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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프롤로그 | 편집된 세상을 에디톨로지로 읽는다 PART 01.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 01 왜 에디톨로지인가? 02 창조의 본질은 낯설게 하기다 03 지식권력은 이제 더 이상 대학에 있지 않다 04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 쥐 때문이다! 05 김용옥의 크로스 텍스트와 이어령의 하이퍼텍스트 06 노트와 카드의 차이는 엄청나다 07 편집 가능성이 있어야 좋은 지식이다 08 예능 프로그램은 자막으로 완성된다 09 연기력이 형편 없는 배우도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이유 10 클래식을 좋아한다면 절대 카라얀을 욕하면 안 된다 PART 02.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 01 관점의 발견과 서구 합리성의 신화 02 우리는 윈도(창문)로 세상을 개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믿는다 03 원근법은 통제 강박이다 04 권력은 선글라스를 쓴다! 05 시대마다 지역마다 달라지는 객관적(?) 세계지도 06 공간 편집에 따라 인간 심리는 달라진다! 07 독일인들의 공간 박탈감이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다! 08 19세기 프로이센 군대와 축구의 공간 편집 09 제식훈련과 제복 페티시 10 분류와 편집의 진화, 백화점과 편집숍 PART 03.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 01 개인은 편집된 개념이다 02 ‘나’는 내 기억이 편집된 결과다! 03 우리는 왜 백인에게는 친절하고, 동남아인에게는 무례할까? 04 천재는 태어나지 않는다. 편집될 뿐이다! 05 미국은 국가國歌로 편집되는 국가國家다 06 심리학의 발상지 독일에서 심리학은 흥행할 수 없었다 07 프로이트는 순 사기꾼이었다! 08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는 위대한 편집자였다! 09 항문기 고착의 일본인과 구강기 고착의 한국인 10 책은 끝까지 읽는 것이 아니다! 에필로그 |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아주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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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프롤로그 | 편집된 세상을 에디톨로지로 읽는다 PART 01.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 01 왜 에디톨로지인가? 02 창조의 본질은 낯설게 하기다 03 지식권력은 이제 더 이상 대학에 있지 않다 04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 쥐 때문이다! 05 김용옥의 크로스 텍스트와 이어령의 하이퍼텍스트 06 노트와 카드의 차이는 엄청나다 07 편집 가능성이 있어야 좋은 지식이다 08 예능 프로그램은 자막으로 완성된다 09 연기력이 형편 없는 배우도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이유 10 클래식을 좋아한다면 절대 카라얀을 욕하면 안 된다 PART 02.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 01 관점의 발견과 서구 합리성의 신화 02 우리는 윈도(창문)로 세상을 개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믿는다 03 원근법은 통제 강박이다 04 권력은 선글라스를 쓴다! 05 시대마다 지역마다 달라지는 객관적(?) 세계지도 06 공간 편집에 따라 인간 심리는 달라진다! 07 독일인들의 공간 박탈감이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다! 08 19세기 프로이센 군대와 축구의 공간 편집 09 제식훈련과 제복 페티시 10 분류와 편집의 진화, 백화점과 편집숍 PART 03.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 01 개인은 편집된 개념이다 02 ‘나’는 내 기억이 편집된 결과다! 03 우리는 왜 백인에게는 친절하고, 동남아인에게는 무례할까? 04 천재는 태어나지 않는다. 편집될 뿐이다! 05 미국은 국가國歌로 편집되는 국가國家다 06 심리학의 발상지 독일에서 심리학은 흥행할 수 없었다 07 프로이트는 순 사기꾼이었다! 08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는 위대한 편집자였다! 09 항문기 고착의 일본인과 구강기 고착의 한국인 10 책은 끝까지 읽는 것이 아니다! 에필로그 |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아주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金珽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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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인간이 가장 창의적일 때는 멍하니 있을 때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멍하니 있을 때, 생각은 아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가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아니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할 때가 있다. 