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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구디(인류학)
에이사 브릭스(영국사) 내털리 제이먼 데이비스(16세기 프랑스사) 케이쓰 토머스(17세기 영국의 문화사회사) 다니엘 로슈(프랑스혁명기 문화사) 피터 버크(유럽 문화사) 로버트 단턴(프랑스 문화사) 카를로 긴즈부르그(근대 초 유럽 민중문화사) 퀜틴 스키너(정치사상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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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글로 옮기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나눈 얘기를 말 그대로 적어놓은 인터뷰 원문을 편집하면서, 나는 말한 사람의 생각을 충실히 전달하기보다는 표현의 방식이나 어조에서 풍기는 그들 각각의 특징을 최대한 보여주려 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대담 중에 들은 유별난 어조를 전달하고 싶거나 대담 중에 때때로 목격된 감정이 실린 표현과 극히 열정적인 어투를 일부나마 보여주고 싶어서 본문에 감탄부호를 사용하였다. ―서론 중에서 인터뷰는 장르의 성격상 인터뷰어가 대담 내용을 일방적으로 편집하는 위험이 따를 가능성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 자체를 기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글을 읽는 것만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측면과 글 밑바닥에 깔려 있는 기본 가정을 드러내 텍스트 이해에 보완적 기능을 한다는 게 인터뷰란 장르의 미덕이다. 대담자의 인생행로와 지적 선택의 방향을 직접 청취해, 학문적 저작에서는 전혀 피력될 수 없는 인간적 면모를 접하게 해줄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장점을 십분 살리려면 각별히 질문하는 사람이 인터뷰 대상이 된 사람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팔라레스-버크는 인터뷰어로서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했다.《탐史》를 읽다 보면 각각 인터뷰한 9인의 역사가들이 어느새 서로 토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인터뷰어로서의 완급 조정과 인터뷰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 덕분이다. 이는 저자 역시 문화 혼합에 많은 관심을 가진 브라질의 역사가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또한 벌써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자는 대담자 중 한 명이기도 하고, 국내에도 여러 권의 역서가 소개된 피터 버크의 아내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가 피터버크 즉, 아내가 남편을 인터뷰한 부분은 색다르게 다가온다. 경계를 허무는 역사학을 말하다 팔라레스-버크는 서문에서 공통 사항을 정해 묻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책을 자세히 읽어보면 저자가 중점적으로 질문하는 몇 가지 점들이 눈에 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비교사에 대한 관심이다. 이는 저자 자신이 문화 혼합에 대해 큰 흥미를 갖고 있다는 점, 인터뷰 대상이 된 역사가들이 다양한 의미에서 비교사적 접근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 때문으로 보인다. 역사학과 인류학의 관계에 대한 질문도 반복해서 나타나는데, 이는 20세기 말 인류학이 새로운 역사학의 흐름을 선도한 데 따른 결과이다. 또한 저자가 여성인 만큼 여성사에 왜 관심을 보이지 않는지, 약간은 공격적인 질문에 모두가 수세적인 응답을 하고 있는 것도 재미있다. 이 책 천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관점은 문화 혼합 또는 타 문화에 대한 포용적 태도이다. 많은 역사가들이 역사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진보해 왔다는 단선적 발전론과 근대화를 곧 서구화로 보는 서구적 근대화론을 부정하고, 과거와 현재를 문화적 차이라는 시각에서 이해하면서 모든 문화는 문화 혼합의 결과임을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이 잭 구디다. 가나에서 문명퇴치운동을 주도했던 그는, 그럼에도 과거에서든 현대에서든 구전적 지식인의 함의가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자가 곧 진보는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동서양에서 꽃을 사용하는 문화를 예로 삼아 비교사적 방법을 통해 서양의 독특성을 동양에 대한 우월성의 근거로 삼는 서구중심사관에 일침을 가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멀리하고 경계를 넘어서는 사고를 지향하며 스스로의 문화적 혼혈성을 직시하라는 내털리 데이비스의 부드럽지만 예리한 경고도 경청할 만하다. 역사가를 문화의 번역자로 보는 피터 버크나 스스로를 서구적 합리성에 기초한 ‘지방사가’로 겸손하게 규정하는 퀜틴 스키너의 태도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또 한 가지, 우리에게 시사적인 점은 과거가 현재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역사가들의 반응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라는 약간은 진부한 물음과 같다. 데이비스는 ‘희망으로서의 과거’를 옹호한다. 현재가 아무리 침체하고 절망스럽다 해도 과거는 언제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긴즈부르그는 역사 연구를 통해 과거의 사람들이 서로 달랐고 앞으로도 다를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 상상력의 경계를 넓히고 과거와 현재에 대한 편협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역사학을 현재의 문제에 대한 성급한 치유책으로 쓰려는 상투적인 태도를 거부하면서, 역사는 통찰력이지 지식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다양한 시각의 교차―치밀한 질문, 치열한 답변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9인의 역사가들이 서로 치열한 논쟁과 담소를 나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대담자의 치밀한 질문 덕이 크다. 