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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 Saram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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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이 마음에 드나. 마음에 듭니다. 열렬히 좋아하는 말투는 아니로군. 선생님의 질문에도 열의는 없었습니다. 그건 전술의 문제야. 작가는 아무리 커다란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겸손함을 보여주어야 하네. 교정자는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교정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겸손하지 못한 생각을 하는 순간 완벽한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될 겁니다. 그 사람은 그 구절을 고치지 않았어. 같은 동사가 한 문장에 세 번이나 나오는데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 그렇지 않나. 교정자는 원래 문학과 삶의 경험이 많은 진지한 사람들입니다. 내 책이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게. 전통적인 장르 구분에 따르면, 그 책은 실제로 그렇게 분류되겠죠. 저의 겸손한 의견으로는 다른 부분의 모순들을 지적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요. 선생님. 문학이 아닌 모든 것이 삶입니다. 역사이기도 하지. 특히 역사죠. 선생님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만.
--- p.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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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한 것, 있을 법하지 않은 것, 신기한 것들의 사전』도 잊으면 안 된다. 놀라운 우연의 일치이지만, 이 사전은 이 모험적인 이야기와 완벽하게 들어맞으며, 실수의 사례로서 저 현명한 아리스토텔레스가 평범한 집파리의 다리가 네 개라고 선언했던 일을 들고 있다. 이 주장은 그후 수 세기 동안 여러 책에서 그대로 되풀이되었다. 아이들조차 잔인한 실험을 통해 파리의 다리가 여섯 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 이후로 아이들은 파리 다리를 잡아떼면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개를 육감적으로 세었다. 하지만 바로 이 아이들이 자라서 저 그리스 현자의 책을 읽게 되면, 자기들끼리 있을 때 파리 다리가 네 개라고 말했다. 박식한 사람의 영향력이 그렇게나 크고, 우리가 배우는 것들이 명확히 밝혀주지 못하는 진리가 그렇게나 많다. 우리가 이렇게 뜻하지 않게 곤충학의 경계를 넘게 된 것은 교정자의 것으로 규정된 실수가 사실은 그의 것이 아니라,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고 아주 옛날 책들의 내용을 되풀이해 온 책들의 것임을 결정적으로 보여준다.
--- p.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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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에 라이문두 실바는 집에 늦게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십중팔구 심야영화까지 볼 것이다. 별로 눈치가 빠르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가 만약 코스타가 그의 속임수를 발견하더라도 금방 연락할 수 없는 곳에 있고 싶어 안달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그는 그 속임수의 저자이자 공범이다. 저자로서 그는 잘못을 저질렀고, 교정자로서 그 실수를 바로잡지 못했다. 게다가 벌써 열시가 다 됐다. 인쇄소에서는 벌써 첫 번째 판을 짜고 있을 것이고, 인쇄 직공은 뛰어난 전문가답게 천천히 신중하게 움직이면서 페이지들을 모아 죔틀에 올린 다음에 조정이 필요한 부분을 손볼 것이다. 조금 있으면 가짜 『리스본 쟁탈전』이 적혀 있는 종이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p.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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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외부 교정자 라이문두 실바. 포르투갈의 역사를 다룬 원고를 교정보던 어느 날, 그는 교정자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역사적 진실을 바꿔버리는 한 단어를 원고에 덧붙인다. 그럼으로써 이 책은 십자군이 12세기에 포르투갈의 국왕 아퐁소가 수도 리스본을 무어족 점령군에게서 탈환하는 것을 도와주지 않았다고 말하게 되었다. 그런데 13일후 이 일이 발각되어 출판사의 호출을 받은 실바는 해고통지 대신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된다.
이 일로 인해 교정자들을 따로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된 마리아 사라 박사가 교정된 텍스트를 기초로 대안역사를 써보라고 부추긴 것이다. 라이문두는 그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럼 왜 십자군이 아퐁소 국왕의 제안을 거절하게 되었을까를 논리적으로 따져보면서 국왕의 연설 속에서 잡아내지 못한 의미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바로 이 지점부터 라이문두의 소설과 사라마구의 소설은 서로 섞여 들어가며, 저자와 등장인물 간의 대화나 액자구성 같은 독특한 전개를 보여준다. 한편 마리아 사라 박사를 본 순간부터 사랑을 느낀 라이문두는 자신이 써 나가기 시작한 소설의 두 남녀 주인공에 자신과 사라를 투영시키고, 사라마구 소설 속 주인공인 라이문두 실바와 마리아 사라 박사가 사랑을 이루는 것과 거의 동시에 라이문두 소설 속 두 주인공 모게이므와 오우로아나도 사랑을 맺으며 두 소설은 끝난다. 사라마구는 재창조된 과거와 라이문두의 즐거운 환상 사이를 오가며 과거와 현재를 장난스럽게 배치하고 해박한 역사적 지식을 내보이며 역사 사료와 역사적 허구 간의 차이, 역사의 빈틈에 삽입된 인간들의 이야기에 대해 성찰을 요구하며 역사와 언어의 본질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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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라이문두 실바 50세 가량의 교정자. 홀로 살고 있으며 집안일을 봐주는 가정부에게 평균보다 후하게 급여를 준다. 평생 원고를 봐온 덕분에 해박한 지식과 수많은 책을 갖추었고 철학자다운 풍모가 있다. * 마리아 사라 라이문두 실바가 일하는 출판사의 교정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새로 채용된 사람으로 35세 정도의 이혼녀. 이혼 후 오빠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 마리아 부인 라이문두 실바의 집안일을 해주는 부인. 키가 작고, 몸이 마른 편이고, 혼혈아로 오해를 받을 만큼 피부가 검다. 주인이 볼 때 특히 일을 많이 한다. * 코스타 라이문두 실바가 일하는 출판사의 제작부장. 라이문두에게 원고를 넘겨주고 넘겨받으며 오자 한두 개보다는 기일을 지키는 것이 판매에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 사라 라이문두 실바가 일하는 출판사의 교환원. 전화번호를 잘 외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 동 아퐁소 엥리크시 레옹과 카스티야 왕국의 작은 지역인 포르투칼레의 통치자이며 리스본 공성전을 이끌었다. * 모게이므 리스본 공성전 당시 상관에게 어깨를 빌려주며 리스본 성벽에 침투한 큰 키의 병사로 십자군에게 납치당해온 오우로아나를 사랑한다. 라이문두 실바는 소설 속에서 자신을 이 인물에 투영한다. * 오우로아나 십자군 기사의 첩이었으나 십자군 기사가 죽은 후 생계를 위해 귀족들의 세탁부가 되었다. 실바를 마리아 사라를 이 캐릭터에 투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