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정상에서
편견과 한계를 넘어 정상에 선 여성 산악인들
가격
14,000
10 12,600
YES포인트?
7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유료 (도서 15,000원 이상 무료)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목차

정상―레이스는 계속된다!

1. 불멸하다
2. 거울아, 거울아, 벽에 있는 작은 거울아
3. 고산 위의 여성들
4. 여자―등반의 골칫거리?
5. 히말라야의 멤사힙, 헤티 디렌푸르트
6. 초오유에 남다, 크라우드 코간
7. 반다 루트키에비치의 꿈의 행렬
8. 여성 산악인이 정복한 첫 번째 8,000미터급 봉우리
9. 에베레스트의 작은 영웅, 준코 타베이
10. 정상이 나의 자리, 알렌느 블럼
11. 여성 록 스타들
12. 산을 오르는 하이디, 카트린느 데스티벨
13. 자유를 향해 산을 오르다, 린 힐
14. 한 초인의 죽음, 알리슨 하그리브스
15. 단체 관광 등반의 비극
16. 정상에 올라선 천상의 기쁨
17. 눈의 나라의 니베스 메로이
18. 신데렐라 캐터필러, 겔린데 칼텐브루너
19. 정상의 여인, 에두르네 파사반
20. 칭기즈 칸, 오은선
21. 등반 스타일에 대한 논란
22. 도덕성이라는 무기
23. 동등하게
24. 미스 이탈리아, 안젤리카 라이너
25. 14좌 프로젝트
26. 불필요한 요소, 아름다움
27. 세계 최고의 여성 산악인은?

부록
- 8,000미터급 14좌
- 14좌 등정자 명단
- 난이도 등급 체계 비교

역자 후기

저자 소개 1

라인홀트 메스너

관심작가 알림신청
 

Reinhold Messner

세계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무산소 등정, 단독 등반 등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신화를 기록한 우리 시대 가장 유명한 산악인이자 모험가다. 극단적 고도에서 인간의 몸이 버텨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확신이 없던 상황에서 산소의 도움 없이 에베레스트를 포함한 히말라야의 여러 산을 오른 그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극한의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해발 8,000미터 이상의 히말라야 고봉들을 모두 등정한 인류 최초의 산악인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에베레스트 솔로》에 묘사된 1980년 에베레스트를 혼자 무산소로 오른 최초의 기록은 등반사 최고의 위업으로 불린다. 극한의 여정에서 그
세계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무산소 등정, 단독 등반 등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신화를 기록한 우리 시대 가장 유명한 산악인이자 모험가다. 극단적 고도에서 인간의 몸이 버텨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확신이 없던 상황에서 산소의 도움 없이 에베레스트를 포함한 히말라야의 여러 산을 오른 그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극한의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해발 8,000미터 이상의 히말라야 고봉들을 모두 등정한 인류 최초의 산악인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에베레스트 솔로》에 묘사된 1980년 에베레스트를 혼자 무산소로 오른 최초의 기록은 등반사 최고의 위업으로 불린다. 극한의 여정에서 그가 메모에 남긴 사유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깊은 고찰로 우리에게 큰 감동과 깨달음을 안겼다. 저술가로도 활발히 활동한 그는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산악문학상을 3회 수상한 바 있으며,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는 순간 절대 고독 앞에서 겸허해지는 내면 고백의 정수”라는 평을 받고 있다. 저서로는 《검은 고독 흰 고독》, 《정상에서》, 《죽음의 지대》 외 다수가 있다.

라인홀트 메스너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4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694g | 153*224*30mm
ISBN13
9788970755106

출판사 리뷰

1. 생명을 건 레이스 ―정상에 선 여성 산악인들

“등산은 ‘남자와 여자’로 나눌 것이 아니다. ‘등산’이란 높이 오르고 다시 건강한 몸으로 내려온다는 뜻이다. 산을 오르는 것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상관없다. 그건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 엘리자베스 홀리

