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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평범한 사람을 쓰시는 하나님
1. 사사 시대의 시작 1:1-21 여호수아가 죽은 후 유다 지파의 진격 전쟁 중의 아름다운 에피소드 2. 타협과 공존 1:22-36 요셉 지파의 실수 다른 지파들의 경우 그리스도의 영적 전쟁 3. 길갈 세대의 애통 2:1-10 길갈에서 온 하나님의 사자 서자의 책망 길갈 세대의 반응 4. 어둠의 시대를 밝힌 사사들 2:11-23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다 이스라엘 안에 있는 죄의 본성 어둠의 시대를 밝힌 사사들 5. 고통은 외부로부터 3:1-11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 이스라엘 백성의 타협 이스라엘의 부르짖음과 옷니엘의 구원 6. 장애인 사사 에훗 3:12-30 이슬라엘 백성의 신앙 주기 의외의 구원자 다시 일어서는 이스라엘 7. 농부 출신 사사 삼갈 3:31 삼갈의 구원 삼갈은 예표이다 블레셋의 정체 8. 주부 출신 사사 드보라 4:1-10 이스라엘의 고질병 가나안 왕 야빈의 학대 여자 사사 드보라 9. 이방 여자 야멜의 승리 4:11-24 호밥의 후손들 므깃도의 전쟁 이 전쟁의 원리 이방 여자 야엘의 승리 10. 승리의 노래(1) 5:1-18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 하나님의 영광스로운 임재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어떠했는가 함께한 자들과 외면한 자들 11. 승리의 노래(2) 5:19-31 이스라엘의 두려움 하나님의 개입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웅 시스라를 기다리는 늙은 어미 부록 : 차례에 따른 성경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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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각에는 사사 시대를 건너뛰고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기에서 다윗의 왕정 시대로 곧바로 넘어갔더라면 가장 이상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사사기 안에도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통일된 왕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사기에 기록된 바와 같은 혼란이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만약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기가 곧장 다윗의 왕정 시대로 이어졌더라면 이스라엘은 대단히 강력한 통일 왕국을 형성했을 것이고 이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수아의 침공 이래 여러 지파로 나뉘어 지리멸렬하게 가나안 원주민들과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400년 동안이나 계속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사사기의 역사를 '실패의 역사'라고 부르기도 하고 사사시대를 '모순의 시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사기에 기록된 이 혼란의 역사야말로 오늘날 교회에 가장 큰 교훈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여호수아의 침공이 다윗의 왕정으로 곧장 이어졌다면 오늘날 교회는 설 땅을 잃었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볼때, 여호수아의 가나안 침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를 나타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여호수아가 기브온 전투에서 승리한 후 아모리 다섯 왕의 목을 발로 밟는 장면입니다. 여기에는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사탄의 머리를 깨는 것이었고 원수의 목을 밟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큰 승리를 거두었고 원수의 주력부대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패잔병들은 아직 남아 있었고, 이 문제는 이스라엘 각 지파가 스스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자신의 나라를 건설하기 원하셨으며 그들이 이 일에 구경꾼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큰 정복기가 끝난 후 패잔병들을 몰아내는 일을 각 지파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이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혼란의 시기에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백성을 몰아내기는 커녕 닮아 갔으며, 오히려 그들의 지배를 받아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빠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죽지 않았습니다. 위기 때마다 기름 부은 종들을 통해 다시 일어나 엄청난 믿음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시기는 결국 왕정 시대로 발전해 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큰 구원을 이루신 후 교회에 복음을 맡기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처음 오셨을 때부터 재림하실 때까지의 기간은 혼란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교회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교회가 세상을 너무나도 닮아 간 나머지 그 등불이 거의 꺼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다시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아 거짓된 우상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일으키는 일을 반복해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역사 입니다. 그래서 사사기는 교회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습니다. 사사기야말로 이 어렵고 혼란한 시대에 교회가 어떻게 다시 한 번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을 것이며, 보잘것없는 평신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큰 업적을 이룰 수 있는가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책입니다. 사실 '첫번째 사사 옷니엘'이니, '두버너째 사사 에훗'이니 하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사는 항상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때에도 있었고 여호수아 때에도 있었습니다. 사사라는 직책은 오늘날의 개념으로 하자면 카운셀러나 평신도 지도자, 목회자 같은 것입니다. '판관'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사사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법적인 지위를 가진 재판관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사소한 분쟁이 생겼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옳고 그름을 분별해 주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는 일종의 카운셀러였고 평신도 지도자였으며 평범한 목회자였습니다. 그들은 군인도 아니었고 정식 관직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일고 먼저 깨달아 백성들의 어려움을 도와준 사람들이었을 뿐입니다. --- pp 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