그러고는 그 생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거꾸로 짚어나간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생각의 흐름을 찾아냈을때, 자신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날아다녔던 생각의 범위에 놀라게 된다. 보통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창조적인 순간이다. 보통사람은 어쩌다 겪는 ‘날아가는 생각’이지만, 천재에게는 일상이다. 천재와 이야기를 나눠보면 생각이 마구 건너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무지 쫓아가기가 어렵다. 내 가까운 후배, 넥슨의 김정주 대표가 그렇다. 한국 IT 분야의 3대 기업이라면 NHN, NC소프트, 넥슨을 꼽는다. 한방에 훅 가는 IT 업계에서 그렇게 성공적으로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김정주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함께 대화하다 보면 자주 황당해진다. 이야기가 막 건너뛰기 때문이다. 한참을 떠들다 보면 처음 주제가 뭐였는지 아예 까먹는 경우도 많다. 말끝도 대충 얼버무린다. 생각이 날아다녀서 그렇다. 천재의 생각은 날아다닌다. 그러나 그 날아다니는 생각을 현실에서 구체화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김정주는 자신의 날아다니는 생각을 잡아내 구체화했다. 바로 그것이 그의 특별함이다. 김정주의 아날로그적 삶도 날아다닌다. 전화하면 어제는 서울, 오늘은 홍콩, 내일은 일본, 스페인, 남아공, 뉴욕이다. 사는 곳은 제주도다. 날아다니는 생각은 천재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또라이’의 특징이기도 하다. 천재와 또라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천재는 날아다니는 생각을 잡아 처음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또라이는 그렇지 못하다. 생각이 그냥 계속 날아간다. 자신의 생각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마구 날아간다. 오늘날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보통사람들도 천재처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신이 일부 천재들에게만 부여한 ‘날아다니는 생각’을 이제 보통사람들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바로 ‘쥐’ 때문이다. 그건 컴퓨터의 ‘마우스’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은 생각을 날게 하는 도구를 갖게 된 것이다.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관심 있는 곳을 클릭하면 생각은 바로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방금 전의 맥락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다. 이건 엄청난 혁명이다. 그런데 아무도 마우스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클릭하면 날아가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클릭했는데 다른 곳으로 바로 안 넘어가고 버벅대면 이젠 아주 신경질까지 낸다. --- p. 52~54 자라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지적 충격을 받는다. ‘아, 나도 한번 저 사람처럼 글 쓰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다. 지식욕도 일종의 허영이다. 한번 폼 나고 싶은 거다. 사람은 남들에게 폼 나 보이고 싶을 때 성장한다. 어릴 때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나이 들면서는 대중에게 폼 나 보이려고 한다. 그리고 애나 어른이나 남자는 항상 여자에게 폼 나 보이고 싶어 한다. 헤겔의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의 핵심은 나도 한번 폼 나고 싶다는 심리학적 ‘동기motivation’다. 내 지적 성장 과정에서는 이어령 선생과 도올 김용옥 교수가 그렇게 폼 나 보일 수 없었다. 나도 그들처럼 글 쓰고, 말하고 싶었다. 김용옥은 학문적 텍스트에 ‘나’라는 주어를 처음 쓴 사람이었다. 그때까지 인문·사회과학 텍스트에 ‘나’라는 주어를 쓰는 경우는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김용옥이 처음이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연과학이 학문의 전형으로 여겨진 후, 인식주체인 ‘나’는 학문적 글쓰기에서 사라졌다. 자연과학적 지식의 핵심은 ‘주체가 배제된 객관성’이기 때문이다. --- p. 66~68 독일로 도망쳐 오기는 했지만, 당시 나는 역사의 맨 앞에 서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한국 사회의 대안을 제시하고 싶은 열망도 있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 하루아침에 역사의 가장 뒤꽁무니로 처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을 송두리째 빼앗긴 듯한 상실감과 자괴감에 고통스러운 시간이 계속되었다. 한국적 상황에서 강요받았던 공부의 방향이 상실되자, 주체적 학습의 내용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왜 공부해야 하는가의 때늦은 질문이기도 했다. ‘사회Gesellschaft’와 ‘문화Kultur’의 개념적 차이에 관한 논의에 특히 관심이 갔다. 결국 ‘문화심리학’으로 내 공부 방향을 결정했다.