이런 경우다. 팔라레스-버크가 에이사 브릭스에게 “로버트 단턴이 구체제의 몰락에 프랑스 언론과 출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 당신은 현대의 영국 매체들이 구체제하 프랑스의 경우처럼 현재 왕정이 처한 위기에 큰 책임이 있다고 보십니까?”라고 묻는다. 에이사 브릭스는 이에 “나는 단턴이 이런 유의 문헌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옳다고 봅니다만, 어떤 의미에서든 그것 때문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재정적 위기와 그것을 해결할 수 없는 프랑스 왕정의 무능력, 여기에다 계몽주의의 확산이 가세해서 구체제가 몰락했다고 보는 것이, 상스럽게 스캔들을 까발리는 간행물들의 확산 때문이라고 보는 것보다 더 적절한 설명 같군요. 하지만 이러한 간행물들도 나름의 역할을 하기는 했습니다. …… 영국의 경우, 상스러운 스캔들을 담은 간행물들은 단턴이 말한 지하 간행물들과 달리 훨씬 더 강력한 매체 조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 왕가의 섹스 스캔들을 싣는 매체는 결국 그 위상이 약화될 것으로 봅니다만, 나로서는 이런 측면이 그렇게 심각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라고 답한다. 또한 존 엘리어트의 “마르탱 게르라는 이름이 마르틴 루터라는 이름만큼 혹은 그보다 더 유명해진다면 문제가 있다”는 말을 화두로 미시사를 염려하는 시각을 두고는 이런 이야기가 오간다. 케이쓰 토머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그거에요! 나는 결코 그것에 노심초사하는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조그만 미시사가 너무 먼길을 가고 있는 것 같군요. 카르로 긴즈부르그의《치즈와 구더기》나 르 루아 라뒤리의《몽타이유》는 훌륭한 책입니다만, 내가 보기에 핵심적으로 볼 만한 미시사 저작은 그쯤에서 끝난 것 같아요. 내털리 데이비스: 좋은 미시사 저작이란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고 싶군요. 그러한 역사가 잘 씌어진 것이 되려면 자체로서 풍부한 심층 연구여야 할 뿐 아니라 외부의 다른 역사 과정 및 사건들과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 좋은 미시사를 쓰기 위해서는 세세한 측면들과 증거, ‘전체사’의 조망이 동시에 요구되거든요. 잭 구디: 나는 어느 정도 엘리어트의 말에 공감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역사학과 인류학의 수렴이 단지 미시사만을 도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 말고도 이러한 미시적 연구에서 발견되는 재미있는 점들이 있었고, 그것은 매우 흥미로은 영역이라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으니까요. 이는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있었던 특정한 개인에 대한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이러한 점들은 좀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데도 잘 들어맞는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마르탱 게르를 뭐라 평가하든지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카를로 긴즈부르그: 나는 엘리어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미시사를 거시사에 대립시킨다는 생각은 정말로 말이 안 되는 것이니까요. 그것은 사회사를 정치사에 대립시킨다는 생각보다 더 말이 되지 않는 얘기에요. 이밖에도 아날학파, 비교 문화사, 인류학, 마르크스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푸코에 관한 이들의 열띤 토론을 이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진정한 역사가의 태도를 말한다 젊은 역사가에 주는 조언으로 긴즈부르그는 “도덕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한 방법으로 소설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로버트 단턴은 기자 출신답게 살인과 강도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로 일해 보라고 한다. 사실을 존중하고 모든 것이 담론에 불과하다는 관념에 대항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퀜틴 스키너는 기어츠나 푸코처럼 “자신들의 관습에 대한 고찰한” 뛰어난 “철학자들”을 읽으라고 했다. 여기서 자료에 대한 중요하고도 상상력이 풍부한 문제를 제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케이쓰 토머스는 주제와 학제를 가리지 말고 광범위한 독서를 해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역사란 결국 역사가가 가져다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600여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의 이 책이 말하려는 것은 이들의 진심어린 충고 속에 담긴 ‘역사가의 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독자들은 우선 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 이로 인해 생겨나는 많은 접근 방법과 해석을 읽어낼 것이다. 그리고 더 나가 우리는 여기 9인이 역사와 함께한 삶을 통해 그들의 역사를 대하는 태도를 궁극에는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탐史》의 존재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