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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둥글다
책상은 책상이다 아메리카는 없다 발명가 기억력이 좋은 남자 요도크 아저씨의 안부 인사 아무것도 더 알고 싶지 않았던 남자 옮긴이의 말 |
Peter Bich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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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candy@yes24.com)
『책상은 책상이다』가 우리 나라에 처음 번역되어 소개된 것은 1970년대 말이었고, 그후에도 출판사 문장과 하늘연못에서 각각 1993년, 1996년에 출간한 바 있다. 이야기가 되돌아오고, 또 되돌아오는 이유는 비단 편집자의 은근과 끈기에서만 비롯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판본은 똑같은 내용을 판만 달리해서 낸 것은 아니다. 예전에 나왔던 것이 정식 판권 계약 과정을 거치지 않고 페터 빅셀의 단편집 3권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들을 추려내어 묶은 편집판이라면, 이번에 예담에서 출간한 책은 유명한 단편 「책상은 책상이다」가 있는『아이들 이야기(Kindergeschichten)』를 정식 계약을 거쳐 하드 커버 양장본으로 꾸민 정규 음반격이다.
『책상은 책상이다』는 모두 7명의 인물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모두 나이 들었으며, 외로우며 고집이 센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너무 할 일이 없어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계속 똑바로 나아가면 이 책상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는 걸 나는 알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그걸 알긴 하지만 믿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진짜 그런지 한번 시험해 봐야겠어.”라고 생각하고 진짜 길을 떠난다. 집이 나오면 빙 둘러가지 않고 그 집을 거쳐가기 위해 사다리 하나 달랑 들고. “더 이상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고, 미소 짓기에도 화를 내기에도 너무 지친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가 있다. 그는 어느날 이렇게 생각한다. “언제나 똑같은 책상, 언제나 똑같은 의자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사진이야. 그리고 나는 책상을 책상이라고 부르고 사진을 사진이라고 하고, 침대를 침대라고 부르지. 또 의자는 의자라고 한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거지?”그래서 그는 주위의 모든 사물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 부르기로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옛날에 쓰는 언어를 거의 잊어버리게 되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사람들도 그를 더 이상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어떻게 읽으면 모두 슬픈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진리라고 알고 있는 지구가 둥글다는 말이 진짜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여든 살의 노인과, 자신이 만들어 놓은 언어 체계 때문에 결국 자기 자신과만 말을 하게 된 한 사내의 이야기. 그리고 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게, 스스로 세상과의 단절을 자초한 나머지 다섯 명의 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읽으면 우습다는 생각보다는 먼저 애틋한 마음이 든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마음 한 구석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더 이상 들어주지 않게 되어 외롭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가끔이건 자주건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작가 페터 빅셀은 이 기이한 7명의 인물들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지는 않는다. 그렇다기보다 그가 이 편협한 노인네들에게 보내는 시선은 따뜻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듯하다. 책상을 `사진'이라고 바꿔 부르려는 주인공에게 철저한 고립이라는 벌을 내리지만, 주인공이 자신이 만든 규칙을 결코 포기하게 하지는 않는다. `요도크'밖에는 아무것도 몰라 식구들의 비웃음을 사는 할아버지를 작가는 비웃지 않으며, 지구가 둥근지 확인하려고 떠나는 것을 지켜본 사람은 노인을 기다린다. “그러나 이따금 나는 대문 밖으로 나가 서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가 어느 날엔가 지쳐 느릿하게, 그러나 웃음을 띠며 숲에서 걸어나오는 것을 본다면, 그리고 내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해 준다면 나는 정말 기쁠 것이다. `이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네.'” 페터 빅셀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이해 받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주어와 서술어가 각각 하나씩 있는 단아한 단문으로 따뜻하게 안아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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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몇 날, 몇 주, 몇 달, 몇 해가 지난 뒤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 그가 책상 앞에서 일어나 길을 떠나기만 한다면 훗날 책상의 반대쪽으로 다시 돌아올 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사실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계속 똑바로 나아가면 이 책상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는 걸 나는 알지." 남자가 말했다. "그걸 알긴 하지만 믿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진짜 그런지 한번 시험해 봐야겠어." "똑바로 걸어가보는 거야." 이제 아무것도 더 할 일이 없는 그 남자는 얼마든지 똑바로 걸어가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남자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게 십 년 전 일이고 그때 그는 여든 살이었다. 이제 그는 아흔 살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중국에 다다르기 전에 그 사실을 깨닫고 여행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따금 나는 대문 밖으로 나가 서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가 어느 날엔가 지쳐 느릿하게, 그러나 웃음을 띠며 숲에서 걸어나오는 것을 본다면, 그리고 내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해 준다면 나는 정말 기쁠 것이다. "이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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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똑같은 책상, 언제나 똑같은 의자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사진이야. 그리고 나는 책상을 책상이라고 부르고 사진을 사진이라고 하고, 침대를 침대라고 부르지. 또 의자는 의자라고 한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거지?"…