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Was ist deine Theorie? 네 이론은 뭔가?” 면담 신청을 하고, 몇 달을 기다려 겨우 만난 지도 교수는 내게 물었다. 내가 펼쳐놓은 논문 계획서는 읽어보지도 않았다. ‘내 이론이라니?’ 그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내 이론을 생각해본 적도, 내 이론을 만들 생각도 없었다. 한국에서 겨우 학부를 마쳤을 뿐이었다. 그것도 매일같이 데모, 수업 거부, 시험 거부로 이어진 대학 생활이었다. 내 이론은 무슨! 이론은 학생이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도 교수는 이제 막 독일에 정착한 내게, 내 이론이 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없다고 했다. 당신의 이론을 배우러 왔다고 했다. 그러자 나가라고 한다. 석사·박사 논문을 쓰겠다는 학생이 어찌 자기 생각이 없을 수가 있느냐는 거다. 남의 이론 요약하는 것으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고 했다. 스스로 제시하고 싶은 이론의 방향을 생각해서 다시 오라고 했다. 주체적 시선으로 공부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학문적 문제의식이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내 주체적 관점이 분명해야 남의 이론을 흉내 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공부하는 방법부터 바꿔야 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그저 대가의 이론을 이해하고 외우는 것만으로 내 이론 구성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 p. 83~84 10년 가까이 최고의 시청률을 놓치지 않고 있는 MBC의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살펴보자. 박명수와 유재석 사이의 대화다. 박명수: (어금니 꽉) “다음 달이면 부인이 출산하시지요?” 유재석: (무슨 소리) “다다다음 달입니다.” 박명수: “그럼 다다음 달에 출산하는 분은 누구입니까?” (해골 그림) (모함개그 되치기) 유재석: (못 참아) “지금 여기서 바로 저분 고소할 수 없습니까?” (초반 치열한 신경전) 박명수와 유재석이 나누는, 불과 12초에 불과한 대화에 나오는 자막이다. 두 사람이 실제 나눈 대화는 이 자막의 절반에 불과하다. 두 사람의 행동에 대한 설명과 그림, 그리고 다양한 시각 효과가 실제 멘트보다 더 많다. 사람들은 그 많은 자막의 정보를 화면과 동시에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몰입한다. 외국에서 살다가 오랜만에 들어온 사람들은 정신 산만하다며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대화 중 괄호 안에 들어가 있는 자막의 주인공은 도대체 누구인가? 박명수나 유재석일 경우도 있지만, 꼭 두 사람이 아닌 경우도 많다. 자막의 주체는 장면을 편집하는 PD일 수도 있고, 시청자일 수도 있다. 자막은 그 상황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일 때도 있고, 의성어나 의태어일 수도 있다. 요즘은 화려한 ‘CG’가 자막의 중요한 요소로 사용된다. 출연자의 얼굴에 땀이나 눈물을 그려 넣기도 하고,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거나 머리 위로 비가 쏟아지기도 한다. 이같이 화려한 자막을 통해 시청자는 자막이 없을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정서적 경험을 체험하게 된다. 무한도전이 그토록 오랫동안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자막의 힘에 있다. 자막은 PD의 영역이다. 물론 작가의 도움이 필요하긴 하지만, 영상의 편집과 맞물려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영역에 자막을 넣는 것은 전적으로 PD의 책임이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녹화한 화면을 오직 하나의 화면으로 편집해내야 하는 PD나 영화감독은 이 시대 최고의 편집자다. 뛰어난 에디톨로지적 능력을 발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제7의 멤버’로 불리는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만드는 자막은 이제까지 우리가 봐왔던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토록 인기가 있는 거다. --- p. 109~110 여타 포털 사이트의 메모 프로그램이나 다양한 앱이 있지만 내 경험으로는 에버노트가 최고다. (분명히 밝히지만, 난 에버노트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은 적 없다.) 에버노트는 버그가 많다. 그러나 바로바로 업데이트 된다. 에버노트 개발자들의 마음이 급한 거다. 데이터 관리의 좋은 방법이 발견되면, 채 완성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던져놓는 것 같다. 그래도 참을 만하다. 그만큼 좋은 프로그램이다.에버노트는 내가 사용하는 모든 IT 기기에서 동기화시켜 사용할 수 있다. 남의 컴퓨터에 들어가 사용할 수도 있다. 급할 때 최고다. 웬만한 텍스트 작업도 큰 불편 없이 할 수 있다. 데이터 관리를 할 때 난 일단 자료를 계층적으로 분류해 저장한다. 에버노트의 각 ‘노트북’이 대분류로 나뉘어 있고, 각 노트북 안에 또 다른 하위 노트북들이 들어 있다. 그 계층구조가 3단계, 4단계까지 올라가는 복잡한 것도 있고, 한 단계에서 끝나는 간단한 것도 있다. 책, 잡지, 신문 등을 읽을 때 중요한 내용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갤럭시 노트의 ‘스크랩’ 기능으로 잘라내 저장한다. (갤럭시 노트의 스크랩 기능은 정말 최고다!) 