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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_ 선지자의 세계가 열린다
1. 불성실한 관계(1:1-6) 2. 내 백성이 아니다(1:7-2:1) 3. 이스라엘의 연애(2:2-13) 4. 새로운 언약(2:14-23) 5. 하나님의 구속(救贖)(3:1-5) 6. 이스라엘에 없는 것(4:1-10) 7. 이스라엘의 실체(4:11-19) 8. 구조적인 죄(5:1-7) 9. 하나님의 보응(5:8-15) 10.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신다(6:1-11) 11. 이스라엘을 치료할 수 없는 이유(7:1-16) 12. 사마리아의 송아지(8:1-14) 13. 타작마당에서 생긴 일(9:1-17) 14. 묵은 땅을 기경하라(10:1-15) 15. 하나님의 불붙는 사랑(11:1-12) 16. 이스라엘의 기질(12:1-14) 17. 이스라엘은 왜 망했는가?(13:1-16) 18. 참된 회개, 그 이후(1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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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나는 씨 뿌리고 추수해서 얻은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과 다른 나라가 있으며 그 나라가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또 만나를 내려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만나가 중요하냐, 그 나라 왕의 아들이 중요하냐’는 것이지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만 붙들고 예수님을 놓쳤습니다.
---「76쪽, 3. 이스라엘의 연애」중에서 호세아가 설교한 후 거의 700년 동안 바알의 거짓된 신앙을 씻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머리에서 바알의 정욕적인 거짓 신앙이 씻겨지는 데는 너무나도 오랜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 죄인이요 자랑하거나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기까지 그들은 들판에 버려진 상태로 있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받아주시는 것 외에 아무것도 더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만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것 외에 다른 조건을 달면 거기서 바알의 신앙이 나오게 됩니다. ---「96~97쪽, 4. 새로운 언약」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특별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도, 지킬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이 탐나서, 무언가 더 얻고 싶어서, 더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비참한 노예 생활뿐이었습니다. ---「120~121쪽, 5. 하나님의 구속」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하나님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가지 않고 나무와 막대기에 답을 물었습니다. 물론 가나안 사람들은 이것들을 나무나 막대기라고 부르지 않고 여기에 아세라나 아스다롯 같은 아주 아름답고 신성한 신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이 신상들을 나무와 막대기라고 부르면서 경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신상에게 묻고 복을 구걸했을까요? 이런 나무와 막대기는 절대로 죄를 지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63쪽, 7. 이스라엘의 실체」중에서 죄가 가지는 특성의 하나는 너무 깊이 감추어져서 완전히 곪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너무나도 보편화되어서 사람들이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호세아의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혹시 남이 모르는 어려움과 절망 가운데 ‘하나님만이 나의 살 길’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자존심이나 다른 사람들의 이목에 신경 쓰지 마십시오. 내 상황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비참해지기 전보다 더 놀랍게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267~268쪽, 10.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신다」중에서 시내 산의 율법은 거룩을 요구하는 법입니다. 이 거룩은 엄숙으로 가득 찬 종교적인 거룩이 아니라 사랑으로 충만한 거룩입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왜 자기를 사랑합니까?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됩니까?” 내가 어떻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신다고 믿는 그것이 신앙입니다. 또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십시오.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찾아가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됩니까?” 모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보다 더 안전한 길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거기에 비해서 사마리아의 종교는 자기중심적입니다. 내가 복 받고 잘되기 위하여 하나님을 송아지 안에 가두어놓고 “나의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이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부르짖는 신앙은 성경이 이야기하는 기독교가 아니라 송아지 신앙입니다. ---「312~327쪽, 12. 사마리아의 송아지」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은 불확실한 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불확실한 것이 우리들에게는 가장 안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가 어려움 가운데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제가 지금 친척들에게 공격당하고 있으며 곤경에 빠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그러나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서 안정된 것을 택한 사람은 믿음을 포기한 것과 같습니다. 그때부터 영혼은 병들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어차피 이 세상에서 내 능력이나 내 힘으로 살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내 길을 열어 주시든지 아니면 내가 내 길을 열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나가든지, 신앙을 양보하고 세상 사람들과 같아지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았는데도 형통하다면 그것은 절대로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 그것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왕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진짜 왕을 주시면 큰일납니다. 집을 달라고 했는데 집을 주고, 차를 달라고 했는데 차를 주고, 도깨비 방망이처럼 기도가 응답될 때 ‘나의 인생도 끝났군. 하나님이 정말 나를 버리시기로 작정하셨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511~512쪽, 17. 이스라엘은 왜 망했는가?」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