 것이다. 부록에는 가정 폭력 피해자에게 필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