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론
제1장 혁명파와 입헌파의 선전투쟁과 장빙린 2. 구민주주의 혁명의 가장 큰 이론가이자 가장 높은 지도자 - 쑨중산 3. 신문화운동의 창시자이자 교육자이며 철학자 - 차이위안페이 4. 신문화운동의 우익 - 후스와 량수밍 5. 신문화운동의 좌익 - 천두슈와 리다자오 6. 1920년대부터 1940년대 사이의 3대 논쟁 7. 마오쩌둥과 중국 현대 혁명 8. 중국철학 근대화 시기의 리학·상-진위에린의 철학 체계 9. 중국 철학 근대화 시기의 리학 ·하-펑유란의 철학 체계 10. 중국철학 근대화 시기의 심학 - 슝스리의 철학 체계 11. 『중국철학사신편』총결 |
馮友蘭
펑유란의 다른 상품
|
최근 들어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관심’을 제외한다면 중국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한국의 지식계에서조차 지리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역사적으로든, 가장 가깝고 오래된 ‘이웃 나라’ 중국에 대해서는 연구된 것이 거의 없고, 특히 중국의 현대사에 대해 잘 모르거나 무관심한 것이 서양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 잘 모를 때와는 달리 그다지 부끄러울 만한 일로 여겨지지도 않는 듯하다. 그러한 ‘무관심의 카르텔’이 1990년대 이후로 자본화된 중국 시장과 중국 사회에 대한 세간의 떠들썩한 관심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은 매우 기이하고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것이 이 책 『현대 중국 철학사』의 출간이 주목받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이다.
『현대 중국 철학사』는 ‘중국 철학사’를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펑유란의 마지막 저서이다. 그는 거의 한 세기에 달하는 파란만장한 중국현대사를 관통하는 삶을 살며 두 권의 『중국 철학사』와 『중국 철학 간사』, 그리고 방대한 분량의 『중국 철학사 신편』을 남겼는데, 그중 『중국 철학사 신편』은 그가 신중국 성립 이후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하고 나서 쓴 일곱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이다. 소련의 철학사 방법론과 문화혁명 시기의 영향 하에 씌어진 1, 2권을 개혁·개방 이후, 아흔 살을 바라보는 고령에 다시 쓰기 시작해 생명을 다 바쳐 완성한 거작으로,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제7권은 그 정치적 민감성 탓에 사후 홍콩에서 출간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중국 철학사 신편』 여든 한 장을 쓰면서 나는 분명히 내가 본 그대로를 썼다. 아울러 친구들에게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책을 부당하다고 생각하여 출판할 수 없다고 한다면, 나는 왕선산(王船山)처럼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왕선산은 깊은 산 속에서 수백 권의 책을 저술했다. 아무도 그의 책을 출간해 주지 않았으나 몇 백 년 뒤엔 마침내 출판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문장은 스스로 목숨이 있어 사필(史筆)의 교훈에 의존하지 않는다(文章自有命, 不仗史筆垂)’는 것이다.”(「자서」 중에서) 이 『중국 철학사 신편』 제7권에 해당하는 책이, 그가 1990년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 마지막까지 손에 들고 있던 바로 이 책, 『현대 중국 철학사』이다. 이제 우리는 현대 중국 역사에 대한 오랜 ‘무관심의 카르텔’ 속에 한 번도 제대로 던지지 않았던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현대 중국의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질문 말이다. 이 책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현대 중국 철학사』에 대하여 펑유란은 젊은 시절 서양학자로부터 “중국에도 철학이 있느냐”는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분발한 그는 일곱 권짜리 중국철학사 신편을 쓰는 데 일생을 바쳤고,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자신의 과업’을 마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고 알려져 있다. “장자(莊子)가 말했지. ‘삶은 몸에 붙어 있는 혹이며, 죽음은 혹을 짜서 터뜨리는 것’이라고. 공자도 말했지.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또 장횡거(張橫渠)는 이렇게 말했지. ‘살아 있을 때에는 일을 좇아 하고 죽으면 편히 쉰다’고. 나는 아직 일을 끝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은 병을 치료해야 하지만, 책이 완성되면 병이 나도 다시는 치료할 필요가 없어.”(「아버지 삼송당을 회상하며」 중에서) 사실 펑유란의 저서는 후스의 『중국철학사 대강』이 없었다면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철학사 대강』의 획기성은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도 잘 알 수 있다. 1915년 펑유란이 베이징 대학교에 다닐 때이다. 당시 중국철학사를 담당하던 교수는 ‘삼황오제’부터 시작해 한 학기가 다 가도록 강의해서야 겨우 주공에 이르는 식이었다. 서양 철학으로 따지자면 한 학기가 다 가도록 소크라테스도 나오지 않는 셈이었다. 그래서 참다못한 학생들이 이런 속도로 언제 강의를 마칠 수 있겠냐고 묻자, 끝내자고 한다면 한마디로도 끝낼 수 있지만 계속하자면 영원히 계속할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용주의적인 안목으로 과감히 노자공자로부터 시작해 고대 철학사를 정리한 후스의 작업은 신문화운동의 맹장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공자, 맹자, 장자가 모두 양복을 입고 있으며, 특히 묵자는 논리학을 강의하는 식의, 예컨대 중국사를 강의하는 미국인이 쓴 것 같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펑유란의 『현대 중국 철학사』는 이러한 후스의 철학사에 강한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동시에 이를 극복한 하나의 전범이라 할 수 있다. 펑유란은 그 자신과 함께 10대 국학자로 손꼽히고 있는 차이위안페이, 후스, 천두슈 등을 비롯해 장빙린, 쑨원(쑨중산), 마오쩌둥, 슝스리에 이르기까지 중국 현대 철학사에 큰 획을 그어 온 철학자들을 아우르며 중국 현대사를 기술하고 있다. 특히 청조 말기에서 시작해 구민주주의 운동과 신민문주주의 운동, 문화혁명, 중국 철학 근대화 시기까지 아우르는 이 책은 그 하나로 위대한 중국 현대 철학사이자, 현대사이기도 하다. 개혁 개방을 아우르는 중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가감 없이 다루며, 중국을 현재에 이르게 한 철학들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설파해 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