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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첫인상 (뉴포트에서 디모인까지) 국민과 깃발 / 너의 감옥들에 대해 얘기해다오…… / 종교에 대하여, 특히 야구에 대하여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가짜 / 대도시들도 죽는다 / 어린아이의 복수 / 미국 아랍인을 위한 유대 모델 / 왼쪽 노선 / 시카고 트랜스퍼 / 윌로 크릭의 신 / 비극의 의미, 녹스빌 스타일 서부로 가는 길 (칼로나에서 리빙스턴까지) 흑인 클린턴? / 힐러리와 그 자국 / 광신자들의 자리 / 미니애폴리스의 토크빌 / 누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죽였는가 / 늑대와 함께 춤을 / 신화로서의 러슈모어 / 반유대인주의에 물든 인디언 영웅 / 짐 해리슨과의 만남 / 가엾은 이스라엘 / 이데올로기의 귀환 태평양의 벽 (시애틀에서 샌디에이고까지) 나의 사랑 시애틀 / 게이랜드에서의 하룻밤 / 좌파들이 말하는 도덕성 / 절대 감옥 / LA로 가는 길 / ‘안티’ 시티, 로스앤젤레스 / 누가 비만을 두려워하는가 / 샤론 스톤이 말하는 부시 / 이민자들의 둥지 위로 날다 / 사람들은 어떻게 미국인이 되는가 사막의 현기증 (라스베이거스에서 템피까지) 섹스 코미디 / 사창가의 법칙 / 감옥 비즈니스 / 그들은 창조론을 말한다 / 모르몬교도들의 기발한 생각 / 미국에 사회보장제도가 있는가 / 금광 광부들의 유령 / 제국의 신화 / 노후를 위한 황금빛 인종차별 정책인가 / 미국 선거 양식의 특이성에 관하여 / 케리 선거 캠프를 방문한 프랑스인 외부의 시선에서 최근 미국 사회의 모습은 정말 현기증을 느끼게 한다. 나는 그 현기증의 실체가 ‘두 개의 미국’이 보여주는 긴장이라고 보고 싶다. _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UCLA 방문교수) 남부와 함께 사라지다 (오스틴에서 리틀록까지) 텍사스의 토크빌 / 길 잃은 크리스천과 돌아온 크리스천 / 미국의 신화 / 나치스처럼 무장한 사람들 / 뉴올리언스의 빛 / 지옥이 이러할 것이다 / 남부의 영광 / 남부를 믿었던 사람들과 더 이상 남부를 믿지 않는 사람들 / 미국의 노예와 그 억압에 대하여 / 가스펠과 컴퍼니 / 리틀록의 비극적 무도회 허리케인의 눈 (마이애미에서 피츠버그까지) 마이애미의 제임스 엘로이 / 마이애미는 끝장났는가 / 미국의 자연에 대한 느낌에 관한 짧은 노트 / 서배너에 있는 나의 유령 / 스콧 피츠제럴드를 위한 무덤 / 바람과 함께 귀향하다 / 마르스 대 비너스, 혹은 그 반대 / 리처드 펄과의 대화 / 빌 크리스톨과 내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 / 역사의 종말은 연회가 아니다 / 두 개(최소한)의 우파가 있다 행복한 자들과 저주받은 자들 (워싱턴에서 케이프코드로 돌아가기까지) 블랙홀 같은 민주당 / 워런 비티가 말하는 좌파 / ‘정크 정치’를 끝장내기 위하여 / 안보 시스템이 사람을 미치게 할 때 / 미국 여행 / 토크빌의 맹목? / 우디 앨런, 음악가?영화감독의 초상 / 세 명의 재계 거물 / 관타나모에서의 사흘/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 영원의 눈동자 아래에서 에필로그 |
Bernard-Henri Levi,애칭:B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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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모델이 고장 난 것인가? 민주주의가 병이 들었는가? 남북전쟁, 대공황, 뉴딜정책 때처럼 미국은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는가? 위협적인 것은 다수의 독재인가? 아니면 소수의 독재인가? 다수의 독재나 소수의 독재는 결국 같은 것이 아닐까? 소수가 다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라면, 즉 자신의 규범을 부과하여 저항하는 것들을 규칙에 맞게 길들이는 그 방식이 다수가 사용하는 언어체계를 모방하는 것이라면, 다수의 독재든 소수의 독재든 근본적으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렇다면 미국의 선민의식은 어떻게 되었는가? 걸출한 민족의 운명에 걸맞은 모범적인 공화국을 창설한다는 그 미친 꿈, 우리를 꿈꾸게 한 그 꿈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휴스턴이라든가 더스 패서스의 친구였고, 맨해튼과 맨해튼의 마천루를 사랑했으며, 미국적인 생활방식을 찬양했던 사르트르가 매카시즘 열풍을 지켜보며 “미국이 광견병을 앓고 있다”고 외쳤던 그 어두운 시절로 우리는 회귀하고 있는 것인가? 또한 그보다 몇 해 전, 또 다른 위대한 작가 토마스 만이 그것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유럽이여, 조심하시오”라고 경고했듯이, 오늘날의 우리는 우리의 미국인 친구들에게 미국을 조심하라고, 말하자면 전 세계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고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물리쳤고 유럽이 스스로 그것들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었으나 스스로 고백하듯 이제 피로의 징후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미국을 조심하라고 충고해야 하는 것일까? 월트 휘트먼이 “영혼의 사하라”라고 부른 것 속으로 들어갔다가 살아남은 문명은 아직까지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필요하면 그들에게도 환기시켜주어야 하는 것일까?
