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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렇게 곱게 늙으셨어요?"
나보다 한참 젊은 여성들로부터 날씬하다든가 젊다든가 하는 소리를 듣는다는 건 그게 아무리 입에 발린 치레라고 해도 기분이 꽤 괜찮은 노릇이다. "아유, 그 거짓말 참 듣기 좋네."라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나도 모르게 어느새 입이 헤벌쭉해지고 축 늘어졌던 사지에 파르르 생기가 오른다. (이 쯤 되면 나도 갈 데 없는 공주병 환자?)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얼마 전 일반버스에서의 경험은 충격적이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팍 전 파김치 상태로 의자에 늘어져 있는데 뒷좌석에 앉아 있던 젊은 여성이 몸을 내 쪽으로 숙여 오며 속삭였다. "이 적씨 어머니시죠? 어쩌면 그렇게 곱게 늙으셨어요?" 이 적(나의 둘째 아들로 본명은 이 동준. 대학 4학년 때 가수로 데뷔했다)의 열렬한 팬이라고 자기 소개를 한 그 여성은 스물 여덟 살이며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그 또래답게 환한 표정에 당당한 태도가 돋보이는 그와 대화를 나누는 5분 남짓 동안 내 귓속에서는 계속 '곱게 늙었다.'는 말이 맴돌았다. 아니, 그냥 "어쩌면 그렇게 고우세요?"라고 끝내면 어때서 굳이 '늙었다.'는 말을 보태는 거지? 괘씸하고 서운했다. 하지만,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중략>… 아무튼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늙음은 추함이고 악함이고 약함이고 심지어는 죄라고 배워왔다. 더구나 여성의 경우는 훨씬 더 심했다. 그 많고 많은 이야기책들은 한결같이 젊고 예쁘고 착한 소녀를 괴롭히는 늙고 못생기고 못된 여자들을 그려왔으니까. 백설공주도 늙으면 마녀가 된다! 여자들이여, 늙지 말지어다. 때론 자신은 나이에 초연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이 늙어감은 인정하지 않는다. '나이는 들었지만 나는 젊다.' 도대체 늙음이 뭐길래. 결국 늙음을 맹렬히 부정하느라고 정작 어떻게 늙을 것인가에 대한 준비는 하나도 못하면서 우린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통고받는 순간의 그 느낌이라니. 그 충격적이고도 착잡한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p.1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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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야기,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가는 이야기
그렇다고 그가 이 책에서 풀고 있는 내용이 거창한 철학적 주제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작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에서 수다에 가깝게 자신의 이야기를 특유의 생기 넘치는 문장으로 맛깔지게 풀면서 자신의 교육철학을 행간에 깔아놓았듯 이번 에세이에서도 그는 보통사람이라면 아마 밝히고 싶지 않을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털어놓으며, 또는 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나이듦의 일상사와 그 성찰에 관해 말한다. 자신을 속박하는 늙음에 대한 부정적 고정 관념을 깨야 누구보다도 고정관념을 깨며 살아가는 데 앞장서 온 그가 이 글에서 강조하는 문제는 바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늙음'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늙음은 추함이고 악함이고 약함이라는 고정관념이 유난히도 강한 우리 사회에서 그 고정관념을 깨는 방법은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바로 나이 들어감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 자연스럽게 <그냥 살아가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나이 들어가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세상이 정한 나잇값에 얽매이지 않는 당당함과 자신만의 나잇값을 살아가는 용기가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성 역할을 통해서 성 차별이 줄어드는 것처럼 다양한 연령 역할을 통해서 연령 차별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놓치지 않는다. 살아간다는 것은 곧 나이 든다는 것이며 지금도 쉼 없이 우리는 나이 들어간다. 그래서 그것은 외면하고 무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추하고 안 좋은 것이며 약한 것이라는 늙음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 뒤에서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외로워하는 우리들의 나이 들어가는 삶… 이제껏 누구도 풀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너무도 솔직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풀어놓은 이 책에서 약한 것들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을 느꼈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