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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nhold Mess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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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갖 의무들에서 벗어나야 했다. 나는 항상 어딘가에 출석해야 하고, 언제나 연락 가능해야 하고, 어떤 질문에 대해서든 늘 답변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그 모든 삶으로부터 떠나야 했다.
사막에서라면 우리는 존재하는 동시에 완전히 여분으로 남을 뿐이다. 나를 찾거나 필요로 하거나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나 자신을 볼 수 있는 거울도 없다. 그리고 그런 공간에서는 결국 나 자신마저 없어도 더 이상 아쉬울 게 없다. --- 프롤로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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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엽서에 있는 것처럼 땅은 작고 말이 없다. 어떤 소리도 냄새도 없다. 그저 그림일 뿐이다. 걸어서 가면 모든 게 넓다. 땅은 감각적으로 지각되고,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놀랍고 경이로운 일들을 늘 숨기고 있다. 걱정은 물론이고 심지어 공포마저 감추고 있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은 밖의 광활함만이 아니다. 우리 안의 텅 빈 공간은 더욱 헤아릴 길이 없다.
--- p.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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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산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을 깨끗하게 정화시켜준다. 사막의 텅 비어 있음이 우리를 겸허하게 만들고 경탄하게 하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 자신 안의 텅 비어 있음에 대해 경탄하는 건 아닐까? 모세, 그리스도, 무하마드 등 종교창시자들만 사막에서 영감을 얻은 게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기 위해 사막으로 갔다. 기분을 전환시켜줄 수 있는 오락거리가 있어서가 아니다. 사방 어디서나 늘 똑같은 그림만 보일 뿐이다. 모래알들 사이에서 종종 들리는 것이라고는 바람소리뿐이다. 이것이 정적이다. 그런데도 광활한 사막은 숨을 쉬고 말을 하고 빛을 발한다. 무한성과 영원성에 대한 예감이 사막에서는 우리 자신의 제한성과 연약함과 만난다.
--- p.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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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규칙이나 기술을 알아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극한 상황을 초래하는 것은 실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기준 밖에서 나의 행동을 시험하는 것만이 중요해서가 아니다. 규범들로부터 벗어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러니까 내게는 매번 새로운 경험들을 하고 자신의 삶에 스스로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모험 본연의 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삶의 자극조차 일률적으로 규정되고 관청의 승인이 필요한 시대에는 고유한 삶을 살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길을 좇지 않고 어떤 지시나 허가 없이 전 세계를 횡단하는 것은 내 평생의 소원 중 하나이다.
--- p.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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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에는 함께 사막에 가요."
시몬이 선언하듯이 말했다. "내가 금세 너무 늙을 텐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내가 대답이랍시고 한 말은 다시 질문이 되고 말았다. "할 수 있고말고요. 아빠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해낼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아빠의 짐을 많이 덜어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시몬이 이런 말로 내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 p.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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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으로 쉼을 얻다...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한 후부터 메스너는 사막을 꿈꿔왔다. 언제부터인가 사막은 그에게 이상적인 경험의 공간이면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미래를 들여다보는 창문으로 여겨졌다. 메스너는 자신이 사막으로 떠나야만 했던 이유를 늙어 가는 것과도 조심스럽게 연관 짓는다. “언젠가부터 내 안의 사막 언저리에서는, 인간이 더 이상 거주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예감이 어느덧 자라나고 있었다. 내면의 황폐화에 대한 두려움도 생겼다.”(p.17)는 고백처럼 사막은 소멸을 미리 조금 맛볼 수 있는 곳, 아무것도 없는 무(無)라는 고향으로 넘어가는 단계로, 삶을 더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였다. 온갖 의무들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했다. 그는 유럽의회 의원의 직분을 맡고 있는 동안 항상 현장에 참석해야 하고, 언제나 연락 가능해야 하고, 어떤 질문에 대해서든 늘 답변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언제든 정치적 인물로서 눈에 띄어야 했다. 그런 모든 의무에 지치고 타성에 젖은 그에게, 사막은 모든 정치와 온갖 생각들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공간이었다. “인적이 없는 세계에서 조절되어야 할 게 무엇이겠는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계속 걸어가는 것뿐이었다.”(p.169) 마음 속에 자리한 사막 한가운데로부터, 텅 빈 무의 세계를 홀로 걷다... 사막에서는 하루하루가 똑같은 리듬으로 지나간다. 해가 뜬 직후 출발하여 열 시간 동안 사막 위를 이동한다.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불구불한 사행선을 지나가는 것이다. 해가 지고 나서야 대상행렬은 걸음을 멈춘다. 30분쯤 후에 야영장이 설치되고,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서 저녁식사를 한다. 메스너는 사막을 횡단하면서, 사지를 뻗고 누워 가까운 별을 찾으며 가야 할 거리를 계산하고, 깜깜한 밤중에 잠에서 깨어 별들과 코에 느껴지는 먼지만으로 고비 사막에 있음을 느낀다. 고유한 개인적인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자율적인 인간으로서 그는 사막이라는 공간을 어떤 인위적인 규칙이나 규범, 기준이 없는 곳, 오직 자연과 인간적인 척도만 있는 곳에서 스스로를 시험하는 기회로 삼는다. “나를 찾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비로소 내 안에 자리한 사막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p.17)라는 고백이 말해주는 것처럼, 그는 사막을 건너면서 자신 안에 있는 마음의 사막을 함께 들여다보는 경험을 한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세계, 모래알 사이에서 들리는 바람소리뿐 시간마저 잃어버린 그 텅 빈 공간에서, 삶에 짐이 되었던 모든 것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음을 경험하고 비로소 스스로에게서 벗어난다. 그리고 사막의 비어 있음이 주는 평안함에 감탄하고 무한한 정적 속에서 참된 쉼을 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