키워드나 연관된 개념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넣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층적 분류가 세밀해진다. 아날로그적 데이터베이스라면 나중에 감당 안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러나 디지털 세상에서는 다르다. 분류의 변신과 합체가 언제든 가능하다. 원고를 써야 할 때는 각 노트북과 노트북 안에 들어 있는 각 ‘노트’들이 재편집된다. 검색으로 각 데이터들을 불러내 새로운 분류를 만든다. 네트워크적 지식의 생성이다. 글 쓸 아이디어가 부족할 때면 이런저런 검색 놀이로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생성된 지식은 일부 살아남기도 하지만, 바로 지워버리는 경우도 많다. 복사본으로 만든 것이니 지워도 된다. 내 에버노트에는 현재 수천 개의 노트가 저장되어 있다. 이어령 선생과 대화하다 보니, 선생의 에버노트에는 1만 4,000개의 노트가 저장되어 있단다. 팔십 노인의 데이터베이스다. 정말 많이 부끄러웠다. 에버노트를 사용해 공동 작업을 하면 정말 효율적이다. 데이터 공유 기능을 이용해 자료를 서로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면 시간만 절약되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집단 지성’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눈으로 보게 된다. 지식 경영이란 이와 같은 구체적 데이터 공유를 통해 가능해진다. --- p. 369~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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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 망가져 있습니다. 대한민국 성공한 사람들은 거의 다 만나봤습니다. 대부분 정상이 아닙니다. 본인만 모릅니다.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해봅시다. 그 위치까지 가려고 도대체 얼마나 미친 듯 살았겠습니까? 얼마나 이를 꽉 물고 버텼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경쟁자들을 밟고 그 자리까지 갔겠습니까? 그런데도 자신의 몸과 마음이 형편없이 망가져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주위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가 가진 돈과 권력 때문에 아무 말 하지 않을 따름입니다. 그러다가 다들 ‘한 방’에 훅 가는 겁니다. --- p.6 사실 일본에서 고독은 아주 자연스럽다. 오십을 넘겨 그림 공부 하겠다며 건너온, 나이 든 유학생이 원룸 아파트에서 혼자 밥 해먹고 혼자 돌아다녀도, 하나도 안 불편하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어도 쑥스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의 고령화 속도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고독’은 아직 낯선 단어다. 고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에서 고독은 실패한 인생의 특징일 따름이다. 그래서 아직 건강할 때, 그렇게들 죽어라고 남들 경조사에 쫓아다니는 거다. 내 경조사에 외로워 보이면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 p.22 혼자 지내면 수시로 불안하다. 외국에서 지내니 더 그렇다. 심리학을 30년 넘도록 공부하고 있지만, 내 특별한 중년의 불안을 해결하는 신통한 심리학적 해결책은 없는 듯하다. 일본 아줌마들은 참 열심히 이불을 넌다. 햇볕이 참 좋다 생각하고 창문을 열면, 집집마다 이불이 창문에 걸려 있다. 나도 이불을 널었다. 오후 내내 그림을 그리다 저녁 무렵 학교에서 돌아올 때, 우리 집 창틀에 이불이 걸려 있으면 참 기분 좋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아서다. 밤에 그 ‘뽀드득’ 하는 느낌의 이불을 덮으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혼자 자도 견딜 만하다. --- p.48 새로운 한 해를 분노와 원망으로 시작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출발하는 한 해가 잘되길 바라는 건 참으로 과한 욕심이다. 분노의 대안은 ‘고마움’과 ‘감사함’이다.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정서는 ‘그리움’이다. 글과 그림, 그리움의 어원은 같다.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 된다. 고마움과 감사함은 그리움의 방법론이다. 고맙고 감사한 기억이 있어야 그리움도 생기는 거다. 분노와 원망으로 황폐화되고 파편화된 한국인의 집단 기억에 결여되어 있는, 고마움의 기억을 찾아나가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 p.40 은퇴한 후에 시작될 또 다른 삶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쥐꼬리만 한 연금을 받아가며 그렇게 주저앉아 늙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평균수명 50세 시대에 만들어진 가치로 100세 시대를 살려고 하니 다들 그렇게 힘든 거다. 100년을 살 젊은 세대에게 평균수명 50세의 가치를 강요하니 더 불안해하는 거다. 따뜻한 마음으로 숲을 보는 지혜를 가져야 개인이고 국가고 편안해진다. --- p.68 삶의 게슈탈트, 즉 맥락을 바꾸는 방법은 대충 세 가지다. 첫째, ‘사람’을 바꾸는 거다. 