"이제 달라질 거야." 이렇게 외치면서 그는 이제부터 침대를 '시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피곤하군, 사진 속으로 들어가야겠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아침마다 한참씩 사진 속에 누운 채로 이제부터 의자를 뭐라고 부를까를 고심했다. 그러다가 의자를 '시계'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시계 위에 앉아 양팔을 양탄자 위에 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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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똑같은 책상, 언제나 똑같은 의자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사진이야. 그리고 나는 책상을 책상이라고 부르고 사진을 사진이라고 하고, 침대를 침대라고 부르지. 또 의자는 의자라고 한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거지?"…
"이제 달라질 거야." 이렇게 외치면서 그는 이제부터 침대를 '시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피곤하군, 사진 속으로 들어가야겠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아침마다 한참씩 사진 속에 누운 채로 이제부터 의자를 뭐라고 부를까를 고심했다. 그러다가 의자를 '시계'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시계 위에 앉아 양팔을 양탄자 위에 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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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된 페터 빅셀의 대표작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화제작이었던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가 예담에서 새롭게 출간될 예정이다. 현대인의 소외와 상실을 절제되고 압축된 문장으로 환기시킨 이 책은, 1969년 발표 당시 모더니즘의 '언어 위기' 문제와 결부되면서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지난 1970년대 말에 처음 소개되었다. 예전에 국내에 나왔던 『책상은 책상이다』는 페터 빅셀의 단편집 3권을 선별해서 묶은 작품집이었지만 이번에 나온 『책상은 책상이다』는 3권 중 하나인 『아이들 이야기Kindergeschichten』를 정식 계약을 거쳐 출간한 책으로, 한독문학 번역상을 수상한 이용숙 씨의 매끄러운 번역으로 새롭게 선보인다. 당시 빅셀은 소설로 규정할 수 없는 짧은 산문과 시적 내용이 결합된 작품으로 1960년대 산문 문학에서 새로운 장르 개념을 만들어냈다. 발표작은 많지 않았지만 독특한 개성으로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독일어권의 대표적 작가로 자리잡았으며 특히 『아이들 이야기』는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세계 2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면서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빅셀의 작품 중에서도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번역 소개된 이 책을 이제는 우리 국내 독자들도 온전한 한 권의 단행본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제목 『책상은 책상이다』는 이 책의 단편 중 하나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따스한 유머가 있는 페터 빅셀의 일곱 가지 이야기 1960년대 말에 이 책을 쓰면서 빅셀은 기존 언어와 사유 체계의 전복을 시도하면서 산업화에 따른 인간 소외와 의사 소통의 부재를 이야기했다.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이야기에는 평범한 삶에 실패한, 별나고 우스꽝스럽지만 서글픈 세상의 아웃사이더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믿지 못하는, 그래서 정말 둥근지 확인해 보려고 길을 떠나는 남자, 기존 언어 체계에 답답함을 느껴 사물의 이름을 바꿔 부르다 결국에는 다른 사람과 의사 소통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사람, 그리고 아메리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수십 년 동안 세상을 등지고 혼자 발명에 전념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발명해 낸 물건이 이미 세상에 다 보급되어 있는 텔레비전임을 알게 된 발명가……. 주인공들은 이미 완결된 체계에 대한 '회의'와 '부정'에서 출발한다. 지구는 둥글다, 책상은 책상이다 등. 너무 당연하여 그렇지 않으리라고는 감히 생각도 못할 불변의 진리에 대해 그들은 의심한다. 지구는 정말 둥글까? 책상은 책상으로 불려야만 할까? 별난 주인공들은 이러한 회의와 부정으로 기존의 사유와 언어를 뒤집어엎고, 그것을 통해 기성 체제의 권위와 권력에 도전한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책상을 양탄자라고 부르고, 아메리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끝까지 믿는 반항아들. 그러나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인하러 간 남자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책상을 양탄자라 부르던 남자는 절망적인 실어증에 빠지고 만다. 아메리카는 없다고 믿는 남자는 끝끝내 그곳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결국 이 책은 이들이 소외되고 고립되는 서글픈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작가는, 세상의 기준에 맞춰 안락하게 살아가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이 믿는 진실을 끝까지 추구하는 이 아웃사이더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진심으로 격려하고 있다. 그로부터 30년 이상이 지난 현재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온종일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교환하고 인터넷으로 이메일을 보낼 수 있어 '고립'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져야 할 것처럼 보이는 시대다. 하지만 현대인은 자유로운 사고 활동에 더욱 제약을 받고 상호간 의사 소통의 통로는 점점 단절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더욱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따스하면서도 긴장감 있고 유머러스한 문체로 우리를 색다른 사색으로 유혹하는 이 책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고립'을 되짚어볼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