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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작가의 말 오르한 파무크 터키 이스탄불 에트가르 케레트 이스라엘 텔아비브 주마나 하다드 레바논 주니에 알라 알아스와니 이집트 카이로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나이지리아 라고스 로티미 바바툰데 나이지리아 이바단 비냐방가 와이나이나 케냐 나이로비 누르딘 파라 소말리아 모가디슈 로리 쿠부이트실레 보츠와나 마할라피에 네이딘 고디머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리디야 딤코브스카 마케도니아 스코페 룰레타 레샤나쿠 알바니아 크루야 타이에 셀라시 이탈리아 로마 팀 파크스 이탈리아 밀라노 다니엘 켈만 독일 베를린 크리스틴 앙고 프랑스 파리 존 맥그리거 영국 노팅엄 안드레아 레비 영국 런던 마이크 매코맥 아일랜드 골웨이 레일라 아부렐라 스코틀랜드 애버딘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나손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칼 오브 크누스가르드 스웨덴 글레밍에브로 나스티야 데니소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G. 멘드-우요 몽골 울란바토르 해리스 칼리크 파키스탄 이슬라바마드 라나 다스굽타 인도 뉴델리 시 추안 중국 베이징 에마 라킨 태국 방콕 무라카미 류 일본 도쿄 안드레아 히라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리처드 플래너건 오스트레일리아 브루니 섬 커리드웬 도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레베카 워커 미국 하와이 주 마우이 마리나 엔디콧 캐나다 앨버타 주 에드먼턴 실라 헤티 캐나다 온타리오 주 토론토 엘모어 레너드 미국 미시간 주 블룸필드빌리지 제럴딘 브룩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웨스트티스베리 배리 유어그라우 미국 뉴욕 주 퀸스 테주 콜 미국 뉴욕 주 브루클린 리슬리 테노리오 미국 뉴욕 주 뉴욕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윌밍턴 에드위지 당티카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T. C. 보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몬테시토 미셸 허니번 미국 캘리포니아 주 앨터디너 프란시스코 골드먼 멕시코 멕시코시티 로드리고 레이 로사 과테말라 과테말라시티 알레한드로 삼브라 칠레 산티아고 타티아나 살렘 레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다니엘 갈레라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 마리아 코다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인물 소개 |
Matteo Peric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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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팀 예술MD 최지혜(sabeenut@yes24.com)
2016.01.18.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글을 쓰는 사람. 설령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뭔가를 써내려 가지 않을 수 없는 사람. 어제 쓴 글을 고치고 또 고쳐가는 사람이 곧, 작가일 것이다. 명문장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의자에 꼼짝없이 잡혀있는 무거운 엉덩이와 노트 위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펜촉의 끝, 방 안의 묵직한 공기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흔들리는 나무의 기운이 한 데 모여서 완성되는 성질의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유난히 좋은 작품들을 써내는 작가들에게는 무엇이 있는 걸까? 특별히 이들의 글이 더 좋은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마테오 페리콜리는 그들의 창 밖 너머에서 그 답을 찾는다. 건축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그는 전작 『창밖 뉴욕』 에서 뉴욕에 사는 크리에이터 63인의 창 밖 풍경을 묘사한 적이 있다. 『작가의 창』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파리 리뷰]에 연재된 칼럼을 모은 것으로, 전세계의 작가 50명의 창을 통해 글쓰기의 다양한 풍경을 그림에 담았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창 밖 풍경들이 우리 인생에 큰 영향을 준다고 믿는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창은 궁극적으로 세계를 위한 접촉의 통로이자 동시에 밖과 안을 분리해주는 지점 이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 창문처럼 구멍이 뚫린 책 표지를 열면, 작가가 직접 글로 써 내려간 그들의 작업실과 함께 마테오 페리콜리가 그린 창 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은 아름다운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15년간 집필을 해왔다. 자신의 일부가 언제나 거대한 경관과 얽혀 있어, 자연의 움직임을 쫓다 보면 이 세계가 여전히 흥미진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중국 베이징의 원룸 아파트에 사는 작가 시 추안은 고층 건물의 공사가 시작된 이후로는 더 이상 창 밖을 내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한 편, 창 밖 풍경은 계절의 변화처럼 느리고 보이지 않는 과정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글을 쓰면서 느끼는 상실감을 위로해주기도 한다.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고를 떠나, 글을 쓰면서 반복해서 봐 온 그 풍경들은 일에 집중하려 할 때 시각화되어, 작가적 상상력의 문이 되기도 한다. 창을 통해서 본 바깥 세상은 왠지 아득하다. 지금 살고 있는 세계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사색이 필요한 순간마다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지도 모른다. 이곳의 소란스러움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 하지만 창문을 열면 그 곳의 세계 역시 이 곳과 다르지 않다는 걸 금세 깨닫게 된다. 창 밖 너머의 풍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 온다. 그것은 아름다운 해협과 무성한 야자수일 수도, 거대한 고층 빌딩과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 소리일 수도 있다. 풍경은 사는 모습처럼 다 다르지만, 변하지 않는 풍경들은 뭔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이 분명하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우리는 뭔가를 하면서 살아간다. 그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힘이 들 땐, 창으로 가까이 다가가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자. 그들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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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창은 풍경에 상관없이 삶, 그 자체를 담고 있다. --- p.30
