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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Fa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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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그중에서도 야간열차 덕분에 나는 느림에 대한 욕구를 맘껏 발산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을 지나면서 잃어버렸던 그 소중한 것을 되찾은 후 나는 글쓰기에 뛰어들었고 지금껏 그 속도에 맞춰 글을 써오고 있다. 열차 안에선 느림이라는 것이 사치로 여겨지거나 죄악시되지 않는다. 거기선 뭔가를 ‘한다’는 게 쓸데없는 짓이다. 그래봤자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해서 기차는 나름대로 사회적 평등을 실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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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들만의 호텔, 즉 접이식 의자가 침대를 대신하는 ‘야간열차 호텔’에 들어서기만 하면 그들은 금세 활기를 되찾는다. 그래서 야간열차 안은 아랍의 시장 바닥처럼 술렁거린다. 복도는 방방곡곡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붐빈다. 이미 친한 사람들, 앞으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 그들은 과거에 작별인사를 하고 미래와 마주하며 무자비한 현실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느라 분주하다. 단골손님이라야 제대로 찾아올 수 있는 이 호텔에서는 꿈과 사색과 명상이 제자리를 되찾는다. 지나치게 낮만 중요시하는 사회, 즉 사람들이 자신만의 내밀한 영역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회에서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내쳐질 위기에 처한 그 모든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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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모험을 열망하는 여행자를 위한 특별한 지도
_내밀한 내적 체험과 지적인 사색이 결합된 여행 에세이 《야간열차》의 저자는 에릭 파이 한 사람이 아니라 여행을 통해 자신의 숨은 열정을 일깨우고 정신의 방랑을 즐겼던 수많은 예술가들이다. 프란츠 카프카, 스콧 피츠제럴드를 비롯해 국내에서는 생소한 작가들, 가령 러시아 신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빅토르 펠레빈이라든가, 알바니아의 이스마일 카다레에 이르기까지 문학.영화.역사 전반에 대한 작가의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은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무의미한 풍경에 예기치 못했던 의미를 부여한다. 작가의 독창적인 시선과 해석을 통해 차창 밖 풍경은 현대 문명의 다층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역동적인 활동사진으로 변한다. 덜컹거리는 화면 너머로 수천 년 전의 전설(카스피해)이나 이십 세기 중반 냉전의 아픔(베를린)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속의 한 장면(스위스)이나 키리코의 그림 한 폭(그랜드센트럴 역)이 아름답게 펼쳐지기도 한다. 야간열차 안에선 그렇듯 순간적이고 덧없는 일들이 미세하게 다른 모습으로 끊임없이 되풀이되곤 했다. 떠나온 역에 대한 기억은 반 이상 지워졌지만, 다가오는 역에 대해선 통 짐작도 할 수 없는 상태. 벵골어로는 ‘어제’와 ‘내일’을 가리키는 말이 똑같다더니, 철로 위에선 현재가 과거나 미래와 똑같은 간격을 둔 채 끊임없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일상적인 시간관념으로 파악할 수 없는 시간, 줄타기 곡예를 하는 시간이랄까. 멋모르고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었을, 그러니까 잠을 못 자서 큰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그 불면의 순간에, 희한하게도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왠지 모를 기쁨이 샘솟는 것을 느끼곤 했다. 하긴, 에밀 시오랑도 말하지 않았던가.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 그럴 때마다 어두운 밤거리를 헤매며 황홀경에 빠지곤 했다고, 낮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사의 부질없음을 온몸으로 느끼곤 했다고. 심지어 그는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잘 잠 다 자고 보낸 일 년보다 잠 못 이루고 보낸 하룻밤 사이에 배우는 게 더 많다.” (12쪽) 역이나 대합실의 규모와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욕구 사이에는 분명히 상관관계가 있다. 큰 역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그랜드센트럴 역도 바로 그런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신비로운 장소다. 머나먼 곳으로 떠나고픈 욕구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아니 빨아들이는 그런 곳. 철로에 귀를 갖다 대고 있노라면 캐나다 오대호의 맥박에 맞춰 기관차가 가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을까. 그랜드센트럴 역만큼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가 그린 그림 〈영원을 향한 노스탤지어Nostalgie de l'infini〉(어스름이 내린 후경에 증기기관차가 달려가고 있는 풍경)의 제목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곳도 없는 듯하다. 그곳에서 열차를 타게 되기를 얼마나 바라고 또 바랐던가. 마음속 ‘닻 올리기 장치’-자, 떠나자!-가 그토록 맹렬히 가동되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란……. 나는 그저 가만히 그런 감정이 솟구쳐 올라 마구 요동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왜 떠나지 못하는 걸까? 왜 개들만 숲의 부름에 따르는 걸까? 개보다 더 잘 사육된 인간이여, 제 목을 죄고 있는 사슬을 끊지 못하는 한심한 인간이여……. (108-109쪽) 유라시아, 역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옛 문명의 중심지를 찾아서 작품 속에서 야간열차는 여행의 낭만과 환상만을 부추기지 않는다. 그리스에서 몽골에 이르는 긴 여정은 이십 세기 현대 문명에 대한 뼈아픈 성찰을 담고 있다. 저자는 ‘유라시아’를 여행지로 택하고 있는데 유라시아는 여행자들이 꿈꾸는 로맨틱한 장소가 아니다. 여행에 이골이 난 여행자가 아니라면 오히려 대충 지나가거나 건너뛰고 싶어 하는 장소다. 그리스의 판텔레이몬 수도원에서 만난 난민들과 불가리아의 스산한 거리와 알바니아의 황폐한 호텔 등등. 저자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나라를 지나면서, 아예 지도에서 사라져버린 나라를 떠올리며 현실을 뼈아프게 되새기고 지나친 문명화의 폐단에 대해, 꿈꾸는 유목민들의 문명을 말살해버리는 세태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십 세기 내내 얼마나 많은 길이 폭파되었으며 앞으로는 또 얼마나 더 그럴 것인가. 열차는 얼마나 많은 ‘유령’ 국가에, ‘허수아비’ 국가에 승객들을 내려놓았으며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날마다 다른 모양의 조각들로 맞춰지는 이 발칸 반도라는 퍼즐, 비하츠, 크로아티아, 서크라이나, 동크라이나, 스랍스카, 그밖에 수많은 ‘안전지대’들……. 그날 밤 그 좁은 땅덩어리에서 그토록 많은 전쟁터를 지나왔다니,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팔 년 후 유고연방이 해체되고 유고슬라비아가 산산조각이 나리라고 그때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84쪽) 베를린이란 도시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기록된 양피지다. 예전에 기록되었던 것들이 지워진 자리에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 적히는 양피지. 수많은 건물들이 무너져 내린 그 자리에, 참모본부가 폭격을 당했던 그 자리에 각국 대사관이며 아들론 호텔이 들어섰다. 아, 베를린 위에 평평하게 드리워져 있던 그 희미한 빛! 크리스타 볼프는 작품 속에서 동독인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그래, 하늘도 두 쪽으로 나눠질 수 있지.” 그 늦가을 날, 하늘은 두 쪽으로 나눠져 있지 않았다. 분명히. (13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