--- p.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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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본 일대에만 11만 5,000명의 아랍인들이 살고 있다. 미시건 주와 오하이오 주, 일리노이 주를 비롯하여, 미국의 나머지 다른 지역들에 대략 120만 명이 넘는 아랍인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이라크 문제와 부시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소위 문명 전쟁을 부채질하는 이들의 선동에도 불구하고, 이곳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다. 하나는 그들이 아일랜드계, 폴란드계, 독일계, 이탈리아계 등 그들보다 먼저 들어온 다른 모든 세대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물론 전자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그들이 거의 강박관념처럼 품고 있는 유대인에 대한 경쟁의식이다. 적이 아니라 모델이요 욕망의 모호한 대상으로 나타나는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모방적 경쟁, 드레퓌스 사건 이전의 프랑스 유대인들이 애용하던 격언을 빌어 표현하자면 ‘미국의 유대인들처럼 행복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다.
--- p.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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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미국에서 아미시로 사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좀 더 알아보고자 했다. 아미시가 어떤 종류의 시민인지, 투표는 하는지, 한다면 누구에게 표를 주는지, 신문은 읽는지, 읽는다면 9?11 테러를 어떻게 느꼈는지, 테러 위협이 자신들과도 상관있다고 느끼는지 등등을 알아보려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대화는 나를 경계하는 노파의 조카로 인해 너무나 짧게 잘려버리곤 했다. 아니오, 아미시는 투표를 하지 않습니다. 예, 아미시는 애국자도 아니고 착한 시민도 아닙니다. 아미시는 군복무도 공공 봉사도 하지 않습니다. 아미시는 9?11이니, 알카에다니, 미국의 안전이니 하는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더욱이 노파는 ‘미국인’이라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영국인’이라 할 뿐. 아미시들에게 미국은 나라가 아니라 추상이요 허구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아미시들은 누구인가? 오직 영원의 세계만 쳐다보면서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는 이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란 말인가? --- p.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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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버티고』는 미국의 유명 시사 월간지인 《월간 애틀랜틱》이 알렉시스 드 토크빌 탄생 200주년(2005년)을 맞아 추진한 특별 프로젝트에서 비롯되었다. 토크빌은 지금으로부터 170여 년 전, 미국의 감옥을 탐방하겠다는 목적으로 여행에 나섰다가 미국 사회 전역을 돌아보고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역작을 남긴 바 있다. 일찍이 현대 민주주의의 비전을 예견하고 ‘대중 독재’의 출현을 경고했던 이 책의 의의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월간 애틀랜틱》 편집장으로부터 토크빌의 발자취를 좇아달라는 제안을 받은 저자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토크빌의 방식에 따라 여행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즉 “눈으로 본 것들을 사유에 결합시키고, 사물들의 가시적 표면을 그것들의 은밀한 코드와 결합시키고, 어떤 관습이나 제도의 겉으로 드러난 텍스트와 그것을 형성하는 은밀한 원칙을 결합”시키기로 한다. 그리고 장장 1만 5,000마일에 달하는 대장정을 떠난다. 세간에 유행하는 반미주의, 반제국주의 도식을 넘어 미국, 미국인의 실체를 새롭게 파악하고자 하는 저자의 시도는 이전의 다른 미국 여행기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풍요로운 이념적 성찰과 디테일들을 보여준다. 