“여자는 알피니즘의 재앙이다.” 이것은 1911년 파울 프로이스가 산을 오르는 여성들을 두고서 한 말이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 여성 산악인들의 14좌 완등 경쟁은 정점을 달리고 있으며, 이 중 두 여성(오은선과 에두르네 파사반)은 이미 모든 정상에 도달했다.
최고 등반기록, 등반 속도, 세븐 서밋, 14좌 완등 등 남성 산악인들이 전세계의 산에서 펼쳤던 경쟁에 논란이 많았던 만큼, 여성들의 경쟁 또한 마찬가지다. 언론에서도 각 산악인들의 국적과 인기 정도를 가지고 서로 홍보 경쟁을 펼치면서, 동기와 윤리, 등반 스타일에 문제를 제기했다. 헤티 디렌푸르트부터 반다 루트키에비치, 오은선과 에두르네 파사반, 겔린데 칼텐브루너까지, 에베레스트를 여성 최초로 등정한 준코 타베이에서부터 남자조차 해내지 못한 노즈 자유등반에 성공한 린 힐까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여성 최초의 14좌 완등자가 나올 때까지의 정상급 여성 산악인들의 발자취를 좇을 수 있다. 그러나 ‘승리’보다 더 매혹적인 것은 100년이라는 시간 안에 여성들이 남자들의 세계로 여겨졌던 8,000미터 이상의 고봉으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두 발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정상에서』는 인류 최초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봉을 완등한 최고의 산악인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처음으로 여성 알피니즘의 역사를 광범위하게 조명한 책이자, ‘여성 최초 14좌 완등 경쟁’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다.
독일 일간지 《아벤트차이퉁Abendzeitung》과의 인터뷰를 통해 메스너는 이번 책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다음처럼 이야기한다. “2009년 두 명의 한국 여성 산악인이 낭가파르바트로 돌진해 올라갔고 그 중 한 명(고미영)이 하산하는 길에 실족하여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였어요. 이 불운한 사고를 보면서 몇몇 여성들이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8,000미터급 14좌 완등을 이루어내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1986년 남성 산악인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2. “여성들이 있을 자리는 정상이다.”

여성과 산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지만, 지난 일 년 간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아온 주제이다. 2010년 4월 오은선이 여성 최초로 8,000미터급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두르네 파사반도 14좌 완등의 쾌거를 발표했다.
14좌 완등 레이스에는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텐브루너와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까지 총 4명의 여성 산악인이 참여했다. 메스너는 이들이 정상에 서기 위해 들였던 정신적, 신체적 노력과 그 동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 여성들이 정상에 서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는 것에 착안하여 책 제목을 『정상에서』라고 붙였다.
그러나 여성 산악인들의 업적은 오은선, 겔린데 칼텐브루너, 니베스 메로이, 에두르테 파사반 네 사람의 것만은 아니다. 1552년 레기나 폰 브란디스와 그녀의 딸 카타리나는 여성 원정대로는 처음으로 메란의 라우겐슈피체 등정에 성공했다. 그리고 남자들이 아무리 오랫동안 산을 오르는 여성들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던지며 적대시했다 하더라도, 1934년 여성 최초로 시아캉리의 7,315미터 지점까지 오르면서 여성 최고 등반기록을 세운 헤티 디렌푸르트는 쉽게 무시할 수 없다. 그녀는 1934년 카라코람에 있는 시아캉리 서봉 정상에 서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여성’으로 등반 역사에 남게 되었다. 당시 최고기록은 패니 벌록 워크맨이 1906년에 세운 6,930미터의 피너클피크였다. 디렌푸르트의 이 기록은 1954년 크라우드 코간이 네팔의 초오유를 오를 때까지 깨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여성들이 처음으로 세계의 지붕인 8,000미터급 봉우리를 오른 것은 1956년 마나슬루를 초등한 일본의 원정대였다. 그 뒤 1968년 폴란드 출신의 반다 루트키에비치는 할리나 크뤼거 쥐로콤스카와 함께 노르웨이의 트롤리젠을 초고난도인 동쪽 능선을 통해 등정했다. 그리고 1992년 봄까지 안나푸르나, 초오유 등 8개의 8,000미터급 봉우리를 올랐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카트린느 데스티벨, 미국의 린 힐이 여성도 등반부분에서 남성을 앞지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데스티벨은 스코틀랜드의 ‘올드맨’ 오브 호이까지 단독 등반을 해내면서 진정한 정상의 자리에 올라 등반이란 ‘남성적’이라고 정의했었던 ‘구세대’들에게 최종적인 일침을 놓았다. 린 힐의 경우 1993년 남녀를 통틀어 세계 최초로, 최고 난이도 클라이밍의 궁극적 난제라고 여겨지던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엘 캐피탄 ‘노즈(Nose)’를 자유등반해내는 놀라운 업적을 남겼다.
알리슨 하그리브스는 무산소로 에베레스트를 단독 등반한 최초의 여성이었으며, 그랑 조라스, 마터호른, 아이거, 피츠 바딜레, 프티 드류, 그로세 치네 등 알프스의 북벽 6개를 모두 홀로, 그것도 여름 한 시즌 동안 24시간 이내에 등정하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다.