항상 같은 사람들을 만나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장소’를 바꿔야 한다. 장소가 바뀌면 생각과 태도도 바뀐다. 내가 일본에서 몇 년 지내보니 진짜 그렇다. 마지막으로 ‘관심’을 바꾸는 것이다. 전혀 몰랐던 세상에 대해 흥미가 생기면 공부하게 된다. 새로운 사실을 깨치고 경험하게 되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다. 이 세 가지 중에서 관심을 바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관심이 바뀌면 사람도 바뀌고 삶의 장소도 바뀌기 때문이다. --- p.103 지난 몇 년간 내 삶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내 삶의 속도가 나를 슬프고 우울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난 언제나 빨리 말해야 했고, 남이 천천히 생각하거나 느리게 말하면 짜증 내며 중간에 말을 끊었다. 조교나 학생들의 느린 일 처리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 수업이나 각종 모임, 약속 시간에는 수시로 지각했으며, 바쁘다며 항상 먼저 나왔다. 그러나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교토의 한 귀퉁이에서 내 삶은 비로소 정상 속도를 되찾은 것이다. --- p.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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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왜 에디톨로지인가? 통섭, 융합, 크로스오버 등 기존에 에디톨로지와 유사한 개념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너무 세분화되어 서로 전혀 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거의 바벨탑 수준이다. 세상을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최소 단위로 나누고, 각 부분을 자세히 분석하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근대의 해석학은 그 한계를 드러낸 지 이미 오래다. 오늘날 통섭, 융합을 부르짖는 이유는 이 낡은 해석학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통섭이나 융합이 아니고, 에디톨로지인가? 통섭이나 융합은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뭐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구체적 적용도 무척 힘들다.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가 그저 마주 보며 폼 잡고 앉아 있다고 통섭과 융합이 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고픈 에디톨로지는 인간의 구체적이며 주체적인 편집 행위에 관한 설명이다.” 편집의 시대가 왔다. 에디톨로지 하라! “민주주의에는 자유롭고 건강한 언론이 중요하다. 뉴스를 모으고 편집하는 조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나는 미국이 블로거들의 세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편집자’가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21세기 가장 창조적인 인물로 손꼽히는 그의 탁월한 능력 역시 따지고 보면 ‘편집 능력’이다. 아는 것이 힘인 시대는 지났다. ‘정보의 바다’에서 초딩 ‘지식인’들이 헤엄치는 세상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양질의 정보를 선별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낼 줄 알아야 한다. 바로 ‘지식 편집’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에디톨로지(edit+ology)는 이렇듯 편집을 통해 새로움을 창조하는 방법론이다.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 마우스의 발명을 중심으로 하이퍼텍스트를 말한다. 도구의 발명이 인간 의식에 가져온 변화를 중심으로, 지식과 문화가 어떻게 편집되는가를 살펴본다.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 원근법을 중심으로 공간 편집과 인간 의식의 상관관계를 말한다. 관점의 변화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는지 살펴본다.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 심리학의 본질을 말한다. 심리학의 대상이 되는 인간, 즉 개인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편집되었는가를 살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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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고독 저항 사회’ 대한민국, 우리는 왜 외롭기를 거부하는가? ‘호모 헌드레드’ 시대의 숙명, 외로움과 직면하라! 진짜 내 삶의 주인 되기를 제안하는 김정운의 주체적 문화심리학 성공한 사람일수록 ‘비정상’ 외로움을 피해 관계로 도피하는가? 더 외로워야 덜 외로워진다! 올 한 해도 정신없이 달려왔다. 하루하루 숨 가쁜 일상, 잠시라도 공백이 생기면 불안하고 초조하다. 뭔가 자꾸 ‘더 열심히’ 해야만 할 것 같다. 한 번씩 돌아본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바쁘게 살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산다는 것은 과연 ‘바쁘게’만 사는 삶일까? 