창 너머로 보이는 건물의 지붕을 언제나 좋아했다. 아침에는 굴뚝에 황새가 한 마리 찾아와서는 내 방을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쳤고 또 이해했다. 그는 내 하늘이고, 나는 그의 땅 친구였다. 그에 대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 p.48 나에게 창조적인 자유란 새로운 풍경을 찾아 헤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이 환경이 분명한 곳으로 나를 이끄니, 그것도 역시 일종의 자유다. --- p.50 글을 쓰다가 집 꼭대기에 가려지지 않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좋다. 글이 잘 풀릴 때는 말이 되려고 기어오르는 의미의 압력이, 다스리거나 적어도 다뤄야 하는 솟구침이 찾아온다. 이러한 요동으로부터 언제나 깨끗하고 친숙한 하늘은 피난처가 된다. --- p.74 창밖 풍경은 야생과 도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동시에 아우른다. 사실과 허구 사이에 선을 긋는 게 여기 태국에서는 덜 분명하며 그 경계선 또한 구멍투성이라는 걸 일깨워준다. 이런 장소에서 이야기가 피어난다. --- p.96 바로 이번 주, 이 집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 창밖 풍경도 바뀔 것이다. 새로운 언어의 집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이 창에게 감사와 안도의 작별 인사를 건넨다. 삶의 다음 장을 위한 준비를 끝냈다. --- p.110 나는 여러 해 동안 일을 하면서 이 풍경을 보아왔다. 일에 집중하려 들 때 시각화하는 풍경이다. 이 환경이 내 상상력의 본거지, 문이 되었다. 여기에서 매일 다시 시작한다. --- p.142 글을 쓸 때는 끝없는 시공간에 있다는 느낌이 필요하다. 밀폐된 공간에서 글 쓰는 것은 단 한 시간도 참을 수 없다. --- p.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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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세계와 끊임없이 조우한다
창밖 풍경으로부터 오는 글쓰기 『작가의 창』 속 작가들의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네이딘 고디머는 감옥이나 다락방에서도 글을 쓸 수 있으므로 “작가에게는 풍경이 필요하지 않다”라고 말하는데, 이스라엘의 젊은 작가 에트카르 케레트는 “글을 쓸 때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요소가 내 이야기의 배경이 된다”라고 말한다. 즉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삶, 주위 환경이 글의 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한편 인도와 미국, 잉글랜드를 오가며 글을 쓴 소말리아의 작가 누르딘 파라는 “물리적인 것보다 정신적 환경에 더 오래 머무르는 작가의 삶”에 걸맞게 자신은 기억을 통해서만 글을 쓴다고 밝힌다. 즉 지나온 곳, 과거가 되어버린 풍경에 관해서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작가들의 의견은 조금씩 엇갈린다. 그러나 공통점은 있다. 그들이 필요와 무관하게 창밖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 어느 작업실에나 창문은 있으므로, 그들은 언제나 저 너머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상태로 글을 썼다. 이 글이 자신을 대신하여 저 밖으로 나아가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할 것을 직감하는 상태로 글을 쓴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창밖 풍경과 꾸준히 소통한 것과 같다. 그가 창밖의 눈으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창 너머로 보이는 건물의 지붕을 언제나 좋아했다. 아침에는 굴뚝에 황새가 한 마리 찾아와서는 내 방을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쳤고 또 이해했다. 그는 내 하늘이고, 나는 그의 땅 친구였다. 그에 대해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48쪽 “풍경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우리를 빚고 성장시키며 완성되는 언어 『작가의 창』을 살펴보면 마테오 페리콜리가 제안한 작업(자신의 작업실 창밖 보기)으로 인해 작가들이 새삼 어떤 것을 발견하거나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페리콜리가 밝혔듯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은 것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잃을 예정이거나 잃은 직후에나 그것이 곁에 있었고 내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깨닫지 않는가. “풍경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저 건물이 아니라 나무나 흘러가는 배를 보았더라도 나는 똑같은 사람이었을까” 같은 질문은 언제나 뒤늦게야 찾아온다. 그러나 그것은 늦었기에 가능한 깨달음일 것이다. 시간의 끄트머리에서만 가까스로 거머쥘 수 있는 숭고함이다. 그러므로 창밖 풍경은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빚고, 성장시키고, 마지막 순간에야 완성되는 삶의 은유이다. 바로 이번 주, 이 집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 창밖 풍경도 바뀔 것이다. 새로운 언어의 집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이 창에게 감사와 안도의 작별 인사를 건넨다. 삶의 다음 장을 위한 준비를 끝냈다. -11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