3. 뜻하지 않은 경쟁자에 대한 비판과 의심의 목소리

이탈리아의 니베스 메로이,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텐브루너와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 등, 최고라고 이름을 날리는 유럽 출신의 여성 등반가들이 최초 14좌 타이들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한국에서 경쟁자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새로운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여성 산악인들의 경쟁은 2010년 봄 그 마지막 레이스의 막을 올렸다. 오은선은 이제 마지막 하나의 봉우리인 안나푸르나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것 하나만 오르면 그녀가 여성 최초로 14좌를 완등하는 산악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행보는 2009년부터 논란이 되어왔다. 특히 독일에서 비판과 의심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전문 산악잡지에서는 독설을 뿜어내었다.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면서 14좌 완등 레이스의 지위는 급격히 실추되었다. ‘정상 사진’뿐 아니라 오은선이 안나푸르나에서 파사반의 사전작업의 득을 봤으며, 조력자 대부대를 이끌고 등반을 했다는 것으로 엄청난 스캔들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오은선이 방송 촬영팀을 통해 등반현장을 한국으로 생중계하면서 대대적인 광고를 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마치 비난을 하는 당사자들은 고정자일도 사용하지 않고, 단독 등반을 하면서 카메라 팀의 동반을 한 번도 허락한 적이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오은선이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싸고 벌어지는 논란은 극히 일반적인 라이벌 경쟁에 지나지 않는다. 산악인들 사이에 이런 일은 자주 있어왔다. 이들은 서로에게 언제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었다. 갑자기 정상에 오른 방법을 문제 삼는 이유가 무엇인가?
칼텐브루너는 자신이 알파인 스타일로 등반한다고 말한다. 셰르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요즘엔 어디에나 걸려 있는 고정자일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소통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숙련된 기술과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파사반과 칼텐브루너는 알파인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일 년에 두 개 이상의 8,000미터급 봉우리를 등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2007년도 7월까지 외부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오은선이 2008년도 5월부터 2009년도 8월까지 8개(!)의 봉우리를 오른 것을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은선은 1997년에 이미 8,000미터급 가셔브룸 2봉을 무산소 등정했으며, 2006년까지 에베레스트, 시샤팡마 등과 7대륙 최고봉 한국 여성 최초 등정을 마친 상태였다. 오은선은 14좌 중에서 두 번의 등반에만 산소통을 사용하고 나머지 12좌는 무산소 등반이었다. 그리고 셰르파와 산악인들이 캠프를 설치해 주었으며, 한 번은 베이스캠프 사이를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했다는 것을 숨긴 적이 없다. 그러나 그 솔직함 때문에 그녀는 지금 ‘나쁜 사람’으로 낙인 찍혔다. 다른 경쟁자들도 실제로는 셰르파와 전문 산악인인 남편과 함께 산을 오른다. 하산 후 베이스캠프 사이를 헬리콥터로 이동하는 것은 최근 남성 산악인들에게도 일반적인 일이다. 현재의 고산 등반 현장에서 노멀 루트로 오르면서 완전한 알파인 스타일로 오른다고 하는 것은 말뿐이다.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지 않는 한, 이미 정상 부근에 많은 고정자일이 설치되어 있고, 고산 관광 등반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때문이다. 단지 이들은 그렇게 보이고자 애쓰며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은 공개하지 않는다.