관계에 부대끼며, 뜻 모를 용기를 스스로 세뇌하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앞만 보고 가는 사람들에게 김정운은 말한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고. “우리는 너무 바쁘게들 삽니다. 그렇게 사는 게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착각입니다. 바쁠수록 마음은 공허해집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외로운 존재’임을 깨닫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외로움은 그저 견디는 겁니다. 외로워야 성찰이 가능합니다. 고독에 익숙해져야 타인과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야 외롭지 않게 되는 겁니다. 외로움의 역설입니다. 일본에서 지낸 4년 동안 참 많이 외로웠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이토록 재미있게 공부한 적이 없습니다. 모두 외로움을 담보로 얻어낸 성과물입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대한민국 대표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일류 강연자로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던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그가 돌연 한국 생활을 접고 일본으로 떠난 것은 2012년, 만 오십이 되던 해였다.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등 떠밀려 살아온 지난 50년의 삶에 종지부를 찍고,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한다!’는 결심하에 일본행을 감행한 것. 말이 쉽지,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고자 전문대학에 입학했다. 그렇게 나이 오십에 꿈을 찾아 골방에서 홀로 외로운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인생에 한 번쯤 외로움이 필요한 순간 ‘고립’을 통해 ‘몰입’의 기쁨을 만나다! 4년간의 격한 외로움의 시간이 빚어낸 예술적 사유, 인문학적 성찰, 사회분석적 비평이 한 권의 책으로 이 책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21세기북스)는 그림과 사진, 심리학적·사회문화적 통찰이 총망라되어 있는 크로스오버 도서로, 전방위적 행보를 보여온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예술가적 면모를 본격적으로 선보인 첫 책. 지난 4년간 축적해온 내면의 사유와 성찰이 지성과 감성, 예술성을 아우르는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었다. 표지 그림 ‘외로움과 그리움 사이’ 역시 김정운의 작품이다. 나이 오십 넘은 남자가 홀로 밥해 먹고 빨래하며, 남는 시간은 오롯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서툴지만 개성 있는 그림은 우리 삶에 대한 통찰을 이끌어내며, 심리학적 분석이 담긴 글을 통해 ‘자아’와 ‘세계’에 대한 주체적 성찰로 완성되었다. 거기에 일상의 찰나를 포착한 사진과 촌철살인의 유머가 더해져, 유쾌하고 편안한 ‘인간 김정운’의 면모까지 친근하게 담아냈다. 각 글의 말미에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한 키워드들이 수록되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그림의 사유에서 시작된 일상의 통찰! 개인의 삶과 사회의 현실을 꿰뚫는 김정운의 주체적 문화심리학 “지난 몇 년간 내 삶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내 삶의 속도가 나를 슬프고 우울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난 언제나 빨리 말해야 했고, 남이 천천히 생각하거나 느리게 말하면 짜증 내며 중간에 말을 끊었다. 그러나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교토의 한 귀퉁이에서 내 삶은 비로소 정상 속도를 되찾은 것이다. (…) 정말이지 충동적으로 시작한 일본 생활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 줄은 몰랐다. 내 아들보다도 어린 동급생들과 실습실에 처박혀 그림을 그리며 보낸 지난 2년의 학교생활이 한나절 같다. 그림을 공부하며 아주 작은 테크닉 하나 깨칠 때마다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그림을 공부하기로 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저자는 주저 없이 말한다. 주체적 삶이란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공부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시간은 격한 외로움을 담보해야 한다. 외롭다고 ‘관계’로 도피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모든 문제는 외로움을 피해 생겨난 어설픈 인간관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외로움을 감내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이다. ‘호모 헌드레드’, 100세 수명의 시대가 왔다. 인생의 의무와 역할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보다 일상이 버겁다면, 내일보다 오늘이 두렵다면, 기꺼이 외로워질 시간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