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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베네딕스 쇤플리스 벤야민 7
생애 1900년 경 베를린에서 보낸 유소년기(1892~1912년) 13 학업: 제1차 세계대전의 그늘 아래(1912~1919년) 27 종전과 바이마르 공화국(1920~1923년) 37 여행과 정치(1924~1932년) 47 탈출과 망명(1933~1936년) 64 마지막 대작과 자살(1940년까지) 87 작품 소년기에 터져 나온 천재적인 면모: 1910~1914년의 저술 99 수다스러운 침묵: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의 저술들 105 괴테와 게오르게, 보들레르와 프루스트의 영향권 안에서: 1920년대 철학적 작업과 번역들 121 1928년에 나온 책 두 권 145 유물론적 문학비평 159 마이크 앞에서: 발터 벤야민 박사 168 시적인 저술 한 편 172 망명 길의 에세이스트와 비평가: 1933~1940년 183 정치적-철학적 유고 206 영향 오인된 작가? 216 잊혀진 작가 217 정치적 논쟁 대상 220 학문이라는 신성한 전당에 불려오다 222 발터 벤야민 연보 225 참고 도서 목록 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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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철저할 것. …… 매우 중요한 일에 있어서는 결코 수미일관한 태도를 취하지 말 것!”
전통과 관습에서 일탈한 길 찾기 발터 벤야민은 20세기에 가장 많이 거론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섭렵한 영역은 학문, 문학 그리고 예술에까지 이른다. 그는 고집스럽게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난 저술들을 쓰면서 자신이 대도시 베를린 출신이라는 사실을 거듭하여 곱씹었다. 쉬지 않고 뒤바뀌는 인상들의 미로 한복판에서 어떻게 하면 제대로 길을 찾아 나갈 수 있는가를 궁리했다. 강단 철학의 비상임 철학자 21세기에 새삼스럽게 20세기 작가 벤야민과 그의 저술을 되돌아본다면 흔히 역사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까 하고 별생각 없이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벤야민의 이론들에 담긴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완전히 도외시하는 것이다. 벤야민의 생산적인 저술들은 어떻게 한 개인이 문화사적 자료들을 분석하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를 파악하게 되는지를 모범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러한 점에서 벤야민은 진정 ‘강단 철학의 비상임 철학자’였다. 그가 자신의 묘비명에 새겨지기를 바랐던 문구 그대로 말이다. 현대화된 베를린과 벤야민 독일 제국 설립과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어귀에 태어난 벤야민은 빌헬름2세의 치하에 있던 독일이 막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하던 시기에 성장했다. 이 시기는 현대적인 산업자본주의가 독일 전역으로 뻗어나가면서 도처에 흔적을 남기던 시기였고 과거 프로이센의 도읍이었던 베를린이 현대적인 대도시로 변신해 나가던 때이기도 했다. 베를린은 숨 쉴 틈 없이 빠르게 변화했다. 사람들은 근대가 도래했음을 도시의 각처에서 목격했다. 세기 전환기에 베를린은 백화점, 대형 상점 거리 그리고 “신흥번화가”가 파리의 가로를 본떠 근대적인 외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공장과 임대 주택 단지들도 등장했다. 베를린 전차가 내뿜는 흉물스러운 증기 먼지와 기술발전이 가져다 준 이기인 자동차와 전동 도시철도가 시내 깊숙이 파고들었다. 도시가 그에게 주었던 의미, 그의 도시 경험이 그의 삶과 사유방식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쳤는지 우리는 벤야민의 저작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도시의 풍경들》에서부터 《1900년경 베를린에서 보낸 유년》을 거쳐 《파사젠베르크》에 이르기까지 무수하다). 필생의 저작, 급격히 변하는 인상기록 그의 필생의 작품들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대도시 출신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곱씹으며 생각하는 과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이 처한 조건과 가능성이 늘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에 대해 생각하는 것, 항상 급격하게 변하는 인상들 속에서 그래도 자신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일정한 맥락 속에서 인지하고 그래서 이를 이해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그때그때의 상황에 대해 나름대로 감을 잡는 것, 한마디로 말해 사태를 파악하고 자신을 회복하려는 노력의 결과였던 것이다. 항상 철저할 것, 하지만 수미일관한 태도를 취하지 말 것 어린 시절 벤야민은 시오니즘 운동에 어느 정도 동조하는 편이었지만(게르숌 숄렘과 루드비히 슈트라우스의 활동에서 영향을 받았다) 크게 열광하지는 않았다. 이런 태도는 그가 장년기에 친구인 에른스트 블로흐와 베르톨트 브레히트 그리고 동생 게오르크를 통해 접하게 된 공산당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벤야민은 1933년 독일에서 추방되고 나서도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았다. “항상 철저할 것.” 하지만 “매우 중요한 일들에 있어서는 결코 수미일관한 태도를 취하지 말 것.” 벤야민이 삶의 모토로 삼은 이러한 태도는 그의 모든 저술들에 그대로 적용된다. 자유로운 문필가 벤야민은 본래 학자의 길을 가고자 했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자유로운’ 문필가가 되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가 직접 쓴 글이나 번역들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1933년 이래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할 때 몇몇 중요한 에세이들을 썼는데 그중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가장 널리 알려진 글이다. 하지만 1933년에서 죽음을 택하게 되는 시기인 1940년까지 벤야민은 지난 시기에 자신이 쓴 저술을 모두 망라하는(분과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계파의 전선도 넘어서면서 중요성과 정치성 그리고 시의성을 한껏 담은) 저작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바로 미완성으로 남은 《파사젠베르크》이다. 이 특출한 대작을 통해 벤야민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세상이 어떤 골격을 하고 있는지를 19세기에 이룩한 건축학적 구조물의 도판 위에서 해독하려고 시도했다. 초현실주의적인 사상 벤야민의 사상은 이론적인 측면에서나 정치적인 측면에서나 자의적으로 도용하기가 불가능하다. 벤야민의 정신에는 초현실적인 것이 많이 섞여 있기 때문에 일관성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재단해선 안 된다. 이는 그가 밝힌 ‘신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항상 철저할 것.” 하지만 “매우 중요한 일들에 있어서는 결코 수미일관한 태도를 취하지 말 것.” 그렇기 때문에 그가 남긴 정신적 작업들은 사람들이 즐겨 말하곤 하는 ‘필생의 저작’이라는 말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말에는 일관성과 연속성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지만 그의 개인적인 지적 성장 과정은 일관성과 연속성을 완전히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열려 있는 사유의 지평 벤야민이 여전히 현재성을 지니는가? 벤야민의 저술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폭발력을 계속 지니고 있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문학, 예술, 비평이 지닌 역할과 의미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른 20세기 지식인들과는 달리 그는 어떤 동일화의 가능성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그는 우리에게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상황은 끊임없이 바뀌고 있으며 그 인상도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어떤 의견” 관념 혹은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이 의견, 관념 혹은 신념이 그에게서 무엇을 이끌어 내는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최상의 생각들이라 해도 “그것으로부터 어떤 유용한 것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유용한 무엇을 만들어 내는 시의적 전략가의 모범을 보여 준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굳어 버린 이론이나 개념에 집착할 필요 없이 그의 시의적 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