4. 명예살인의 제단으로 떠오른 칸첸중가!

여성 산악인들의 레이스는 순식간에 숭고하고 장엄한 경쟁에서 신문들 간의 논란거리로 추락했다. 그녀가 정말로 히말라야와 카라코람의 14좌 중 13좌를 올랐는가 하는 물음은 그녀의 신용을 떨어뜨리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 그 이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칸첸중가에서 찍은 사진은 어떤가? 빛이 너무 들어가고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 유럽 산악인들의 말이다. 그래서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눈으로 뒤덮인 바위 위에 등반차림을 한 사람이 서 있다. 붉은 색 재킷, 검은 허리띠, 두꺼운 검정색 장감에 아이젠을 착용한 등산화, 얼굴에는 스노고글을 쓰고 있다. 이게 오은선인가? 아니면 대체 누구겠는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못 알아보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어디서 찍힌 것인가? 이러한 모든 의혹에는 세 명의 셰르파가 답을 해 준다. 다와 옹추, 페마 체링, 체지 누르부, 이들은 거의 정상까지 오은선과 동반했던 사람들이다. 사진 속의 그녀는 히말라야 동쪽 8,586미터 높이의 칸첸중가, 짧게 줄여 '칸치'라고 불리는 정상에서 몇 미췅 떨어진 곳에 서 있다. 2009년 5월 6일, 그녀가 세 명의 셰르파와 함께 정상으로 오르던 그날은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힘든 상황이었다. 오은선과 한 명의 셰르파가 정상 몇 미터 아래에서 버티고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불과 몇 분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있었던 셰르파가 사진을 찍었다. 히말라야 등반을 기록하는 엘리자베스 홀리도 당시 이 사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었다. 본격적인 의혹은 오은선의 경쟁자들을 지지하는 쪽에서 반복적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서울의 한 기자회견에서는 오은선이 보이지 않게 자신을 극도로 상품화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누군가(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면 그 자리를 놓친 사람들의 공격이 있게 마련이다.
독일에서는 ‘레이스를 망쳐버린 라이벌’의 모습을 한 오은선에 대한 뒷얘기가 계속 있었다. 언론이 그렇게 얘기를 이어가고 싶어 했다. 오은선은 다시 비인간적인 비방의 대상이 되었다. 독일 방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8,000미터급 고봉에 탐닉하여, 어마어마한 스폰서를 대동하고 마구 달려드는 소인배라는 비난과 함께, 오은선의 등반은 8,000미터급 14좌 완등을 위한 공정한 레이스를 펼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와 증오, 질투에 대고 내가 대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오은선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진실이 아니라고, 다른 경쟁자들보다 더 적은 도움으로 정상을 밟았고, 베이스캠프를 이동하면서 헬리콥터를 탄 횟수도 더 적으며, 전체적으로 따져 보면 다른 두 사람보다 보조 수단도 더 가지고 있지 못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오은선의 진실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는 ‘14좌 완등 레이스’에서 가장 솔직한 경쟁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야심에 충실했고 승자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솔직함이 있는 곳엔 음모도 있기 마련이다. 그녀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할 것이다. 오은선이 굳은 마음을 먹지 않으면 그녀는 명예살인의 희생자가 되고 말 것이다.
이번 오은선 사태가 보여주는 것은 단 한 가지다. 대중이라는 것이 악용되면 얼마나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홍보와 이익, 언론이라는 혼란 속에서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이야기는 한 사람을 쉽게 파괴해 버릴 수 있다.

5. 가장 먼저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 낸 ‘칭기즈 칸’, 오은선!