과거를 날조해서 만들어진 가짜 신화들을 그것이 가짜임을 알면서도 신봉하는 보통사람들,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민주당원들,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공화당원들, ‘제국의 전쟁’을 지지하는 급진 좌파, ‘제국의 전쟁’을 반대하는 보수주의자,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면서도 유대인들처럼 ‘훌륭한 미국인’이 되고 싶어 안달하는 아랍계 시민들, 학살자 백인들을 증오하면서도 이라크전쟁에서 동족 전사들이 미국 군인으로서 펼친 활약상을 자랑하는 인디언들, 반유대주의에 젖어 있는 인디언 정치가, 인디언을 흠모하는 백인 소설가, 히틀러와 나치스의 ‘미학’에 매료된 무기 판매상들, 하나님을 신이라기보다 마치 친절한 신사나 친구처럼 여기는 초대형 교회 신자들, 미국인이길 거부하는 아미시 공동체 사람들, 야만적인 제국 병사의 이미지와 전혀 연결되지 않는 ‘덕스러운’ 전투기 조종사들, 스스로 애국자라고 자부하는 창녀들, 동포들의 밀입국을 막는 임무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자신이 미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멕시코계 국경순찰대원, 정치인처럼 말하는 샤론 스톤, 어쩌다 대통령이 된 미숙아 같은 조지 부시, 공화당의 앞잡이였다가 참회 후 민주당을 위해 일하는 데이비드 브록, 반전체주의 철학자처럼 말하는 조지 소로스……. 모순적인 것 같고 혼돈스럽게만 느껴지는 이 모든 사람들이 바로 미국이라는 복잡다단하고 중층적인 거대 텍스트를 이루는 활자들이다. 즉 한마디로 표현 불가능한, 이렇듯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바로 미국이라는 거대 발광체, ‘미국 이데올로기’의 실체라는 것이다. “그렇다. 반미주의가 그런 자석이 되었다는 것, 전체주의 거대 담론들이 붕괴되면서 그 효력을 상실해가다가 오늘날 유럽과 아랍 세계와 아시아 전역과 라틴아메리카 등지에서 맹목적 애국주의, 패권주의, 순수혈통주의, 자민족중심주의,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근본주의 등을 다시 자화(磁化)시키는 자석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현장에 나가 구체적인 증거들을 토대로 판단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런 키메라에 오늘날 미국의 구체적인 몸과 얼굴을 대면시켜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내가 그린 미국의 얼굴, 때로 그것은 실제보다 더 좋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실제보다 흉측하게, 특히 미국 친구들이 보기에는 아주 실망스럽고 절망스런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미덕을 갖게 될 것이다. 적어도 흑백논리나 본질주의나 상투화 같은 것들과는 관계를 끊게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바로 그것이 반미주의라는 유령에 대한 가장 정직한, 특히 가장 효율적인 대응이다.” (본문 중에서) 친미와 반미의 사이에서 미국에 관한 좌.우파적 고정관념들을 동시에 문제 삼는 것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좌파와 우파, 서구 제국주의와 제3세계 군부독재, 부시와 사담 후세인 등을 싸잡아 공격해온 그의 전력을 생각할 때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제3세계의 다른 어떤 나라들 못지않게 반미주의의 열풍이 거센 한국에서는 보는 이에 따라 오해하기 쉽거나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들도 많이 있다.(무엇보다 그는 유럽인이다.) 물론 그건 독자 개개인이 판단할 몫이리라. 그러나 과거 좌파 동료들의 비난과 숱한 오해에도 아랑곳없이 공산주의라는 20세기 전체주의를 맹렬하게 공격했듯이, 도그마를 경계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곤혹스러운 이념적 딜레마들을 정면 돌파하고자 하는 그의 용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그토록 사변적이면서도 속도감 있게, 재미있게 읽힌다는 점이다.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가는 재미에 저자 특유의 카리스마적인 문체를 만끽하는 재미가 겹쳐진다. 만연체에 만만치 않은 분량임에도 출간 1개월 만에 미국에서 종합 베스트 20위, 프랑스에서 3위에 오르는 등 흥행 돌풍을 일으킨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특히 2007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유력시되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과 바락 오바마를 비롯해 샤론 스톤, 우디 앨런, 워런 비티, 존 케리, 조지 소로스, 프랜시스 후쿠야마, 새뮤얼 헌팅턴, 찰리 로즈, 노먼 메일러, 론 레이건(로널드 레이건의 아들) 등 저명인사들과의 생기 넘치는 인터뷰는 독자들을 위한 특별 보너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