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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인생과 내면
무덤 가는 이 길도 나쁘지 않군―스스로 쓴 선비들의 묘지명 / 일기는 이 한 몸의 역사다―13년 동안 써내려간 일기《흠영》 / 진정한 즐거움은 한가한 삶에 있다-이경전과 김정국 식 여유 / 입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성호 이익의 절식 철학 / 권세가와 선비의 갈림길-역사가 심판한 김안로, 역사가 평가한 유몽인 2부 취미와 열정 나의 희한한 수집벽이 제대로 평가받기를-서화 소장가 김광수와 장서가 이하곤 / 그림을 아는 선비, 제발을 남기다-의원 김광국, 고증학자 성해응 / 우아하고 점잖은 사치-벼루와 시전지 이야기 / 남몰래 예술가를 키운 명망가들-서평군 이요와 이정보 / 산을 유람하는 것은 독서하는 것과 같다-산수의 멋을 즐긴 선비들 / 신분의 벽을 뛰어넘은 문인들―시인 삼대와 천민 시인 홍세태 3부 글과 영혼 편지로 운명을 위로하다-이규보의 <나에게 부치는 편지>와 선비들의 척독 / 제사를 올려 내 정신에게 사죄하다-문학의 신에게 바친 이옥의 제문 / 그리운 이에게 바치는 오마주-박제가와 조희룡의 회인시 / 어린이라면 누구나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박엽과 목만중의 ‘동몽시’ / 도덕적 기준으로 남의 글을 재단하다-조선시대의 필화 사건 / 역사는 천하의 공언이다-역사 바로잡기와 뒤집어 보기 4부 공부와 서책 일백 세대 뒤에 태어날 이와 벗 삼으리 -박지원과 박규수의 옛글 읽기 / 선비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조선시대의 베스트셀러 / 끊임없이 읽고 기록하라-공부하는 법, 글쓰는 법 / 지식에 앞서 학문하는 자세를 배우다-참스승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 / 선인과 범인이 다른 길을 가는 갈림길-과거를 포기하고 금강산으로 떠난 신광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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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을 넘나드는 감성의 고리와 사유의 흔적
이 책에 등장하는 선비들의 생활을 보면 그동안 우리들이 짐작했던 선비의 모습과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이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수백 년 전 그들의 삶과 지금 우리의 삶이 다를지언정 감성만은 온전히 남아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되는 선비들의 면면을 엿보다 그들처럼 하고 싶고 닮고 싶어진다. 13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쓴 유만주를 보면 ‘일기장’ 하나 마련하고 싶다. 절식을 실천한 성호 이익의 글을 보면 왠지 밥 한 술 덜어내고 싶다. 골동품 수집에 몰두한 김광수, 만권 장서가 이하곤을 보다보면 우리를 둘러싼 사물들이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어디 그뿐인가, 이규보의〈나에게 부치는 편지〉를 읽으면 당장 예쁜 편지지와 펜을 준비하고 싶고, 선비들의 공부법을 읽으면 그들처럼 부지런히 읽고 기록하고 싶다. 우리의 감성을 움켜쥐는 이 책의 힘은 저자가 부지런히 읽고 모아둔 옛글들에서 나온다. 차례만 봐도 알겠지만 글의 주제는 실로 다양하다. 이 주제들을 무리 없이 풀어내고 그에 맞는 옛글과 옛사람을 끄집어내는 데서 저자의 숙성된 사유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 사유의 흔적을 따라가면 우리는 자연스레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가끔 동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숙제를 하느라 끙끙댄다. 내가 저만 했을 때도 그랬다. 이는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모습 중 하나다. 조선시대 어린이들은 지금 초등학생 이상으로 자주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옛 어린이들은 당시의 풍습대로 한시를 썼다. 그렇게 어린이가 쓴 한시를 동몽시라고 불렀다. 지식이 별로 많지 않은 어린이를 그때는 동몽童蒙이라 불렀으니 동몽시란 현대의 동시에 해당한다. …… 정조 때의 명신 여와 목만중은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알려졌다. 열두 살 때 그의 할아버지가 ‘안경眼鏡’이란 제목을 주고 시를 지어 보라고 했더니 그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 한 편을 뚝딱 지어냈다. ―〈어린이라면 누구나 좋은 시를 쓸 수 있다〉중에서 천 년 벗과의 만남 틀에 박히고 화석화된 존재가 아니라, 펄펄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서의 선비. 책을 읽을수록 그들이 연출해 내는 삶의 진정성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그들은 관념의 낡은 거죽을 살짝 뒤집어쓰고 있을 뿐이었다. 낡은 거죽을 벗겨내고 가까이 살펴보면 속내에 품고 있는 따뜻한 생각과 마음을 감촉할 수 있다. 이 땅에 살았던 선비들의 일상과 글이 수백 년의 시간을 초월하여 신선한 감각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들은 엄격한 유학자에서 인정 많은 스승으로, 그리고 어느새 우리의 친구로 살갑게 다가오는 것이다. 벗들이 상봉하면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마음에 드는 일이 없을까 늘 안달한다. 안부와 요즘 관심사를 묻고 나서 공부하다 새로 얻은 것이 있는지 알아본다. 그러고 나서 그저 묵묵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옛사람은 차를 마시고 나서 논어를 풀이했다”는 격으로 경전의 가르침을 따져보려 하지만, 이전에 배운 공부가 보잘것없어 더 따지고 입증할 거리가 없다. 과거 답안지에 쓸 문장을 꺼내보지만 지루하고 허망하여 기분을 잡칠까 걱정이다. 결국에는 다 그만두고 다시 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음악을 듣고 기생을 희롱한 이야기, 나들이하고 놀이하는 즐거움에 대화가 이른다. 그러나 이따위는 옛사람이 취하지도 않았고, 내 성격에 맞지도 않는다. 이 밖에 향을 사르고 차를 품평하는 취미나 서화와 골동품을 감상하는 고상한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을 기울이기에는 천박한 짓이다. ―〈일백 세대 뒤에 태어날 이와 벗 삼으리〉중에서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 장만한 다이어리에 무엇을 채울까 궁리하며 살아가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과 팍팍한 인간관계로 지쳐 있는 우리에게 저자 안대회가 권하는 천 년 벗들은 향기어린 사색과 성찰의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