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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생신 날 생긴 일
조선의 마지막 황후 황태자비가 되다 궁에서의 생활 슬픔에 잠긴 황후 옥새를 숨겨라 낙선재로 내려가 책을 읽다 무엇보다 소중한 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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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황후
순정효 황후 윤증순은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이듬해 1906년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훗날 고종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는 순종의 두 번째 비가 되어 가례를 올린다. 당시 나라는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후 실질적으로 일본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 되던 때였고, 고종은 을사늑약이 일본의 강제에 의해 체결된 조약임을 알리기 위해 고심하던 때였다. 고종은 마침내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보내 을사년의 조약이 무효임을 세계만방에 알리려고 하지만 실패를 하고, 그 사건을 트집잡아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기에 이른다. 그 뒤를 이어 순종은 조선의 제27대 임금이 되고, 윤증순은 조선의 마지막 황후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순종이 아무런 힘이 없는 황제였듯 황후도 마찬가지였다. 황후는 궁궐에서 황실 가족이 받는 교육을 받고 지낼 뿐이었다. 순종이 임금이 된 후 일제의 조선 침략은 가속화되고, 3년 만에 결국 한일합방의 조약에 날인을 하게 된다. 순정효 황후 나이 17세. 아직 어린 나이인 그녀는 나라를 지키고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마침내 순종이 옥새를 날인하기 직전에 옥새를 치마폭에 감춘다. 하지만 큰아버지 윤덕영에게 옥새를 빼앗겨 마침내 한일합병을 막지 못하게 된다. 순정효 황후는 1910년 빼앗긴 나라의 마지막 황후라는 비운을 맞게 된 것이다. 현대사의 질곡에 따라 부침 많은 삶을 살았던 황후 황후가 되었지만 그녀는 친정 식구들 때문에 늘 마음 한쪽에 무거운 짐을 진 듯하다. 친일파의 선두인 큰아버지 윤덕영, 자신을 황후로 만들기 위해 온갖 빚을 끌어다 써 조선 최대의 빚쟁이로 손가락질받던 아버지 윤택영과 작은오빠 윤의섭은 황후에게는 수치였다. 그녀가 큰오빠 윤홍섭이 신익희를 도와 독립운동을 하는 것을 알고 내탕금 10만 원을 선뜻 내준 것은 그를 뒷받침한다. 순종이 승하하자 순정효 황후는 창덕궁에서 낙선재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다 6.25를 맞았다. 그녀는 한국 전쟁 때 궁궐에 들이닥쳐 행패를 부리는 인민군에 호통을 쳐 여걸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51년 전세가 급박해지자 미군에 의해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고, 궁핍한 생활을 전전했다. 1953년 휴전협정으로 전쟁이 중단되자 바로 환궁하려 하였으나, 이승만 정부의 방해로 정릉의 인수재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1960년, 전前 구황실사무총국장 오재경吳在璟의 노력으로 환궁한 후 낙선재에서 일본에서 귀국한 덕혜옹주 및 의민태자 일가와 함께 지내며 독서와 피아노 연주로 소일하였다. 그때 황후가 읽은 국문소설은 국문학사의 소중한 자료가 되었다. 순정효 황후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로서, 당당함과 냉철함으로 황실을 이끌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평생 영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그 실력은 《타임》지를 읽어 낼 정도였다고 전한다. 1966년 2월 3일, 창덕궁 석복헌錫福軒에서 심장마비로 73살의 나이에 황후는 불우한 일생을 마감하였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유릉裕陵에 순종과 합장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