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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한국 마애불의 유형과 변모
1. 마애불, 바위에 새긴 부처 2. 한국적 신앙형태의 불교 유적 산악신앙과 마애불 바위신앙과 마애불 마애불의 기원 3. 마애불의 양식변천과 예술미 삼국시대의 마애불 신라시대의 마애불 고려시대의 마애불 조선시대의 마애불 4. 마애불에 투영된 한국인의 심상 2부. 마애불을 찾아서 1. 산 속 깊이 숨은 은자-서산 마애삼존불을 포함하여 34곳의 마애불 2. 삶터에 내려앉은 지킴이-예산 화전리 마애사방불을 포함하여 36곳의 마애불 3. 세상을 굽어보는 하늘미륵-경주 서악동 마애삼존불을 포함하여 38곳의 마애불 부록:전국 마애불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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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내용
무·불·선을 아우른 한국의 마애불
산은 한국인에게 생활신앙의 모태였다. 하늘과 가까이 맞닿은 곳으로서, 신이 내려오는 성역으로서 숭앙의 대상이었다. 그런 곳의 암벽에 조각했기에 마애불은 한국인의 원초적인 신앙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부처가 새겨진 바위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바위가 아니며 거북 형태나 남녀 성석(性石)과 함께 자리해 있어서, 산악의 정령이 깃들여 있다고 믿는 특별한 바위에 이름을 쓰거나 치성을 드리던 무속신앙과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애불과 관련된 신화와 전설 또한 무불신앙이 섞여 있음을 보여준다. 때로는 도교의 신선사상과 복합된 양상을 보이기도 하고, 암각화나 거석문화를 통해서도 마애불이 우리나라에 어떤 모습으로 새로 태어났는지를 알 수 있다. 한국 마애불의 변천 한국 마애불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서산의 마애삼존불이다. 6세기 후반의 백제 작품인 이 마애불은 위치나 바위의 형태, 불상의 방향 등을 볼 때 첫작품이면서도 한국 마애불의 원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광대뼈가 살짝 드러난 둥글넓적한 얼굴과 해맑은 미소는 친근한 우리의 소년상을 연상시키고, 간결한 조각수법으로 자연스레 살려낸 볼륨감에서 부조의 예술미가 넘쳐난다. 부드럽고 온화한 백제 특유의 미의식이 담겨 있는 작품이며, 당시 백제 사회의 불교에 대한 저력을 짐작하게 해준다. 부조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조각적 예술미는 8세기 신라의 마애불에서 화려하게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주로 당대의 수도인 경주 주변에 조성되었는데, 남산의 칠불암 마애불상군과 신선암 마애보살상, 용장사지 마애불좌상, 굴불사지 사방불 등등 신라 불교문화의 전성기 면모를 한껏 자랑하고 있다. 신라 후기에는 전망 좋은 산 정상에 점지한 마애불들이 많아진다. 하늘 가까운 최상의 위치에 모시기 위한 선택이면서, 동시에 백성의 삶터를 바라보도록 배려한 기복신앙 측면이 엿보인다. 이는 당대에 유행했던 미륵신앙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마애불이 미륵불 개념으로 정착된 것은 고려시대이다. 이 시기에는 신라 후기의 마애불 조성형식을 이어받아 다채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지방 호족세력의 성장에 힘입어 지방 곳곳에 마애불이 조성됨으로써 마애불 전성기를 이룬다. 고려 마애불의 백미는 거대한 크기에 있다. 파주 용미리 마애불은 불상 높이가 17.7미터이며, 내금강 묘길상 마애불은 좌상이면서도 높이가 15미터이다. 이러한 초현세적인 듯한 거불의 등장은 미륵부처의 키가 160척이나 된다는《관불삼매해경》의 내용에 따른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신라시대의 마애불과 달리 탄력 있는 양감이나 세부조각의 정제미가 소홀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조성된 마애불은 바위 자체가 지닌 신이성(神異性)을 강조한 듯하다. 국가의 정치이념이 유교로 바뀐 조선시대에 오면 마애불 조성은 급격히 줄어든다. 고려시대에 이미 많은 마애불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마애불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을공동체의 민속신앙이 융성해져 민불이나 미륵으로 불리던 선돌, 장승, 남·여근석 등이 기복적인 마애불의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삶·종교·예술이 어울린 한국 마애불의 미학 이렇듯 시대에 따른 마애불 형식은 서로 다르지만 우리 마애불의 변함없는 특징은 마애불을 새긴 암벽이나 바위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변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단순히 절대적인 신으로서 부처의 형상만을 조각했다기보다 바위에 담긴 정령을 존중했던 것이다.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의 바람을 실어낸 무속적인 신상의 의미로 조성된 것이 한국의 마애불인 것이다. 그래서 마애불은 산 속 깊이 숨은 은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하늘 가까이에서 삶터를 굽어보는 산신령 같은 하늘미륵으로, 때로는 땅으로 내려앉아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는 지킴이의 역할을 겸한 존재로 각자의 성격에 맞게 조성되어 왔다. 미륵의 세상을 꿈꾸며 끊임없이 변화를 갈망하며 인간의 세속적 삶을 반영해 온 마애불이기에, 우리 마애불은 이상화한 부처의 존재 그 하나의 형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때로는 어린애 같은 모습으로, 때로는 인자한 표정으로, 때로는 목에 잔뜩 힘을 주어 권위를 내세운 자세로, 때로는 수더분한 시골 아저씨 같은 편안함으로, 때로는 손발이 어색하고 신체비례를 무시한 자태로, 부처의 격식을 완전히 벗은 형태의 마애불로 다채롭게 묘사되어 있다. 한국인의 여러 용모와 심상(心像)을 그대로 암벽에 새겨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마애불은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자연과 조화를 우선시했던 선조들의 마음이, 정교한 것은 그대로 완벽하게, 거친 것은 그대로 미숙하게 표현하도록 함으로써 더 친근하고 자애로움을 풍긴다. 마애불의 예술적 진정성은 바로 그 점에서 나올 것이다. 마애불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의 산하를 다시 음미하게 되고, 또 그 산하를 사랑한 선조들의 심상과 종교적 정서, 부처상에 담긴 시대정신과 조각미를 읽게 될 것이다. 자연과 예술이 어울린, 마애불과 함께 보는 풍광 속에서 가슴 벅찬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