2010년 4월 27일 오후 늦은 시간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른 오은선은 바람이 쌓아 놓은 눈더미 위에 섰다. 그녀의 14번째 8,000미터급 봉우리 주위로는 오후 시간의 그곳에서는 으레 그렇듯이 안개가 둘러싸고 있었다. 바람이 내는 소리, 목표를 이루었다는 홀가분함과 상쾌함이 그녀 안에서 메아리쳤다. 그녀는 자유로웠고, 감격스러웠으며, 정상에 서서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동행의 야호 소리도 깃발을 흔드는 모습도 그녀는 인식하지 못했다. 오로지 눈치 채지 못하게 걷히고 있는 안개의 움직임뿐이었다. 그리고 이 안개도 지난 13년간 고산을 등반하며 경험한 위험과 들인 노력의 시간처럼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그리고 이 순간 그녀는 마치 단추를 누른 것처럼 갑자기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의 의문도, 회의도 요구도 없었다. 그저 깨달음만이 있었다. 마치 스스로가 모든 것의 대답이라도 되듯이. 시간이 흐르면서 안개의 바다가 걷히고 드러나는 주변의 산세에 감격하여 그녀는 승리의 순간으로 솟아오르는 듯했다. 여성 최초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난 것이다. 모든 것에서 해방된, 최고의 기쁨을 만끽하는 짧은 순간이었다!
오은선은 첫 번째로 자신의 목표를 이루었기 때문에 승자가 되었다. 더 아름답거나 더 믿음을 주는 방식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이 아니라, 또는 언제나 ‘공정하게’ 등반을 진행한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그녀가 일인자다.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승리를 거두겠다는 자세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저돌적인 오은선의 태도는 그녀에게 생존과 동시에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이런 모습은 그녀와 경쟁을 펼쳤던 다른 산악인들에게 질투심과 증오를 불러왔다. 그리고 악의를 품은 뒷얘기가 나돌았다.
목표는 오은선에게 동기를 부여했고 창의력을 주었다. 무엇보다 일을 진행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그랬다. 그러나 창의력이 빠져 있는 다른 곳에서는 과장된 퍼포먼스가 펼쳐졌고, 그것은 언제나 변명에 불과했다. 결국 레이스는 말장난이 되었고, 사후의 비방은 모두의 성공이 될 수 있는 레이스에 먹칠을 했다. 여성성을 가지고 자신만의 신화를 쌓으면서 자기의 알피니즘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논쟁만이 난무하게 되었다. 하지만 남자들이 만들어낸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패자들’이다. 자기가 직접 해낸 모험이 아니라 남자들의 말이 승리냐 패배냐를 결정하기라도 할 듯이, 그들은 200년간 산악 스포츠를 남자들의 것으로 견고히 다져 온 편견을 방패로 들고 나섰다.
가장 강한 자가 반드시 일인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프로젝트에 가장 집중적으로 매달린 더 영리한 사람이 승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가장 강한 자도 행동을 통해서만 일인자가 될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 행동을 하면서 감수하는 노력과 위험은 성공을 통해 보상받게 되는 것이다. 모든 성공은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들며 또 다른 성공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니던가. 오은선은 결국 이런 식의 시너지 효과를 본 것이다. 그녀가 보여 준 것은 빛나는 조직력이었으며 결과를 이끌어내는 능력이었다.
에두르네 파사반도 자신의 야심과 국민의 박수 속에서 산을 올랐다. 그녀 또한 자신의 ‘레이스’를 끝내고, 계속해서 자신의 삶을 이어나갔다. 경쟁자를 굴욕에 빠뜨리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파사반의 성공은 오은선의 성공과 비교 가능한 것이 아니다. 두 사람 모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을 이루어낸 것이다.
칼텐브루너가 에베레스트의 베이스캠프에서 오은선의 ‘승리’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 소식은 큰 충격이 아니었다. 그녀는 벌써 오랫동안 바로 그렇게 될 것을 감지하고, 염려하고, 알고 있었다. 승리를 빼앗겼다고 낙원에서 쫓겨난 것은 아니었다. ‘14번째 하늘’에서 추락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오은선이 자신의 목표를 더욱더 철저하게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겔린데 칼텐브루너는 산소마스크를 사용했더라면 승리는 자신의 몫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그녀 자신의 승리를 품에 안았다. 그녀가 ‘공정한 방법으로 에베레스트를 올랐다는 것’을 산악계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

리뷰/한줄평2

리뷰

10.0 리뷰 총점

한줄평

10.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
12,600
1 12,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